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마을로, 함께 가는 길

박진필 삼산골푸드 영농조합법인 이사

  경남 합천군 대병면, 세 개의 산골짜기가 만나는 곳에 ‘삼산골’ 마을이 있다. 굽이굽이 좁은 마을 길을 따라가니, 비탈진 밭에서 막바지 배추 수확에 한창인 ‘바우네 농장’ 식구들이 보였다. 해발 300m 산골에서 농약과 화학비료, 비닐 멀칭 없이 정성스레 키운 배추를 들어 보이며 박진필 씨가 말했다.
  “배추는 원래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맛있어지거든요. 그러니까 여기가 최적지죠. 크기는 작아 보여도, 속이 꽉 찼어요.”

마을이 답을 찾는 방법
  유기농 방식으로 농사를 지은지 20년, 박진필 씨는 마을 농가가 생산한 돼지고기를 가공하고 유통하는 마을기업 삼산골푸드 영농조합법인도 이끌고 있다.
  “마을 한가운데 30년 된 돼지 농장이 있었어요. 당시에 악취, 파리떼, 소음 문제가 심했죠. 마을 할머니들은 냄새 때문에 손주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며 울상이었어요.”
  마을기업이 지금의 모습을 하기까지는 박진필 씨와 남편 황세경 씨의 노력이 컸다. 2015년, 부부는 마을 주민들을 모아 농장주와 대화를 시작했다.
  “우선 주민들의 힘들었던 이야기부터 들어달라고 했어요. 이후로 만나고, 싸우고, 다른 농장의 대안을 들고 가기도 하고, 미생물 잘 쓰는 생태 농업하는 곳에 같이 가보자, 그러면서 같이 살길을 찾았죠.”
  주민들의 노력에 농장주도 응답했다. 생태 농업으로 전환을 시도하며 1년 만에 악취를 70% 줄였고, 마을에 들끓던 파리떼가 사라졌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4년, 서로를 향한 신뢰가 쌓이고 농장은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마을과 2km 떨어진 골짜기로 이전을 마쳤다. 이와 함께, 갈등의 중심이었던 돼지를 마을의 자산으로 바꾸자는 역발상이 더해져 2020년 마을기업이 문을 열었다.
  “마을이 들썩들썩했어요. 남자들은 발골, 여자들은 육가공을 배우러 2년간 전국을 다녔어요. 한 마을에 살아도 친해질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마을기업을 계기로 똘똘 뭉친 거죠. 양돈 농가도 같은 조합원이에요.”

삼산골푸드 영농조합법인은 마을의 17가구 중 20명이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마을기업이다. ⓒ박진필

자연을 닮은 마을학교를 열다
  지금은 마을기업으로 주민들과 동고동락하고 있지만, 박진필 씨가 합천에 처음 터를 잡고 마을과 연을 맺은 것은 마을학교를 통해서였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그는 IMF를 기점으로 2000년, 합천에 귀농해 폐교를 활용해 어린이를 위한 생태 교육을 시작했다. 지역의 아이들이 방과 후에 모두 모이는 ‘삼산골 마을학교’와 도시 아이들을 대상으로 방학 중에 운영하는 ‘합천 자연학교’였다.
  “학원이 없으니까, 아이들이 학교 끝나면 집에서 혼자 게임을 하거나 TV를 봐요. 부모님 따라서 가끔 농사를 돕기도 하지만, 자연을 모르고 크는 경우가 많죠. 나무와 꽃 이름도 모르는 시골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보다 더 정서가 메말랐어요.”
  박진필 씨는 마을학교를 운영하며 아이들을 자연 가까이로 이끌었다. 자전거를 후원받거나, 중고로 구입해 아이들과 합천 곳곳을 누볐다.
  “자전거를 타면 훨씬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잖아요. 지역의 아름다운 들녘도 다니고, 계곡에서 내려서 물놀이도 하고, 강가에서 고기잡이도 했죠.”
  방학이면 아이들과 봉고차를 타고 전국을 여행했다. 태백산과 지리산을 오르고,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남도 곳곳의 소리꾼을 찾아가는 테마여행을 했다. 마을로 돌아와서는 여행기를 문집으로 만들고, 귀농한 미술 교사 주민과 함께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열었다. 2023년, 지역에 아이들이 줄어들며 마을학교는 문을 닫고, 자연학교 역시 자연스럽게 마무리 수순을 밟았지만, 여전히 박진필 씨를 찾는 이들이 많다.
  “지금까지도 자연학교 학부모들과 농산물 직거래를 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도 어떤 학부모가 절임 배추를 주문하면서 ‘자연학교 덕에 아이들이 잘 컸다.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얘기 들을 때 참 좋죠.”

박진필 씨는 마을학교를 운영하며 아이들과 자전거로 전국 곳곳을 누볐다. ⓒ박진필

청년이 돌아오는 마을을 꿈꾸며
  2021년, 충남 홍성군 젊은협업농장에서 2년간의 농업 연수를 마친 첫째 아들 황준수 씨가 포도 농부가 되겠다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마을학교를 끝낼 무렵부터는, 내 아이가 돌아오는 마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하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해요. 하나는 청년이 지역에서 먹고살 수 있는 기반, 다른 하나는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전 연령이 있는 마을이에요.”
  2025년 초, 마을기업에서는 함께 일할 청년 한 명을 모집했다. 박진필 씨는 차근차근 마을의 다음 세대를 키울 준비를 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일을 도모할 수 있는 공방을 만들고, 가공시설 2층을 카페로 만들어 황매산 전경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조성할 예정이다. 마을에 찾아오는 이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도 마련하고 있다. 목표는 사람들이 머물다 가는 마을, 함께 일하고 싶다는 이들에게 일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마을이다.
  “아들이 김천의 포도 농민에게 비법을 전수 받고 농사를 지은 지 4년 차인데, 올해 이 말을 하더라고요. ‘엄마, 농사지어서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청년들에겐 성공하는 경험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좋은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해요. 우리가 기댈 언덕이 되어 주어야죠.”
  박진필 씨는 마을에 다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어른들은 청년들의 든든한 언덕이 되기를 희망한다.
  “20년간 마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 늘 쉽지만은 않았어요. 하지만 우리 가족이 함께하는 일에 도전할 때마다 했던 말이 있어요. ‘혼자 가면 편하다, 하지만 같이 가면 재밌다’고요. 저희가 마을에서 잘 살아서, 새로 들어오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죠.”
  아이들의 배움터, 주민들의 일터를 넘어 이제는 청년이 돌아오는 삶터를 꿈꾸는 박진필 씨. 그는 오늘도 어제보다 조금 더 넓은, 함께 가는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박진필 씨는 청년이 지역으로 돌아오기 위해선 먹고살 수 있는 기반과, 전 연령이 공존하는 마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진필 씨는 청년이 지역으로 돌아오기 위해선 먹고살 수 있는 기반과, 전 연령이 공존하는 마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월동 배추 수확을 맞아 박진필 씨 가족이 밭으로 모였다. 왼쪽부터 남편 황세경 씨, 막내 황바우 씨, 첫째 황준수 씨.

글·사진 조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