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잡지, 국경을 넘다

김유익

잡지와 먹거리를 함께 보내는 다베루 통신. 사진은 BS후지 다큐멘터리 화면 캡처.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욕심은 없이
  결코 화내지 않으며 늘 조용히 웃고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모든 일에 자기 잇속을 따지지 않고

  (중략)

  모두에게 바보라 불려도,
  칭찬에도 미움에도 휘둘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시 ‘비에도 지지 않고’ 중에서

  이 시는 일본의 동화 작가 미야자와 겐지 씨의 작품이다. 그는 도호쿠 지역 이와테현 하나마키시에서 나고 자란, 농학자이자 작가인 시골 지식인이었다.
  일본 잡지 《도호쿠 다베루 통신(東北 食通信)》의 창간인 다카하시 히로유키 씨가 만든 회사인 ‘아메카제태요(雨風太陽, 이하 아메)’의 사명은 바로 여기서 나왔다. 하나마키시에서 나고 자란 다카하시 씨는 어려서부터 이 시를 들으며 현대 일본인들, 특히 농어촌 지역과 단절된 대도시의 주민들에게 시 속의 삶을 되돌려주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다카하시 히로유키 씨가 어민을 취재하고 있다. 사진은 《도호쿠 다베루 통신》 홈페이지 화면 캡처.
다카하시 히로유키 씨가 어민을 취재하고 있다. 사진은 《도호쿠 다베루 통신》 홈페이지 화면 캡처.

농민과 도시민을 연결하는 ‘다베루 통신’
  다베루 통신은 공동체 지원 농업(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CSA)의 모범 사례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다카하시 씨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도쿄로 나가 10년을 보냈지만,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이와테현에서 청년정치인으로 데뷔했다. 언변이 뛰어난 그는 현의원으로 두 번 당선되고, 지사 선거에도 출마할 정도의 인기를 얻었다. 그런 그의 삶을 결정적으로 바꾼 계기는 2011년 도호쿠 대지진이었다. 당시 큰 피해를 입었던 이와테현에 대도시의 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부흥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보고, 대도시와 지역, 그리고 농어촌을 연결하는 삶을 꿈꾸게 됐다. 그는 폐허로 변한 재난의 현장에서 서로 돕는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이상을 실천하는 ‘그라운드 제로’를 보았다.
  자신의 꿈을 실현할 구체적인 방법으로 농수산물 생산자와 도시민을 직접 연결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농수산물 택배 상자에 담긴 반쪽짜리 안내문 대신, 생산자와 생산과정을 자세히 소개하는 잡지를 만들고, 거기에 직접 그들이 생산한 농수산물 식자재를 더해서 판다는 역발상을 했다. 또, 페이스북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참여하는 온라인 그룹을 만들었다. 실제 배달받은 신선한 식자재로 요리해 먹고 감사의 뜻을 표하는 소비자들의 반응에 농어민들도 용기백배하게 된다.
  《도호쿠 다베루 통신》을 보고,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형식의 독자적인 잡지를 창간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다카하시 씨는 ‘일본 다베루 통신 리그’의 대표를 맡게 되었다. 2016년에 사업을 확장하는데, 잡지 한 권으로 한정된 생산자밖에 소개할 수 없는 것이 성에 차지 않아, ‘포켓 마르쉐’라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었다. 이 모바일 농수산물 쇼핑몰은 2024년 기준으로 일본 전역에서 8000명이 넘는 생산자와 80만 명 가까운 소비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그 결과, 아메는 2024년 1월 도쿄 주식거래소에 사회적 기업 대상의 임팩트 IPO(기업공개) 케이스로 상장되었다.
  그는 정치가이자 사업가로서, 활동가들이 흔히 취하는 근본주의적인 태도를 버리고 기술과 자본주의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일본에 비해서 온라인 쇼핑 산업이 크게 발달한 한국이나 중화권에서는 플랫폼 자본이 소비자와 생산자를 더 분리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여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는 방법은 생산자에게 주도권을 주고, 소비자와의 직접 소통도 장려하면서 온·오프라인 채널 활동의 균형을 맞추는 것일 터이다. 그래서 포켓 마르쉐에서는 생산자가 직접 가격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밖에 아메의 중요한 신사업 영역이 ‘아이와 학부모의 지방유학’이라는 현지 체험 프로그램이라는 것도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는 대책일 수 있다.

포켓 마르쉐 소개 화면 캡처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애플리케이션 ‘포켓 마르쉐’. 사진은 포켓 마르쉐 소개 화면 캡처

대만, 다베루 통신으로 ‘식농교육’을 하다
  다카하시 씨의 이런 열정과 아이디어는 저서로 소개되기도 했고, 다른 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한국뿐 아니라 다른 동아시아 지역들에도 잘 알려지게 됐다.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곳은 대만이다. 일본과의 문화적 연계뿐 아니라 시민사회의 협력도 매우 긴밀한 대만에서는 다카하시 씨의 방문을 계기로 바로 4개의 다베루 통신이 창간됐다. 중부와 동부, 그리고 윈린현의 세 지역과 여행을 주제로 잡은 출판 주체가 시작이었다. 이후 한 곳이 더 추가되고 홍콩의 한 단체도 대만 지역 리그에 참가해서 모두 6개가 운영됐다. 2019년에는 일본과 대만을 통틀어 무려 40여 개의 다베루 통신이 생겨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만은 소비자 인식이나 행동이 일본과는 달랐기 때문에, 신개념 잡지의 지속적인 발간은 어려움을 겪었다. 단지 잡지만을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유통기한이 정해진 농수산물을 함께 배달하려면 확실한 정기 구독자가 확보돼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호쿠 다베루 통신》이 1년 만에 1400명의 구독자를 확보한 것과 달리, 대만의 잡지들은 100부에서 200부를 판매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일본은 1970년대의 ‘테이케이(提携)’ 등을 바탕으로 CSA 원조 국가나 다름없는 데다가 도호쿠 부흥운동이라는 큰 사회적 흐름에 올라탔다. 그에 비해 2000년을 전후해서 대안 먹거리 운동이나 조직이 사회적 인지도를 얻고 자리를 잡기 시작한 대만의 소비자 운동은 안정된 독자군을 키워낼 만한 수준이 안되었다. 결과적으로 편집부 구성원들은 모두 생계를 위한 본업을 갖고, 남는 시간과 에너지를 이용해서 잡지를 만들다 보니 안정된 출간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었다. 다카하시 씨의 메시지에 공감해서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이들은 창립 시점부터 현재까지도 세 명의 간부로 이뤄진 사무국, 전국의 편집진 단체 채팅방, 자원봉사자 그룹을 중심으로 온·오프라인 워크숍과 미팅을 정기적으로 지속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도지식(島之食)’이라는 다베루 공동 판매 플랫폼과 ‘서물(書物)’이라는 공동 출판 브랜드를 만들어서 다베루 통신 네트워크를 개방하고, 원하는 이들이 프로젝트로 참가하는 것을 허용한다. 즉, 일회성이라도 다베루 통신의 브랜드를 사용하여 그 정신에 공감하고,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낼 수 있다.
  현재 대만 다베루 통신의 임시 대표를 맡고 있는 양야안 씨의 설명에 따르면, 대부분의 다베루 통신은 일회성 정보 전달이 아니라, 반영구적인 식농(食農)교육 교재로 사용될 수 있다고 한다. 일본의 다베루 통신은 생산자를 소개하는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그림책 형식으로 생산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만의 다베루 통신도 이 포맷을 유지하는데, 형식과 내용이 충분히 교재로 사용할 만하다. 양야안 씨는 원래 본인이 오랜 기간 식농교육 활동가로 일해왔고, 얼마 전에는 아동을 위한 다베루 통신을 창간하고, 협력관계인 유기농 농장의 온라인 채널을 통해 농산물과 함께 잡지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아동 다베루 통신 창간호는 닭을 특집으로 삼아, 농장의 양계 과정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데, 그는 자신의 식농교육 프로그램에서 이를 활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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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다베루 통신의 임시 대표인 양야안 씨가 아동 다베루 통신 창간호를 소개하고 있다. ⓒ김유익
대만 다베루 통신의 임시 대표인 양야안 씨가 아동 다베루 통신 창간호를 소개하고 있다. ⓒ김유익

민간이 중심인 중국 먹거리 운동
  중국에서도 다베루 통신의 영향을 받아서 2017년에 《식통사(食通社)》라는 인터넷 매체가 창간됐다. 이 매체는 자본과 정부로부터 독립된 포지셔닝을 강조하는 시민 운영 기반의 ‘베이징 유기농 파머스마켓’으로부터 출발했다. 2009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이 조직은 중국 내 대안 먹거리 파머스마켓 중 가장 오래됐고, 두 곳의 상설 오프라인 매장 운영을 비롯하여 규모도 가장 크다. 동시에 중국 전역의 파머스마켓과 대안먹거리 시민운동 네트워크를 묶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식통사》라는 매체가 필요했던 것도 이들 전국 네트워크의 소통과 교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대표인 창톈러 씨가 2017년에 일본문화기금의 초청으로 일본 연수를 갔던 경험이 《식통사》의 설립 계기가 되었다. 일본의 생활협동조합인 ‘세이카츠 쿠라부(生活クラブ)’를 포함해서, 일본 각지의 다양한 생산자와 소비자 단체,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을 만난 가운데, 여러 지역의 다베루 통신 편집부도 방문해서 심도 있는 교류를 나눴다. 그는 다베루 통신의 목표에 공감해서 《식통사》를 설립했지만, 이름만 따왔을 뿐 실제 운영 모델은 적용할 수 없었다. 대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잡지와 농산물 패키지 상품을 원하는 정기 구독자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미 오랜 세월 파머스마켓을 운영해 온 경험에 비추어 소비자들의 수용 정도를 잘 파악하고 있던 것이다.

중국에는 다베루 통신의 영향을 받아 창간된 인터넷 매체가 있다. 사진은 《식통사》 홈페이지 화면 캡처.
중국에는 다베루 통신의 영향을 받아 창간된 인터넷 매체가 있다. 사진은 《식통사》 홈페이지 화면 캡처.

  이들은 중국 소비자들이 대부분의 생활 정보를 얻고 있는 메신저 ‘위챗’을 통해서 다양한 글을 발표하고 있고, 팟캐스트도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도 온·오프라인 강연, 워크숍, 함께 책이나 다큐멘터리 영화 보기 같은 형식의 스터디 모임을 진행한다. 사실 이런 내용은 새롭게 추가된 팟캐스트 등을 제외하고는 과거 파머스마켓이 벌여온 소비자 교육 활동의 연장선에 있다. 파머스마켓의 소비자 교육 분야를 독립적인 매체 조직으로 떼어내 전문화했다고 볼 수 있다.
  내용상으로는 다베루 통신과 마찬가지로 생산자 소개, 특히 귀농·귀촌한 신농민들 혹은 이들과 연대하는 대안 농업 및 먹거리 활동가들의 경험 공유가 많지만, 그 밖에도 먹거리, 환경과 관련해 사회적 의제로 삼을 수 있는 다양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특히 국내외 연구자 등의 기고문을 통해,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 논의에 실시간으로 참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와 관련된 주제 영역은 별도로 떼어 지속적으로 다루고 있다.
  2023년, 대만 동해대학의 사회학자 완이량 씨가 먹거리 전문 매체인 《뉴스앤마켓(News&Market)》과 《식통사》를 비교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대만의 《뉴스앤마켓》이 정책 비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중국의 《식통사》는 시장 비판에 더 치중하고 있다고 그 차이점을 설명한다. 민간사회에서 정책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불가능한 중국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한다. 하지만 중국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민간 조직도 있기 때문에, 이런 설명이 완전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정부와의 협력을 추구하는 ‘중국CSA연맹’이나 그 배후의 ‘신향촌건설운동’ 같은 조직의 활동이나 담론도 살펴봐야 한다. 후자의 경우, 특히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원톄쥔 씨와 같은 사회 활동가의 후광과 영향 속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베루 통신은 일본 내에서 큰 성공을 거뒀을 뿐 아니라 한국과 중화권의 대안 먹거리 시민 네트워크에 많은 영감을 준 것으로 보인다. 지역에 따라 그 모델을 전적으로 수용한 곳도 있지만, 그보다는 다베루 통신이 실현하고자 하는 목표와 아이디어에 충실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실천을 해나간다고 볼 수 있다. 한국 CSA의 활성화를 위해 오랜 기간 다베루 통신을 주목해 온 이들도 이웃 나라의 경험을 토대로 한국에 맞는 방식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김유익

필자 김유익: 한중 문화교류 코디네이터
2011년부터 한국, 일본과 중국을 포함한 중화권의 지속가능성 라이프스타일 교류 활동을 기획, 조정해왔고, 현재 거주하는 중국 남방지역을 중심으로 중국사회와 문화 관련 평론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차이나 리터러시》(한겨레출판사, 2023)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주변의 상실》(글항아리, 2022, 공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