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이 절대 땅을 포기하지 않도록

1995년, 결혼과 출산으로 잠시 쉬었던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에서 전화가 왔다. 환경농업육성법(안) 초안을 만드는 작업을 같이 하자는 연락이었다. 당시에는 환경보전형 농업이라 불렀고 이는 정부의 중소농 고품질 사업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중소농 고품질 사업이란 정부에서 중소 농들이 환경 부하가 적은 농법의 농사를 지음으로써 ‘고품질’이라는 이름의 부가가치를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안으로 생각하고 이를 지원하는 정책이었다. 또한 이 법은 그동안 연구소에서 진행해 왔던 농산물 유통과 가격 보장 문제에 대한 대안인 협동조합운동과도 관련이 있었다.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을 통해 농민들과 직거래를 시작하면서 당시 적은 규모였던 생협은 대규모 기업농이 아닌 중소농과 직거래를 하였고 그 중소농의 다품종 소량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농법이 환경에 대한 부하를 줄이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는 지속 가능한 개발을 이야기하는 시대이기도 했다.
이런 국내외의 정세에 따라 환경보전형 농업을 육성 지원하기 위한 법이 필요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법이 2~3년을 지나면서 여러 과정을 거쳐 결국 정부입법으로 통과되었다.

환경과 생태계 보전을 위해 생겨난 법과 제도
최근 들어 개인적으로 내내 고민하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법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처음 무엇인가를 기획하고 정책을 입안하고 이를 제도화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로 법을 만들고 나면 법은 처음 기획과는 다른 결과물로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법을 시행하는 것은 행정 부서이고 행정 부서는 그 법의 실효성을 높인다는 미명하에 자신들이 집행하기 가능한(좀 더 냉정하게는 편리한) 방법을 찾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법도 마찬가지이다. 환경 부하를 줄이는 농법은 무궁무진하므로 그것을 계량화하여 정부가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 결과 정부는 관리를 위한 정량적 기준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이 기준으로 처음 법이 보호하고자 했던 중소농 중심의 농법은 점차 사라지고 기업농에 의한 고 투입 방식의 새로운 친환경 농업이 생겨났다.
원래 유기농이란 농민이 생산과정에서 환경 · 생태계와 가장 조화로운 방식, 즉 생물 다양성, 생물학적 순환, 생물학적 활성 등의 세 가지를 보장하는 생산방법이다. 이를 잘 구현하기 위해서는 다품종재배를 통한 생물 다양성 확보, 가축과 농업의 조화를 통한 생물학적 순환의 실천, 토양미생물 등 다양한 생태계의 생물들이 제 역할을 다하게 해주는 생물학적 활성의 보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이미 농업이나 생태 환경이 많이 오염된 곳에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저농약, 무농약, 전환기 유기농 등의 제도를 만들었던 것은 유기농까지 가는 그 지난한 과정을 함께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친환경 농업이라는 이름은 농민들에게는 소득을 올리는 방법이 되었고 소비자들에게는 생산방법이 아닌 품질보장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유기농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생태계의 생물들이 제 역할을 다하게 해주는 생물
학적 활성의 보장이 필요하다. 저농약, 무농약, 전환기 유기농 등의 제도를 만들었
던 것은 유기농까지 가는 그 지난한 과정을 함께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어
느 순간 친환경 농업이라는 이름은 농민들에게는 소득을 올리는 방법이 되었고 소
비자들에게는 생산방법이 아닌 품질보장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21세기, 온갖 환경과 생태계의 오염은 세계 공통의 관심사이고 이 오염의 속도를 늦추기 위한 각종 국제적 기준들이 만들어졌다. 그 와중에 농업에서의 친환경 농업도 함께 주목을 받으면서 친환경 인증제도에 따른 인증표시가 그 중심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주목은 농민들에게 질곡이 되기 시작했다. 토양, 물, 농산물 등에서 법이 정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인증이 취소되거나 돈벌이를 위해 소비자를 속인 죄인취급을 받는 일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종종 언론이나 방송은 유기 농산물에서 농약이 검출되는 사례를 특종으로 삼기 시작했고 소비자들의 의심은 커져갔다.

농민, ‘인증표시’ 에 발목 잡히다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농민이 어떻게 생산했는가보다는 인증표시가 있는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가혹했다. 농민들은 모든 문제의 책임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비 한번 내리면 공기 중의 모든 오염물질이 흙 속으로 스며들어도 농민들의 책임이다. 지나는 곳곳에서 나온 물질로 오염된 물을 논이나 밭에 대는 것도 농민들의 책임이다. 옆 밭에서 농약이 날아들어도 농민들의 책임이다. 처음 친환경 농업을 하는 농민들은 이를 막기 위해 비가림 시설을 활용했다. 비가 오거나 옆 밭에서 약을 뿌릴 때 비 가림 시설을 이용해 이를 막았다. 그러나 아무리 주의를 해도 완벽하게 막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농민들은 아예 비닐하우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대부분 유기농업이 비닐하우스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것이다.
그리고 처음 법을 만들면서 유기농으로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던 저농약, 무농약, 전환기 유기농은 농민들이 엄격한 유기농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위험으로부터의 피난처가 되었다. 저농약에서 유기농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저농약 등의 단계에서 멈춰버리는 경우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유기농에서 저농약 방향으로 한 단계씩 내려가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이제 우리가 처음 법을 만들면서 꿈꾸었던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들 어쩌랴. 어차피 ‘친환경’인데. 친환경 인증표시 중 어느 하나만 있어도 되는데 굳이 더 어려운 길로 갈 필요가 없지 않은가. 농민들이 이런 식의 자구책을 마련하게 된 것은 농민의 탓인가? 제도의 탓인가? 단언컨대 이것은 제도의 탓이다. 그것도 정부에서 관리를 위해 만든 인증기준이라는 제도 탓이다.

어차피 ‘친환경’인데. 친환경 인증표시 중 어느 하나만 있어도 되는데 굳이 더 어
려운 길로 갈 필요가 없지 않은가. 농민들이 이런 식의 자구책을 마련하게 된 것
은 농민의 탓인가? 제도의 탓인가? 단언컨대 이것은 제도의 탓이다. 그것도 정부
에서 관리를 위해 만든 인증기준이라는 제도 탓이다.

애초에 친환경 농업이라는 단어에서부터 문제의 소지는 있었다. 이 단어는 미국의 친환경Environmently friendly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다. 그것은 비행기로 농약을 뿌리는 미국에서 그로 인해 생겨나는 문제, 즉, 원래 권장사용량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뿌려야 하는 나라에서 권장사용량까지만 뿌려도 인정하기 위해 만든 단어다. 이 제도가 바로 ‘해충의 종합적 관리(이하 IPM)’이다. 즉, 화학약품에 의존하는 농업을 기정사실화하고 식약청으로부터 검증 받은 화학약품을 약속한 양만큼 사용하기만 하면 인체에 해롭지 않다는 논리에 근거를 둔다. 마치 지금 우리나라 식약처가 MSG를 평생 먹어도 인체에 해롭지 않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논거의 함정은 하나하나 따로따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식품에서 MSG 하나만 먹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식품첨가물까지 포함하면 전체 섭취량은 훨씬 많아진다는 사실을 간과하듯이 농업에서 화학약품도 하나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총량은 훨씬 더 많아진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아니면 알고도 속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법제도가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 있어야 했고 이를 통해 개선방안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제도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소비자를 안심시킨다는 미명하에 또다시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졌다. 농산물 우수관리제도(이하 GAP)가 바로 그것이다.

GAP은 생산과정 관리, 핵심은 ‘기록’
이 제도는 광우병 등의 문제로 시끄럽던 시절 소고기의 이력추적을 위해 유럽에서 이력 추적제를 시행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그 필요성이 제기되자 이력추적제 도입의 하나로 시작되었다. 그 과정에서 순수하게 유통경로를 중심으로 관리하는 이력추적제도와 생산과정을 중심으로 관리하는 GAP으로 나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GAP은 미국식 친환경 농업제도의 일부분인 IPM이 일부 차용되었다. 이는 GAP이 불리던 방식에서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이 제도가 시범사업을 진행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우수농산물관리로 불리던 것이 2009년 6월, 법을 개정하면서 농산물 우수관리로 슬그머니 바뀌었다. 그러나 이미 몇 년에 걸쳐 우수농산물관리라고 정부는 홍보했고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수농산물관리와 농산물 우수관리가 얼마나 다른 것인지, 왜 법조문을 바꿨는지를 정부는 설명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은 이 제도가 우수농산물을 인증하는 제도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GAP이란 무엇인가. 농산물품질관리법은 GAP을 ‘농산물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농업 환경을 보전하기 위하여 농산물의 생산, 수확 후 관리(농산물의 저장 · 세척 · 건조 · 선별 · 절단 · 조제 · 포장 등)및 유통의 각 단계에서 작물이 재배되는 농경지 및 농업용수 등의 농업 환경과 농산물에 잔류할 수 있는 농약, 중금속, 잔류성 유기오염물질 또는 유해생물 등의 위해요소를 적절하게 관리’하는 것이라고 정하고 있다. 즉, 이것은 생산과정에 대한 관리이지 생산방법에 대한 관리가 아니다. 법이 정하고 있는 기준을 보자. 농약에 관한 기준을 보면 병해충 등의 방제용으로 사용한 모든 농약에 대해 해당 농산물 수확 후 그 사용 내역, 즉 제품명, 대상 농작물 및 병해충 명, 사용 일자 및 사용자, 사용량 및 사용 장소 등을 2년 이상 기록 · 관리하기만 하면 된다. 이는 화학비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이다. 흙이나 물 역시 마찬가지이다. 할 것을 다 하더라도 그것을 기록으로만 잘 남겨두면 되는 것이 바로 GAP이다. 물론 할 것을 다 한다는 것은 친환경일 경우에는 그 기준에 맞는 할 것을 다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이 제도의 핵심은 기록을 잘하느냐이지 어떻게 농사를 지었느냐가 아니라는 것이다.

농업은 생존권, 조건을 걸지 말라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사람들은 친환경 농업이 위기라고들 한다. 사실은 친환경 농업이 위기가 아니다. 농업 그 자체가 위기이다. 그리고 그 위기는 1960년대 우리가 경제성장정책을 쓰면서 ‘수출만이 살길이다’라고 외치던 그 시절에 이미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농업은 저임금정책을 고착하기 위한 저곡가정책을 통해 찬밥신세로 전락했다. 농촌 인구는 산업화 일꾼이라는 이름의 노동자확보를 위하여 줄어들었고 그 줄어든 자리를 대신하여 화학약품과 농기계에 의존한 농사를 짓게 하여 생산비의 대부분은 다른 산업으로 흘러들어 갔고 농민들은 빚에 허덕이게 됐다. 가족 농은 깨지고 다른 산업처럼 규모화한 농업으로 돈벌이하라고 강요당했다. 그렇게 기업농이 시작되었다. 기업농은 다시 식량 작물보다는 돈이 되는 상품작물 위주의 농업으로, 또다시 중소농고품질을 거쳐 친환경 농업으로 새로운 제도가 등장하면서 돈벌이 산업으로서 그 옷을 갈아입었다.
모든 것은 첫 단추의 문제이다. 첫 단추를 어떻게 끼웠는가가 그 이후 어떻게 단추를 낄 것인가를 결정한다. 농업을 생존권이라 생각하고 농업 그 자체를 지켜야 하건만 농업 그 자체를 지킬 마음이 없는 정부가 기껏 한다는 것이 농민들에게 계속 농사를 지키고 싶으면 OO 농사를 지으라고 하면서 조건을 걸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이다.

농업을 ‘생명산업’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어떤 조건에서도 ‘산업’이라는 단어를 포
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농업은 인간의 생존권이다. 먼 옛날 먹을 것을 찾아 돌아
다녀야 했던 인류가 처음 씨를 뿌리고 정착을 하기 시작한 이래 농업, 아니 ‘농’은
돈벌이로서의 산업이 아니라 인류의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었다. ‘농’은 ‘생명’이
지만 ‘산업’이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 조건을 갖추면 돈 벌 수 있다고 끊임없이 농민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농민들은 정부의 꼬임 속에 조건부 농사를 짓는다. 유기농사가 그렇고 상품작물 농사가 그렇고 기업농이 그렇다. 이런 식의 조건부 농업은 오늘 다시 6차 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새로운 조건부 농업이 살길이라고 말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그 어느 하나 농민들이 원했던 단 하나, 생산이 보장되는 농사,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게 해달라는 그 단 하나의 바람조차도 들어주지 않았다.
정부는 곧잘 농업을 ‘생명산업’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어떤 조건에서도 ‘산업’이라는 단어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농업은 인간의 생존권이다. 먼 옛날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녀야 했던 인류가 처음 씨를 뿌리고 정착을 하기 시작한 이래 농업, 아니 ‘농’은 돈벌이로서의 산업이 아니라 인류의 생존을위한 필수조건이었다. ‘농’은 ‘생명’이지만 ‘산업’이어서는 안된다. 그러니 ‘농’이라는 글자 앞에 그 어느 것을 갖다 붙인다고 해도 그것이 ‘산업’을 위한 것인 이상 근본적인 대책도 아니고 대안도 아니다.
사람은 생존을 위해 매일 먹어야 하고 그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도 존중되어야 한다. 그리고 존중이라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딱 한 가지, 농민들이 올해도 내년에도 절대 땅을 포기하지 않도록, 그 땅을 일구는 일을 포기하지 않도록 지지해주는 것이다. ‘농’은 원래 그 자체가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유기’ 그 자체였다. 더는 ‘농’에 조건을 걸지 말고 ‘농’ 그자체를 보장하고 난 다음에 그 ‘농’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순서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농민들이 원하는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내지는 ‘기초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제’ 를 보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8※필자 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GMO반대 생명운동연대 전 사무국장. 1988년부터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연구원으로 국내 농업문제를 꾸준히 연구하고 고민했다. 2004년부터현재까지 환경농업단체연합회, 서울환경연합, 생협전국연합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에서 정책위원 등의 일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GMO 유전자조작 밥상을 치워라』(도솔)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