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푸드는 생산자들이 지역 소비자를 위해 생산하는 ‘지역 먹거리’를 의미한다. 지역 소비자들의 요구와 기호에 따라 생산하고, 소비자와 사회적으로, 지리적으로, 심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유통된다. 따라서 로컬푸드를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는 지역의 범위 내에서 대면적 관계와 상호호혜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는 지역사회의 사회적 자본 증대에 기여하며,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신뢰를 키운다. 지역에서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져 소비자는 생산자가 공급하는 먹거리를 신뢰하게 되고, 생산자는 책임감을 가지고 먹거리를 생산하여 공급한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생겨난 이러한 신뢰 는 먹거리 영역을 넘어 시민사회 전 영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사회적 자본의 증대는 지 역사회의 공공성과 민주성을 확산시킬 수 있다.
로컬푸드는 국가별, 주체별, 학자별로 매우 다양한 정의들이 있다. ‘로컬local’이 상대적인 공간이자 논쟁적 개념이고, ‘푸드food’ 또한 매우 포괄적인 범위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로컬푸드 라는 새로운 현상에 대해 정치 사회적으로 상이한 주체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유리하게 해석하고 운동을 이끌어가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개념이든, 운동이든, 정책이든 항상 차이와 갈등이 존재한다. ‘로컬푸드’라 하면 다음과 같은 가치와 철학이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
가치와 철학이 있어야 ‘로컬푸드’다
첫째, 먹거리에 대한 탈 상품화를 전제로 ‘시장에 대한 대안alternative to the market’이 되어야 한다. 오스트리아 사회경제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경제적 인간의 합리적 이기심을 주장하는 주류경 제학자들의 견해와는 달리 경제는 호혜성이나 상호성과 같은 사회관계에서 나온다고 봤다. 일반적으로 로컬푸드와 같은 농산물의 직접적인 거래는 관계를 근간으로하는 반反시장적이거나 시장을 넘어서는 새로운 유통과정이다. 즉 신뢰, 호혜성, 연대와 같은 대안적가치가 로컬푸드에 내재되어 있다.
로컬푸드는 가치이자 철학이고, 대안 운동이자 제도화 방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에 대한 사회적·정치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로컬푸드의 이념과 원칙에서 벗어나는 정치적 활용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농민이나 생산의 입장보다 선거의 수단으로 로컬푸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뢰의 가치와 호혜의 철학 이 없는 사이비 농산물 직거래 운동이 대표적이다.
둘째, 지역에 선순환적인 경제체계의 구축과 함께 주민들의 참여와 삶의 질을 높이는 것과 같이 ‘지역사회에 기여concern for community’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은 로컬푸드의 핵심 요소이다. 지역은로컬푸드의 사회 공간적 기반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로컬푸드 운동을 매개로 하여 지역사회가 재구성되고 새로운 지역 공동체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로컬푸드는 먹거리에서 출발하지만 지향하는 바는 새로운 지역운동이다. 특히 한국과 같이 모든 것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나라에서는 쾌적한 삶의 공간으로서 ‘지역’이 새롭게 강조될 필요가 있다. 로컬푸드는 대안적 삶을 기획하는 지역과 마을 만들기의 강력한 수단이다.
셋째, 먹거리 민주주의, 먹거리 복지, 먹거리 정치, 먹거리 경제 등 로컬푸드를 둘러싼 다양한 이 슈와 의제를 잘 묶어서 지역사회의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학교와 로컬푸드를 결합하고, 기업의 식품 기부와 복지시설을 연결해 새로운 차원의 먹거리 지역연대를 만드는 것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마이클 폴란Michael Pollan은 이를 먹거리 정치food politics를 통한 지역사회의 재구조화라고 설명하였는데, 공공급식의 구매력을 통해 지역의 생산과 소비의 사회적 연결성을 높여가는 과정이 바로 그것이다. 로컬푸드를 매개체로 지역경제의 자립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현실적 이슈들인 복지, 교육, 의료 부문의 자치운동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로컬푸드는 이처럼 가치이자 철학이고, 대안 운동이자 제도화 방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에 대한 사회적·정치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로컬푸드 직매장을 찾을 정도다. 그러나 문제는 로컬푸드의 이념과 원칙에서 벗어나는 정치적 활용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농민이나 생산의 입장보다 선거의 수단으로 로컬푸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뢰의 가치와 호혜의 철학이 없는 사이비 농산물 직거래 운동이 대표적이다. 더 큰 문제는 로컬푸드에 대한 비판적 성찰 없이 기업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는 경우다. 기업의 녹색위장으로 로컬푸드가 사용되면, 로컬푸드는 가까운 거리에서 생산된 신선한 먹거리를 의미할 뿐 폐해 덩어리인 글로벌 푸드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라져버린다. 윤병선 건국대 교수는 “거대 시장을 지향하면서, 대규모 단작에 기반을 두면서, 생산자의 가격 교섭력을 제한하면서 로컬푸드를 이야기하는 것은 ‘월마트의 로컬푸드’와 다름없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럴 경우 생산자와 소비자의 호혜적 관계는 사라지고, 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만 남게된다. 무늬만 로컬푸드이지 실체가 없다는 이야기다.
학교는 그 지역의 먹거리 체계에서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 학생들에게 좋은 식사 가 무엇인지 가르치면서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이상 급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로컬 푸드를 활성화할 가장 강력한 제도적 수단이 된다. 학교급식을 통해 아이들에게 지역의 좋은 먹거리가 제공되면, 아이들의 건강은 물론 지역이 새롭게 바뀔 수 있 다는 것이다.
학교급식 혁명의 핵심, 로컬푸드
최근 들어 이런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이루어지면서, 진정한 로컬푸드의 확산과 제도화를 위한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서 학교급식과 공공조달을 주목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학교는 교육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 이외에도 많은 일을 한다. 학교는 좁은 의미에서 지역사회의 복지와 돌봄에 필요한 소통, 호혜, 연대, 신뢰의 가치를 증진하는 곳이며, 넓은 의미에서 학교급식을 통해 지역사회를 재구성하고, 지속 가능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영국의 사회학자인 모건과 소니노Morgan and Sonnino는 학교급식 혁명을 통해 지역사회의 경제적, 민주적, 생태적 지속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학교급식 혁명이란 기존의 낡은 급식체계를 새로운 체계로 전환하는 것인데, 그 핵심은 로컬푸드와 학교급식이 공공조달을 통해 만나는 것이다.
이러한 만남과 관점의 전환에는 학교급식과 로컬푸드의 호혜적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학교는 그 지역의 먹거리 체계에서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 학생들에게 좋은 식사가 무엇인지 가르치면서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이상 급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로컬푸드를 활성화할 가장 강력한 제도적 수단이 된다. 로컬푸드는 아이들에게 건강을 제공하면서 지역의 소중함을 알려준다. 학교급식을 통해 아이들에게 지역의 좋은 먹거리가 제공되면, 그로 인해 아이들의 건강은 물론 지역이 새롭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학교급식은 로컬푸드 확산에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학교급식이 정착되었고, 학생의 선택이 아닌 단체로 급식이 이루어지기때문이다. 실제로 2014년 기준 한국의 초·중·고 학교급식 실시율은 100%에 가깝다. 반면에 영국과 미국은 30~40%대에 머무르고 있고, 일본도 정부가 담당하는 소학교와 중학교만 90%대에 이르지 나머지 사립학교나 고등학교는 현저하게 떨어진다. 더구나 한국은 2010년 이후 점진적으로 친환경 무상급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조달의 힘을 활용하여 로컬푸드가 학교급식에 공급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공공조달은 그 규모나 강제력 측면에서 조세와 규제의 힘과 더불어 국가가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수단이다. 이탈리아 로마는 창조적인 공공조달 전략을 활용하여 학교급식에 유전자변형식품GMO과 대부분의 냉동 채소 사용을 금지했고, 제철에 생산되는 지역의 신선한 유기농 과일과 채소로 차려진 식단을 만들어냈다.
영국에서는 어려움에 처한 지역 생산자들이 로컬푸드를 통해 학교급식과 연결되었는데, 이러한 기회를 만들어낸 한 가지 방법이 바로 공공조달이었다. 브라질의 식품 공공조달 프로그램PAA에서는 학교급식 예산의 최소 30%는 학교가 위치한 지역 내의 가족농 생산물을 사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이러한 정책적 강제 조항으로 브라질에서는 학교급식에 로컬푸드의 활용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공공조달은 로컬 푸드가 지역 내에서 공적으로 판매될 기회를 제공해줌으로써 지역의 경제적, 사회적, 생태적 발전을 촉진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공공조달을 위한 법적, 제도적 개선이 필요
그동안 우리나라는 무상급식을 하면서도 공공조달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로컬푸드가 학교급식에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 1993년 제정된 WTO 규제 때문이었다. WTO 정부조달협정은 차별금지원칙을 채택하였고, 한국은 이의 적용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 일본, 유럽연합 등 주요 선진국들은 학교급식을 예외 조항으로 포함해 자국산 농산물을 식재료로 우선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다행히도 지난 2012년 3월 WTO 규제가 풀리면서 학교급식에 공공조달을 활용하여 로컬푸드를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실천과제가 있다.
세계의 학교급식 개혁 사례는 학교급식의 ‘변화’가 명령과 통제보다는 협력과 설 득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탈리아 로마의 학교급식은 공무 원, 생산자, 학교, 학부모 모두를 개혁 과정에 적극 참여시키는 포괄적 방식으로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사회적 포용의 과정이 변화를 이끌어내고, 지속 가능 하도록 했다.
첫째, 학교급식법과 학교급식 지원 관련 자치단체의 조례를 창조적인 공공조달 전략에 맞추어 개정해야 한다. 학교급식법 개정의 핵심은 제8조 경비부담과 제10조 식재료 조항이다. 경비부담 개정은 국가의 학교급식 책임을 분명히 하면서 공공조달의 확장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식재료 조항은 공적 예산 지원의 조건으로 이탈리아나 브라질의 급식 프로그램과 같이 유기농, 친환경, 로컬푸드등 ‘대안적’ 품질 기준에 적합하도록 개정해야 한다.
둘째, 식재료 조달체계를 공공조달 전략에 맞춰 개선해야 한다. 전자조달이라 하더라도 최저가 원칙에서 벗어나 최고의 가치에 따라 급식공급 계약자를 선정하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현재의 가격 입찰이라는 경쟁구도에다 품질, 신선도, 지역, 가치, 문화라는 비경쟁구도를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스코틀랜드의 이스트 에어셔 주East Ayrshire County의 학교급식은 창조적인 공공조달 전략으로 지역의 소규모 생산자나 가공업자에게 참여 기회를 준다. 이를 위해 지방의회는 로컬 푸드와 유기농 생산자들이 급식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입찰과정을 새롭게 설계했다. 가격과 품질에 동등하게 평가기준을 두었는데, 수확에서 배송까지의 시간표, 공정무역 산물, 제철 산물, 소수민족 음식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 생물 다양성과 가축복지 기준 준수 여부에 더 많은 점수를 부여한 것이다. 이로써 대규모 공급업자들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게 되었는데, 공공조달의 힘이 이러한 가능성을 만들어낸 것이다.
학교급식에 로컬푸드를 조달하는 방식은 이론적으로는 무척이나 간단한 조합이 고, 정치적인 명분도 충분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 주체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쉬운 문제가 아니다. 공공조달의 활용도 여러 가지 법적, 제도적 문제가 가로막고 있다. 친환경 무상급식이나 로컬푸드 정책 또한 완 전히 정착되지 못하고 정치적 분위기에 따라 많이 흔들리고 있다.
셋째, 학교급식 주체들의 인식변화와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세계의 학교급식 개혁 사례는 학교급식의 ‘변화’가 명령과 통제보다는 협력과 설득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탈리아 로마의 학교급식은 공무원, 생산자, 학교, 학부모 모두를 개혁 과정에 적극 참여시키는 포괄적 방식으로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사회적 포용의 과정이 변화를 이끌어내고, 지속 가능하도록 했다. 일본 또한 정책적 강제보다는 지역사회 협의체의 중요성을 무엇보다도 강조하고 있다. 한국은 단위 학교의 권한과 책임이 극대화되어있는 급식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학교급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급식 현장을 장악하고 있는 교장과 영양(교)사를 설득하고, 이들의 협력을 얻어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의식 변화도 로컬푸드 확산에 중요하다. 제철에 생산한 거친 식재료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지역의 생산체계가 로컬푸드 확산에 적합하게 친환경 생산,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생산자의 의식변화와 함께 이들에게 생산을 지속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학교급식에 로컬푸드를 조달하는 방식은 이론적으로는 무척이나 간단한 조합이고, 정치적인 명분도 충분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 주체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쉬운문제가 아니다. 공공조달의 활용도 여러 가지 법적, 제도적 문제가 가로막고 있다. 친환경 무상급식이나 로컬푸드 정책 또한 완전히 정착되지 못하고 정치적 분위기에 따라 많이 흔들리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과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로컬푸드는 신뢰·생태·느림·호혜 등의 대안적 가치가 생명이다. 시장경제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공공조달은 이윤논리보다 공공의 논리에 의해 설계되고, 추진되어야 한다. 학교급식은 그 특성상 미래 세대에 초점을 두는 최대의 공공서비스다. 학교급식에 공공조달을 통해 로컬푸드가 먼저 공급되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필자 김흥주: 원광대학교 복지보건학부 교수. 서울시 친환경무상급식심의위원회 부위원장. 주요 관심분야는 지역사회와 농업, 가족과 복지 등이며, 최근에는 친환경 공공급식과 먹거리 복지등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