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스타일

여학교 때의 친구들이 날 찾아온다고 연락이 왔다. 농촌에 살면서 시설 하우스까지 벌리는 통에 사시사철 바쁘다 보니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아침부터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다정도 병이런가! 빗속을 뚫고 먼 길을 와준 친구들은 바쁜 나를 배려해 점심까지 해결하고 왔단다.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오뉴월 손님도아니거늘. 마음 씀씀이가 눈물겹다.
“무슨 시골이 도회지보다 더 도시 같으냐.”
시골답지 않은 동네가 불만인 듯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이주단지. 근동에서는 우리 마을을 두고 이렇게 부른다.
몇 년 전, ‘용산 미군기지 평택이전’ 계획으로 인하여 우리 마을이 수용되었고, 문전옥답까지 국방부에 다 내주다시피 했다. 어르신들은 살아오는 동안 두 번씩이나 농토와 고향을 군사기지로 내주어야 하는 억울함을 나라에 항의하며 분통을 터트렸다.
“어떻게 일구어낸 땅인데.”
마을 사람들은 또 보상 문제로 불신과 반목, 번민으로 갈등을 겪는가 하면, 고향을 잃는 상실감에 날마다 분노하며 절망하였다.
남편은 이장 일을 맡고 있었다. 막중한 책임감으로 고군분투하였지만, 갈림길에선 늘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70여 호의 사람들 마음을 한 곳으로 모은다는 것이 어찌 쉽기만 하겠는가. 땅 투기를 염려하여 비밀리에 터를 알아보고, 함께 이주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사람들을 만나 이해시키고 설득하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라는 구호를 믿으며,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 끝에 47세대가 한데 뭉쳤다. 이주단지가 조성되고 택지 분양을 받았다. 그리고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 서로 의논하고 자문하며 때로는 시샘도 하며, 논과 밭이었던 이곳을 아름다운 마을로 조성한 것이다.
새로 생긴 동네는 정말 도회지 풍이다. 획일화되고 정형화 된데다 무척 편리하기까지 하다. 태양열과 태양광시설, 도시가스까지 갖추어 더운물과 난방비·전기료 걱정은 덜고 산다. 열악한 주거생활에서 벗어나 최신식 건축의 편리함을 마음껏 누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뭔가 허전한 생각이 자꾸 든다. 평생 농토에서 일하는 기쁨과 행복을 찾았거늘 농부가 땅이 없어져, 할 일이 없음에서 오는 무력감 때문에 더 그런가 싶다. 처음에는 그저 좋아라만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하나둘 옛 마을을 그리워한다. 춥고 불편하고 허술하기 그지없는 그곳을 말이다. 그리고 한마디씩들 한다.
“그래도 그곳은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생기가 넘쳤지.”
정말이지 그곳은 인정이 있었다. 언제나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그야말로 콩 한 쪽도 정겹게 나누어 먹던 그런 동네였다. 사람들 가슴마다 남아 있는 옛 동네에서의 추억들, 그리움이 자라고 또 자란다면 머지않아 이곳도 그에 못지않은 인정 넘치는 동네가 될 수 있으리라.
다행히도 우리는 그나마 수용되지 않은 땅이 남아 있어서 농업을 이어가고 있다. 남편은 지금 친환경 농업을 하고 있다. 농약 대신에 난황류와 천적 등을 이용하고, 화학비료 대신 토착미생물을 만들어 쓰면서, 현지 견학과 각종 농업 관련 서적으로 기술을 습득하고 있다. 대단한 자연주의자다. 친구들은 남편의 보물창고 하우스가 궁금한 모양이다.
“하우스 견학 좀 시켜주라.”
모처럼 농군의 모습을 보여 주게 된 나는 무척 신이 났다.
발효미생물통과 액비통들을 본 친구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와! 네가 진정한 생명창고 지기다. 그래도 너희 부부가 우리 식탁의 안녕을 지켜주고 있었구나.”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 했던가. 이 뿌듯함이란. 친구들의 뜻밖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지며 정말로 ‘강남스타일’이 아닌 ‘농부스타일’의 춤판이라도 한판 벌이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호박꽃이 벙실벙실 웃고 있다.

※필자 이상분: 경기도 평택에서 수도작, 무농약 시설채소 농사를 지으며 집필 활동을 한다.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경기도 회장을 역임했으며, 월간 『좋은수필』 신인상(2012)을 받았다. 현재 한국농어민신문에 ‘두릉댁의 밥상일기’를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