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민철
인구 유치나 산업체 유치를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의 주요 과제로 삼는 배경에는 ‘지방 소멸’이라는 공포 담론이 자리한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주민 생활에 필요한 기능들이 유지되기 위해 시장이 작동할 만한 인구 밀도가 확보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인구가 적다’고 말하려면, 우선 어느 범위를 기준으로 하는지 정할 필요가 있다. 내가 주소지를 둔 충남 홍성군을 기준으로 보면, 2025년 10월 기준 주민등록 인구는 10만 334명이다. 이는 전월 대비 107명 증가한 수치로, 홍성군은 ‘지방 소멸’ 공포에서 다소 비켜난 전국 4개 군 중 하나이다. 그러나 홍성군 면적 약 444㎢ 중 인구가 증가하는 곳은 내포신도시가 위치한 홍북읍(44.72㎢)뿐이며, 나머지 2개 읍과 8개 면은 모두 인구가 감소했다.1)
1) 출처: “지난해 홍성군 인구 ‘홍북읍만’ 증가…1년 새 2959명 증가”, 홍주일보, 2025년 2월 6일

농촌서비스 부족은 ‘공동체 조직’의 부족 때문인가
지자체라는 행정, 정치적 공간을 넘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이루어지는 곳’으로서의 생활 공간은 행정적으로 리나 면 단위이고, 물리적으로 ‘산 너머’라고 불리는 장소이다.
내가 주로 생활하는 홍성군 장곡면의 면적은 54.9㎢로 서울 광진구의 2배에 달하지만, 인구는 2683명에 불과하다(2025년 10월 기준). 같은 시기 광진구 인구는 33만 1786명이니, 장곡면의 인구수가 매우 적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흩어져 살아 인구 밀도도 매우 낮다. 인구 밀도는 해마다 더 낮아지고 있으며, 반면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능(서비스)은 오히려 다양해졌다. 여기에 2022년에 이미 50%를 넘어선 고령화까지 겹치면서 농촌의 생활서비스 부족 문제는 심각해졌다. 잠시 장곡면에 머무는 도시청년에겐 ‘스타벅스’가 생활에 꼭 필요한 사회서비스라면 여기에 사는 주민들에겐 이동 수단, 건강·돌봄 시설 등이 생활에 필수적인 서비스다. 이건 너무 거창하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광진구에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마트는 딱 하나가 있고 그곳으로 가는 대중교통은 몇 시간에 한 대가 있는데 저녁 6시에는 문을 닫는다거나, 어르신들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이 없어 건강이 나빠지면 도시로 나갈 수밖에 없다거나, 생활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종량제봉투에 담았다고 할지라도 이를 쓰레기수거 차량이 오는 곳까지 가져다 놓기 위해서는 또 다른 차량을 이용해야만 한다는 것 등이 농촌의 사회서비스 부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농촌 지역 공동체 기반 경제·사회 서비스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하 농촌공동체법) 제정으로 나타났다.
‘공동체 기반’ 법률이 의미하는 것
농촌공동체법은 ‘농(어)촌 지역의 부족한 서비스를 공동체 주도로 해결하도록 국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법’으로 설명된다. 법령에 ‘농촌 지역 공동체 기반’이라는 긴 설명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행정의 책임을 회피하고 주민들에게 떠넘기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활성화 계획을 살펴보면, 지역 내 활동 중인 주민조직을 활용하여 주민 수요 기반의 생활서비스를 제공할 ‘생활서비스 공동체’나 ‘특화서비스 공동체’를 육성하겠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농촌서비스 부족의 원인을 ‘공동체 조직’의 부족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말하는 ‘공동체 조직’, ‘공동체 주도’란 무엇일까? 단순히 조직 자체가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공동체 조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협동조합과 같은 비영리법인이기 때문에 ‘공동체 기반’이 되는 것 역시 아니다. 어쩌면 조직의 존재 유무나 형태가 아니라 조직의 운영 방식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공동체 기반’이라는 말은 농촌 ‘지역사회’를 ‘공동체’로 만들어가는 데 특정한 (관심 있는) 사회서비스를 실행함으로써 참여하는 것이고, ‘농촌 지역 공동체 기반’이라는 말은 활동의 결과로 ‘지역사회’ 관계망(네트워크)이 이전보다 더 긴밀하고 넓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 대신 ‘관계’로 살아온 농촌
‘농촌’이라는 단어 뒤에는 늘 ‘지역사회’ 또는 ‘지역 공동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지역사회는 일정한 지리적 구역을 전제로 공동의 유대감과 사회문화적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 집합체이다. 이러한 유대감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확인된다. 예를 들어, 이웃 지역 식당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민망함과 반가움이 섞인 인사를 나누거나, 타 지역 사람과 우리 지역 문제를 이야기할 때 주변을 둘러보며 조심하는 모습 등에서 농촌 사람들의 공간에 대한 소속감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지역사회가 최소한 공동의 관심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개인이나 집단의 조직체라는 현대적 해석에 무리가 없음을 보여준다.
한때 지역 화폐의 일종인 레츠(LETS) 도입을 논의한 적이 있다. 레츠는 화폐 중심 경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역 순환 경제 체계를 만들자는 거창한 목적을 제외하면, 지역 사람들이 서로의 재능을 알고 있어 노동을 직접 교환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농촌 지역사회는 이미 이러한 방식을 오랫동안 행하여 왔기에 굳이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지역사회에 일찍 들어왔다는 이유로 자주 받는 질문은 보일러, 전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수리 또는 수로에 빠진 차량을 꺼내는 방법 그리고 주유소가 문을 닫은 8시 이후 보일러 기름이 떨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와 같은 것들이었다. 물론 지금은 읍내 사업체나 보험사를 통해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여전히 생활에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를 대응하는 방식은 ‘어디’로 연락하는가 아니라 ‘누구’를 찾아야 하는가로 답을 찾아야 한다.
장곡면 인구가 가장 많았던 1960년대 초에도 1만 4421명에 불과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시장’이 작동하지 않을 정도의 인구 밀도였지만, 생활에 필요한 것을 포기하며 살 수는 없었다. 이에 지역사회는 비시장적, 유대적 관계를 통한 문제 해결(서비스) 메커니즘을 작동시켜 왔다. 이 메커니즘은 비공식적이라 경험을 통해서만 전달되기 때문에 새로 이주해온 사람에게는 배타적으로 느껴지고, 가치 교환 약속이 명확하지 않아 비상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러한 관계망을 통한 문제 해결 방식을 ‘지역사회 공동체’, ‘마을 공동체’, ‘도덕 경제’, ‘순환 경제’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를 수 있지만 지금은 농촌에서조차 이러한 방식이 많이 약화되었다.
‘농촌 지역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이처럼 약해진 지역사회 내부의 유대적 관계를 지금보다 조금 더 공식적이고 열린 체계로 (그래서 ‘조직’이 등장한 것이다) 활성화하자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리’ 단위에서 개인 간 관계로 유지되던 시스템을 ‘조직’을 통해 사람 간의 관계를 좁히고, 더불어 지역사회의 일원이기를 지향하는 공식적인 단체 간 유대적 관계를 통해 ‘읍, 면’ 정도로 지역사회라는 ‘공동체’ 공간을 확장하자는 것이다. 지역사회의 유대적 관계를 활성화하는 것은 지역사회 ‘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함이다. ‘조직’ 간 유대적 관계, 즉 네트워크를 강조하는 것은 공동체가 본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폐쇄성을 변형하여, 조금은 공식적이고 공공적인 ‘열린 폐쇄성’을 가진 농촌 지역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읍, 면으로 공간을 확장해야 하는 이유는 이전보다 인구밀도가 더 낮아지고 고령화가 더 높아졌기 때문에 ‘리’라는 공간에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고, 열려 있어야 하는 이유는 지역사회 공동체가 다른 지역사회 그리고 대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과도 연결되어야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더 다양해진 사회서비스를 지역사회 공동체 내로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민은 본래 N-잡러였다
농민은 원래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N-잡러(N-Jobber)’였다. 낮은 인구 밀도 속에서 주민 생활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사회 관계망을 이용한 비공식적, 유대적 경제·사회생활 메커니즘(지금은 ‘서비스’라 불림)이 필수적이었다. 이 메커니즘을 지역사회 공동체라 불렀고, 그 시기 농촌에서 생활하는 절대다수의 주민이 농민이었으니, 농민이 N-잡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농업 생산성만을 지고지순한 가치로 믿는 농업 전문가들은, 저밀도 농촌사회를 지속하기 위해 ‘절대 반지’ 역할을 했던 N-잡러인 농민에게 오직 (농업) 경영자의 역할만을 하는 전문농업경영인이 되기를 강요했다. 그 결과 농업은 살아남을지 모르지만 (이것도 의문이다) 농촌이라는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들게 되었다.
2024년 ‘미래가 있는 농촌, 지속 가능한 농업’을 주제로 겨우 16일간 대산농업연수를 다녀온 기자조차 ‘농민과 농촌을 먹거리 생산하는 사람(장소)으로만 인식하지 않는다’는 인식과 함께 ‘농촌과 농민의 사회적 기능과 가치에 대한 공감대를 높이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2) 그런데도 정책과 전문가의 담론은 여전히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에만 머물러 있다. 2018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사회적 농업’ 활성화 지원 사업은 바로 이 N-잡러로서 농민의 위치를 복구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없애기는 쉬워도 다시 만들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그동안 없애버린 것이 농업이 연결하고 있었던 다양한 지역사회 활동(단체)과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회복지기관은 자신의 공간 내로 농업(텃밭)을 접목했고, 도시 역시 ‘도시농업’이라는 이름으로 농업을 접목했다. 학교조차 청소년의 정서적 교육을 위해 농업을 학교 내로 접목해 왔다면 농업은 복지, 교육, 사회 등 이전 저밀도인 농촌사회에서 농민이 담당한 무수한 영역들과 단절하기를 강요받아 왔다. 즉, ‘저밀도’라는 특성을 가진 농촌 지역사회가 존립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던 N-잡러 농민은 산업이어야 하는 농업을 위해 농촌과 단절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항상 함께 붙어 다니는 ‘농업과 농촌’은 이제 생존을 같이하지 못하는 관계가 되었다. 농업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관계망과 사회적 농업, 치유 농업, 돌봄 농업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N잡러로서 농업·농민의 사회적 관계망은 다르다. 수십 년간 농업기술센터, 농협만 만나면 되었던 현재의 농업이 이제는 복지관, 보건소, 학교, 연구소와 만나야 하니 한참 동안 어색한 동거는 지속될 것이다. 관계를 끊기는 쉬워도 연결하기는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건을 통해 경험을 공유하고 나서 다시 관계가 복원될 것이다. 사회적 농업이 어려운 이유이다.
2) 출처: “농부와 농민의 가치를 아는 사회 [취재 뒷담화]”, 시사IN, 2024년 5월 30일.
사업의 한계, 새로운 상상력
법이 만들어졌으니 곧 활성화 계획이 수립되고 신규 사업이 뒤따를 것이다. 법을 만들거나 사업을 구상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복잡한 생각 없이 단순히 ‘조직’을 만드는 데 목표를 삼고 활동 자금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흔히 그런 ‘조직’은 스스로를 공동체라 규정하며 내부를 강화하고 비대해져 갈 것이다. 활동의 규모가 사업의 성과로 평가되니 사업이 종료되면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활동의 ‘지속 가능성’을 끊임없이 독촉받을 것이기에 결국 경제성 있는 ‘시장’ 방식을 또 찾을 수밖에 없다.
지역사회 관계망(네트워크)이 얼마나 긴밀해지고 확장되고 촘촘해졌는가는 사업의 성과로 측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농업과 농민이 만나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사회적 기능과 가치에 대한 공감대는 넓어짐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활성화될수록 지침은 세분화되고 농업과 관계 맺기 영역은 오히려 축소되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경험해보지 않은 무언가(지역사회)를 상상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는 농촌에 도시의 경험을 단순히 이식하여 근대화·산업화로 ‘번영’시키자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며 고유한 농촌의 전통문화만을 지켜가자는 것 역시 더더욱 아니다. 이전에 경험했던 것을 토대로, 낮은 인구 밀도인 농촌사회에서 새롭게 ‘삶에 대처하는 방식’을 고안해 보자는 것이다. 다가오고 있는 미래인 저밀도 사회에 대처하기 위해 현재 저밀도인 농촌에서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보는 다양한 시도를 행정이 지원했으면 한다. 이는 단지 농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기도 하고, 사회의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지역사회로 들어오는 것은 어쩌면 공용 공간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다소 불편하고 낯설지만, 결국 그 안에서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가 이 공동체를 부를 정확한 이름을 찾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이 행정구역명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필자: 정민철 젊은협업농장 상임이사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와의 인연으로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 정착했다. 10년간 풀무학교에서 일한 뒤, 2011년 뜻을 함께하는 지역청년들과 함께 장곡면에 협동조합 젊은협업농장을 설립해 농사짓고 있다. 지금은 농사를 배우기 위해 농장에 오는 청년들과 다양한 마을 일을 기획하며, 지역에 남은 청년들과 배움을 지속하기 위해 평민마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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