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을 지킨다는 것

장현예

‘이어짓기’는 하나의 주제로 여러 명의 필자가 집필한 에세이를 이어서 소개하는 코너로, 지난 호 필자 김혜란 씨에 이어 장현예 씨가 ‘농촌에 관한 단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주제로 쓴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주]

삶의 전환점이 된 팔당살이
  내 고향은 동요 ‘섬집 아기’를 들으면 저절로 떠오르는 풍경처럼 바다 내음 가득한 곳으로, 집 앞에는 바다가 지척에 있었고 집 뒤로는 커다란 밭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릴 적 엄마는 아침 일찍 옆구리에 함지박을 끼고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바닷가로 나갔다. 점심나절 돌아와서 우리에게 밥을 차려주고는 다시 밭에 가서 농사를 지었다. 동생과 나는 엄마를 기다리면서 마당을 도화지 삼아 그림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게 일상이었다. 낙조가 내려앉아 온 하늘과 땅이 붉은색으로 물들 즈음 돌아오는 엄마를 한달음에 달려나가 맞이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시골살이를 하는 엄마는 분주한 듯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유로움과 더불어 살았다. 어릴 적 고향 풍경은 내 마음속 깊숙이 자리하면서 늘상 농촌살이를 꿈꾸게 만들었다.
  IMF가 막 시작될 때 도시의 번잡한 삶을 접고 팔당살이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건 내 인생 30대 중반 이후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팔당살이 이전에 내가 바라보던 세상은 화려하게 빛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더 많은 것들을 갖기 위해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에 올라탄 것처럼 치열하게 앞만 바라보고 무작정 달렸다. 잠시 쉼표를 찍고자 했던 귀촌이 언제 멈출 수 있을지 모를 시간에 마침표를 찍어주었고 어릴 적 꿈을 이루도록 해주었다.
  그 당시 팔당은 귀농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곳이었다. 우리 가족은 팔당지역에서 유기농업을 처음 시작한 김병수 씨와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북한강이 흐르는 강가에 데칼코마니처럼 꼭 닮은 두 집에서 살면서, 논농사를 함께 짓고 제법 큼지막한 텃밭을 일구었다. 뒷마당에는 별채가 있었는데 귀농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자리 잡는 동안 머무는 공간이 되었다. 김병수 씨는 팔당지역에서 처음으로 유기농업을 시작해 생산자단체와 생활협동조합 ‘팔당생협’을 만들고,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의 전신인 슬로푸드문화원을 만들어 우리나라에서 슬로푸드 운동을 처음 시작했다. 나는 그와 이웃하여 살면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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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토종콩인 푸른독새기콩.

신념을 지키는 위대한 농민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의 활동 중 대표적인 것이 ‘맛의 방주’이다. 노아의 방주처럼 사라져가는 토종 종자나 전통 식재료를 찾아서 목록을 만들고, 그것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나가는 프로젝트다. 2013년 ‘제주푸른콩장’을 시작으로 2024년 5월 ‘장단백목’까지, 총 112개의 먹을거리를 맛의 방주에 등재했다.
  2013년, 나는 맛의 방주 1호 등재를 위해서 어느 농가에 방문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제주 서귀포시에서 ‘푸른독새기콩’으로 불리는 제주 토종콩으로 장을 담그는 김민수 씨 부부였다. 당시만 해도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가 무엇을 하는 단체인지 알려지지 않은 시기여서, 맛의 방주가 무슨 활동인지 전혀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전에 맛의 방주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하고 방문했지만, 조사단인 우리를 쳐다보는 눈빛에는 의구심이 가득했다.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맛의 방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니, 부부는 다소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단 한 번도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거나 알아주리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자신들의 활동을 직접 보러 먼 곳까지 찾아와줘서 너무 고맙다는 인사를 시작으로, 비로소 자신들이 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긴 이야기를 풀어냈다.
  김민수 씨 어머니 양정옥 씨는 제주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고 사라져가는 제주 토종콩을 지키기 위해서 홀로 힘겹게 농사를 짓고 그 콩으로 장을 담가왔다. 김민수 씨 부부는 당시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대학을 졸업하고 소위 잘나간다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껏 제주 토종콩 농사와 장 담그는 것을 지켜오던 어머니가 연로해지면서, 자녀들 중 누군가가 이 일은이어서 지켜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자식들 입장에서 보면 토종이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만두면 될 것을 애써 고생하는 것도 모자라 자식에게 그 짐을 떠넘긴다고까지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민수 씨는 어머니가 이제까지 지켜온 것은 단순히 콩이 아니라, 농민의 신념이자 소명이고 자부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울 생활을 포기하고 귀향하여 어머니가 힘겹게 지켜오던 토종콩 농사와 장 담그는 가업을 잇게 되었다. 제주도도 육지의 메주콩이 들어와서 제주 토종콩이 거의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어머니는 서귀포 지역에 구전으로 대대로 내려오는 제조법으로 1997년부터 한라산청정촌이라는 소규모 전통장을 생산해오고 있었다. 제주 푸른콩장이 맛의 방주 1호로 등재되고 외부에 알려지면서, 양정옥 씨는 공로를 인정받아 제주푸른콩장의 산증인으로 대한민국 식품명인 75호로 지정되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오로지 내 땅의 토종 종자를 지켜야겠다는 신념 하나로 온 생을 바쳐온 사람과 그 어려운 길을 기꺼이 받아서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 깊은 뜻을 알게 되면서 감동과 함께 존경심이 저절로 생겨났다.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는 길에, 다른 사람들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 보석 같은 이들을 찾아내는 것이 나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속 한 곳에 알 수 없는 뜨거운 것들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때의 감동이 생생하다.
  김민수 씨는 여전히 제주 푸른콩 농사를 짓고 장을 담그고 있으며, 맛의 방주 등재에 앞장서 노력하면서 슬로푸드 운동의 선봉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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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토종 종자와 전통 식재료를 지키는 사람들. 차례로 김민수 씨 가족(제주푸른콩장), 이승숙 씨(연산오계), 한귀숙 씨(섬말나리), 백관실 씨(앉은뱅이밀).

토종을 지키는 아름다운 사람들
  맛의 방주 112개에는 똑같은 감동이 담겨져 있다.
  잘나가는 일간지 기자를 그만두고 가업을 이어 연산오계를 지키고 있는 이승숙 씨, 외국산 밀에 밀려 자취를 잃어가던 앉은뱅이밀을 꿋꿋하게 지켜낸 금곡정미소 백관실 씨, 울릉도 가장 높은 마을 나리분지에서 섬말나리 등 울릉도 토종을 지키는 한귀숙 씨, 한국 토종 재래닭을 노구의 몸으로 지키고 있는 홍승갑 씨 등 한 사람 한 사람의 서사는 감동 그 자체다. 농사에도 유행이 있어 너 나 할 것 없이 삽시간에 유행을 타고 수입 종자나 개량종이 퍼질 때도 그들은 묵묵히 토종을 지켰다.
  맛의 방주는 단순히 토종 종자나 전통 식재료를 발굴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가 사라지지 않도록 지역의 농민들이 함께 널리 퍼트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려면 누군가 이것을 사주어야 계속해서 농사를 지을 수 있기 때문에, 등재 품목을 널리 알리고 소비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등재 품목 대부분이 등재 이전보다 많이 알려지면서 재배 농가도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그 수는 미비하다. 최근 들어 기후변화가 심각해지면서 토종을 지키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한다. 농사를 짓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토종을 지키고 전통을 지키는 일은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도 될까 말까 한 일이다. 이런 어려운 일을 마다않고 기꺼이 해내는 이들이 있어 그나마 우리의 토종 종자와 전통 식재료들이 사라지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면서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농촌은 점점 고령화되어가고 더는 농사지을 사람이 없다고 한다. 더더군다나 돈도 안 되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일을 하는 이들을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싶다.
  힘들지만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지켜내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찾아내고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슬로푸드 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이자 감동이다.
  어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들이 참 좋다.

장현예필자 장현예: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상임이사
2001년 소비자생활협동조합 ‘팔당생명살림’ 발기인으로 먹을거리 운동을 시작해서 2022년 이사장으로 활동을 마쳤다. 현재는 사라져가는 토종 종자와 전통식문화를 지키는 ‘맛의 방주’와 생물다양성 보존 활동을 하는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에서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