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여린 민들레를 뜯고 있는데 낯익은 화물차 소리가 들린다. 이웃집 경순이 아빠다. 포대거름을 싣고 수박 하우스로 가는 중이란다. 이어 윤정이 아빠와 동리 노총각도 한 짐 가득 싣고뒤따라 내달린다.
내 어린 시절 농촌의 봄은 밭에 인분 뿌리는 일로 시작되었다. 두엄자리에 인분을 묻어 썩힌 퇴비를 삼태기에 담아 무르팍으로 탁탁 치며 흩뿌리던 이야기는 이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이야기가 되었다.
이삼십 년 전만 해도 경운기가 최고의 농기계라고 믿었는데, 화물차가 짐을 나르는 요즘 농촌에서는 경운기 소리조차 듣기 어렵다. 그만큼 화물차는 농사꾼에게 없어서는 안 될 주요 운송 수단이 된 것이다. 화물차가 워낙 자주 드나드는 바람에 지나가는 소리만으로도 누구의 운전 솜씨인지 알 수 있다.
돼지를 키우고 있는 우리 농장에는 화물차가 두 대 있다. 사람 나이로 보면 탑차는 팔순쯤 되고 보통 화물차는 환갑 나이쯤 된다. 그런데 늘 카센터에 드나드는 것은 젊은 화물차이다. 환갑의 화물차는 카센터를 자주 드나들어 조심조심 운행하는 반면, 튼실한 탑차는 팔순 나이지만 묵묵히 일을 잘해 믿거니 하고 무거운 짐을 많이 싣는다.
탑차를 사던 때가 생각난다. 짐을 많이 날라야 하던 우리는 화물차가 꼭 필요했다. 갖고 싶은 자산 목록 1호로 꼽을 만큼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중고차도 사기 어려울 만큼 형편이 여의치 않았다. ‘퍼퍼퍽’ 소리 내며 지나가는 낡은 화물차만 바라보아도 부러웠다.
그러던 차에 시동생이 운송을 맡았던 탑차라며 길이 잘 든 화물차 한 대를 끌고 왔다. 닦고 조이고 손질이 잘되었으니 크게 고장 날 일이 없을 거라 했다. 그렇게 벌써 우리 집에 온 시간이 8년여, 전주인의 세월까지 합하면 12년이 넘는다.
돼지 새끼가 자라 2개월 정도 되면 미운 7살처럼 이리저리 날뛰며 드세어진다. 힘 좋은 팔순 차는 그런 새끼 돼지들을 전담하여 실어 날랐다.
길모퉁이에서부터 낯익은 차 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집 노장 탑차 소리다. 새끼 돼지들의 아우성과 함께 뽀얀 먼지를 꽁무니에 매달고 들어선다. 그런데 탑차가 노쇠한 소리를 낸다. 속도를 줄였는데도 ‘크르륵 크르륵’ 하는 소리가 내 관절염 통증보다 더 아프게 들린다.
급기야 팔순 차를 카센터에 입원시켰다. 이곳저곳 부속을 갈아 끼우고 닦고 조이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남편과 함께 카센터에서의 치료를 끝낸 화물차에 오른다. 농장으로 오는 동안 우리에게 헌신해준 팔순 차에게 이제는 힘에 맞는 양만큼만 일을 시키자고 했다. 남편의 말처럼 노년을 맞아 구순으로 넘어가는 시기인 것 같으니 무리하지 않게 운행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동리 입구에 다다르자 오르막 진입이 걱정된다. 하지만 팔순 차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부드럽고
힘차게 진입한다.
팔순 차도 농촌에 살다 보니 농사꾼이 되어 있었나 보다. 아니 농부처럼 새봄의 일 철을 알고 있
는 것 같다.
나는 팔순 차에게서 자주 동병상련을 느낀다. 묵묵히 일 잘하는 화물차의 운명이, 뙤약볕 아래서
땅을 일구는 농사꾼의 운명을 닮았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운전석에 앉으면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한다. 나와 인연이 되어주어 고맙고 우리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고맙다. 우리 인간 개개인이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이 없으며 각자의 역할 분담이 있듯이, 차 또한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다. 고급 승용차와 화물차라는 차별이 다를 뿐이다.
들녘에는 온갖 생명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동안 팔순 차가 한 일을 생각하며 상념에 젖어 있는데 귀에 익은 화물차 소리가 들려온다. 거름을 부려 놓고 들어가는 이웃들이다.
부지깽이도 춤을 춰야 한다는 일 철이다. 마주앉아 넋두리 늘어놓을 시간은 없어도 지나갈 때마다 웃는 농부의 환한 표정에서부터 봄은 피어난다. 나도 아지랑이 너울에 봄 향기 얹어 환한 미소로 인사한다.
※필자 박윤경: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장. 충북 진천 청림농장에서 28년째 돼지를 키우고 있다. 문예한국 수필로 등단했으며, 활발한 문학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