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계사년(癸巳年) 새해, 새 정부가 출범하는 올해 농축수산업계도 새로운 희망을 품고 한해를 시작했다.
올해는 특히 최초의 여성 대통령 시대를 맞이한 만큼 농업 현장에서 이중,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여성농업인의 지위와 역할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낳고 있다.
여성, 농업의 핵심인력으로 부상
여성농업인은 과거에는 농업보조자 수준에 머물러 있었지만 지금은 현장의 핵심인력으로, 농업·
농촌의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들어서는 업계 영향력 있는 농업경영인(CEO)으로 명성을 날리는 여성농업인도 적지 않게 배출되고 있다.
파프리카 수출 주역으로 손꼽히고 있는 농산무역(주)의 조기심 대표, 버섯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머쉬하트의 김금희 대표, 유기농업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전양순 우리원 대표 등 스타 여성농업인들이 속속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농업인들의 활동 영역은 벼농사뿐 아니라 화훼, 축산, 농수산물 가공, 마을개발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실제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농가 인구에서 여성인구의 비중은 70년대 이후 50% 이상을 유지하고 있으며 2011년 현재 50.8%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농업주종사자 인구 중 여성의 비중은 70년대 28.3%에서 2011년 52.7%로 약 2배 가량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또 2010년 농업 주종사자 여성의 82.9%가 1년에 6개월 이상, 9.7%가 3~6개월 동안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92.6% 이상이 1년에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12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해 농업인의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 경우는 최소 82.9%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농가 경영주 중 여성 농업인 경영주 비율은 2009년 기준 18.4%에 그치고 있다. 여성 농업
인이 농가 경영주가 되는 경우도 대부분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서 농사짓는 고령의 여성 경영주인 것이 현실이다.
이중, 삼중고에 시달리는 현실의 벽
성공한 여성농업인들이 배출되는 등 여성농업인의 역할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아직 현실의 벽은 만만치 않다. 여성농업인은 ‘농업인’으로 역할 뿐 아니라 가사와 양육까지 도맡아 해야 하는 등 이중, 삼중고를 겪고 있다.
여기에 상당수의 여성농업인들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면서도 ‘농업인’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토지를 소유하거나 자신 명의의 통장 하나 제대로 갖지 못하고 있다.
<실경작지 경영 이양 직불자격이 없는 경우>
“남편이 죽고 애들이 어리니까 문중에서 농지를 종중 어른 이름으로 한겨, 내가 시집 가 버릴까 봐,날 못 믿는겨, 그것이 여적지 그렇게 돼갔고 벌써 30년 이상 그 땅에서 농사를 지어왔는데도 땅이 내이름이 아니니깐 경영 이양 직불제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겨.”(오○○, 65세, 대전시)
<여성이 실질 경작자임에도 농어민연금 가입자격 제한>
“남편이 10년간 ○○학교에서 일하고 농사는 내가 다 지었는데도 농어민연금 가입하려니까 자격이 없다고 아예 말도 못 꺼내게 해서 가입을 못 했어. 지금 그 연금을 받으면 좋을 텐데.”(김○○, 67세, 경북 영양군)
<교통사고 등의 보상에서 농업인 아닌 농촌 주부로만 평가된 사례>
•한우 300마리를 키우는 농가의 40대 중반 여성이 축사 근방 1km 근방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
으나 일당을 농촌 주부로 간주해 보상받은 사례(경남 김해시)
•낙농을 하는 여성농업인이 교통사고로 입원한 동안 1일 5만 원씩 주고 대체일꾼을 썼음에도 본
인은 1일 2만 7,000원 수준에서 보상받은 사례(충남 공주시)
이는 농촌진흥청이 조사한 여성농업인이 경험한 불평등 사례들이다.
여성농업인 비중 급증에도 사회적 참여는 여전히 제한적
이뿐만이 아니다. 여성농업인이 농업에 종사하는 비중이 급증하고 있음에도 사회적 참여는 여전히 제한을 받고 있다.
실례로 2012년 9월 말 현재 농협의 총 조합원 210만 6,000명 중 여성조합원 수는 전체의 32%인
66만 5,000여 명이나 되지만 여성조합장이나 대의원, 이사 등은 손에 꼽을 정도로 부족한 현실이다.
그 이유는 농협의 의사결정기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먼저 조합원이 돼야 하는데 여성이 조합원이되기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조합원으로 가입하려면 여성농업인의 경우 본인 명의 농지를 소유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집안의 가장인 남편 명의로 농지가 소유된 상황이다.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농협 이사는 일종의 명예직으로 인식돼 남성조합원들이 쉽게 여성농업인에게 자리를 주려 하지 않는다.
또한 농협을 통해 이뤄지는 모든 사업을 남편 명의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용 실적을 인정받는 것도 불리한 게 현실이다.
여성농업인의 지위향상과 복지향상 강화 _ 여성농어업인 육성정책
농림수산식품부는 여성농업인들이 농업분야에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지난 2001년 ‘여성농어업인육성법’을 제정하고 이를 계기로「여성농어업인 육성 5개년 계획」을 추진, 현재 3차 계획을 추진 중이다.
오는 2015년까지 추진되는 3차 계획은 창조성·전문성·리더십을 겸비한 여성농업인을 육성하고 생애 주기별 맞춤형 지원으로 ‘여성농어업인의 삶의 질을 향상’을 비전으로 삼고있다.
이를 위해 농어업 경영체 등록제 참여율을 높이고 경영주가 아닌 여성 농어업인도 연금보험료를 지원해 주며, 중앙과 지자체 각종 농정 관련 위원회에 여성 참여 비율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도록 하고 있다.
또 전문 농어업인으로서 역량 강화를 위해 리더십 교육을 강화하고 여성친화형 소형 농기계 개발에 나서는 한편 체험마을 지도자 과정 등에 여성 참여 비율을 30%로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출산 전후 여성농업인을 위한 농가 도우미 지원을 확대하고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과 ‘농어촌마을 공동 아이 돌봄센터’ 지원을 확대하고 여성농업인의 문화 활동 지원을 확대해나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여성농업인 스스로 역량을 강화하고 위상을 높여 나가야
이 같은 정책 추진에도 아직 생산현장에서 여성농업인의 위상이나 사회적 지위, 삶의 질은 낮은 수준이다. 여전히 농업생산 주체로 인식되기보다 생산보조자, 농가주부 등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여성농업인이 제대로 된 지위와 역할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책적으로 농업인의 지위를 확보해 주는 것과 사회 참여를 강화하고 여성 스스로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우선 여성농업인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하는 정책뿐 아니라 농업·농촌·농업인과 관련해 모든 정책에 여성농업인의 상황을 반영하는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또한 여성농업인의 사회적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여성농업인 할당제’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더 확대해 나가야 한다. 그 목적으로 지역농협의 여성 조합원 수에 비례한 여성 이사 할당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농업분야 여성 국회의원인 윤명희 의원(새누리, 비례)은 이와 관련 지난해 지역농협 이사, 지구별수협 이사, 지역산림조합 이사 중 1명 이상을 여성 조합원 중에서 선출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농업협동조합법 일부 개정 법률안’, ‘수산업협동조합법 일부 개정법률안’, ‘산림조합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여성 농업인의 역량개발을 확대하기 위한 교육의 기회도 지금보다 더 확대해야 한다. 농업경영에 필요한 전문기술은 물론 리더십 배양과 정보화 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기능 등 능력개발과 자기계발을 보다 강화해 나가는 데 주력해야 한다.
아울러 여성농업인 스스로 인식 개선과 자기 노력도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여성농업인들 스스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남성에게 미루지 말고 적극적으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는 등 보다 주체적으로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고, 지위를 향상해야 한다.
※필자 최상희 : 농수축산신문 편집국 부국장. 한국농업기자포럼에서 활동 중이며 현재 농림수산식품부를 출입한다. 농산물 유통, 소비트렌드, 마케팅 분야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