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원래 있었다. 문밖을 나서면 골목길이 있고, 이웃집으로 놀러 가던 길, 풀숲을 헤치며 뛰어놀던 산길, 논길, 밭길, 돌담길, 고갯길…. 길은 그대로 그곳 사람의 삶을 담고 있다.
사람이 만들어낸 길은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하고 삶을 이어준다. 그리고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사연을 안고 이어진 길들은, 제각각 다른 목소리로 말을 건다.
세상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 무섬외나무다리
경북 영주시 문수면에 있는 무섬마을.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름처럼 마을을 감싸 안은 물길 때문에 이곳은 바깥세상과 단절되었다. 육지였지만 육지가 아닌 마을. 섬은 아니지만 섬 같은 마을. 산자락 끝에 있고 앞에는 물이 흐르니 농사지을 땅이 없었고,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러 강을 건너 30리를 나갔다. 이때 투박한 통나무를 쪼개 만든 외나무다리가 유일한 통로였다.
무섬외나무다리는 수백 년 간 무섬마을 사람들이 삶을 꾸려갈 수 있게 하는 고마운 길이었고, 고립과 단절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희미한 맥이었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이 건너고 싶은 아름다운 길로, 무섬마을의 힘찬맥이 되고 있다.
첩첩산중 고갯길에 얽힌 사연, 진안고원길
전북 진안군의 100개 마을과 50개의 고개가 이어진 진안고원길은 ‘마실길’이다. 마을과 마을 사이를 잇는 길을 걷다 보면 완만한 흙길도 만나고 논두렁길도 만난다. 험준한 고개를 오르다 보면 때론, 길을 잘못 들어서 당황한 고라니의 맑은 눈과 마주칠 수도 있다. 숲길을 헤치고 땀이 나게 올라간 곳에서는 부지런한 농부의 작품,고구마밭과 배추밭이 만들어낸 의외의 장관에 탄성이 나온다. 하나, 둘, 셋 고개를 넘을 때마다 새록새록 옛이야기를 듣다 보면, 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떡 바구니를 들고 발걸음을 재촉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고단한 삶을 대견하게 이겨 내는 사람들에게 진안고원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쉼’이다.
마을의 작은 길들이 이어져 큰길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고, 우리 땅 곳곳, 원래 있던 길들에 이름이 생겼다. ‘길’은 이제 문화가 되었다.
글·신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