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유지황
누군가의 먹을거리를 생산하겠다고 결심한 것도
자연과 가까이 살고 싶은 이들의 기반을 함께 만들겠다 마음먹은 것도
자연을 소비하지 않고 살아갈 주거를 마련하겠다는 생각도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미래를 전하겠다는 노력도
자연과 인간의 경계에 서서 이 둘을 연결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됐다.
요즈음 자주, 인간이 자연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고 느낀다. 종일 빌딩에서 일하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자연을 얼마나 만나는가? 아침의 맑은 새소리, 봄의 풀벌레 소리, 여름 논의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들어본 적 없고, 질 좋은 흙의 냄새와 피부에 닿을 때 느낄 수 있는 희열을 모른다. 어느새 스스로 먹을 것을 키워내는 걸 포기했다. 한때 자연의 일부였던 우리는 매일 자연과 멀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본능은 자연을 갈망해 주말이 되면, 휴가를 얻으면 결핍된 영양소를 채우듯 산, 바다, 들을 찾아 떠난다.
농업이 위대한 이유는 이러한 이들에게 자연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존방식이 바뀌면서 인간은 자연을 더 많이 점유하고 이용하게 되었다. 인간이 풍요로워질수록 자연과의 균형이 무너지는데, 농부는 이러한 균형을 다시 맞추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나는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접점, 경계에 있고 싶다. 시골과 도시, 자연과 문명의 경계에서 인간을 자연 가까이 끌어당기는 역할을 하기 위해 자연과 닮은 집을 짓고, 다음 세대가 자연과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도록, 농촌의 삶을 꿈꾸는 다음 세대를 위한 기반을 만들어간다.
독일 클라인가르텐 도심 속 작은 정원
독일 클라인가르텐은 자연과 가까이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연을 빌려 쓸 수 있는 도심 속 작은 정원이다. 내가 갔던 카를스루에시 클라인가르텐 단지는 정원을 가꾸려는 대기자가 7000명이나 있다고 했다. 여전히 인간의 내면에는 자연과 가까이 살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는 말이다. 행복한 소식이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행사를 진행하는 독일 트리어 대성당
조용해야 할 성당에 아이들의 목소리와 웃음이 가득했다. 성당에서 보지 못한 알록달록한 풍선과 아이들의 손글씨가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도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이들의 능력이다. 자연을 닮고자 하는 아이들이 경계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좋은 흔적을 남기고 싶다.
스위스 농업 전문 평생교육기관 인포라마
문명은 인류를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역설적으로 자연과 멀어지게도 한다. 이런 틀밭이 좋은 이유는 편함을 찾는 인간과 인간을 먹이기 위해 헌신하는 자연이 서로 공존하기 때문이다. 쇠가 있고 나무가 있고 흙이 있고 생명이 있다. 제일 위에 생명이 있다.
자연 친화 방식으로 지은 독일 프라이부르크 바덴농업협회
건축은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섬세하고도 종합적인 예술이라고 한다. 자연으로부터 시작해 자연으로 끝날 수 있는, 자연의 일부가 되는 건축물을 만드는 것은 인류의 숙제다.
프랑스 툴루즈
자연이 있고 인간이 있고 사랑이 있다. 인간은 자연과 맞닿아 있을 때 가장 느슨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자신을 놓아둔다.
프랑스 파리 튈르리 정원
쉬는 날에 사람들이 공원에 모이는 이유는 한 생명으로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원하기 때문이다. 시골과 도시를 양극에 놓고 보면 자연과 문명을 양극으로 놓을 수 있지 않을까. 각자 삶의 생태계를 결정할 때 양극의 어딘가에 놓이게 된다. 우리는 어디쯤에 있을까? 당신은 어디쯤에 있나요?
필자 유지황: 팜프라 대표
남해 두모마을에서 농촌살이에 기반이 필요한 청년들을 위해 팜프라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파밍보이즈》(2017), 공저로 《이상하고 아름다운 판타지 촌 라이프》(2022)가 있다. 2024년 대산농업연수에서 만난 유럽의 다양한 풍경들을 사진으로 담아 이 포토에세이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