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포도주 마을 농가 민박이야기
버스가 마을 입구에서 멈추자 산비탈에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이 한눈에 들어왔다. 포도송이가 그려진 담벼락과 멋스러운 집들을 잇는 돌길은 여행가방 바퀴가 굴러가는 내내 드르륵 덜그럭 소리를 냈다. 예약한 민박집을 찾아 반가운 마음으로 벨을 눌렀을 땐 해가 막 지고 있었다.
괜찮아, 포도주 마을이야
인기척이 없다. 다시 문을 두드려봤지만 조용하다. 잘못 찾았나 당혹스러워지는 그때 문이 열렸다. 민박집 주인은 초로初老 가까운 중년여성이었는데, 발그레한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시큼한 포도향이 풍겼다.
초저녁이다. 햇살도 아직 남아있는데…. 어쩐지 불안해졌다. 그녀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서자 네모난 마당이 보이고, 좁고 가파른 계단이 이쪽에 하나, 저쪽에도 있다. 계단의 끝에 방이 있고, 모퉁이를 돌면 또 다른 방이 나온다. 한눈에 보기에도 오래된 가옥이다.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비좁은 계단을 올라가는 일행을 보고 있자니, 단순한 불편함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득한 불안감이 다시 밀려온다.
그런데 그녀가 안내한 방은 예상과 달리 아늑했고 깔끔했으며, 심지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작품들로 꾸며져 있었다. -알고 보니 ‘포도주를 무지 사랑하는’ 주인장은 도예가였다. 2층 방과 방 사이엔 아담하고 예쁜 정원이 있고, 창문으로 내려다본 풍경도 동화처럼 썩, 멋졌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농가마다 포도주 숙성실, 자신의 브랜드를 만든다
독일 중서부 라인란트 팔츠Rheinland Pfalz 주에 있는 라인스바일러Leinsweiler. 독일 와인 가도 중심에 있는 이 마을은 농민이 직접 만든 포도주로 유명하다. 대형 시설이 아니라 집집마다 숙성실이 있어 포도주 맛도 다르고 브랜드도 제 각각이지만 품질만큼은 공동으로 설립한 조합에서 관리해 명성을 이어간다.
일행 중 또 다른 그룹이 묵었던 집의 주인 피터 스튜빙어Peter Stu¨binger 씨는 ‘포도주 마이스터’다. 아버지로부터 포도농사를 이어왔고 지금은 아들 다니엘Daniel과 함께 한다. 1988년부터 자신이 직접 생산한 10여 종의 포도로 포도주를 만들어 관광객에게 판매했는데, 이젠 포도주 생산량의 40퍼센트 정도를 독일 전역으로 배달한다. 사과농사로 증류주와 주스를 만들어 팔고, 민박도 운영한다.
‘농촌다움’으로 공동체를 유지하다
400여 명이 사는 이 마을엔 스튜빙어 씨를 포함해 포도주 농가가 열두 개밖에 되지 않지만, 포도주가 유명해지자 찾아든 관광객들로 마을 전체가 활기를 찾았다.
독일 관광협회DTV: Deutscher Tourismusverband e.V는 국내 모든 숙박 시설을 평가하여 별점을 주는데, 편리함이나 화려함보다 농촌다움과 고풍스러움 등에 주목하는 것이 특이하다. 농촌다움을 간직한 라인스바일러 농가 민박이 점수를 높게 받는 이유다.
“농가민박 초기(1980년대)에는 불편한 점도 있었죠. 그런데 민박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호텔처럼 안락하고 호텔보다 정겨운 농가 민박을 찾는 사람이 훨씬 많아요. 민박은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는 좋은 수단이 됩니다.”
남부 독일 포도주 가도Su¨dliche Weinstraße의 14개 포도주 마을 홍보를 담당하는 다니엘라 되닉DanielaDoenig 씨는 연 5만 명 이상이 찾는 라인스바일러 마을의 성공 비결을 ‘상생’으로 보았다.
포도주를 만들지 않아도 포도를 재배하지 않아도 ‘포도’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라인스바일러. ‘1581’이라 새겨진 마을의 샘은 여전히 물이 마르지 않는다.
농촌마을에서 복숭아꽃이 피는 봄을 느끼고, 포도가 익는 가을에는 포도주를 즐기며, 여름에는 가족과 긴 휴가를 보내며 사는 기쁨과 살아갈 힘을 얻는 사람들. 농촌이 농업으로 지속 가능하도록 돕는 정책과 함께 농민들이 만들어낸 ‘농촌다움’은 그렇게, 따뜻하고 멋졌다.
글 · 신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