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복판에서 열리는 통영 오일장

글·사진 강제윤

이어짓기는 ‘농(農)’을 주제로 여러 필자가 각자의 경험과 시선으로 글을 이어 쓰는 코너입니다. 이번 호는 강제윤 씨가 통영에서 만난 삶의 풍경을 전합니다. [편집자 주]

통영 동호항. 남쪽 바닷가 도시 통영에 봄이 찾아왔다.

통영의 봄, 음식으로 만나다
  남쪽 바닷가 도시 통영의 봄을 알리는 전령은 도다리쑥국이다. 도다리쑥국을 끓인다는 소식이 들리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곳이 강구안 골목의 ‘이중섭 식당’이다. 오래된 노포인 이 집은 너물밥과 마른 메기찜, 도다리쑥국 등 통영 전통 음식이 그리울 때마다 찾아가는 곳이다. 많은 식당이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지만 이 집만은 고집스럽게 통영 전통 음식의 맥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통영에는 정월 대보름 전에 솟아나는 해쑥을 먹으면 한해 병치레를 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또 봄에 쑥국 세 그릇만 먹으면 아랫도리가 무거워 문지방을 못 넘는다는 식담(食談)도 있다. 그만큼 건강에 좋은 음식이란 뜻이다. 지금은 주객이 전도됐지만, 실상 도다리쑥국의 주인공은 도다리가 아니다. 쑥이다. 가장 약효가 좋다는 어린 해쑥이 막 돋아났을 때 쑥을 주인공으로 그때 그 지역에서 나오는 재료를 넣고 끓이는 것이 쑥국이다.

도다리쑥국
  통영의 봄, 이 노포의 도다리쑥국은 천상의 맛이다. 맑은 국물 한 수저를 떠 넣으면 입안 가득 쑥 향이 고이고 도다리 살은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봄눈처럼 사르르 녹아버린다. 어린 쑥은 생선의 비린 맛을 잡아주면서도 향이 진하지 않아 도다리 살의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방해하지 않는다. 두 재료가 어우러졌으되 함부로 섞이지도 않았다. 쑥향이 짙어지기 전에 쑥국을 끓이는 이유다. 게다가 이 노포 주인장은 쑥국 본연의 맛을 지키기 위해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양식 쑥보다 가격이 서너 배는 비싼 자연산 쑥을 사용한다. 고마운 일이다. 쑥국은 소금으로만 간을 하고, 자극적인 양념을 넣지 않는다. 음식에서 양념의 절제가 얼마나 훌륭한 미덕인지를 새삼 확인시켜 주는 맛이다. 통영의 도다리쑥국이야말로 절제의 미학이 구현된 최고의 봄 음식이다.
  이 노포에는 명물이 또 있다. <흑백요리사>를 통해 유명해진 ‘너물밥’이다. 통영의 오랜 식문화와 전통이 집약된 음식 ‘너물밥’. 통영을 찾는 여행객들은 대부분 꿀빵이나 충무김밥, 시락국 같은 음식이 통영의 대표 전통 음식인 줄로 안다. 하지만 통영의 전통 음식은 따로 있다. 쑥국, 마른 물메기찜, 개조개 유곽, 해물 잡채, 물굴젓, 볼락김치 같은 요리들인데, 너물밥은 그중에도 단연 첫 손에 꼽힌다. ‘너물’은 나물의 통영 말이다. 너물밥은 봄철 통영의 바다와 들에서 나는 미역, 톳, 시금치, 미나리 등의 나물을 주재료로 하는 통영 전통 비빔밥이다. 타지역 비빔밥과는 달리 육고기가 들어가지 않고 나물에 조개 국물로 만든 두부 탕국을 넣어서 비벼 먹는다.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세병관, 통영의 정신이 깃든 곳
  통영 봄 음식으로 속을 채운 뒤 통영의 정신이 깃든 세병관으로 향한다. 통영은 인구는 11만의 소도시지만 문화적 자산만은 블록버스터급이다. 통영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음악창의도시다.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리는 봄이면 세계 각국의 음악가들과 관객들이 몰려들고, 가을이면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가 열려 스타 음악가를 배출한다. 국민 화가 이중섭 화백의 <황소>, <흰소>, <달과 까마귀> 등 대표작들도 대부분 통영에서 그려졌다. 세병관 가는 길목, 항남동 골목에는 이중섭이 작품을 그렸던 장소인 ‘경상남도립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 건물이 남아 있다.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꼽히는 백석은 통영이란 제목의 시를 3편이나 남겼는데 모두가 명편이다. 백석의 또 다른 시들에도 통영에 대한 향수가 가득하다. 그래서 그는 통영을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라 노래했던 것일까. 이순신 장군 사당인 충렬사 입구에 그의 시 ‘통영2’를 새긴 시비가 서 있다.

통영의 한산 바다. 초대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의 한산해전이 있었던 곳이다.

  통영은 조선시대 수군사령부였던 삼도수군통제영의 줄임말로, 통제영으로 부르다 약칭해서 통영이 됐다. 통영의 한산 바다에서는 임진왜란의 전세를 역전시킨 초대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의 한산해전이 있었다. 통영은 나라를 지킨 호국의 땅이기도 했다. 그래서 통영에는 국보(305호)인 세병관을 비롯해 이순신 장군을 모신 사당 충렬사와 착량묘 등 역사 유적도 많다. 하물며 통제영 객사였던 세병관의 뜻은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피 묻은 병장기를 씻어서 영원히 사용하지 않기를 염원’하던 평화의 집이란 뜻이다.
  세병관으로 가는 길목에는 매화와 동백꽃이 함께 피었다. 통영의 봄을 상징하는 꽃들이다. 세병관 출입문인 지과문(止戈門) 앞에서 현판을 바라보며 지과문에 담긴 뜻을 되새긴다. 지과문이란 무슨 뜻일까? 그칠 지(止), 창 과(戈)이니 창을 그치는, 창을 거두는 문이란 뜻일까? 아니다. 지(止)와 과(戈)는 어떤 한자의 파자다. 다시 합자하면 무슨 글자일까? 무(武)자다. 무인(武人)을 일컫는 바로 그 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무인은 어떤 사람인가? 싸움 잘하고, 전쟁 잘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무인의 본 모습일까? 戈(과)는 창이라는 의미와 함께 전쟁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지과(止戈)란 전쟁을 그치게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무인(武人)이란 전쟁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쟁을 그치게 하는 사람, 즉, 평화를 지키는 사람이다. 지과문(止戈門)은 무의 본질로 들어가는 출입구 같은 문이다. 세병관(洗兵館)과 지과문(止戈門)은 전쟁과 평화의 본질을 일깨워 주는 참으로 의미심장한 건물들이다.

지과문(止戈 門)은 무의 본질로 들어가는 출입구 같은 문이다.
지과문(止戈 門)은 무의 본질로 들어가는 출입구 같은 문이다.

야생의 맛을 되찾아주는 오일장
  세병관을 둘러보고 나오니 중앙시장 도로변에 오일장이 섰다. 통영은 끝자리 2와 7일에 오일장이 열린다. 도심 한복판에서 여전히 전통시장인 오일장이 열리고 있으니 이 얼마나 귀한 문화인가? 중앙시장 입구 도로변에는 할머니들이 밭에서 키운 시금치와 상추와 봄동, 또 봄 들녘에서 뜯은 쑥과 달래를 들고 나왔다. 조금 더 날이 따뜻해지면 진달래꽃을 따다 파는 할머니들도 있을 것이다. 봄날 통영 오일장은 귀한 것들만 숨겼다가 펼쳐놓은 보물 시장 같다. 너무도 흔하게 먹다 보니 우리는 상추가 얼마나 귀한 채소인지를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옛날 상추는 무엇보다 진귀한 채소였다. 
  실학의 선구자로 추앙받은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은 그의 저서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상추가 고구려 특산물이었는데 수나라 사람들이 종자를 구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였기에 천금채라 했다”고 전한다. 지금은 흔하디흔한 상추가 천금을 주고 사 가던 천금채(千金菜)였다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상추 중에서도 겨울 추위를 견디고 노지에서 자란 상추야말로 최고다. 겨울 노지 채소는 겨울을 나기 위해 스스로 몸 안의 모든 수분을 다 빼버린다. 그래서 더욱 아삭하고 단맛 또한 가득하다. 이 맛을 본 이들은 상추가 어째서 천금채인가를 알게 된다. 야생의 맛을 잃어버린 시대. 통영 오일장은 그 야생의 맛을 되찾을 수 있게 해주는 맛의 방주다. 봄날, 통영 오일장에 나온 쑥과 달래, 냉이, 방풍, 두릅 등 야생의 나물이나 텃밭에서 기른 상추, 시금치, 봄동 같은 채소는 면역력을 키워주는 데 최고의 명약이다. 할머니들이 들고 나온 채소는 모두가 약초다!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중앙농업시험장이 삿포로시(札幌市) 시내 슈퍼에서 판매되는 채소 11종을 조사한 적이 있다. 그 결과 시금치의 경우 본래 영양분보다 비타민C와 철분이 8분의 1이나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다. 다른 채소도 비슷했다. 속성 재배나 화학 비료의 과다 사용이 원인이었다. 그런 식재료는 배불리 먹어도 영양 결핍이 일어나기 쉽다. 무조건 채소만 많이 먹는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노지에서 땅의 기운을 받고 자란 생명력 있는 진짜 채소를 먹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오일장은 영양의 보고이기도 하다.

통영 어촌의 할아버지가 잡아 온 생선과 통영 농촌의 할머니가 뜯어 온 봄나물.

오일장에 가야 하는 이유
  충무데파트 쪽 대로변에도 통영의 농어촌 할머니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저마다 난전을 펼쳤지만 기껏해야 쑥 한 광주리, 방풍나물 한 광주리, 머위나물 한 광주리씩이 전부다. 해변에서 직접 채취한 돌미역이나 톳을 한 광주리씩 들고 나온 이도 있고, 집에서 직접 만든 된장이나 장아찌들을 조금씩 가지고 나온 할머니들도 있다. 땅두릅, 고추, 양파 장아찌, 머윗대 장아찌들이 다들 맛깔나 보인다. 갈치젓갈이랑 돌게장도 보인다.
  저마다 가지고 나오신 물건의 양이 너무 적으니 저걸 다 팔아봐야 차비나 나오겠나 싶다. 속사정을 알면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할머니들은 돈을 벌기 위해 오일장에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처럼 사람 구경도 하고 다른 동네 할머니들의 소식도 궁금하다. 빈손으로 나오기 멋쩍어서 뭐든 하나씩 들고 나오신 거다. 그래서 할머니들은 손님들에게 사가라고 청하지도 않고 물건을 앞에 놓고 가만히 앉아만 계신다. 오일장은 마치 토속 음식들의 맥이 끊기지 않고 전통을 이어가도록 식재료를 공급해 주는 보급기지 같다. 오래오래 전승돼야 할 소중한 우리 문화다. 그러니 통영에 여행 오는 이들은 날짜를 헤아려 꼭 오일장을 찾아가 보길 권한다. 기억하시라. 매월 2일과 7일이다. 들과 산, 바다의 식재료를 모두 품고 도심 한복판에서 열리는 오일장, 어디서도 쉽게 만나볼 수 없는 행운이 될 것이다.

필자 강제윤: 시인,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20년 동안 한국의 섬들을 기록하며 섬의 가치를 지키고 섬 주민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저서로 《바다의 국경, 섬을 걷다》,《섬을 걷다 1,2》 등이 있다. <섬나라 한국전>, <백섬백길 사진전> 등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했다. 2025년 영화 <흑산도 파시>를 제작했고 현재는 다큐멘터리 영화 <섬들의 황금시대 파시>에 감독으로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