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정혜경
올여름, 무더위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지구 온도가 나날이 올라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던 시절, 우리 조상들은 한여름을 어떻게 보냈을까. 무엇보다 더운 여름에 무엇을 먹으면서 더위를 견뎠는지 궁금해진다. 날이 더워지면 우리가 가장 먼저 찾는 차가운 음료나 빙수, 아이스크림은 아니었을 것이다.
복날은 매년 7월에서 8월 사이에 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이 되는 날이다. 복날의 ‘복’ 자는 ‘엎드릴 복(伏)’으로 ‘사람 인(人)’에 ‘개 견(犬)’이 합쳐진 형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복날을 사람이 개처럼 엎드려 지낼 만큼 더운 날이라고 해석한다. 조상들은 더위가 본격적으로 이어지는 ‘삼복(三伏)’ 기간을 잘 보내는 풍습을 ‘복달임’ 또는 ‘복놀이’라고 불렀다. 몸을 보신하는 음식을 먹거나 시원한 물가를 찾아서 더위를 이기는 일이다.
보약과 다름없는 시절 음식
특정 시기에 맞춰 만들어 먹는 음식인 ‘시절 음식’은 식보(食補), 즉 몸의 원기를 보충하는 약(藥)의 의미가 강했다. 조상들이 복날에 개고기를 끓인 보신탕(개장국), 잉어와 닭을 함께 넣어 끓인 용봉탕, ‘시절 약’이라고 할 수 있는 익모초 등을 찾아서 먹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여 계절에 따라 다양한 식재료를 만날 수 있다. 조상들은 제철 음식을 먹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거르는 법이 없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식생활 풍습이 중요한 의례로 발달하고, 이를 남성이 주관했다. 조선시대 유교 영향으로 의례 음식은 사대부 남성들의 지식과 권력이 행사되는 중요한 영역이 되었다. 조선시대 풍속을 기록한 책 《경도잡지》, 《열양세시기》, 《동국세시기》 등을 보면 당시의 의식주를 자세히 알 수 있다.
조선 중기 학자인 홍석모(洪錫謨, 1781~1857)는 여름철 시절 음식에 대하여 《동국세시기》(1849)에서 “개고기를 파와 함께 푹 삶은 것을 개장(狗醬)이라고 한다. 여기에 닭고기와 죽순을 넣으면 더욱 좋다. 또 개장국을 만들어서 산초가루를 치고 흰밥을 말면 시절 음식이 된다. 이것을 먹고 땀을 흘리면 더위도 물리치고 보신도 된다”라고 소개했다.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이 편찬한 일종의 백과사전 《지봉유설》(1614)에 의하면, 복날은 ‘양기에 눌려 음기가 엎드려 있는 날’로 사람들은 개장국, 육개장, 임자수탕, 적소두죽(팥죽)을 즐겨 먹었다. 임자수탕은 주로 궁중과 양반가에서 즐겨 먹었던 여름철 보양식이다. 차게 식힌 닭 육수와 볶은 깨를 갈아 섞은 것을 면이나 체에 걸러 국물을 만들고, 여기에 닭고기, 달걀지단, 오이채, 미나리, 표고버섯 등 고명을 취향에 따라 얹어 먹는다. 요리를 만들 때 주로 사용한 들깨를 임자(荏子)라 불렀기에 임자수탕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복달임 음식에 들어있는 지혜
한여름 더위로 몸이 허약해질 때 먹는 복달임 음식은 어떤 것이 있을까?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더위를 이겨내라는 의미에서 높은 관리들에게 쇠고기와 얼음을 하사하였다. 일반 백성들은 귀한 쇠고기 대신 개고기를 끓여 먹었다.
보양식의 재료는 대체로 소, 개, 닭 등의 육류 또는 민어, 전복 등의 제철 어패류였다. 복달임 음식으로 대부분 개장국을 떠올리지만, 이는 주로 남쪽 지방에서 먹는 음식이었다. 서울에서는 주로 육개장이나 민어탕을 끓였다.
복달임 음식은 제철에 쉽게 구할 수 있는 주재료가 중요하기에, 여름이 제철인 장어를 복달임 음식 재료로 빼놓을 수 없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의 《자산어보》(1814)에는 장어를 ‘해만리(海鰻鱺)’라고 칭하며, 맛이 달고 진하며 사람에게 이롭다고 기록했다. 장어는 실제로 단백질과 비타민A 함유량이 많고, 불포화지방산, 콜라겐이 풍부하며 칼슘, 인, 철분과 같은 무기질도 고루 포함되어 있다. 여름철에 허약해진 기운을 보충하기에 더없이 좋은 음식 재료다.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의외의 음식도 있다. 한여름 더위로 소화 기능이 약해질까 봐 죽을 쑤어 먹는 것이다. 그래서 “복날에 죽을 쑤어 먹으면 논이 생긴다”는 말이 있다. 보신이라는 것이 많이 먹는 더함의 의미도 있지만, 적게 먹는 뺌의 의미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쌀죽은 배앓이에 좋다고 하여 “여름 흰죽 한 그릇이 인삼탕 한 그릇”이라 했다. 쌀죽의 높은 소화력을 잘 알고 있었던 말이다. 더욱이 죽으로는 콩과 쌀을 물에 불려 맷돌에 갈아 만든 콩죽을 제일로 삼았는데, 콩이 가진 질 좋은 식물 단백질 효과까지 노린 것이다. 특히 ‘적소두죽’이라 불리는 팥죽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복달임 음식이다. 팥죽을 먹으면 삼복더위로 허해진 몸을 보신하고 피로를 해소할 뿐만 아니라, 악귀를 쫓고 병치레 없이 잘 지낼 수 있다고 믿었다.
서양인들은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며 뜨거운 여름에 뜨거운 음식을 먹는 한국인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동양의 보양 이론뿐 아니라 서양의 과학적인 지식으로 생각해도 몸이 뜨거울 때 찬 음식을 먹는 것은 좋지 않다. 차갑게 먹으면 일시적으로 몸이 서늘해지더라도 소화가 잘 안되거나 설사나 배탈로 이어진다. 여름철에 바깥 기온이 올라가면 사람의 인체는 36.5℃를 유지하기 위해 내장을 차갑게 한다. 여기에 차가운 성질의 음식은 오히려 독이 된다. 더위를 따뜻한 음식으로 이겨내려는 지혜의 산물이 바로 복달임 음식이다.
다양한 형태로 이어지는 복달임
보양식으로 닭에 인삼과 찹쌀을 넣고 끓인 삼계탕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삼계탕은 근대에 만들어진 음식이다. 계삼탕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1950년대 후반이며, 한국전쟁 이후에 대중식당에서 팔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기 계삼탕은 닭국에 값싼 백삼 가루를 넣은 것에 불과했다. 육계업이 발달하고 금산을 중심으로 강화, 파주 등 수삼 재배지가 늘어나면서 서울에는 1960년대부터 영계백숙을 팔던 식당들이 삼계탕을 팔기 시작했다. 삼계탕은 짧은 시간에 복달임 음식의 최고봉으로 등극했다.
우리가 전통 복달임 음식으로 알고 있는 삼계탕의 역사가 100년도 되지 않은 것처럼 복달임 음식 추세는 계속 바뀌고 있다. 최근에는 채식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복날에 육류 보양식 대신 콩죽, 채개장(채소로 끓인 육개장), 두개장(두부 육개장), 백화반(채소 비빔밥)을 찾는 이들이 늘어났다.
2022년 7월,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이 서비스 이용자 580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82.8%가 복날에 보양식을 챙겨 먹는다고 답했다. 보양식을 배달로 주문해 먹는다는 고객이 63.3%였기에 혼자 밥을 먹는 ‘혼밥족’ 비율이 높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응답자 74.9%가 가족과 함께 먹기 위해 보양식을 주문한다고 했다. 복날에 보양식을 나눠 먹으면서 서로의 건강을 챙기는 문화가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한편, 농촌에서는 복날에 마을회관이나 복지관에서 함께 복달임 음식을 나눠 먹는 행사가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새참이나 두레의 풍습이 복달임 행사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현대사회에서 복달임은 지역별로, 취향별로 다양한 형태를 보이면서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더욱 무더워진 여름을 자신의 체질과 기호에 맞춘 복달임 음식으로 견뎌보자. 가족, 친구, 직장, 마을 단위로 복달임 음식을 함께 먹는다면 정신적 보양에도 좋을 것 같다.
필자 정혜경: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
한국식생활문화학회와 대한가정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고려대학교 객원교수와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산업진흥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식 바르게 알리기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