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극 한가지골농장 대표
일 년 중 한 차례, 5월에만 볼 수 있다는 장관을 보기 위해 강원도 평창군 청옥산으로 향했다. 아스팔트 도로가 끝나고도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렸다. 해발 1,200m가 넘는 곳, 산비탈이 밭이다. 비닐하우스도 보인다. 이런 산꼭대기에서 농사를 짓다니…. 드디어 정상에 오르니 눈앞에 지평선까지 광활한 호밀밭이 펼쳐진다.
“바다에만 파도가 있는 게 아냐, 바람 불어봐. 저기부터 파도가 너울대지. 여기 서 있으면 자연이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로운지 느끼게 돼.”
성화에 못 이겨 올라간 농장 숙소의 지붕 위에서 바라본 호밀밭은 더 장관이었다. 때마침 바람이 산을 넘어왔다. 이해극 한가지골농장 대표(63, 제22회 대산농촌문화상 농업기술부문 수상)의 말 그대로였다.
24년간 호밀로 땅을 되살리다
그런데 올해의 장관이 이제 끝이란다. 호밀을 그대로 갈아엎어 다시 땅으로 돌려주는 날이 바로 오늘이다. 시범을 보이는가 싶었는데 이해극 씨는 트랙터에 올라타 그대로 밭을 향해 갈기 시작한다.
먼저 한 번 밀어주고 바닥에 깔린 호밀을 다시 반대쪽에서 친다. 이렇게 하면 호밀이 일사불란하게 끊어져 흙 속에 더 잘 흡수된다고 한다.
“여기는 대관령보다 400미터가 높아. 저 아래서 여기까지 30리(약12km)예요. 너무 높아 퇴비가 못 올라와요. 자연스레 비료, 농약에 의존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어요. 유기농사깨나 한다는 사람들이 와서 보곤 다 고개를 저었죠.”
1990년 처음, 육백마지기농장에 왔을 때 말 그대로 황무지였다. 풀이 없으니 흙을 잡아주지 못해 표토가 다 날아갔다.
“이런 황무지에서 유기농이 된다면 그건 농민에게 희망이 될 수 있잖아. 그래서 올라왔어요. 처음엔 퇴비를 400톤씩 올려놨는데 트럭이 못 견디고 고장이 나버렸어요. 그래서 호밀을 심은 거죠.”
첫해부터 3년간은 그야말로 망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첫해보단 그다음해, 또 그 다음해 수확이 눈에 띄게 늘었다. 그래서 망해도 신이 났단다. 마침내 4년째부터 이른바 대박이었다.
“지력관리를 그렇게 하는데 안 되겠어요? 농사꾼은 어쨌거나 정직해야 해. 기적처럼 되는 건 없어요. 내가 들인 만큼 나오는 거지.”
유기농 채소를 생산하는 제천 한가지골농장에서도 호밀로 지력을 유지한다. 병든 어머니가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없듯, 작물에 있어 어머니와 같은 흙을 위한 일이다. 이렇게 생산한 농산물은 비용과 생산량, 품질 모든 면에서 월등하다. 이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원칙적인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농부가 만든 발명품, 세계 농부들이 반했다
“일을 하는 게 가장 좋은 휴식”이라는 이해극 씨는 농민발명가로도 유명하다. 간단하면서도 농민에게 꽤 요긴한 발명품들을 만들기로 소문이 나 있는데, 세계 선진국으로 수출하는 비닐하우스자동개폐기도 그 중 하나다. 시설원예에서 버튼 하나로 하우스의 환기창을 열고 닫는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장치다. 그가 발명한 자동개폐기는 감전사고로부터 농민을 안전하게 보호해주고, 고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단군 건국 이래 농민 발명품중 100만 대 이상 팔린 건 이거밖에 없다네요.”
1999년부터 동생 혜완 씨가 경영하는 우성하이텍으로 기술을 이전하고 보완과 개선을 계속해온 자동개폐기는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을 비롯해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세계 30여개 국에서 각광받고 있다. 이렇게 자동개폐기가 각광받는 이유는 뭘까. 농업환경과 농민의 애로사항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측창을 열 때 찬바람이 쉬익~ 하고 들어가면 안돼요. 적정한 속도로 열고 닫고 해야 농작물이 안 다쳐요. 그걸 누가 압니까. 농민밖에 몰라요.”
자동개폐기처럼 농업현장을 잘 아는 사람이 개발하고 개선하고 개량해서 농민들의 힘을 덜어주는 발명 풍토의 일상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해극 씨의 생각이다.
“자동개폐기는 영원히 잘 나갈 겁니다. 왜? 싸니까. 일본에서 수동제품이 11만 원인데 우리 자동
제품이 7만 원이에요. 가장 싸고 가장 좋은 기계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예요. 지구촌 농부는 다 힘들거든. 이거 벌어준 사람 농민이다, 농민에게 돌려줘야지. 그런 정성이 있으면 진심은 통해요.”
중국에서조차 품질은 물론 가격을 맞출 수 없다는 자동개폐기는 오늘도 계속 진화 중이다.
남북농업, 아니 북방농업이다
이해극 씨는 1999년부터 10여 년간 남북농업협력사업에 참여해 북한에 600일 이상 머물며 진심을 다해 영농기술을 전수했다. 그 정성이 허무하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됐다. 그는 통일 이전에 전제되어야 할 것이 바로 농업협력이라고 말한다.
“일생을 나만치 재미나게 산 놈이 있나, 그렇게 생각해. 생각하는 거 안된 게 없거든. 사람들이 나
보고 참 복도 많다 하는데, 여기서 만족하면 안 되지. 기성세대의 책무라는 게 있어요. 38선, 이게 절름발이 통일이에요. 통일을 (정치적으로) 앞세우니 문제가 되는데, 통일 이전에 농업협력이 있어야해요. 남한의 기술력, 북한의 노동력으로 우리 식량 자급률을 70% 이상 높여야 진정한 주권국가가되는 겁니다. 지금은 다국적 기업에 목을 매고 있으니 이리저리 눈치를 보고 맥을 못 추는 거예요.”
그는 북한농업을 넘어서 연해주, 만주 농업으로 북방농업의 발전을 위해 준비 중이다. 대산농촌
문화상 상금이 종잣돈이 되고 그의 생각에 공감하고 동참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힘도 모을 것이다.
“실패하지 않는 농업을 알려주기 위해서 사례를 분석해요. 100가지 사례를 분석하면 적어도 100가지 실패는 하지 않을 거 아니에요? 실패하지 않는 해외농업을 개척할 겁니다.”
“우리는 잠시 지구촌을 전세내고 있을 뿐”
그는 아직도 육백마지기 농장에서 돌을 골라낸다. 24년간 몇 트럭 분의 돌을 빼냈을까. 돌을 빼
낼 때마다 이제 이 돌은 어떤 농부도 힘들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일궈온 이 땅에서 적어도 후배들은 시속 15킬로미터로 달려도 트랙터가 고장 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자부심이다.
“우리만 농사짓고 가는 게 아니잖아. 지구촌을 전세 내서 잠시 이용할 뿐인데 후손에게 자갈밭만
물려준다면, 존경스러운 노인이 아니라 증오스러운 늙은이가 되는 거지요.”
밤에 일하기가 더 좋다며 뉘엿뉘엿 지는 해를 보며 밭으로 향하는 이해극 씨를 보며 생각한다. 농사의 정령精靈은 그의 편일 수밖에 없다고.
글 · 신수경 / 사진 · 김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