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자 귀한농부 대표
겨울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과일. 감귤. 제주도 서귀포는 지금 감귤 향기가 가득하다.
제주에서 감귤, 한라봉, 레드키위를 키우고있는 귀농 10년차 농부 윤순자 씨(49)를 만났다.
흙과 나무에 대한 애정으로 못난이 감귤을 키우다
감귤선별작업장에는 작업 박스들이 한 가득이었고, 배송 작업으로 일하는 손길들이 분주했다. 작업 중인 박스 안의 감귤들은 거뭇거뭇하고 모양이 일정하지 않았다. 시중에서 보는 감귤 껍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감귤이 못생겼죠? 친환경 농산물이라 그래요.”
윤순자 씨의 감귤은 농약을 치지 않고 광택을 위한 왁스 코팅도 하지 않아 겉보기엔 못난이 농산물이지만, 깊은 맛과 진한 향기로 매력을 더하고 있다.
“다시마, 미역, 감태, EM, 당밀 등을 넣고 효소를 만들어 나무에 뿌려줘요. 열매 껍질에 거뭇한게 효소 안의 당밀이 햇빛을 만나서 그런거에요.”
그녀가 생각하는 친환경농업은 사람이 편한대로 농사짓는 것이 아니라, 나무와 열매가 원하는 것을 주며 함께 호흡하는 것이다.
윤 씨가 감귤 농사를 지으려고 땅을 빌릴 때의 일이다. 땅 주인은 감귤이 맛이 없어 기르던 나무를 베어버리려고 했다. 그 땅과 나무를 빌려 농사지은 지 2년 후. 감귤의 당도가 16~18브릭스에 달했다. 보통 8~9브릭스정도인 걸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화학비료는 전혀 쓰지 않고, 친환경 제제를 만들어 흙에 뿌리고, 무엇보다 애정과 관심으로 돌본 땅과 나무가 돌려준 정직한 결과였다.
“돌볼 기회를 가진 사람이 주인이죠. 내 나무라고 여기고 돌볼 수 있는 게 감사하고, 열매를 정직하게 돌려받는 게 감사해요.”
높은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도시민들의 신뢰를 얻다
윤순자 씨는 2006년 수확한 감귤로 ‘귀농사모’라는 인터넷 카페를 통한 판매를 처음 시작했다. 당시 인터넷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는 것 자체를 잘 모를 때였다. 서로 얼굴도 모른 채 물건을 사고판다는 것은 한마디로 모험이었다.
“제가 농사지어서 파는 거니까, 가격을 적정선에서 정했어요. 한라봉, 감귤 값이 제가 제시한 가격을 기준으로 보통 형성되더라고요.”
너무 과하게 가격이 싸거나 비싸지 않게 결정하는 역할을 주도했던 것. 주변에서 ‘브랜드 네임이 있으니 더 비싸게 받으라’는 이야기도 했단다. 너무 싸게 값을 매기니 상품의 질을 의심하는 눈초리도 있고, 혹여나 깔보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물건만큼은 당연히 제 것이 좋다고 생각은 하지만, 품질이 좋다고 해서 가격이 비싸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값을 받아서 다음 농사를 지을 때까지 먹고 살고, 다음 농사를 지을 수 있으면 되죠. 소비자들도 그 돈을 벌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써요.”
지금 윤 씨는 개인 인터넷 카페를 통해 감귤 10kg 한 박스를 27,000원에 판매한다. 누구든, 건강하고 안전하고 맛있는 감귤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맛볼 수 있다. 높은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들과의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생산과 소비가 순환하는 연결고리 역할
그녀는 2008년부터 귀한농부 친환경영농조합법인을 이끌고 있다.
현재 함께하는 24명의 조합원은 지역의 60~70대 어르신들. 이들이 생산한 감귤, 자연산 돌미역, 자연산 고사리, 유기농 재배 양배추, 단호박 등 다양한 농산물을 수매하여 유통한다.
“법인은 이익이 아니라, ‘순환’을 추구하는 거예요. 농민이 애써 수확한 농산물을 도시 소비자들이 드실 수 있게, 그리고 농민은 다시 농사지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게 말이에요.”
생산과 소비가 순환할 수 있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 법인이 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더 많은 소비자들과 안전한 먹을거리를 나누고, 지역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선순환을 조금씩 그려나가고 있다.
생명을 키우는 농부의 삶
“농사지을 때, 포장 작업할 때 가장 좋은 게 뭔 줄 아세요? 이걸 먹는 분들을 떠올리는 거예요.”
불특정 다수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면서, 소비자들의 기호를 맞추고, 또 배송되는 상품의 품질까지 관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만 생각했다.
내가 기른 농산물을 먹게 될 사람들을 떠올리며 열매를 키우고, 포장해 보낼 때 하나라도 더 신경을 쓴 것. 그리고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들은 소비자들을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해결해나갔다.
정성을 쏟으니, 그 마음을 이해해주는 소비자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이제는 이름과 주소지만 봐도 알 수 있는 소비자들이 많다. 그분들을 생각하며 열매에 더 신경 쓰고, 정성을 다한다.
그리고 지난해 도시형 장터‘마르쉐@’, ‘서울 농부의 시장’에서 직접 만난 소비자들이 건넨 ‘정말 맛있어요’, ‘감사합니다’라는 인사와 응원이 지금도 큰 힘이 된다. 그리고 더 좋은 먹을거리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그녀는 지금, 생명을 키우는 농부의 삶이 참 행복하다.
마음 방황을 마치고, ‘제주’라는 섬으로 들어온 지 10년. 그녀는 농사에 대한 철학도 올곧게 세우고, 도시 소비자들과 지역 주민의 따뜻한 시선과 지지를 받으며 계속 성장하고 있다. 자연의 생명력을 닮은 에너지를 담아 도시 소비자들에게 보내는 행복한 농부 윤순자 씨의 환한 웃음이 2014년에도 밝게 빛날 것이다.
글·사진 / 김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