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다시 마을로

이호열 아산제터먹이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음봉면으로 왜 내려갔냐고? 나는 원래 여기에 있었어요. 외도했다가 내 자리로 돌아온거예요.” 가을 햇볕에 잔뜩 그을린 얼굴로 이호열 씨(제23회 대산농촌문화상 수상자, 아산제터먹이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는 밝게 웃었다.

아산제터먹이는 콩나물 사업을 주로 하며 작은 마을 사람들이 행복한 지역공동체를 만들어간다.
농민이 재배한 앉은뱅이 밀을 가공해 상품화하고 있다.

유기농 40년, 한살림 운동 30년
이호열 씨가 충남 아산시 음봉면 산정리 마을 청년들과 유기농업을 연구하며 쌀농사를 시작한 때가 1976년. 그게 시작이었다. 유기농 쌀을 직접 트럭에 쌀을 싣고 다니며 서울 소비자들과 직거래했다. 힘든 작업이었지만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그런데 1984년 소값 파동으로 지역 청년들이 하나둘 떠났고 지역 농업은 와해되기 직전이었다.
“그때 한살림을 만났어요. 한살림운동 덕분에 유기농민들이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었죠.”
한살림 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그는 1996년 한살림아산시생산자연합회를, 2000년에는 이들 350여 농민 회원 100% 출자로 ‘푸른들영농조합법인(이하 푸른들)’을 설립했다.
푸른들이 친환경농산물 가공과 유통을 전담하고, 한살림천안아산소비자생협이 판매를 책임지는 지역순환 경제체제를 만들었다. 이후 농민 2천 명이 함께하는 전국생산자연합회장과 35만 명의 소비자가 가입한 소비자생협 공동 대표를 지내며 30년간 한살림 운동의 핵심 역할을 해왔다.

“배당하지 않는 협동조합, 처음엔….”
다시 음봉면. 모든 직을 내려놓고 마을로 돌아온 이호열 씨는 농민과 소비자 101명이 출자한 ‘아산제터먹이 사회적 협동조합(이하 아산제터먹이)’을 이끌고 있다. ‘제터먹이’는 로컬푸드의 우리말이며 생산과 소비를 지역 내에서 해결하여 지속 가능한 농촌 마을을 회복한다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아산제터먹이는 토종 채종포에서 50여 종을 재배해 농가에 보급한다.
카레의 주성분으로 주로 남부지방에서 재배하는 울금을 아산지역에 토착화 시켰다.

아산제터먹이의 주 사업은 콩나물 사업. 지역농민과 계약 재배하여 무농약콩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이를 콩나물로 키워 한살림생협과 로컬푸드 매장에 공급한다. 지역농민 10여 명이 콩 전· 후작으로 생산한 앉은뱅이 밀로 국수와 밀가루를 만들어 판매하며, 카레의 주재료로 남부지방에서 많이 생산하는 울금을 아산지역에 맞게 토착화했다.
1,300여㎡의 채종포에서 50여 종의 토종 종자를시험 재배하여 배추, 고추,호박, 수세미 등의 토종 씨앗을 농가에 보급하여 확산하는 노력도 하고 있다. 아산제터먹이는 지난해 5억 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배당률을 계산하면 19%에 달하겠지만 1원도 배당하지 않았다. 물론 조합원들이 아산제터먹이의 ‘사회적’ 의미에 동의한 결과다.
“농업소득을 확 올려 농촌 삶의 질을 높이는 건 이젠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해요. 쌀값이 얼마큼 오르면 농민이 행복해질까요. 넉넉지 않아도 나누고 베푸는 일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사회적 협동조합이니까 지역에 지원하고 인재를 키우는 일에 자원을 쓸 수 있는 겁니다.”

협업과 협력은 대기업도 이긴다
그렇다면 왜 협동조합일까. 협동으로 무장한 이탈리아 볼로냐가 세계 금융위기에서 흔들리지 않았듯, 지역을 이끄는 건강한 조직이 많아져야 우리 농촌이 지속 가능해진다는 것. “농업은 협업이 아니면 길이 없어요. 소농들이 협업해 대농으로 가는 거, 그게 협동조합입니다. 협력, 협업이 잘 되면 대기업이랑 붙어도 이겨요.”

30여 년을 한결같이 함께해왔던 부인 김복순 씨는 이호열 씨에게 늘 따뜻하고 든든한 지원 자이다.

그는 아산제터먹이를 중심으로 음봉면 36개 마을을 네트워킹하고 공익적 목적의 협동조합 8개 이상, 그리고 마을마다 마을 기업을 만들 계획도 세웠다.
“농촌에 리더가 없다구요? 해보지 않았을 뿐이에요. 앞으로 강력한 한 사람이 아닌 작은 조직의 리더들이 많이 성장할 것입니다. 5년, 10년후에는 이러한 조직들이 농업의 희망을 보여줄 겁니다.”

결국엔 행복을 찾는 일
농촌은 대도시보다 담장이 높다. 실제로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담장을 허무는 작업, 이호열 씨가 새롭게 시도하는 ‘마을 만들기’이다. 귀촌인 마을이 아니라, 지역 농민은 물론 시사만화가, 예술가, 대학교수, 사회운동가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과 경험을 나누며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다.
“늙어서 눈칫밥 안 먹겠다는 것이 목적이에요. 먹고 아프고 병들고 이런 것을 스스로 해결하자. 대신 나이 들어서, 퇴직 이후에 어떻게 지역과 함께하고 봉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행복은 어떻게 찾아갈 것이냐, 여기에 방점이 찍혀있어요.”

집 앞 토마토 하우스를 둘러보고, 벼가 노랗게 익은 논길을 지나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 울금 밭으로 향한다. 아내 김복순 씨와 30년 이상을 함께 걸었던 길이다.
‘농업’ 이야기만 듣고 자라, 농업을 시작했거나 준비 중인 두 아들도 함께 걸을 길이다.
“농업 외에 답이 있습니까?” 그가 문득 물었다. 때마침 초록빛이 선연한 울금 밭이 눈에 꽉 차게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수경  사진 김병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