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숙·노태환 가온들찬빛농장 대표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이 만나 하나가 되는 곳. 경기도 양평군의 두물머리는 ‘유기농’의 상징으로도 유명하다. 최근 몇년간 ‘농사가 투쟁’이라는 슬로건이 걸릴 정도로 치열했던 이 공간, 2013년, 두물머리에는 이제 ‘농사’가 없다. ‘4대강 마지막 저항지’라는 이름이 남아있을 뿐이다.
유정숙 씨(46)의 딸기농장은 두물머리에서 한참을 더 들어간 용문면에 있다. 그는 두물머리를 떠나 이곳으로 농장을 옮긴 뒤 올해 처음으로 딸기를 수확했다. 그리고 딸기체험을 한다는 공지를 블로그에 올렸다.
사람들이 올까, 그런 걱정을 했단다. 농사짓는 땅을 옮긴다는 것은 간단하지가 않다. 땅을 만드는 일만해도 몇 년이 걸린다. 유기농은 더 그렇다.
너무 오랫동안 체험을 하지 않아 잊진 않았을까. 그런데 결과가 의외였다. 주말이면 3백 명이 넘게 찾아온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부는 정신이 없다.
다시, 봄이 되었나 보다.
두물머리 농민이 되다
서울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유정숙 씨는 늘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답답했단다. 외삼촌의 권유로 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에 들어가 흙과 작물을 배우니 자신이 타고난 농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참 좋았다. 거기서 두물머리 농민 노태환 씨(49)를 만났다. 그리고 그와 결혼해 농민이 되었다. 팔당 지역은 그 특수성 때문에 유기 농사밖에 지을 수가 없었다.
일반 농보다 몇 배의 수고가 드는 건강한 농산물이었지만 정작 시장에선 대접을 받지 못했다. 고르지 않고 볼품이 없다는 이유였다. 소비자는 바보. 그래서 팔당농민들의 삶은 더 고단했다.
1995년 팔당유기농운동본부가 세워지면서 새로운 전환점이 왔다. 이전에는 정치 상황에 억눌려 소극적이었던 두물머리 농민들이 정부의 일방적인 규제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팔당상수원 친환경농업육성사업으로 활기를 띠었고 2003년 ‘팔당생명살림연대’가 발족하면서 농촌사회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냈다. 노태환 씨는 그 주역 중 한 사람이었다.
생산자조합과 소비자조합, 그리고 두 단체의 협의 역할과 비영리사업을 하는 사단법인까지. 세 단체가 맞물려 돌아가면서 팔당은 다른 농촌 지역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소비자들이 똑똑해지면서 유기농을 찾았고, 팔당의 유기농산물을 판매하는 매장이 10여 곳에 이르는 등 활기를 띠었다.
젊은 귀농자들이 많은 팔당에는 소모임이 활성화되고, 주민들은 높은 질의 문화를 공유했다. 그리고 그다음은 어린이였다.
“농사일은 너무 많아 신경을 못 쓰니 아이들은 그냥 방치 되는 거예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맘이 맞는 사람들과 모여 아이들을 공동으로 돌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어요.”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풀씨방과후학교’였다. 2004년 유 씨의 아이 둘을 비롯해 다섯 명을 모아 방과후학교를 열었다. 놀이중심, 자연과 하나 되는 생명을 존중하는 교육으로 풀씨는 퍼져 나가 현재는 60여 명의 지역 아동들을 돌보는 풀씨배움터 지역아동센터가 되었다.
“짐을 내리면 서로 내려주고 도와주고, 무슨 일이 생기면 내일처럼 걱정해주고. 그땐 정말 가족 같았죠.”
공동체로 현재를 함께하고 미래의 꿈을 공유하던 팔당 농민들은 4대강 사업이 시작되면서 농지를 강제로 수용당했다. 아직도 싸우고 있는 농민이 있다. 노태환 씨도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고싶지 않았지만,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현실적 방법을 찾았다. 그게 지금의 땅이다.
터전을 다시 일구다
엉망진창 버려진 땅. 파내고 또 파내도 비닐 덩어리가 끝이 없이 나왔다. 몇 트럭을 실어 보냈을까. 그렇게 퍼내고 땅을 고르고 비닐하우스를 세웠다.
“(이곳이) 농지로 좋은 땅은 아니에요. 농사에는 꼭 필요한 조건이 물, 햇빛, 온도인데 이곳은 다
좋지 않아요.”
지하수는 없고, 산이 뒤에 버티고 있어 일조량도 좋지 않은데다 올겨울 기온이 -28℃까지 내려가는 악조건이었다. 그런데 노태환 씨는 생각을 달리했다.
“겨울이 춥지만 여름은 선선하고, 또 눈이 한번 오면 3월까지 안 녹으니까 눈을 활용한 무엇인가를 할 수도 있겠지요?”
발상의 전환이다. 그리고 한편, 하우스 시설을 잘 만드는 데 힘썼다.
유기농이란 자재를 함부로 쓸 수 없기 때문에 환경을 잘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 노 씨가 오랜 기간 농사를 하면서 얻은 노하우라 했다.
“유기농은 환기도 잘해야 해요. 그래서 하우스 천장을 열 수 있도록 자동개폐기를 설치했어요. 급수시설도 중요하지요. 환경제어만 잘해줘도 훨씬 비용이 적게 들어요.”
아무리 친환경제제라고 하더라도 많이 쓰지 않는게 좋다는 노태환 씨는 농장의 구석구석 버려지는 곳이 없도록, 손이 덜 가도록, 비용이 덜 들도록, 그리하여 지속 가능하도록 농장을 만들어 간다.
정을 나누며 농업의 의미를 공감하도록
딸기체험은 2006년부터 시작했다. 이전엔 딸기농사를 지어 생협에 보냈는데, 1kg에 4200원을 받았다. 적정가 1만원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블로그를 열었다. 지역에서 처음이었고 반응이 좋았다.
유정숙 씨는 체험 요청이 아무리 밀려와도 오전과 오후 한 팀씩만 받는다. 체험객이 줄지어 오는
다음 체험객 때문에 쫓기듯 돌아가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딸기 체험하고 나서 아이들은 농장 주변의 많은 놀거리들-이를 테면 징검다리 개울이라든가 직접 만든 수레라든가-에 신나게 놀고, 어른들은 아이들이 보이는 하우스 안 테이블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눈다. 그들이 심심하지 않게 고구마도 쪄주고, 농장 한쪽 텃밭에 심어놓았던 상추며 냉이를 캐가도 좋다.
“농촌체험은 이해타산으로 하면 매력이 없어요. 정을 나눠야지요.”
4년 만에 다시 연 가온들찬빛농장. 부부는 올봄, 새로 정돈한 징검다리 위에서 다시 꿈을 꾼다. 도시와 농촌이 정으로 이어지는 따뜻한 꿈이다.
글·신수경 / 사진·김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