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골목을 기록하다

글·그림 김성수

  인천 동구의 아파트 단지와 공장 사이에 자리한 작은 동네. 멀리서 보면 비슷해 보이던 집들은 골목 안으로 들어설수록 각자의 얼굴을 드러냈다. 여러 번 덧칠한 벽, 기울어진 나무 기둥, 제각각의 창문과 지붕. 오래된 흔적은 숨기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고무 대야와 스티로폼 상자에 흙을 담아 채소를 기르고, 벽 사이사이에 줄을 걸어 빨래를 널어두는 풍경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단단한 생활의 모습이었다. 집들은 낡았지만 방치되어 있지 않았다. 고쳐 쓰고 덧대어 쓰며 시간을 견뎌온 자리였다. 이 동네의 집들은 서로 기대어 서 있었고, 사람들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청소년기를 아동복지시설에서 보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주어진 역할을 무난히 해내는 것.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고민하기보다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일이 더 익숙했다. 성인이 되어 이 동네에 정착하며 비로소 ‘이웃’이라는 관계를 경험했다. 누군가는 반찬을 나누어 주었고, 누군가는 별일 없느냐고 물었다. 그 일상적인 관심은 시설에서 경험했던 관리나 통제와는 다른 종류의 돌봄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공동체 안에 놓인 스스로를 인식했다.

  그러나 이 동네는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낡은 집들은 ‘정비 대상’이 되었고, 오래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가치가 낮게 평가되었다. 개발 계획은 효율과 안전을 말했지만, 그 과정에서 이곳에서 살아온 시간과 관계는 쉽게 숫자로 환산되지 않았다. 집은 보상금으로 계산되었고, 사람들은 이전 대상이 되었다. 익숙한 골목은 언젠가 사라질 공간으로 예고되었다.

  나는 그 상황을 지켜보며 질문하게 되었다.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지워져야 하는 삶이 있는가. 더 나은 환경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지는 기억들은 어디로 가는가. 이곳에서 쌓인 시간은 무엇으로 남을 수 있을까.

  나는 사라져가는 골목을 수채화로 기록하고, 흑연으로 그 위에 다시 시간을 얹는다. 수채화는 물이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마른 뒤에는 종이 위에 오래 남는다. 반대로 흑연은 손끝의 압력에 따라 쉽게 번지고 흐려진다. 언제든 지워질 수 있을 듯 위태롭다. 나는 그 두 매체를 나란히 두며, 사라짐과 지속됨의 경계에서 숨을 붙잡고 싶었다. 흑백의 화면 위에 올린 노란색은 잠시 빛났다 사라질 것 같은 기억처럼, 조용히 한 지점을 밝힌다.

  내가 그리는 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그 안에는 각자의 사정과 선택, 실패와 버팀이 함께 쌓여 있다. 벽의 균열은 관리의 부족이 아니라 시간의 흔적이고, 덧댄 자재들은 가난의 표식이 아니라 삶을 지속하려는 의지의 결과다. 재개발은 물리적 공간을 정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안에서 형성된 관계와 기억까지 대체할 수는 없다.

  언젠가 골목이 사라지더라도, 이곳에서 형성된 삶의 방식과 관계의 온도만큼은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그것이 창작자로서, 그리고 이곳의 주민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필자 김성수: 그림작가
재개발지역에 살며 사라질지도 모를 인천 원도심의 풍경을 그림으로 기록한다. 특별하지 않아 보이는 일상이 계속된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동네가 지닌 조용한 아름다움이 오래 남길 바라며 그림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