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2024년 5월 22일(수) 14:00~18:00
• 장소: 대산농촌재단 세미나실
• 토론자
김동명 농업법인 바름 대표
김선아 한국농어민신문 국장
김애란 뜰안에사과밭 대표
이원영 농업법인 도담 대표
허수종 샘골농협 조합장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사회)
농산물 가격 대란, 왜 일어났나
– 사과값이 오른 이유는
신수경(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 상반기 농산물 가격 대란이 큰 이슈였습니다. 사과값이 크게 오르면서 일부 언론에서는 사과와 인플레이션을 합친 신조어 ‘애플플레이션’이라는 말까지 나왔어요. 비단 사과뿐이 아니죠. 농산물 가격 문제를 생산, 유통, 소비, 정책 등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김애란 대표님, 사과를 재배하는 농민으로서 ‘사과값 1만 원’ 현상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김애란(뜰안에사과밭 대표): 과일은 생산량을 추측할 수 있어요. 지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4월 말부터 5월 초가 되면 사과든, 배든, 자두든 꽃을 보면 과일이 어느 정도 달릴지 예측할 수 있어요. 2023년 연초에 농민들은 이미 사과 생산량이 30% 정도 떨어질 거라고 예상했어요. 그런데 정작 파악하고 대비했어야 할 정부나 농협의 대처가 미흡했던 거죠.
사과값은 생각보다 훨씬 비쌌어요. 직거래하는 농민들은 생산량이 감소한 만큼 가격을 조절해서 내보냈는데, 시중에 돌고 있는 사과는 두 배 세 배 넘는 가격에 팔리더라고요. 지난 4월 말에 방송된 MBC <PD수첩>에서 4~5개 유통업체가 물량을 조절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만약 그게 진짜라면 정부에서 유통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지 생각해야 하는데, 부족한 농산물을 수입하겠다고만 하니 농민은 화가 나죠.
이원영(농업법인 도담 대표): 저는 조금 다르게 봐요. 농산물 관련 기사 댓글을 보면 하나같이 유통하는 사람들이 장난쳐서 농산물값이 오른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하나가 아니거든요. 일단 국내 시장은 규모가 작아서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과잉으로 적용돼요. 물건이 조금 적으면 가격이 확 오르고, 물건이 조금 많으면 가격이 완전히 폭락하는 시스템이거든요.
저장 과일인 사과의 경우, 유통업체는 매달 거래처에 납품할 양을 미리 계산해요. (햇과일이 나오기 전) 여름까지 사과를 꾸준히 공급하지 않으면 거래가 끊기거든요. 수확기에 싸게 사서 나중에 비싸게 팔 생각을 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을 거예요. 유통업체 몇 개가 시장을 뒤흔들 만큼 수매 자금을 끌어올 능력도 안 되고요.
2023년에 사과 주산지인 경상북도 작황이 안 좋았죠. 그때 경상북도에 기반을 둔 상인들이 저온창고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강원도 일부 농가에서 사과 한 상자를 8만~10만 원에 구매해 대략 18만~20만 원에 판매했을 거예요. 이럴 때 돈을 벌었을 수 있죠. 하지만 처음부터 이걸 목표로 한 건 아닌 거죠.
김동명(농업법인 바름 대표): 채소를 전문으로 취급하지만 사과값이 비쌀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과일값이 올랐을 때 채소에 어떤 영향을 받을지 고민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사과 경매 시작 가격이 생각보다 높지 않았어요. 농협에서 비축 물량을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이후 일부 상인들이 사과 물량이 달릴 것을 알고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가격이 올랐어요. 그때라도 농협이나 대형 유통업체가 농가와 적정 가격을 협상했다면 문제가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손 놓고 있다가 너무 늦어버린 거죠. 이미 예고된 일을 조정하지 않는, 또 조정할 수 없는 구조가 문제예요.
이원영: 사과가 안동청과로 집중된 것도 문제였죠. 전국의 사과값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정도였거든요. 가격을 높게 책정해준다고 소문이 났는지 사과 농민의 대다수가 이쪽에 몰린 거예요. 20kg 한 상자에 18만 원짜리가 제일 많이 보였고요. 30만 원까지 오르기도 했어요. 사고 파는 사람이 있으니까 가격이 형성될 거 아녜요. 이제는 가격이 무너진다, 무너진다 했는데 예측이 다 틀렸어요. 그때 농축산물 할인지원(농할) 정책이 나온 거예요. 저장 과일 갖고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거죠.
농산물 정책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 농축산물 할인지원 정책, 유통구조를 왜곡한다
– 값이 오르면 수입한다? 농산물 수입 정책의 문제점과 한계
– 농민을 위한 존재는 어디에 있나
김선아(한국농어민신문 국장):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사과 생산량이 이전보다 확실히 줄었어요. 2023년 사과 수확량은 39만 4428t으로 2022년 56만 6041t보다 약 30.3% 줄어든 것으로 나와요. 냉해, 호우, 탄저병 때문이죠. 그렇다 하더라도, 사과는 제수용 과일이기 때문에 설날이 지나면 가격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야 하는데, 계속해서 이상 급등이 나타난 것은 언론에서 조성한 분위기와 정부의 정책 문제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22대 국회의원선거라는 정치적인 이슈가 있었잖아요. 높은 물가에 대한 야당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정부는 농축산물 할인지원 정책을 꺼냈어요. 사실 할인 쿠폰 정책은 코로나19 시기였던 2020년 7월, 농산물 소비 촉진 대책의 일환으로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물량이 없는 상태에서 소비를 촉진하니, 사과를 안 먹던 사람도 사과를 찾으면서 가수요가 붙은 거예요. 오히려 유통 구조가 왜곡된 거죠.
이원영: 농축산물 할인지원 행사를 한다고 하면 모든 유통업체가 전화를 돌려요. 원래 50상자 나갔는데 300상자 준비하래요. 물량이 없으니 시장에서 마구 거둬요. 7만 원이 10만 원 되는 건 순식간이에요. 공급이 부족해도 이런 행사가 없었다면 가격이 그렇게까지 안 올랐을 거예요.
제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축산물 할인지원 사업 관계자에게 품목 선정은 어떻게 하는지 물어봤더니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정해서 내려온대요. 어떤 경로를 통해서 결정하는지 담당자도 몰라요. 품목별 심의위원회를 꾸려야 해요. 생산자, 유통업자가 논의 구조에 함께 들어가서 구체적으로 토론해야죠. 앞으로는 문제에 대한 진단부터 처방까지 새로운 방식으로 논의와 결정이 이뤄져야 합니다.
허수종 (샘골농협 조합장): 코로나19 당시에 대국민 지원금은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고 국민이 고르게 혜택을 받았죠. 그런데 지금 이 정책으로 이익을 본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를 들어 한우는 명절에 비싸죠. 설날이 지나면 3월부터 가격이 뚝 내려가요. 설에 돈을 많이 쓰기도 했고, 자녀들 등록금도 내야 하니까요. 그래서 주춤하다가 5월 가정의 달이 되면 소비가 늘어요. 이게 자연적인 현상이었어요. 그런데 2~3년 전부터 5월에 할인지원 행사를 하면서 이때 가격이 내려가요. 그 후에는 가격이 반등해서 올라가고요. 그 사이에 한우 농가는 손해를 봐요. 소비자는 실질적으로 소고기를 원래 가격에 먹은 것밖에 안 되거든요. 정책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갔는데, 그건 어디로 사라졌냐는 거죠. 결국, 소수가 부를 축적한 거예요.
김선아: 우리가 필수적으로 먹는 쌀이나 무, 배추, 양념채소 등의 수급 안정은 꼭 필요하죠. 물가가 치솟으면 당장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정부의 책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부의 개입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가격이 폭등할 때는 적극적으로 개입해 가격 억제에 나서면서, 가격이 폭락할 때는 ‘시장’에 맡기는 식이죠.
이번에 야당이 내놓은 ‘농산물가격안정제’에 반대하면서 정부가 제시한 게 농업수입보장보험인데, 사실 수입보장보험은 시범사업만 9년째입니다. 가입 대상 품목이 7개 품목(35개 시군)으로 제한돼 있고 2024년 예산도 81억 원에 불과해요. 계약농지별로 수확량을 전수조사하는 방식이라 행정비용이 많이 들고, 손해율이 높다는 이유로 정부가 사업 확장을 꺼려온 게 가장 큰 이유죠. 정부 공언대로 수입보장보험이 농가소득 안정을 위한 실효적 수단이 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도 없이 야당에 반대하느라 정부가 나서서 여론몰이만 하는 꼴이죠. 이렇게 농업판이 진영 논리로만 돌아가면 결과적으로 농민은 얻는 게 없어요.
물가 안정을 빌미로 할당관세 같은 수입 정책을 계속 쓰는 것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관세를 통한 농업보호 효과를 스스로 무력화하고 있잖아요. 실제로 3년째 닭고기 할당관세를 적용한 결과, 우리나라 닭고기 자급률이 77%까지 떨어졌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농가가 지속 가능해야 하잖아요. 현재 농민들은 이상 기후와 불안정한 농산물 가격 때문에 지속하기 어려운 구조로 가는 게 사실이거든요.
허수종: 처음에 사과에 관한 기사가 쏟아질 때 수입을 위한 쇼가 아닌가 생각했어요. 국내에서 생산되는 우리 농산물이 비싸다는 걸 익숙하게 만들었잖아요. 코로나19 때 달걀이 비행기 타고 온 것 기억하세요? 달걀이 국민 음식이긴 하지만 안 먹어도 별문제 없어요. 사과는 언제부터 국민 음식이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사과 농사를 수십 년 지었지만 매일 먹지는 않거든요. 없을 때는 다른 것을 먹어야죠. 정부의 정책 기조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값이 오르면 수입으로 정리하려는 기조가 바뀌지 않으면 그 틈을 타서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이 생겨요.
이원영: 30년간 경험을 보면, 농산물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어서 상황이 개선된 적이 드물어요. 예전에 사과 생산량이 40만t 초반까지 떨어진 적이 있는데 지금보다 훨씬 얌전히 마무리됐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언론에서 달려들면서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어요. 비정상적인 상황이 몇 달 동안 계속된 거죠.
김애란: 먹거리가 국민의 기본권이니 정부가 농산물값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시장에 개입하잖아요. 그러면 농민의 기본권은 누가 챙겨주나요. 산업 기반을 지지하는 데 다양한 계층이 필요하고, 그 계층을 지원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잖아요. 국민의 4%밖에 안 되는 농민을 위해 정부가 얼마나 좋은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어요.
이원영: 소비자가 농산물을 비싸게 사 먹는 걸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많아요. 그런데 왜 농민을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들이 농민의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냐는 거예요.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진흥청, 농촌경제연구원, 농협, 그리고 우리 같은 유통회사까지……. 농민이 있어서 존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농민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대변하지 않냐는 거죠.
김동명: 농민이 돈을 벌어야 시장이 유지되잖아요. 농민이 최저임금은 보장받는 수준이 되어야 다음에 또 새로운 농사를 준비할 수 있단 말이죠. 그런데 그런 상황이 아니다 보니, 농민들이 투기성 작물을 심는 거예요. 평생 농사지은 분이 저한테 ‘양파 심을까? 대파 심을까?’ 물어보는 이유가 뭐겠어요. 우연히 잘 맞으면 대박이 나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쪽박 차게 되는 거예요.
이원영: 이번에 사과 농민들이 대부분 이렇게 얘기했어요. 첫째는 올해만 같으면 좋겠다, 둘째는 올해만 먹고 죽게 생겼다. 송미령 장관이 발표한 것처럼 강원도 사과 재배 면적을 2000ha이상 늘리고, 현재의 속도로 전국에 다축형 재배 방식이 보편화되며, 한동안 자연재해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몇 년 뒤 사과 생산량은 100만t을 넘길 거예요. 50만t 이상 수출로 빼내지 않으면 사과 한 상자에 2만 원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무척 커요. 농림축산식품부는 과연 이 상황을 대비하고 있을까요?
농민의 협동조합, 농협은 무엇을 하는가
– 농민이 농사를 지속할 수 있도록
김애란: 사실 제가 10년 동안 농사지으면서 사과값이 폭락한 적이 더 많았거든요. 우리는 180일 동안 노동력을 투입해서 사과 하나를 만들어내잖아요. 도시에 최저임금이 있듯이, 우리의 노고를 고려해 농산물 가격을 책정하는 데가 있다면 꾸준히 납품할 거예요. 농협이 그 역할을 해주기를 원하는데, 손 놓고 있다는 표현이 딱 맞아요. 농협이 농민에게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농협 산지유통센터(APC)가 제대로 운영되었다면 안동청과에 물량이 그렇게 몰리지 않았을 거예요.
김동명: 농협은 구매와 판매가 완전히 분리된 조직이잖아요. 실력 있는 누군가가 나서서 농산물을 얼마에 사서 책임지고 팔아보겠다, 이런 경우가 없어요. 잘못되면 책임지고 나가야 하거든요. 저는 60% 이상 계약재배를 진행해요. 수매할 때는 농민과 협상을 하고요. 예를 들어서, 농가에서 무조건 1만 원을 받아야겠다고 하면 농산물 일부만 가져와요. 대신 7000원, 8000원만 받겠다고 하면 물량을 전부 책임지는 거죠. 사실 농협이 이런 역할을 해주면 좋을 텐데요. 농협에 너무 많이 기대하는 것 같지만, 사실 농민들이 기댈 곳이 농협밖에 없어서 그래요.
허수종: 농협 신용 사업이 경제 사업보다 쉽고, 그쪽에 인력이 더 많이 포진된 것도 사실이에요. 현장에서 농민과 함께하는 직원은 대부분 계약직이니까 경제 사업을 추진하기 어렵고요. 신용 사업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고 노력하면 수익도 낼 수 있는데, 경제 사업은 위험이 크다고 아예 시작도 안 하는 조합장도 많아요. 그래서 조합장의 의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샘골농협에서 복분자를 수매할 때 기본 수수료만 받고 나머지 수익은 다 돌려주겠다고 했는 데도, 처음에는 농민들이 물건을 주지 않더라고요. 상인들의 가격보다 높게 책정해 정산하고, 퇴비도 지원하니 조금씩 관계가 좋아졌어요. 적어도 3~5년은 지속해야 신뢰가 형성되는 거예요. 이런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것이 농협과 조합원의 신뢰를 쌓는 방법이죠. 사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운영할 수 있는 조합장을 뽑는 거겠죠.
이원영: 농협이 조금 더 치열했으면 좋겠어요. 농협은 판매 후 정산하는 구조를 가진 곳이 많은데요. 최종적으로 판매하는 직원들이 치열하게 협상하는 모습을 못 봤어요. 단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물량을 빨리 치워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현장에서 우리보다 치열하게 100원이라도 더 받으려는 협상대리인 역할을 해야 하는데, 어쩜 저렇게 무심하게 하나 싶어요.
허수종: 100원이라도 손실이 덜 나야 농가에 돌아가는 몫이 늘어나는 게 맞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받아야죠. 쌀 10만 가마 팔 때 500원씩만 올려도 합치면 5000만 원이잖아요. 저희는 복분자 정산할 때 몇십 원까지 계산해요. 만인산농협 가면 깻잎 한 장에 몇 전까지 따져요. 그런 치열함이 있어야 해요.
제2의 생산자를 찾습니다
– 과일도 외모 지상주의
– 꾸준한 소비자 교육이 필요한 이유
신수경: 유럽에서 모양이 예쁘지 않은 과일을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가격에 판매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요. 먹어보면 맛이 좋아요. 우리나라에서는 생긴 것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외모 지상주의가 있잖아요. 사실 농가 입장에서는 같은 사과나무에서 나온 것인데 아깝다는 생각이 들 것도 같아요.
김애란: 맞아요. 사실 ‘못난이’라는 이름도 없어져야 해요. 똑같은 농산물로 봐야죠. 우리나라에서는 제사를 지내는 문화도 있고, 과일을 선물로 많이 주니까 예쁜 것을 많이 찾아요.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까지 있잖아요. 그런 표현 때문에 자꾸 외모를 보는 거예요.
이원영: 대형 유통업체랑 거래하면 외모 지상주의를 더 크게 느껴요. 친환경과일을 일반 과일과 똑같은 기준으로 보면서 못생겼다, 삐뚤었다 이야기하니까요. 농민들에게 고개를 못 들겠는 거예요. 그래도 본질을 보려는 소비자가 늘어나기는 했어요. 일단 사과는 뭐니 뭐니 해도 맛이 좋아야 하고요. 이왕이면 건강하게 농사짓는 분들 것을 찾아요. 농가에서 택배로 직거래하는 분들이 소비자의식을 바꾸는 데 상당히 큰 역할을 했다고 봐요.
김애란: 소비자를 만나 이야기해야 해요. 저는 네이버 밴드를 통해서 직거래하는데, 여기서 제 이야기를 계속 전하거든요. 농촌이 어떤 곳인지, 농촌이 왜 있어야 하는지, 농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는지요.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한 연대
– 농업의 경쟁력, 규모화인가
–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한 협력의 방향
신수경: 우리나라는 소농의 비율이 상당히 높잖아요. 일각에서는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서 농업의 규모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애란: 저희 부부는 3000평 과수원에서 인건비를 최소화해서 알뜰하게 농사짓고, 수확량의 90% 정도를 직거래해서 약 1억 원을 벌어요. 생산비 빼고 나면 6000만 원 정도 버는 거거든요. 농촌에서 이 정도면 근근하게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만약에 공판장에 내면 수익률이 반토막 날 거예요.
제 주변에도 농장 규모를 키우려는 분들이 있어요.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어서 살아남기 위해서요. 그런데 규모화도 결국 자본의 문제거든요. 그만큼 땅도 준비해야 하고, 기본적인 장비를 사는 데도 1억 5000만 원 정도 들어요. 정말 이게 맞는지 회의감이 들어요. 농민들은 밭에서 대출 이자 갚다가 죽을 거라고 이야기해요.
자연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농촌으로 오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정말 행복한가 싶어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하고, 쉴 틈 없이 장터를 돌아다니고, 외국인 노동자 월급을 주기 위해서 틈틈이 일자리를 알아봐요. 농민의 삶의 질이 너무 떨어지는 거죠.
김동명: 2012년에 주5일제가 시작되었는데 그때 최저임금이 100만 원 정도였거든요. 그때보다 월급도 물가도 많이 올랐다는 것은 농사짓는 비용도 올랐다는 거예요. 그러면 당연히 소비자도 농산물 가격이 오를 거라고 생각해야죠. 대파 1kg 평균 경매가가 2012년에 1700원이었고, 2024년 5월에 2400원이었어요. 12년이 지났는데 별 차이가 없는 거죠.
김선아: 경제 원리상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농업소득에 주로 의존하는 전업적 농가일수록 더 힘든 구조예요. 왜냐면 사료비, 인건비, 원자재비 급등으로 투입 비용이 너무 많이 들거든요. 농산물 가격은 해마다 불안정하고요. 그러다 보니 자본 투입이 늘어난 만큼 소득이 늘어나지 않는 거죠.
이원영: 2024년 들어서 농자재값부터 인건비까지 농산물 생산비가 엄청나게 올랐어요. 저장 부사의 생산 원가가 18kg에 3만 8000원에서 4만 2000원 사이가 될 것 같아요. 조생종은 조금 더 비싸겠죠. 홍로나 아리수는 4만 5000원까지 갈 것 같고요. 앞으로도 생산비가 내려갈 일은 없을 거예요.
2020년부터 경상북도에서 300농가가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 다축형 재배 방식으로 사과나무를 키우고 있거든요. 그러면 일반 농가는 생산비가 낮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줄도산할 것이 눈에 보이는 거예요. 저는 앞으로의 상황이 굉장히 걱정돼요. 농산물값이 떨어지면 나라에서는 물가 안정이라고 좋아하겠지만, 생산자들은 존립하기가 매우 어려워지는 거죠.
김애란: 농업에서의 성공은요, 경쟁력이나 규모가 아니에요. 계속 존재하는 거예요.
김동명: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앞으로 우리 농업은 어차피 규모화가 될 거라고 봐요. 농협에서 고령자의 농사를 대신 지어서 수익을 내는 것처럼요. 그런 지역이 아주 많거든요. 그렇다면 농민들이 어떤 방향으로 규모화를 할지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개인이 농가의 규모를 키우는 것도 규모화지만, 여러 농가가 조직하는 것도 규모화라고 할 수 있잖아요. 품목, 지역, 작기 등 서로 맞는 사람끼리 조직하면 훨씬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애란: 방향성이 그렇게 바뀌는 추세예요. 농민이 각개전투를 하면서도 한 업체에 납품할 수있도록 조직하는 경우가 있어요.
허수종: 그런 부분에서 농협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직과 자본을 가지고 있는 게 농협이잖아요. 영농법인이든, 협동조합이든, 작목반이든 작은 공동체가 튼튼하게 자리매 김할 수 있도록 농협이 바람막이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그런 역할도 해내지 못하면 존재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농민이 사라지면 농협도 없어지니까요.
김선아: 요즘 절실하게 느끼는 건데, 농업계에서 합리적인 비판과 대안을 찾아가는 공론장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해 함께 지혜를 모을 수 있는 토론 자리가 더 마련이 되면 좋겠어요.
신수경: 네, 감사합니다. 굉장히 의미 있는 토론으로 4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지속 가능한 농업, 농촌을 위하여 각자의 역할을 하고 계신 만큼, 앞으로도 우리가 다양한 방법으로 협력을 이뤄내고, 또 한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록 이진선 · 사진 박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