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 농촌으로 초대하자!
신조어가 쏟아지고 있다. 신조어는 기존의 언어로 현실을 포착할 수 없을 때 등장하는 현상인데, 요즘처럼 신조어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때가 언제 있었을까 싶다. 가장 활발하게 등장하는 영역이 바로 ‘청년’이다. 인문계 졸업생의 90%가 논다는 ‘인구론’, 장기적으로 취직을 못 하는 구직자들을 뜻하는 ‘장미족’,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는 자녀들을 의미하는 ‘빨대족’, 연애·결혼·출산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 그리고 희망과 꿈을 포기했다는 의미의 ‘7포세대’까지. 정부 통계에 따르면 청년의 실질 실업자 수는 100만 명이 넘어선다고 한다.
청년들이 희망을 잃어버린 사회에 미래가 있을까? 태어난 걸 후회하는 청년들이 많은 나라의 장래전망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대출받아서 등록금 내고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직을 못 해서 신용불량자처지로 전락할 위험에 처한 청년이 부지기수다. 희망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희망은 찾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희망은 만드는 것이다. 청년들이 처한 암울한 현실의 원인을 밝히고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하여 학자들은 원인진단과 그것에 근거한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하고, 정치권은 이것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리고 청년들은 소리를 내야 한다. SNS뿐만 아니라 거리에서도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필자는 여기서 어려움에 처한 청년들을 농촌으로 초대하자는 제안을 하고자 한다. ‘농촌으로의 초대’는 고사枯死 직전에 있는 한국의 농업을 살리고 마을과 지역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길이며, 나아가서 문명전환을 준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자, 그럼 제안의 출발점이 되는 토지문제부터 검토해보도록 하자.
우리가 ‘땅’으로 표현하는 토지는 협의의 토지개념이다. 토지는 일반물자와 전혀 다른 특징이 있는데,우리가 ‘땅’으로 표현하는 토지는 협의의 토지개념이다. 토지는 일반물자와 전혀다른 특징이 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특징이 ‘생산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은 한 뼘의 토지도 만들 수 없다. 물론 특정용도의 토지의 양은늘릴 수가 있다.
토지가 가진 특수한 성격
토지란 무엇인가? 흔히 흙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학문에서 토지는 인간이 만들지 않은 모든 것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바다와 자연자원, 심지어 주파수 대역도 토지에 포함된다. 그중 가장 중요한 특징이 ‘생산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은 한 뼘의 토지도 만들수 없다. 물론 특정용도의 토지의 양은 늘릴 수가 있다. 예를 들어 농지를 택지로 바꾸면 택지의 양이 늘어난다. 그러나 늘어난 택지의 양은 농지가 줄어든 것이므로 전체 토지의 양은 전혀 변함이 없다. 인간은 토지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자동차가 없으면 불편하지만, 토지 없이는 살 수 없다. 인간은 토지 위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토지 위에서 잠도 자고 쉬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토지에 문제가 생기면 농사에, 상업에, 기반시설 설치에, 주거에, 금융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고, 어떤 경우에는 경제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기도 한다.
토지의 또 하나의 특징 중 하나는 모든 토지마다 질이 다르다는 의미의 비동질성非同質性이다. 반면에 사람이 만든 물자는 어디에 있으나 동질적이다. 강원도에 있는 자동차와 서울에 있는 자동차는 똑같다. 하지만 서울에 있는 토지와 강원도에 있는 토지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치의 차이는 토지소유자가 아니라 사회가 만든다는 사실이다.
줄어드는 농지와 불로소득
필자가 이렇게 토지의 근본 원리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토지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농업문제를 풀기 매우 힘들고 나아가서 청년들을 농촌으로 초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농지 문제의 핵심은 불로소득이다. 이런 이유로 경작지는 매년 줄고 쌀 생산량이 감소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작지는 2001년 187만 6,000㏊에서 2014년 169만 1,000㏊로 13년 만에 무려 18만 5,000ha(9.9%)나, 다시 말해서 여의도 면적(2.9㎢ 기준)의 약 638배나 줄어들었다. 그리고 2001년 551만 톤이었던 쌀 생산량이 2014년엔 424만 톤으로 무려 127만 톤이 줄어들었다. 결과적으로 1982년에 53%였던 식량 자급률은 2000년 29.7%, 2013년 23.1%로 계속 줄었다.
그러면 농지 불로소득이 경작지 축소와 식량자급률 하락을 초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농민들에게 농업을 통한 소득 창출과 ‘농지의 용도전환 → 토지가격 상승’이 낳는 불로소득을 얻는 것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물으면 바로 알 수 있다. 대부분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농업소득 창출은 변수가 많아 불안정한 반면에 용도전환으로 인한 토지 불로소득은 규모도 크고 안정적이다.
청년 농민이든 일반 농민이든 간에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복지가 아니라 ‘기여한 것에 대한 대가’라는 점이다. 농업이 담당하는 역할은 식량 생산을 크게 뛰어넘는다. 농업은 생물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홍수와 온도 및 습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며, 대기를 정화하고, 토양을 보전하며,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정서의 함양에도움을 주는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일반 농민들도 은근히 땅 투기 바람이 불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용도전환을 ‘기대’하는 농지에 대한 투기수요는 항상 존재하게 되며, 투기소유자들 대부분은 농사에 관심이 없으므로 농지를 놀리거나 저低사용하게 된다. 서울 거주자가 강원도 평창에, 수도권 근교에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 이유 대부분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그것은 농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것인데, 가장 좋은 방안은 농지의 가격을 현재 가격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세제를 개혁하거나, 아니면 지금의 농지를 절대적으로 ‘절대’농지로 확정하고 만약에 용도를 변경할 시에는 공공이 지금의 농지가격으로 매입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다. 전자의 효과가 확실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면 후자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런데 농지투기만 중단시킨다고 해서 도시민들이 농촌으로 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농사지어서 먹고살기 어렵다는 문제, 즉 생활의 문제가 걸리기 때문이다. 농지 불로소득 환수는 투기수요를 막는 소극적 역할을 할 뿐이다. 농민들의 기본적인 삶이 가능하지 않는 한 도시민들의 농촌진출은 쉽지 않다.
농민에게 매월 50만 원, 청년 농부에게 100만 원의 기본소득을
필자는 농가단위로 농민들에게 매월 5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는데, 여기에 덧붙여 청년 농부들에게는 두 배인 10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제안한다. 이렇게 하는데 얼마나 들까? 농가에 매월 50만 원 씩 지급하면 연 6조 7천 2백억 원이 소요되고(2014년 개인 농가: 112.1만 가구), 청년 농부를 50만 명으로 하여 계산하면 1년에 6조 원이 들어간다. 그러니까 청년 농민과 일반 농민에게 지급하는 농민 기본소득은 연 13조 원 정도 되는 셈이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알 것은 청년 농민이든 일반 농민이든 간에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복지가 아니라 ‘기여한 것에 대한 대가’라는 점이다. 농업이 담당하는 역할은 식량 생산을 크게 뛰어넘는다. 농업은 생물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홍수와 온도 및 습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며, 대기를 정화하고, 토양을 보전하며,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정서의 함양에 도움을 주는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 거래되는 농산물 가격에는 농업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와 같은 다양한 가치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농업의 다원적·공익적 가치를 화폐단위로 환산하기는 쉽지 않지만 충남대 경제학과 박진도 교수에 따르면, 홍수조절 효과 13조 원, 수자원 함양 및 수질정화 4조 원, 대기정화 및 기후순화 5조 원, 토양보전 및 오염원 소화 1조 원, 경관적 가치 1조 원 등 논밭의 환경적 가치는 연간 약 24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농업의 가치를 생각하면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혹자는 왜 청년에게 두 배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냐고 할 수도 있다. 첫째 이유는 청년들이 다른 어떤 계층보다 극심한 실업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청년들에게 ‘국가적 위로’가 필요한 시점이다. 청년들이 살아야 노인도 살 수 있고, 청년들이 희망을 품어야 저출산 문제의 해법도 찾을 수 있다. 둘째는 청년들이 실제로 농촌에 거주할 수 있기 위해서이다. 지금 농촌에서 오로지 늘어나는 연령대는 70세 이상이고, 0~69세까지 인구는 줄고 있다. 2001년에서 2013년 동안 0세~50세 연령대는 47~54%가 줄었고 50~69세 연령대는 10~30%가 줄었는데 반해, 70세 이상은 42%나 증가했다. 이리하여 2014년 농가인구 고령화율은 39.1%(전년 대비 1.8% 상승)에 달했는데, 이는 전체 고령화율 12.7%의 무려 세 배나 된다. 청년 농민에게 월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농촌은 청년과 장년과 노년이 어우러지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
농사지을 농지가 있나?
혹자는 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하더라도 농사지을 땅이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현실적인 우려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투기적 목적의 농지소유자들이 소유를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제도를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농지의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세제를 개편하는것이다. 투기적 목적의 농지소유자들은 투기이익을 기대할 수 없다면 자연스레 농지를 시장에 내놓을 것이고 농지는 농사지을 사람들이 소유하게 된다. 물론 농지뿐만 아니라 모든 토지에서 불로소득을 환수하면 좋지만, 도시 토지가 어렵다면 농지에 우선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한편 농지에서 발생하는 투기이익을 환수해야 도시민의 동의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도 우리가 유념할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을 누리는 사람들은 최소한 토지 불로소득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투기이익 환수 없이 기본소득을 제공한다면 농지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농지투기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고, 만약 그것이 가시화되면 기본소득은 반대에 부딪히고 좌초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농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환수하여 투기수요가 완전히 사라지면, 투기수요 때문에 진입하기 어려웠던 도시청년과 도시민들의 농지확보는 쉬워질 것이다. 헌법 제121조의 ‘경자유전의 원칙’이 자연스럽게 구현되는 것이다.
문명전환, 청년, 그리고 농업
석유자원을 기반으로 한 물질문명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지속가능한 성장 내지는 발전도 이제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생태환경을 복원할 수 있는 농업에 주목해야 한다. 20세기가 ‘농업의 공업화’ 시대였다면 앞으로는 ‘공업의 농업화’ 시대인 것이다. 이런 문명의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농민에게 먼저 기본소득을 지급하는것은 자연스럽다.
거기에 더하여 일반 농민보다 청년 농민에게 파격적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농촌은 고령화의 땅이 아니라 청년이 활동하는 지역이 될 수 있다. 또한, 이렇게 되면 지역경제와 지역사회는 자연스럽게 살아나고, 무엇보다도 농촌에 젊은이의 역동성이 생겨날 것이다. 이제 청년들이 21세기 산업인 농업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매년 13조 원만 투입하면 이 일이 가능하다. 13조 원 투입은 청년을 살리고, 농업을 살리고, 새로운 문명을 준비하는 길이다.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우리는 이미 22조 원이라는 국가재정을 말도 안 되는 4대강 사업에 낭비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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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추수에 대한 소망 없이도 씨를 뿌리자”는 좌우명을 가지고 산다. 저서로 『공정국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가모델』(개마고원, 2010), 『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공저)』(평사리, 201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