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천 가지 생명의 합주, 한택식물원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 김소월, ‘산유화’ 중
식물원 안으로 들어서자, 문득 김소월의 ‘산유화’ 한 구절이 입에 맴돌았다. 눈앞에 펼쳐진건 형형색색의 황홀한 꽃동산. 땅속에서 모진 겨울을 견뎌내고 기특하게도, 제각각의 빛깔로 피어난
꽃과 여린 새잎을 틔워낸 나무들이 잔치가 시작되었음을 소란스럽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것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스스로 봄이 되어, ‘봄’이 왔다고 했다.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한택식물원. 서른여섯 개 다른 주제를 지닌 정원, 20여만 평에 이르는 이곳엔 우리나라 자생식물 2천4백여 종을 비롯해 다양한 식물 9천여 종, 900여만 본이 있다.
빨강, 노랑, 분홍빛이 지나치게 곱다 싶은 튤립들도 이름이다 제각각이고, 꽃창포, 수선화, 앵초, 팥꽃, 금낭화…. 이름만 익숙한 꽃들과 지금 바로 병 안에 넣어 돌려 닦아도 손색이 없을 모양의 병솔 나무, 한때 우리나라에 흔하디흔했던, 그래서 친숙한 이름 명자나무, 손가락보다 턱없이 작은 쥐손이풀 같은 풀이름도 재미있다. 호주 온실에는 소행성 B612호에서는 골칫거리인 바오바브 나무가 어린왕자와 다정히 서 있고, 남아프리카 온실에는 100년을 산다는 알로에 ‘디코토마’가 있다. 국제 보호수종으로 원주민들이 나무줄기 속을 파내고 음식을 보관하는 자연 냉장고 역할도 한다는 안내문이 눈에 띈다.
가장 낮은 곳, 햇볕도 들지 않는 땅에 붙어 살아가는 지피식물을 기특하게 바라보다가, 시원하게
뻗은 키 큰 단풍나무까지 시선이 닿으면, 하늘은 더 아득하게 높다.
철마다 피고 지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희귀식물과 멸종위기 식물이 보존 되어 있고, 식물을 이용한 다양한 연구도 활발해 자연의 생성 성장 소멸의 과정이 자연스러운 곳. 때마침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이 노란 금새우난초가 흐드러진 꽃밭을 거닐며 연신 재잘거린다.
그렇게, 생명들이 제각각의 소리로 봄을 연주한다. 아주 잘, 어울리는 합주다.
글 · 사진 / 신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