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동, 농부의 겨울

글·그림 남도현

  해가 짧아졌다. 새벽 4시에 뜨던 해가 7시가 되어서야 등장한다. 해가 뜨기 전까지 마을은 고요하다. 서서히 개 짖는 소리와 송아지 우는 소리가 들린다. 이어서 화목난로에 쓸 장작을 준비하는 전기톱 소리도 들린다. 쇠를 자르는 그라인더 소리도 들린다. 가가호호 겨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가을 추수를 끝으로 마을은 휴식기에 들어왔다.

  농부의 쉼은 부지런하다. 매주 월요일이면 노인정에 모여 치매 예방 교육을 듣는다. 어떤 날은 종이접기나 색칠 공부를 하고, 어떤 날에는 풍선 불기와 체조를 배운다. 어떤 분은 가족여행을 가기도 한다. 어떤 어르신은 아침 8시 버스를 타고 읍내에서 일을 보고 해가 질 때쯤에야 온다. 미용실에서 미뤄둔 파마를 하거나, 장날에 나가 장을 보거나, 정기적으로 병원에 방문한다. 무엇보다 겨울은 농부에게 치료의 계절이기도 하다. 동네 어르신 중 한 분은 이번 겨울에 무릎 수술을 했다. 어르신은 무릎 수술 후 5kg이 빠졌다고 하는데, 톱으로 써는 소리, 그라인더로 깎는 소리, 망치로 두들기는 소리를 들으며 수술 받았다고 했다. 다소 고통스러운 설명을 하면서도 어르신은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이다. 아마 수술이 잘 되어, 그동안 참고 참았던 무릎 통증이 속 시원히 가신 덕분일 것이다.

  올해 나에게 가장 인상 깊은 어르신은 피아노 할머니다. 할머니는 피아노를 치러 구판장에 온다. 집에서 연습한 곡을 손님들 앞에서 뽐낸다. 매번 같은 곡이지만 매회 다른 느낌이다. 매끄러운 부분도 있고, 뭉개지고 서툰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계절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완성된다. 마치 어린 소녀가 곡을 배우듯이, 피아노 할머니도 하나씩 한 곡을 완성해간다. 머리 새하얀 할머니가 가끔씩 찾아와 주름 가득한 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모습을 볼 때면, 할머니의 뒷모습처럼 우리도 훗날 저 모습 그대로 풋풋하기를 바란다.

  겨울엔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동파로 인해 터진 수도를 수리하기도 하고, 폭설로 인해 눈을 치우기도 한다. 집 주변만 치우는 게 아니다. 아내와 함께 노인정 주변과 건물 옥상에 쌓인 눈도 퍼낸다. 눈이 많이 와서 하루에 두 번 이상 치우는 경우도 있다.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면 긴긴 겨울도 금세 지나간다.

  다가오는 새해도 윷놀이와 함께 봄을 맞이할 것이다. 올해도 마을은 거름을 뿌리고, 밭을 갈고, 모종을 키우고 씨를 심을 것이다. 짧디 짧았던 해도 다시 길어질 것이다. 새해에는 지난해보다 조금씩 더 완성될 것이다. 딩동동,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처럼.

필자 남도현: 농부부구판장 대표
강원 원주시 부론면에서 아내와 함께 유기농 농사를 짓고 시골 카페 ‘농부부구판장’을 운영하며 직접 생산한 유기농 농산물과 지역 생산물로 제철 디저트를 만든다. 시골 정착기를 담은 만화책 《풀링》(2023, 인디펍), 아내가 쓰고 필자가 그린 그래픽노블 《한 남자》(2025, 인디펍)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