글·사진 신소희
‘농촌다운’ 돌봄을 궁리하다
과소화·고령화된 농촌에서 돌봄은 서비스 체계의 공백이기도 하지만, 농촌사회 연결망의 해체, 함께 돌보는 경험의 단절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복지 서비스가 구석구석 잘 전달되면 돌봄이 잘 되는 것일까? 농촌 지역 주민들은 누구에게 어떤 돌봄을 받고 싶어 하는가? 이러한 돌봄 활동을 통해 우리 마을은 지속 가능해질까? 조금은 다른 결의 이야기와 질문을 먼저 던지고 싶다.
돌봄은 ‘관계가 이루어지는 삶의 도처에서 좋은 삶을 기획하고 증진하기 위한 삶의 기본 방식이자 삶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는 기술(공병혜. 2017. 《돌봄의 철학과 미학적 실천》)’이다. 돌보아 주는 이와 돌봄을 받는 이가 모두 돌봄의 주체이다. 돌보는 이를 의존적으로 만들고 지배하고 어떻게 되기를 요구하는 것은 진정한 배려가 아니다. 어느 누구도 기능 상실과 결핍의 존재로, 혜택과 도움을 받아야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서비스 관리 대상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직접 몸을 움직여 집안과 마을 살림을 꾸려온 농민들은 평생 생명을 가꾸고 돌보는 주체로 살아왔다.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 텃밭도 언제나 정갈하다. 마을 주민이라면 빠짐없이 울력에 참여해 마을 길 풀을 깎고, 청소했다. 함께 할 식사를 준비하고, 물 한 잔 나르는 일까지 각자의 몫이 있다. 마을 어귀 정자나무 아래엔 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온종일 풀과 씨름하다 한숨 돌리는 농부도, 나무 그늘 찾아 슬슬 마실 나온 어르신도, 할머니를 따라 나온 어린아이도 시원한 물 한 잔, 수박 한 조각에 안부를 나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마을에 사는 사람도 많았다. 마을의 친족과 친구들은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 때마다 농사일이며 어려운 이웃을 살피는 일, 마을에 필요한 일들을 함께해나갔다. 마을에서 참된 관계를 맺고 정을 나누고 돌봄을 대물림했다. 마을은 일과 삶, 이웃과 동료, 정주공간과 자연환경이 분리되지 않는 상호의존적이며 구체적인 생활 세계였다. 사람들은 그 친숙한 세계에서 사회적 소속감과 연대감,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산업화·도시화를 거치며 젊은이들은 마을을 떠나고 농촌 마을 인구가 줄었다. 마을 안에서 스스로 해결했던 많은 일을 국가와 시장이 전유했다. 공동체 문화와 일상의 기예들은 더 이상 전수되지 않는다. 전에는 없던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차츰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고, 면에 있는 학교는 하나둘 문을 닫는다. 20~30대 청년 농민이 마을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다. 60대가 마을의 막내인 경우도 허다하다. 본인은 마을의 어르신을 모시고 마을 일을 하는 게 당연했는데, 이제 나이가 들면 마을에 누가 남아 나를 보살펴 줄까 헛헛함을 느낀다. 무릎이 아픈 할머니는 매주 약을 받으러 한참을 걸어 나가 버스를 또 한참 타고 읍내 병원에 간다. 거동이 불편해지거나 치매 증상이 나타나면 돌봐줄 이가 없으니 평생 살던 마을을 떠나 자녀들이 사는 도시 근처 요양원으로 간다.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어 어르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일어난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이다. 농촌 지역 노인 자살률이 도시보다 약 1.5배 높다.
농촌 지역에는 고령화·과소화라는 어려운 여건과 함께 농촌 지역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반영한 도시와는 다른 방식의 관계와 돌봄이 필요하다. 마을 주민을 단순히 연령이나 생활 기능 기준으로 돌봄 제공자/수혜자로 구분하고, ‘수익성과 예산 부족 때문에 충분하게 제공되지 못하는’ 공적 돌봄 체계의 공백을 주민이 메꾸는 접근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대상을 표적화해서 필요를 관리하는 복지 서비스보다 어쩌면 마을 사람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함께 일하고 같이 밥 한 끼 맛있게 먹는 마을 울력이 훨씬 더 농촌다운 생활 돌봄에 가까울 수도 있다. 위기관리를 넘어선 행복한 삶을 위한 돌봄은 지역사회의 역량을 개발하고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자본을 연계해서 아이, 청년, 어르신 구분할 것 없이 모든 관계를 포괄한다. 농촌 마을의 자주적인 돌봄 문화와 기능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 한 지역에서 함께 생활하는 존재로서 상호 인정의 관계 속에서 이웃의 선의를 발현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를 먼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빠르게 줄어들고 멀어지고 사라지는 것들
내가 살고 있는 충남 홍성군 장곡면 인구는 2773명, 65세 이상 인구 비율인 고령화율이 51.2%다.(2023년 11월 말 기준) 작년 장곡면에서는 3명이 태어났고 53명이 돌아가셨다. 장곡면 사람들이 빠르게 줄어들고 늙어간다. 예견된 일이지만 숨이 차다. 숫자가 모든 걸 말해주진 않아도 농촌에 사는 대개는 이 숫자 뒤에 펼쳐지는 풍경을 안다. 면 소재지 가게가 하나둘 사라지고 마을로 들어오는 버스가 뜸해진다. 왁자지껄하던 마을 정자나무 아래가 조용해지고 잔치보다 장례 소식이 몇 곱절 많다. 무성한 풀숲과 오래된 빈집들로 마을 정경은 스산하기만 하다. 아이를 키우는 집은 인근 신도시로 이사 나가고 하나 남은 초등학교의 입학생은 해마다 줄어든다. 한적한 2차선 도로에는 트럭만 쌩쌩 달린다. 코로나19 이후 문을 닫은 마을회관이 많다.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홀로 사는 어르신의 하루들은 얼마나 길고 고요할까 먼저 헤아리고 움직이는 건 그래도 마을 이웃들이다. 옆집 숟가락 사정은 물론,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이 얼마나 멀고 고된지, 도시에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생활의 작은 필요들이 시골에서는 얼마나 불편하고 비싼 일이 되는지 누구보다 더 잘 알기 때문이다. 당장 어려운 일이 생기면 멀리 사는 가족보다 동네 이장님을 먼저 찾는 게 아직까지 농촌의 인지상정이다.
한편 장곡면 내 복지 기관이나 관련 시설은 여전히 한 개도 없다. 요양원은 물론이고 이른바 ‘노치원(노인유치원)’이라 불리는 주간보호센터는 인근 광천읍, 홍성읍에만 있다. 막상 송영차를 타고 한참 나가더라도 하루 종일 건물 안에서 정해진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니 어르신들은 영 갑갑하고 어렵다고 한다. 노인맞춤형돌봄서비스를 받는 장곡면 노인은 200명이 넘는다. 홍성읍 복지기관 소속 생활지원사 열댓 명이 어르신 14~16명씩 담당한다. 생활지원사 가운데 장곡면 주민은 없다. 반대로 장곡면에 사는 요양보호사는 다른 지역으로 파견을 나간다. 한 가구당 일주일에 1~2번 40분씩 방문하는데, 농번기에는 어르신이 밭에 나가 있어서 만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노인맞춤형돌봄서비스가 지역사회 중심 생활돌봄이라고 하지만, 그 서비스 대상 및 내용에 대한 정보는 행정과 보건지소에서 관리하고 개인정보라 민간에서 접근할 수 없다. 서비스 수행을 할 수 있는 기관은 홍성읍에만 있다. 20km가량 떨어진 홍성읍을 생활권으로 보기는 어렵다.
정다운 이웃들이 서로 돌보는 마을 네트워크
복지기관 중심의 선별적·일률적 복지 서비스 제공은 한계가 있다. 긴급한 필요의 보루가 될 수는 있지만, 지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구성원들의 관계를 확장하거나 역량을 강화하지는 못한다. 특히 서비스 수행 주체(조직)가 전무한 저밀도의 면 단위 지역은 계속 수혜 대상이 될 뿐이다. 하지만 생활에 밀착한 더 광의의 급진적 복지 관계망과 다양한 형태의 자원은 지역사회에 있다. 그 방식과 내용, 과정을 기획하고 설계할 수 있는 기회가 지역 주민에게 먼저 돌아가야 한다.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역사회 실행 주체를 형성하고 조직화하는 ‘과정’에 대한 장기적이고 유연한 지원이 중요하다. 주민공동체나 사회적경제 조직 방식의 주민 실행 주체를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 ‘양성’한다는 관점이 필요하다.
장곡면에도 마을마다 정다운 이웃들이 있다. 마을에서 고독사가 잇따라 발생하자 손수 농사지은 먹거리와 품을 내어 홀로 사는 어르신들에게 자발적으로 반찬 배달을 하는 부녀회, 부러 동네 할머니들에게 농사 소일거리를 나누고 정성으로 차린 밥상을 대접하는 농장, 주민들이 함께 모여 그림 그리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놓는 마을, 치매를 앓는 어머니와 이웃 마을 할머니들이 편하게 어울리실 수 있도록 농장에 초대해서 함께 꽃도 가꾸고 요리활동을 하는 농민, 언젠가 마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치매예방, 원예복지 교육을 열심히 받은 젊은 주민들이 있었다. 각자 농장과 마을에서 주변 이웃들을 만나고 돌보는 활동을 당연스레 해왔다. 하지만 어떤 때는 돌봄에 드는 자원이나 비용이 아쉽기도 했고, 몇몇의 희생이나 봉사가 누적되다 보면 부담이 커졌다. 함께 해오던 일들이 개인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단되는 경우도 있었다.
개별 마을, 농장,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해오던 돌봄활동을 서로 공유하고 지지하는 얼개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몇몇 농장과 마을 리더들이 모여 2020년 ‘장곡면 사회적농업 네트워크’를 꾸렸다. 함께하는 장곡면의 마을, 이웃, 단체가 늘어나면서 2023년 ‘함께하는장곡 사회적협동조합’ 창립으로 이어졌다. 함께하는장곡 사회적협동조합에서는 농장과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이 모여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활동하는 젊은 농민들을 지원한다. 각 마을에 사는 돌봄반장님을 조직해 어르신들의 손발이 되어 작은 심부름을 도맡아 하고, 한 달에 한 번 돌봄반장 사례회의를 통해 밑반찬 배달, 집 수리, 이불 빨래, 택시 쿠폰 제공, 마음 상담, 치매 검사 등 도움이 필요한 이웃과 복지 자원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함께하는장곡 사회적협동조합의 목적은 여러 이웃들의 선의를 드러내어 연결하고 증폭시키는 데 있다. 한평생 살아왔던 터전에서 이웃과 참된 관계를 맺으며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늙어가길 바라는 마음들, 같은 마음으로 지역의 미래를 기획하고 이웃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다.
※ 이 글의 일부는 대산농촌재단 농업실용연구 ‘돌봄농업실천매뉴얼(신소희, 2020)’에서 발췌했다.
필자 신소희: 함께하는장곡 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
충남 홍성군 장곡면에 산다. 할 일이 많은 농촌에 살다 보니 여러 단체의 ‘사무국장’을 거쳐 계속 ‘사무국장’을 하고 있다. 넉넉한 돈은 못 벌지만 든든한 관계들을 얻을 수 있는 ‘사무국장’ 자리에 나눠 앉을 사람들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