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청년들을 일컬어 ‘몇포 세대’라고 하는 것이 유행인 듯하다. 그리고 그 ‘몇’의 숫자는 3에서 5로 늘었다가 급기야는 7로, 9로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그 ‘포’자가 뜻하는 포기라는 말이 가장마음에 들지 않는다. 포기했다고 하는 가치들-연애, 결혼, 출산, 집-이 청년이라면, 사람이라면 누구 다 원할 것이고 추구해야 하는 것이라는 당위에서 이야기는 출발한다. 또 거기에서 다름이 시작되는 것 같다. 가벼운 농담으로 그런 얘기를 주고받기보다는 포기한 것이 아니라 다른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동네 할머니가 언젠가 미세마을에 모여 사는 우리를 보고 ‘다들 멀쩡하게 생겨서 무슨 사연이 있 어 여기 이러고 있느냐’고 해서 웃은 적이 있다. 사연이라고 해봤자 별게 없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나는 다만 다른 곳에 와서 조금 덜 벌더라도 좀 더 여유 있는 자영업자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그래서 내가 쉬는 때를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낮잠도 자면서 살고 싶었고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다(지금 그렇게 살고 있냐고 묻는다면 5초쯤 머뭇거리다가 ‘어느 정도는요…’라고 대답할 것 같다).
이야기의 시작 – 미세마을
이야기의 시작은 내가 왜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와서 살게 되었는지를 풀어 놓는 게 당연하겠지만, 요즘 그런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자주해왔던 것 같고, 다른 청년들이 느끼는 결심의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과정을 밟아왔던 것 같아 조금 건너뛰고 다른 이야기를 하려한다. 서울에 살면서 시골로 가서 살자고 함께 이야기하던 여자 친구들과이제는 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할 무렵, 몇 군데를 돌아보고 미세마을에 왔다가 이곳에 자리 잡게되었다. 시골로 이주하면서 생기는 생경한 이웃, 환경, 그리고 살 수 있는 집과 농사지을 땅 등에서 여러모로 미세마을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다.농촌으로의 이주를 희망하는 청년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어디서 살지, 농사지을 땅은 어떻게 구할지 하는 것인데, 우리는 가장 어려운 문제 두 가지를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미세마을은 전라남도 해남에 있다. 같이 사는 친구의 부모님께서 미리 정착해서 사시던 땅을 우리에게 내어주셨고, 2012년부터 청년들이 모여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현재는 청년 6명이 농사를 지으며 함께 살고 있다. 흔히 ‘공동체’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공동체라는 곳이 추구하는 공통의 이념이나 지향 같은 것은 없이 그저 같이 농사를 짓고, 집을 공유하며 같이 밥을 해먹으며 산다. 이 모호한 정체성이 끊임없이 우리의 관계를 어렵게 만들지만, 이 어려움 덕분에 우리는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것같다는 생각도 든다.
미세마을은 우리처럼 농촌으로의 이주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시골이란 어떤 곳인지 또 농사짓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열린 공간이자 배움의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2012년부터 시작한 미세마을도, 이곳에 사는 우리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황에서 누군가의 이주, 성장을 돕는다는 것이 버거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으로 농촌으로 들어오는 청년의 수는 점차 늘어날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당분간은 그 역할을 피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올해 8월 말부터 미세마을에서는 <나의 시골살이 디자인 학교>라는 3개월짜리 과정을 시작하여 진행하고 있다. 4명의 청년이 같이 하고 있어서 기존 식구들까지 합하면 지금은 잠시 10명이라는 대식구가 되어 복작거리며 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농촌의 삶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미세마을에서 함께산다는 것, 시골살이에 필요한 여러 기술, 해남의 농사와 문화를 배우고, 우리가 겪었던 시행착오나경험들을 함께 나누면서 나에게 맞는 시골살이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의도다.
2012년부터 청년들이 모여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현재는 청년 6명이 농사를 지 으며 함께 살고 있다. 흔히 ‘공동체’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공동체라는 곳이 추구 하는 공통의 이념이나 지향 같은 것은 없이 그저 같이 농사를 짓고, 집을 공유하 며 같이 밥을 해먹으며 산다. 이 모호한 정체성이 끊임없이 우리의 관계를 어렵게 만들지만, 이 어려움 덕분에 우리는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뭐 해먹고 살지? – 어떤 농사를 지을 것인가
농촌에서 농사지으며 살겠다는 마음을 먹은 청년들의 동기는 다양하다. 그 가운데에는 농업기술센터에서 알려주는 돈 되는 작물을 키우며 기존의 시스템으로 들어가 돈을 벌어보는 것을 희망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꿈을 품고 시골에 내려온 사람들도 분명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 주변에서, 미세마을에 찾아오는 사람 가운데 그런 꿈을 꾸며 시골로 내려왔다는 청년은 드문 편이다. 그간 도시에서의 경쟁이 싫고 소비적인 인간으로 사는 것이 싫어서, 조금 더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서 내려왔거나, 농사짓는 자체가 즐거워서라거나, 함께 사는 자체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여유롭고 한가한 삶,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농사짓는 기쁨을 느끼는 규모의농사와 돈은 함께하기 어렵다는 데에 있다. 최소한의 돈만 벌며 씀씀이를 줄이고 살아보겠다고 생각하고 아끼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도시에서 살던 이들의 생활패턴이 하루아침에 달라지긴 쉽지 않을 것이며 결혼을 하지 않은 미세마을 식구들과 달리 가족이나 자녀가 있으면 또 다른 지출이 이것저것 필요할 것이다.
미세마을에서는 여전히 뭐해서 돈을 벌고 살까가 고민스럽다. 지난 2년 동안 주변의 다른 농부들처럼 매일매일 고된 노동을 하며 보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때에 맞춰서 이런저런 농사도 짓고 열심히 팔아보기도 했으나 이런저런 운영비를 빼고 개인에게 돌아온 돈은 한 달에 약 20만 원 남짓이다. 한 달에 자신에게 필요한 수준의 돈은 얼마인가를 열심히 따져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라면 농촌에서의 지속가능성, 안정성을 담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누군가에게 농촌에서의 삶이 희망적이니 함께 살아보자고 권유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게다가 우리는 미세마을의 운영비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작년 한 해를 평가하면서 올해는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며 삶의 지속성도 타진해보는 해로 삼자고 이야기했다. 농사라는 큰 틀 안에서 그 방식은 참으로 다양해서 각자에게 맞는 농사-규모를 키우거나, 꾸러미와 같이 작은 것을 세세하게 챙기고 소비자와 소통하는 것을 택하거나, 생산된 농산물 가공을 통하여 부가가치를 높이거나-를 찾아보자는 취지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미세마을에서 함께 짓는 농사의 한계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개인적 영역의 비중을 높여보자는 뜻도 포함된다. 한편으로는 수익을 높이기 위한 규모화도 시도해보고 있다. 미세마을에서는 유기농으로 농사지은생산물을 한살림으로 출하하고 나머지는 직거래로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방식 역시 기존의 시장시스템에서 가격이 매겨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규모를 키우지 않으면 1차 농산물의 판매만으로 얻어지는 이익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같이 사는 한 친구는 올해 농업회사법인을 꾸려 농사 규모를 크게 하여 재원을 마련해보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생산한 농산물을 가공하여 수익을 높이는방법도 찾아야 하겠지만, 시설을 투자하고 거기서 소득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할 때 여전히 벽이높아서 지금으로써는 가장 현실적인 접근 방법이다. 농사를 함께 짓는 범위를 미세마을 식구만이 아니라 마을에서 함께 사는 이웃들에게까지 확대하여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의미도 있다.
같이 사는 한 친구는 올해 농업회사법인을 꾸려 농사 규모를 크게 하여 재원을 마련해보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지금으로써는 가장 현실적인 접근 방법이다. 농 사를 함께 짓는 범위를 미세마을 식구만이 아니라 마을에서 함께 사는 이웃들에게 까지 확대하여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의미도 있다.
아직 한 해 평가가 나오지 않아 섣부른 감이 없지 않지만, 규모를 키워 이익을 늘려가는 방식은 미세마을과 그리 잘 맞는 것 같진 않아 보인다. 현재 미세마을의 구성원이나 미세마을에서 운영하는 배움터 프로그램에 찾아오는 청년들의 면면을 보았을 때 규모는 말로나 몸으로나 거부감이 클 수밖에없다. 우리는 나고 자란 농부가 아니기에 체력적으로도 한계가 있으며 한계를 이겨가며, 왜 뙤약볕을 고스란히 맞아가며, 허리가 꼬부라지도록 일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야 하는가도 아직 설득해내지못했다. 농사도 좋고 중요하지만, 지금의 청년들에게는 농사에서 나온 어떤 결과물보다도 농사 자체에서 오는 행복한 감정이 더 중요한 듯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미세마을에서는 어떤 농사를 짓는것이 적합할까 하는 문제는 앞으로도 얼마간 더 시행착오를 거듭해야 할 듯하다.
함께 산다는 건 포기하기를 배우는 일
혼자서 하면 더 잘할 것 같다. 그렇지만 함께한다. 그건 아마도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하는 것이 나으니까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혼자 해도 이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넋두리를 하는 나를 자주 보게 된다.
같이 사는 한 친구는 올해 농업회사법인을 꾸려 농사 규모를 크게 하여 재원을 마련해보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지금으로써는 가장 현실적인 접근 방법이다. 농사를 함께 짓는 범위를 미세마을 식구만이 아니라 마을에서 함께 사는 이웃들에게까지 확대하여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의미도 있다. 한동안은 이런 말을 자주 썼다. 혼자인 청년은 약하지만 함께하는 청년은 강하다. 약간 선동적인 말이지만 정말 그렇다고 믿었다. 내 부족한 부분을 다른 사람이 채워주고 그래서 함께하면 재밌게 나아갈 수 있다고. 지금도 그 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뒤로 물러서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여름이 지나고 자급을 위해 공동으로 농사짓는 텃밭이 온통 풀밭이 되었다. 물론 내가 게으르고 여력이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함께 움직이다 보면 느려지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밭이 이렇게 되어버렸다.혼자 애써서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마음이 어렵고 힘든 것보다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아직 다 같이 힘들여 움직일 때가 아닌가 보다. 지금은 그런가보다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내년이 있고 후년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함께 한다는 것은 포기할 줄 알게 되는 과정인 것 같다.
느리고 천천히 간다. 그 과정을 참아낼 수 있으면 나에게 이곳에서의 내년이 있을 것이고 참지 못하면 그 내년은 장담할 수 없겠지. 느리고 천천히 그래도 간다고 하는 믿음. 그 마음이 필요한 계절이다.
※필자 정혜성: 해남 미세마을 청년 농부. 서울에서 해남 미세마을로 내려와 농부로 산지 3년 되었다. 서울에서는 대화문화아카데미, 전국녹색가게운동협의회에서 일했다. 현재 6명의 청년과 함께 단호박, 고구마, 생강, 무, 배추 농사를 주로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