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조병옥
을씨년스런 겨울 초입에 한 해를 갈무리해 본다. 언제나 천형을 안고 살아가는 농민의 삶이지만 갈수록 농사짓기가 어려워지는 것은 어인 일일까. 쉼 없이 바위를 굴려야 하는 시시포스 형벌이 떠오르는 요즈음이다. 내가 지은 농산물의 가격 보장이 요원해서인지, 고된 노동과 생활의 고단함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생명의 먹거리가 이렇게 천대받기 때문인지, 사회 전반에서 사라져 버린 유령 농민의 천대받음 때문일 수도 있겠다.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는 농민
그러나 이런 섭섭함과 답답함이야 한 해 두 해 벌어진 일도 아니고, 이제는 무덤덤해져 이골이 났으니 크게 괘념치 말아야지 하며 애써 자위한다. 그러면 2023년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이었느냐. 예년에 비해 올해에 가장 크게 달라진 지점은 기후위기, 기후재난으로 농사짓기가 너무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이런저런 위기 징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뭄이 닥치고, 홍수가 나고, 우박이 오고 하는 등의 단발성의 위기는 늘 있었던 예가 많았다. 그러나 올해는 유별나게 심한 해였다. 올봄부터 냉해, 가뭄, 긴 장마, 잦은 비, 병충해 창궐, 홍수, 우박 등 농작물에 피해를 끼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일어난 해가 되었다. 말 그대로 재해의 백화점이나 잡화점이 된 것이다.
올봄 냉해가 닥쳐 배, 사과, 매실 농가에서 심각한 타격이 있었다. 진주의 한 농민은 매실이 예년의 10% 정도 달려 수확하는 데 일손이 필요 없게 되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배 농가는 꽃이 얼어버려 긴급 지원금을 받기도 했고, 긴 장마로 목도열병, 잎도열병에 이어 이화명충과 혹명나방의 창궐로 벼농사가 많은 타격을 입었다. 관행농으로 농사짓는 분들은 바로 대처가 가능하지만 친환경 농사짓는 분들은 아주 속앓이를 심하게 했다. 비가 잦아 과일 농사짓는 분들의 애를 심하게 태웠다. 각종 병균이 활개를 쳤고, 특히 감은 탄저병이 창궐하여 최악의 흉년이었다. 사과 또한 냉해와 탄저병으로 최악의 수확량과 최고의 가격을 기록했다. 배추가 장마로 녹아내렸다. 기록적인 폭우로 시설 하우스가 떠내려갔고, 작물은 수장되었다. 논콩은 자라보지도 못하고 갈아엎었으며, 제주 마늘 농가는 가을철 고온으로 마늘이 썩었다. 이런 사례들은 내가 겪은 혹은 내 주변의 이야기다. 훨씬 더 심각한 피해들이 전국에 널려있을 텐데 다 알지는 못한다. 이런 피해가 발생하면 오롯이 농가가 전적으로 감내해야 한다.
기후위기가 바꾸는 농업의 패러다임
얼마 전 우리 경남 지역에서는 과수농사를 짓던 젊은 농민이 탄저균으로 인해 농업에 막대한 지장을 받았다. 그 친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탄저균의 원인은 잦은 비와 높은 습도 때문이었다. 예년보다 더 많은 농약을 쳐도 제대로 잡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렇게 되면 농민은 더 많은 돈을 들여 농약을 구입해야 한다. 더 잦은 방제를 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력과 노동시간은 늘어난다. 수확기에 그 친구 과수원에서 감 따는 일을 거들면서 보니 모양이 좋은 감이 많지 않았다. 엄청난 투입에도 불구하고 상품성이 떨어지는 결과는 농민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방증이다. 기후재난으로 농민의 목숨줄이 위태로운 지경이다. 이 젊은 농민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현상은 갈수록 강화되고 심각해지고 있다. 내년에는 좀 나아질까 하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맘이 편하다. 늘 기대는 배신을 동반한다. 그래서 농민들은 노지 농사 대신 시설농사로 바꾸거나, 농사 규모를 줄이거나, 심하게는 농사를 포기하려 한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농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개인적인 해결책과 대안이야 궁여지책으로 마련한다고 하지만 우리 공동체는 어떻게 대응하고 미래를 예견해야 할까. 국가는 이 문제에 어떠한 답을 주고 있을까.
‘경쟁력 강화’의 경쟁 상대는 누구인가
2022년 농업소득이 통계 작성(1962년) 이래 최대폭으로 감소했다. 농가당 평균 농업소득이 949만 원으로 전년 대비 26.8% 줄었다. 그러니까 농사지어서 한 달에 79만 원 번다는 소리다. 토, 일요일 쉬고 한 달에 23일 일한다고 볼 때 하루 일당이 3만 4300원이다. 이러한데 국가와 행정가, 연구자들은 끊임없이 다음의 이야기로 우리 농민을 강제한다. ‘발전, 경쟁력, 속도, 시설, 규모화, 스마트, 편리, 성장’ 이런 말들이다. 지난 반세기 가까이 외쳐왔던 구호들이다. 그러함에도 질경이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우리 농민을 옥죄고 있다. 이미 실패가 증명된 명제들임과 동시에 이런 용어들이 만든 세상이 기후재난의 현장이다. 이들이 그 주범임을 우리는 잘 알지만 정책 입안자들은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얼마 전 공무원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야기 도중에 날 선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그분들은 “우리나라 공무원들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 왜 그걸 몰라주느냐”라고 항변하였고, 나는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들이 농민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복무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방식을 지속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다. 나는 그들의 미망을 질책하며 한마디 더 얹었다. “당신들이 염불처럼 외는 ‘경쟁력 강화’라는 말의 경쟁 상대는 누구냐?”라고 말이다. 그들은 제대로 된 답을 못했다. 염불처럼 외웠지만 진정한 의미를 한 번도 따져 보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니 같은 방법으로 염불을 외고 열심히 일한다고 농민의 삶이 달라질 것이란 것은 허상이고 미망이다. 똑같은 방법을 지속하면서 다른 결과를 바라는 것, 참 우스운 상황이다.
국가의 정책 입안자들과 집행자들의 사고가 이러하니 작금의 위기에 대한 올바른 정책과 대안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기후재난이 아니라 지구가 망해도 그들은 지금의 패러다임의 굴레 내에서 정말 열심히 일할 것이다. 하나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끊임없는 투입과 탄소의 과다 발생은 단 한 번의 고민 없이 일사천리로 나아간다. 올해와 같은 기후재앙이 닥쳐 농민들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임에도 나라에서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거나, 농민단체들과 숙의를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기후위기에 아무런 원인도 제공하지 않은 최빈국들이 기후위기로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지구촌의 현실이라면, 기후위기의 한 축을 담당해 온 주역처럼 죄인이 되어버린 것이 현재의 우리 농촌이다. 당장 축산 농가들을 보자. 맛나게 고기를 먹지만 축산농가의 메탄은 기후재난의 주범처럼 매도되고 있다. 육식의 양이 늘어나는 만큼 지구는 힘들어 하지만 그것을 사 먹는 소비자는 편리하다. 축산농가들이 키우는 짐승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면 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옥의 문을 열었다”, “우리 앞엔 ‘집단자살이냐, 집단행동이냐’란 선택이 있다. 우리 손에 달렸다”라고 일갈하지만, 가해자든 피해자든 이 문제 해결에 진정성을 가진 당사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지금 당장, 손을 잡아야
기후재앙은 농촌의 위기를 필연적으로 불러오고, 그것은 식량안보와 식량주권의 위기를 야기한다. 지금은 생산자인 농민이 힘들어하지만, 종국적으로는 도시 소비자들에게도 그 어려움이 전가될 수밖에 없다. 당장 올해 사과 가격 폭등을 보자. 비교적 저렴하게 사 먹던 사과 가격이 두 배, 세 배로 오르니 가계에 많은 부담을 주고 있다. 정부는 파인애플과 망고를 무관세로 수입해 대체재를 마련한다고 하지만 파인애플이 애플을 대신한다는 건 호박에 줄 긋고 수박이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먹거리의 위기는 마트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당장 무언가를 실천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기후위기 앞에서는 가해자이며 피해자다. 그러므로 우리는 해결자다. 누구를 탓할 생각도 누구를 원망할 필요도 없다. ‘지금 당장’ 손을 잡고 이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이것이 기후위기 앞에 우리가 마련해야 할 대응 방안의 첫 번째 전제다. 앞에서 열거한 것처럼 우리 농민들은 전반적으로 기후위기 앞에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피해자이니 다양한 지원책만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전형적 편견이다. 우리가 주장하는 지원책을 살펴보면 그것은 더 나은 선순환을 만드는 것보다는 악화가 양화를 쫓아내는 방향일 때가 많다. 예를 들면 과수 농가가 피해를 입었을 때 행정은 무기질 비료나 화학농약 지원을 강화한다. 이것은 결국 탄소의 과다 발생을 더욱 촉진하는 행위가 된다. 우리가 세우는 대안의 시각을 좀 더 넓혀야 한다. 그리고 멀리 바라봐야 한다. 눈앞의 이익만 바라보면 더 큰 것을 잃는다.
기후위기 해결책을 농민에게 묻는다면
농민은 농업 생산과 관련한 전문가다. 특히 한국 농민은 전 세계적 수준의 최고 농사꾼이다. 이들에게 기후위기 극복의 과제를 던진다면 다양한 해결책이 나올 것은 자명하다. 우리 마을에는 5~6년 전 집집마다 쓰레기 태우는 공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쓰레기를 함부로 태우지 않는다. 마을 공유지에 재활용 분리수거장을 만들고 쓰레기 분리수거 봉투를 나눠주었더니 질서를 참 잘 지키게 되었다. 이처럼 적당한 교육과 헌신이 있으면 어려운 과제들도 해결할 힘이 생겨난다. 작은 단위에서부터 실천할 수 있는 거리들을 만들어 가야 한다. 물론 농업, 농민의 특수성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당장 축산에서 나오는 메탄의 문제를 수치로 계량해 얼마를 줄이자고 주장한다면 내부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 축산과 경종농업의 순환과 가축수 감소 등의 대안을 공론화하고 합의하여야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정부, 지방정부, 국회, 농민단체, 소비자 등의 이해관계자가 함께해야 한다.
농업은 파종-생산-수확-정선-유통-가공-소비-폐기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농산업의 과정이라 해도 되고 먹거리의 사슬이라 해도 무방하다. 이 과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먹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너무나 견고한 이 사슬은 반세기 만에 제 운명을 다하고 있다. 현재의 시스템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우리는 불구덩이 속으로 밀려밀려 가고 있다.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조금 더 불편해질 결심을 한다. 그동안 너무나 빠르고 편리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익숙해졌다. 소비가 뭔지 잘 모르지만 좀 더 줄여야겠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버려지고 있다. 친환경 농사를 좀 더 확대해야겠다. 화학농약과 비료 그리고 농자재들은 대부분 엄청난 탄소 배출을 전제로 만들어진 상품들이다. 이것들을 덜 쓰는 것도 지구에 부담을 더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과 함께해야겠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이야기하고 실천할 것들을 찾아보겠다. 내 농산물을 이용하는 소비자에게도 나의 이야기를 나누고 연대하는 데 힘쓰겠다. 그렇게 한발 한발 나아가면 좀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필자 조병옥: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의장
경남 함안군 산인면 숲안마을에서 이장을 맡으며 벼와 매실을 친환경으로 재배하는 농민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