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일 거제시농업기술센터 기술지원과장
“새순 잎이 꼭 꽃 같죠. 멀리서 보면 붉은 꽃잎처럼 보여요.”
가을, 남해안 도로를 붉은빛으로 물들이는 홍가시나무는 원래 꽃꽂이 소재였다. 제주도에서 홍가시나무를 거제로 들여와 남해안 조경수로 탈바꿈시키는 데 남다른 역할을 한 사람. 거제시농업기술센터 이양일 과장(59, 제21회 대산농촌문화상 농업·농촌정책 부문 수상자)이다.
이양일 과장의 아이디어는 주로 ‘생각지도 않은 것’에서 비롯된다. 제주 출장길에 우연히 한라봉 맛을 보고는 거제에서는 안 되나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거제 한라봉, 수원 출장 중에 본 팔손이나무에서 시작된 꽃꽂이소재류 개발, 외도를 육지에서 볼 수 없을까 하여 만든 거제농업개발원까지. 사물을 보는 시선을 달리한 결과다.
버려진 유자, 다시 일어서는 원동력으로
그의 남다른 시각이 가져온 대표적인 사례가 유자다. 1990년대 초 1kg에 6천 원을 호가했던 유자는 생산 과잉 등으로 2001년 700원까지 떨어져 농협 가공공장과 영농조합법인 등 4군데가 도산했다. 가공업체는 가격을 맘대로 정했고, 판로가 없기 때문에 농민들은 가격에 맞추든 내버리든 선택해야 했다. 유자산업은 가망이 없다고 다들 말했다.
그러나 이양일 씨는 유자산업을 다르게 보았다.
“내수시장은 침체되었지만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수출이었죠. 소비의 흐름도 일본에서 중국으로 변화하고 있었어요.”
그렇다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2004년 그는 농민들을 모아 유자연구회를 결성했다. 그리고 10개 가까이 되던 가공업체를 2개로 통합했다. 수매대금 결제는 농협이 하도록 했다.
“유자는 한 해만 돌보지 않아도 고사해버려요. 1년 사이에 폐농이 되는 거죠. 그래서 연구회를 먼저 결성해서 회원들을 모으고 기술 지도하고…. 300평에서 0.7톤을 생산하고 있었는데 그걸 2톤으로 끌어올렸어요.”
유자나무를 낮게 왜성으로 만들어 작업이 쉽게 하고, 노인들도 사용할 수 있는 기계를 지원하는 등 경영비를 절감하면서 생산량을 늘릴 수 있도록 했다. 가공업체에는 자동 라인을 구축해주는 대신 농가 생산량을 전량 받도록 하고 가격도 생산자와 가공업체가 함께 정했다. 상품부터 하품까지 가격이 정해지면, 농민은 거제 농협을 통해 수매대금을 한 달 안에 받을 수 있다. 이 ‘원-라인 시스템’은 농민과 가공업체, 농협 등 이해관계가 다른 이들을 모아 거제의 유자산업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했다.
“중간다리가 되는 것이 행정의 일입니다. 양쪽에서 욕먹는 일도 허다하죠. 농민은 농민대로 서운하고, 가공업체는 업체대로 다른 입장이고. 그래서 조율을 잘해야 합니다.” 이제 거제의 유자산업은 지리적 표시제, 브랜드화로 다른 지역과 차별화하는 준비를 마쳤다.
농업이 주역이 되어 모든 것을 품는다
1998년 거제시농업기술센터가 바다를 메워 만든 거제시농업개발원. 이양일 과장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이곳은 거제시의 새로운 특화작물을 개발하는 곳이다.
또 경남우수축제로 손꼽히는 거제섬꽃축제가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2012년 가을, 저예산의 한계, 입장료가 유료임에도 입소문으로 찾은 관광객은 20만 3천여 명. 다
른 지역에서 온 관광객이 40%를 넘었다. 이러한 거제섬꽃축제가 지니는 또 하나의 특별한 의미는 그 주인공이 바로 ‘농업’이라는 데 있다.
“시민은 축제에 와서 농업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느낍니다. 또 농민은 축제에서 소비자들을 만나고 소포장, 고급화, 규격화의 필요성을 체감합니다. 농민 스스로 의식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는 겁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축제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문화예술단체와 동호회, 체험과 향토음식점 등이 늘고, 주민들의 관심이 높아져 지역의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농업은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종합예술입니다. 숨어 있던 지역의 향토문화를 살릴 수 있는 핵심 열쇠인거죠.”
거제농업개발원은 시민들이 ‘골이 띵하면’ 찾아오는 곳이다. 지역 농업을 살리면서 다른 것들을 감싸 안는. 1년 365일 이곳이 열려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생각하지 않으면 농업은 외롭다
“거제엔 장수풍뎅이가 많아요. 나무가 썩으면 그 밑에서 많이 나오지요. 이걸 어떻게 소득화 할 수 있을까 하다가 농림수산식품부에 질의를 했어요. 그게 현재 곤충프로젝트, 산업이 되었죠.”
생각하지 않으면 농업은 외롭다. 힘이 들 수밖에 없다. 이양일 씨는 미래를 앞서 보는 시각과 아이디어와 함께 강한 추진력으로 오래전부터 기반을 마련하고, 농민이 확신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 농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진심이 통하기까지 그와 동료들의 노력, 많은 시간과 ‘부딪힘’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그 부딪힘으로 단단해진 신뢰가 무엇보다 가장 큰 힘이다.
“우리 농업은 새롭게 리모델링되어야 합니다. 그간 농업정책은 많이 펼쳤지만 농민의 소득을 올리지는 못했어요.”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읽는 실질적인 정책, 농업현장에 닿을 수 있는 충분한 인력과 물적 지원, 그리고 농민의 의식과 노력이 함께 움직여야 지속가능한 농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세상의 진화를 이끄는 힘이다. 2013년 지금, 이양일 씨의 더 큰 진화가 기대되는 출발점이다.
글·사진 / 신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