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임경수
연결고리는 많은데, 왜 삶은 바뀌지 않을까
주말마다 열리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 도시 아이들이 참여하는 농촌 체험학습, 청년들이 기획한 로컬 프로젝트까지, 오늘날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풍경은 어느 때보다 풍성하다. 도시민은 농촌을 더 이상 낯설게 느끼지 않고, 농촌은 새로운 활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관계는 희미해지고, 농촌은 여전히 인구 감소와 고령화 문제 속에 머문다. 청년들 역시 안정된 일자리와 기반을 찾지 못한 채 흩어진다. 연결에는 의도가 있지만 성과는 미약하다. 연결이란 양쪽 모두의 삶을 바꾸는 힘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만났다가 헤어지는 이벤트가 아니라, 서로를 지탱하는 지속적 관계여야 한다.
생태계의 본질 또한 ‘연결’이다. 나무는 햇빛으로 유기물을 합성해 균근류와 영양을 나누고, 곤충과 새를 끌어들이며, 다른 식물과 토양 미생물과 어울려 숲을 이룬다. 숲이란 단순한 생물종의 합이 아니라 수많은 관계망이 얽힌 결과다. 지금 우리의 도농 연결은 이러한 생태학적 관계망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청년 한 명이 농촌에 오면 그의 우주가 함께 오는 것이라 하지만, 그의 숲은 오지 못하고 청년은 농촌의 숲에도 뿌리내리지 못한다. 숲과 숲은 만나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린다.
도농 연결의 간략사
도시와 농촌을 이으려는 ‘도농 연결’은 최근에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다양한 실험과 세대를 거치며 진화해 왔다. 1995년, 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에서는 도농 교류의 상징적 행사를 열었다. 우리나라에 오리농법을 도입한 주형로 씨는 오리 구입비를 미리 낸 도시민을 초청해 오리를 논에 풀어주는 행사인 ‘오리 입식 행사’를 개최했고, 이 행사는 농민과 도시민이 함께 어울리며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장이 되었다. 비록 조류독감과 농가 감소로 행사는 중단되었지만, 어린이들이 논둑에서 새끼 오리를 놓아주는 풍경은 도농 연결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간단히 도농 연결의 흐름을 살펴보자. 1990년대는 도농 연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였다. 한살림과 지역 생협을 중심으로 도시와 농촌 간 직거래가 시도되었고, 유기농 마을이나 친환경 농장을 찾는 체험, YMCA와 환경단체가 주도한 캠프가 이어졌다. 일본의 산촌유학 모델이 전파되면서 소규모 농촌유학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귀농 역시 사회운동이나 생태공동체를 중심으로 의식적이고 제한적인 흐름으로 나타났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도농 연결은 제도화와 기반 구축의 단계로 나아갔다. 1999년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생협법)’ 제정은 생협 조직의 성장을 이끌었고, 학교급식도 직영과 직거래 체계로 전환되었다. 농촌체험휴양마을 제도가 만들어지고 기업과 농촌체험마을이 결연을 맺는 ‘1사1촌 운동’이 활기를 띠었으며, 전북에서 ‘작은학교 살리기’ 일환으로 농촌유학을 정책화하고 농림축산식품부와 교육부가 시범사업을 이어갔다. 귀농·귀촌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정책이 등장하면서 규모가 늘어나고 중장년과 은퇴자를 중심으로 한 전원마을 조성으로 이어졌다.
2010년대는 실험과 확산의 시기였다. 온라인 직거래가 활성화되고, 농부시장 마르쉐@과 같은 테마형 직거래 장터가 새로운 풍경을 만들었다. 농촌체험은 단순한 방문을 넘어 교육과 생태, 힐링 관광과 결합하며 6차 산업화와도 연계되었다. 곡성, 장흥, 춘천, 단양, 울주 등지에서 농촌유학이 활발해졌고, 다양한 유형으로 확산했다. 귀농·귀촌도 전업농을 지향하는 형태에서 벗어나 다양한 목적과 계층으로 확대되었으며, 2018년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만들기’ 시범사업을 통해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시도가 시작되었다.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도농 연결은 전환과 재구성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팬데믹 이후 비대면 거래가 일상화되고 SNS와 택배 시스템, 가치 소비가 결합하면서 개인간 직거래가 활성화되었다.
마을 단위의 농촌체험은 위축되었지만, 치유농업과 농촌에서 살아보기, 워케이션과 같은 새로운 방식이 등장했다. 농촌유학은 팬데믹 이후 대안교육 수요가 늘면서 마을교육공동체와 연계해 다각화되었고, 가족 단위의 농촌 이주를 전제로 하는 프로그램도 생겨났다. 귀농·귀촌은 참여 계층이 더욱 다양해지고 지원체계도 정비되면서, 단순한 귀농을 넘어 창농·창업·창직으로 확장되었다. 청년마을과 로컬크리에이터 같은 청년 대상 사업이 본격적으로 농촌에 적용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다.
그런데 도농 연결의 기원을 더듬어 올라가면, 그보다 앞선 사례를 만날 수 있다. 1973년 서울YMCA가 창립 70주년을 맞아 기획한 ‘양곡은행’이다. 당시 농촌은 춘궁기마다 생활이 막막해 고리채에 의존하곤 했는데, YMCA는 도시에서 모은 쌀로 마을에 양곡은행을 만들고 농민에게 그 쌀을 빌려주었다. 농민들이 가을에 쌀을 조금 더 얹어 갚는 방식으로 마을 자산이 늘어났고, 이는 공동체를 키우며 마을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1974년 경기 화성군 수촌리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 사업은 1980년까지 29개 마을로 확산했다. 양곡은행은 단순히 도시의 수요와 필요를 농촌에 연결하는 차원을 넘어, 도시의 근본이 농촌에 있다는 인식 위에서 농촌의 구조적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 한 최초의 도농상생 모델이었다.
(위 사진은 본문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
플랫폼 시대의 도농 연결
최근 도농 연결은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과거의 도농 연결이 농촌에서 만든 농산물이나 프로그램을 도시로 발신하여 이어지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도시와 농촌이 함께 콘텐츠를 생산하고 공유하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다채로운 연결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플랫폼의 등장은 몇 가지 배경과 맞물려 있다. 첫째, 정보기술의 확산이다. 스마트폰과 온라인 결제의 보편화는 농촌과 도시를 직접 연결하는 창구를 열었다. 둘째, SNS 기반 비즈니스의 성장이다. 인스타그램, 유튜브와 같은 매체를 통해 농촌의 상품과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도시 소비자에게 빠르게 전달할 수 있어 소규모 주체도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셋째, 로컬의 부상이다. 안전한 먹거리, 고유한 지역 경험,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도시민이 농촌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넷째, 정부의 지원 확대다. 청년마을, 로컬 크리에이터, 로컬 브랜드, 넥스트 로컬 등의 정책적 지원은 청년층이 참여하는 다양한 로컬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했다. 다섯째, 투자 가능성의 확대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성장성과 확장성은 농촌을 배경으로 한 서비스에도 민간 자본과 창업을 불러들였다. 이러한 도농 연결의 플랫폼은 여행, 프로그램, 장기체류, 공간재생, 워케이션, 공동구매 및 펀딩 등의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2)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제공하고 중계하는 플랫폼의 경우 콘텐츠 중심으로 유형을 구분하였다.
정부 차원의 획기적인 시도로는 ‘고향사랑기부제’를 들 수 있다. 자신의 주소지가 아닌 지역에 연간 최대 2000만 원까지 기부할 수 있는 제도로, 10만 원까지는 전액 세액공제를 받고 초과분은 세액공제와 함께 지역 특산물을 답례품으로 받을 수 있다. 중앙정부의 일방적 재정 지원이 아니라, 지자체와 주민이 직접 답례품과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도농의 상호작용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민간의 새로운 실험도 흥미롭다. 농촌을 경험했던 도시 청년들이 도시로 돌아온 뒤 흩어지기 쉬운데, ‘도시쥐정거장 실험 프로젝트’는 모임뿐 아니라 그 후에도 수도권을 거점으로 농촌을 다각도로 경험할 수 있게끔 여러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이는 도농 연결을 단순 방문에 그치지 않고, 이후의 관계로 확장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플랫폼은 도농 연결을 한층 다양하게 만들었지만, 예전에 경험했던 일을 떠올리면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2010년대 초반, 내가 몸담았던 농촌의 중간지원조직에 도시 지자체 간부들이 협력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찾아온 적이 있었다. 사전에 군청은 탐방 일정을 만들어 휴양림 숙소를 준비하고 지역의 맛집에서 대접했다. 겉으로는 상호 교류처럼 보였지만, 정작 회의 자리에선 그들의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이어졌다. 농촌의 현실을 묻거나 주민의 필요를 경청하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더 나아가 농촌을 불우이웃돕기의 대상으로 여기는 시선마저 비쳤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주민들은 동정이나 시혜를 바라는 이들이 아닙니다. 스스로 지역을 일구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농촌을 소비의 대상으로, 농촌주민을 도와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긴다면 어떤 협력도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정책이든 플랫폼이든 도농 연결이 지속적인 힘을 가지려면 이러한 비대칭에서 벗어나야 한다. 도시와 농촌이 단순히 수요-공급의 고리에 머물면 그 관계는 이내 소진된다. 진정한 연결이라면 서로의 부족을 채워주고 겹겹이 쌓이는 중첩된 관계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그 속에서 또 다른 가능성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숲과 숲의 연결, 새로운 도농 연결의 방향
도시는 농업과 농촌에 바탕을 두고 있다. 농민이 일군 토지와 생산한 식량이 도시를 만들었고, 산업화 과정에서도 농촌의 자원과 인력이 도시 성장의 기반이 되었다. 지금도 도시는 농촌에서 공급되는 물·에너지·먹거리 없이는 하루도 유지될 수 없다. 반대로 농촌 또한 도시의 기술, 문화, 자본과의 연결 속에서 새로운 활력을 얻는다. 도시와 농촌은 오래전부터 상호작용 하며 서로의 부족을 채워온 것이다. 따라서 도농 연결은 단순한 거래나 일방적 지원이 아니라, 상호작용과 상생의 관계여야 한다.
2018년, 서울시가 지역과의 상생을 위해 만든 ‘상생상회’의 개소식이 있었다. 당시 나는 해당 사업의 예산을 심의하는 위원회에 속해 있었고, 축사를 요청받아 행사장을 찾았다. 그런데 행사장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 농민들을 보았다. 전국 각지에서 바쁜 농번기에 서울까지 왔지만, 누구도 그들을 주인공으로 대하지 않았다. 정작 축사를 해야 할 사람들은 그들이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농촌이 없는 도시는 허망합니다. 도시는 농촌의 토지와 농민의 고된 노동을 기반으로 발전했고 지금도 농촌의 먹거리와 자원 없이는 하루도 버틸 수 없습니다. 상생상회의 진정한 주인은 농민들입니다.”
농촌이 도시의 근본이라는 바탕 아래, 도농 연결에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생태계로 비유하자면, 나무와 나무의 단순한 만남은 숲을 만들 수 없다. 숲은 나무와 토양, 미생물, 곤충, 동물이 얽혀 만들어지는 관계망이다. 그물망처럼 연결된 숲은 개별 나무가 쓰러져도 유지된다. 도농 연결 또한 숲과 숲을 잇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도시의 숲과 농촌의 숲이 연결될 때, 개별 연결이 희미해져도 숲은 남고, 잠시 농촌을 경험한 청년들도 도시 숲에서 관계망을 이어가며 새로운 가능성을 키워 갈 수 있다. 이런 전환은 구체적이고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가능하다. 나무가 여러 요소와 얽혀 숲을 이루듯, 도농 연결도 여러 분야에서 서로의 부족을 채우고 중첩된 관계를 쌓아 갈 때 더 깊어진다.
먹거리에서는 지역 간 순환 체계를 구축하고, 공공급식과 푸드플랜을 통해 도시와 농촌이 함께 먹거리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주거에서는 베이비부머가 농촌으로 이주하며 비게 되는 도시의 집을 청년 공유주거로 활용해 세대와 공간의 순환을 꾀할 수 있다. 농촌은 로컬푸드·돌봄·환경 분야에서 고령자의 취업이 가능하다. 도시 고령자의 일자리를 농촌에서 만들고 도농 순환 과정에서 새로 생기는 일자리를 청년과 연결하면 도농 사이 일자리 균형을 도모할 수 있다. 도시 청소년이 농촌유학을 하듯이 농촌 청소년도 도시에서 배우며 서로 교류하면 교육의 다양성과 깊이를 더 할 수 있다. 또 도시민이 농촌에 투자할 때 창출되는 수익과 서비스를 쿠폰 등으로 활용하면, 사람뿐 아니라 자본도 도농 사이에서 오가며 연결될 수 있다.
지자체와 연관된 정책과 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를테면 고향사랑기부제를 응용해 볼 수 있다. 지금 제도상 농촌주민이 도시 지자체에 기부할 수 있는데, 이를 확장해 도시 지자체가 농촌에 농촌유학센터 건립비용을 기부하고, 농촌주민은 도시의 농촌유학 가정을 발굴·지원하는 사회적경제조직에 기부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이런 방식으로 도시와 농촌의 지자체가 협약을 맺어 상생 정책을 설계한다면, 도농 연결은 더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연결의 내용은 풍성해지고 각자의 숲 관계망은 튼튼해질 것이며, 마침내 숲과 숲이 연결을 통해 비대칭적 교류를 넘어선 진정한 상생이 시작될 것이다.
해법은 멀리 있지 않다
도농 연결은 지난 세대 동안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거쳐 왔고, 최근에는 플랫폼을 통한 새로운 시도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도시가 소비자, 농촌이 공급자로 머무는 비대칭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만남이 이어졌지만, 관계는 지속되지 못했고 그 영향도 제한적이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숲과 숲을 잇는 도농 연결이다. 도시와 농촌이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서로의 생태계를 풍부하게 하는 관계망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실천될 수 있고, 지역과 주민의 삶을 바꿀 수 있다. 더불어 지자체의 참여는 그 연결을 더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숲은 나무 한 그루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무와 토양, 물과 바람, 곤충과 동물이 얽혀 숲을 이루고, 그 속에서 생겨난 관계의 다양성 덕분에 외부의 변화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도농 연결도 그러해야 한다. 개별 만남이 아니라 얽히고 순환하는 관계망이 쌓이며 연결될 때 흔들림 없는 힘이 생긴다. 예측 불가능한 위기의 시대, 해법은 멀리 있지 않다. 숲처럼 얽히고 순환하는 자연 속에 있다.
필자 임경수: 협동조합 이장 이사장, 넥스트로컬(주) 생태농장연구소장
서울에서 태어나 화학공학, 대기오염, 유기농업을 공부했다. 호주에서 퍼머컬처 디자인을 배우고 사회적기업, 중간지원조직, 지방정부 등에서 25년을 농촌과 관련한 다양한 일을 해왔고 최근 기후변화와 관련한 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