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이 함께하는 지역공동체

농촌관광이 잘된다고 마을공동체가 발전할까?
농촌관광이 잘되는 마을이 있다. 농촌관광이 잘되다 보니 이리저리 개인적으로도 돈을 번 분이 있었다. 그런데 이분이 인근 도시에 아파트를 사고, 자녀들을 유학을 보내는 게 아닌가.
처음 들었을 때 당황했지만 차츰 생각해보니 그분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자녀에게 더 좋은 교육의 기회를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누가 욕하겠는가? 더구나 ‘말을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고,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처럼 자식에게 제대로 된 공부를 더 많이 시켜서 출세시키겠다는 데, 그래서 있는 돈 좀 썼다는데 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농촌 주민들이 모두 그렇게 행동한다면 그 마을은 어떻게 될까? 사업이 잘되면 잘 될수록 지역 주민의 자녀들이 더 지역을 떠나버리는 그런 구조라면 기껏 힘들게 노력하여 모범 사례를 만든다 한들 몇십 년 후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 헛된 일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동안 농촌 지역을 발전시킨다고 각종 기반 공사를 하고 농촌관광이나 6차 산업화 등 농외소득
창출을 강조했던 모든 활동은 지역의 공동체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다 보니막상 성공했다고 전국적으로 소문난 곳일수록 오히려 지역의 갈등은 더 깊어지는 문제가 있지 않았나 싶다.

지역공동체 발전의 시작과 끝은 자긍심
자녀를 도시로 보내려는 이런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농촌 주민에게 정말 중요한 것들이 농촌에서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읍내 학원보다 서울에 있는 학원이 더 잘가르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교육의 목적이 좋은 대학을 보내는 것이라면 서울에 있는 학원이 낫겠지만, 전인교육이란 점에서 본다면 오히려 농촌의 공간이 더 좋지 않을까. 하지만 실제 세상의 상식은 좋은 대학을 나와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교육이 이렇게 돌아가는 한 어떤 산업을 농촌에 유치한다 해도 농촌을 좋은 지역사회 공동체로 만들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농촌의 지역공동체가 제대로 되기 위해 우리는 인간의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해, 그 행복이 도시나 농촌이나 똑같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함께 하는 농촌주민들이 진심으로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긍심이 있는 지역 주민들은 자기 지역의 문제에 대해 해결하려는 열망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지역 주민의 자긍심은 언제나 시작이면서 동시에 끝이다.

농촌의 지역공동체가 제대로 되기 위해 우리는 인간의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해, 그 행복이 도시나 농촌이나 똑같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함께 하는 농촌 주민들이 진심으로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충남 홍성에서 지역공동체의 선구자인 홍순명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공부 잘하는 사람은 시골에 남고, 공부 제일 못하는 사람이 ㅅ대학교에 들어가라’고 말한 것은 곱씹어 볼수록 중요한 지역공동체 발전의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 지역에 대한 이런 자긍심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자긍심이 있는 지역 주민들은 자기 지역의 문제에 대해 해결하려는 열망을 가지게 된다. 이런 해결책이 제대로 만들어진다면 다시 자긍심은 높아질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역공동체는 계속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역 주민의 자긍심은 언제나 시작이면서 동시에 끝이다.

지역공동체 재구축의 환경, 다른 나라와 같은 점, 다른 점
아직도 농촌에서는 ‘발전’을 이야기하면 ‘도로나 다리를 만드는 것’을 떠올린다. 심지어 소프트웨어와 휴먼웨어를 강화해야 한다고 누구나 동의하는 농촌관광을 위해 지원되는 정책 자금의 상당수도 이런 토목 건축 사업에 사용된다. 농촌을 찾는 사람들에게 좀 더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고,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말이다.
이와 같이 ‘발전’이라고 하면 뭔가 공사와 연관 짓는 사고방식을 ‘토건 주의’라고 한다. 여전히 이런 ‘토건 주의’가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농촌의 주민들이 함께 토론하고, 함께 결정하고, 함께 뭔가를 해 본, 그래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한 경험을 겪은 지가 아주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지의 경험과 6·25전쟁 전후의 마을 공동체 붕괴, 똑같은 지붕으로 갈아야 하는 정부 주
도의 농촌 발전 운동, 농산물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 전업농에 집중한 농정 등 최근 100년 이상을 누군가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정해준 틀에 맞춰 선택해 온 우리나라의 농촌 주민들은 스스로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모를 때가 많다.
‘필요에 대한 무딘 감수성’은 특히 지역공동체 주민들의 참여를 어렵게 한다. 또한 긴 세월 동안 공동체 내에서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거의 해 본 적이 없으니 대화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실행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반도半島이면서 산세가 다양하고, 원예농산물과 특작이 발전되어 있어 다양하고 특색 있는 지역공동체를 만들어 낼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이농에 따른 고령화나 인구 과소화에 따른 행정 서비스의 축소 및 인적자원의 부족 등의 문제들은 다른 선진국들에서도 공통으로 발견되는 사항으로 이들 나라의 지역공동체 재구축 사례와 경험들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해 사업이 필요하다면 여건에 맞는 다양한 사업 방식을 도
입하면 된다. 지역공동체에 필요한 적정한 규모의 사업을 하는 경우에는 협동조합이
가장 적합한 방식일 수 있다. 마을에서 지역 주민이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에 1인 1표의 민주적 운영을 하기 쉽고, 따라서 지역 주민의 참여를 이끌어내기가 쉽다.

지역공동체와 시장의 관계

지역공동체란 특정한 공간적 범위에서 일어난 주민들 간의 기존 경험의 축적(stock)이면서, 주민들의 활동 관계며 과정이라는 흐름(flow)의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다. 구성원들이 어떤 방식으로 결합하느냐, 어떤 객체적 공간 현상이 지역 주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에 대해 주민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를 둘러싸고 지역공동체는 여러 겹으로 만들어진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시장이 크게 발전하지 않으면 농촌 내부에서 자급자족하는 비중이 높고, 이동의필요성이 낮아 교통수단이 발전되지 않아 지역공동체는 대부분 마을단위 혹은 읍면 단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반대로 시장이 발전하면 지역공동체 내부에서 자급자족하는 비중이 낮아지고, 지역에서 생산한 것이 시장에서 거래될 필요성이 높아진다. 이에 따라 교통수단이 발전하여 주민들의 생활권이 넓어지면 지역공동체는 마을을 기반으로 하지만, 좀 더 넓은 권역 혹은 시군의 영역도 지역공동체에서 중요한 부분이 된다. 우리나라는 마을, 읍면, 시군 단위의 중층적인 지역공동체의 범위를 상정하면서 여러 활동이나 제도를 병행하여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이렇게 시장이 미치는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공동체가 지속 가능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역공동체가 협력하여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내고, 이를 판매할 수 있는 역량이 필수적이다. 상품이란 단순히 농산물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각종 가공품이나 문화 상품 등 다양한 서비스를 포함한 개념이다.
시장도 다양한 특성이 있는, 다양한 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정한 시장에서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의 성향에 따라, 판매되는 상품의 특징에 따라 공동체는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자원을 결합하고, 각각에 적합한 접근 전략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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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군에 있는 풀무생협(위)와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카페 ‘뜰’(아래)은 지역의 필요에 의해 주민이 직접 창여해 만든 공동체 활성화의 사례이다.
충남 홍성군에 있는 풀무생협(위)와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카페‘뜰’(아래)은 지역의 필요에 의해 주민이 직접 참여해 만든 공동체활성화의 사례이다.

예를 들어 사과나 시설원예농산물 등 전국적으로 매출액이 많고, 주산지 간의 경쟁이 이뤄지는 농산물은 전업농이 중심이 되어 생산하고,브랜드 가치를 지녀야 하므로 시군 단위의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하고, 여기에 맞도록 지역공동체가 가지는 인적 및 물적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반면에 지역의 초·중등학교에 공급하는 학교급식이나 지역의 주민들과 직거래를 주로 하는 로컬푸드 시장의 경우에는 마을의 다양한 생산 품목을 조사하고, 마을들의 협력 관계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읍면 단위 지역공동체에 적합할 수 있다. 농촌관광은 마을단위 지역공동체가 중심이 되면서 홍보 등의 기능적인 측면은 읍면 단위로 연대하여 조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매우 강력한 지역공동체의 정체성을 가지고 충분히 홍보가 이뤄져 있거나, 이를 대체할 지도자가 있는 마을공동체의 경우에는 공급 가능한 상품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제공되는 상품에 동의하는 소비자들만 조직해도 지역공동체가 만든 상품이 모자랄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시장보다는 생산자-소비자 공동체로 조직될 것이다. 현재 생협은 그런 과정을 겪어 왔다.

지역공동체의 사업 활동과 협동조합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사업이 필요하다면 여건에 맞는 다양한 사업 방식을 도입하면 된다. 주식회사나 합명, 합자회사도 가능하며, 사단법인이나 재단법인으로 필요한 사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수십억 원의 자본금이 필요하지 않은 사업을 주식회사로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사단법인 등의 경우 기부된 자본금을 다시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자본금이 필요한 사업을 하기에는 어렵다.
지역공동체에 필요한 적정한 규모의 사업을 하는 경우에는 협동조합이 가장 적합한 방식일 수 있다. 마을에서 지역 주민이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에 1인 1표의 민주적 운영을 하기 쉽고, 따라서 지역주민의 참여를 이끌어내기가 쉽다. 사업이 제대로 안 되어 어려울 경우 주민들이 탈퇴하여 출자금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노력을 하게 된다.
특히 사업의 대상이 되는 시장의 공간적 범위가 지역공동체와 큰 차이가 없는 경우에는 지역 주민의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기가 쉽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를 종합하면 협동조합은 일반적으로 커뮤니티비즈니스, 즉 지역공동체를 대상으로 하는 가장 유리한 사업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협동조합이 지역에 대해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국제협동조합연맹의 협동조합원칙에서도 드러난다. 7번째 원칙은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Concern for Community)’인데,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동의한 정책을 두고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활동하는 원칙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지역 주민이기 때문에 지역 주민이 곧 협동조합 사업의 이용자, 출자자, 관리자이자, 동시에 수익권자이므로 협동조합이 생산한 부가가치는 투자자에게 수익이 빠져 나가는 주식회사에 비해 지역 내에서 계속 순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부가가치의 지역 내 환류는 초기에는 지역 현금 흐름, 혹은 자원 흐름의 활성화로 나타날 것이고, 이런 과정이 축적되면 자연스럽게 지역 자산을 증대시키게 된다.
협동조합 사업이 활성화되면 지역 주민이 의사결정권을 가진 협동조합이 지역 내에서 차지하는 일자리의 점유율이나 지역 내 총생산액의 비율이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경기변동 시 지역 외로 자본을 유출하는(기업 이전 등) 행위가 줄어들어 불황이 닥쳐도 지역의 충격은 줄어들 수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지역사회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이를 다음의 그림으로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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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지역사회에서 협동조합이 할 수 있는 사업은 다양하며, 발전할수록 더 큰 규
모의 사업을 할 수 있다. 협동조합 사업이 활성화되면 지역 내에서 차지하는 일자
리의 점유율이나 지역 내 총생산액의 비율이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경기변동 시
지역 외로 자본을 유출하는(기업 이전 등) 행위가 줄어들어 불황이 닥쳐도 지역의
충격은 줄어들 수 있다.

협동조합이 함께하는 지역공동체 만들기
농촌 지역사회에서 협동조합이 할 수 있는 사업은 다양하며, 발전할수록 더 큰 규모의 사업을 할
수 있다.
협동조합이 지역사회를 눈부실 정도로 바꾸어 놓은 대표적인 사례가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이다. 1941년 스페인의 작은 마을 몬드라곤에 부임한 호세 마리아 신부는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1943년 직업기술학교를 만들어 지도자를 양성했다. 이들이 11년이 지난 다음 ‘울고(Ulgor)’라는 석유난로를 생산하는 노동자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를 시작으로 노동금고나 소비자협동조합, 연구협동조합 등 다양한 협동조합과 자회사와 지원기관 등 세계적 협동조합복합체로 성장했다.
초기에 몬드라곤의 슬로건은 ‘저축하지 않으면, 짐을 싸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저축을 하지 못해
새로운 협동조합형 사업체를 만들지 못하면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가는 것을 시작으로 지역이 쇠퇴할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제공해 주면서 지역 주민을 끌어 모았다.
우리나라는 재벌이라 불리는 대규모 기업군이 이미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제조업을 새롭게 만들기는 어렵겠지만, 농특산물의 6차 산업화 및 농촌의 매력을 활용한 각종 사업, 농촌의 특성에맞는 복지정책의 전달 체계를 새롭게 만들어 가는데 협동조합이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새로운 다양한 협동조합들은 기존의 농촌 금융을 담당하는 농협이나 신협 등과 협력하면서 농촌지역의 자원을 지금보다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16※필자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 가톨릭농민회 교육부장, 한국농어민신문 기자, 지역농업네트워크 이사를 역임했다.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에 관한 연구’와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과의연계 방안’, ‘농협중앙회 경제사업 활성화 방안’ 등 실천적인 연구를 수행했다. 협동조합에 대한 다양한 집필활동과 강연, 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