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호 한국농수산대학 식량작물과 교수
여름 들판의 초록이 짙어진다. 경기도 여주, 녹음이 짙어가는 논을 찾았다. 야리야리했던 모는 이제 웬만한 바람이나 비에 쓰러지지 않을 만큼 튼튼해졌다. 박광호 교수(제20회 대산농촌문화상 농업기술부문 수상자)가 개발한 기술로 이앙법이 아닌 직파재배를 한 논이다.
이앙에서 다시 직파로
우리나라의 벼농사는 삼한시대부터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공민왕 때부터 볍씨를 논에 뿌리는 대신 모판에 모를 길러 논에 옮겨 심는 이앙법이 도입되었고, 수리시설이 잘 갖춰진 16세기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앙법은 벼농사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2012년, 다시 벼농사 직파 재배가 확산되고 있다. 물론 이전의 직파재배와는 다른, 획기적인 기술의 옷을 입었다.
1995년부터 벼 복토직파연구를 시작한 박광호 교수는 2005년 벼 직파기계의 정밀도와 효율성을 크게 높인 복토멀티시더를 개발했다.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파종기라 알려진 복토멀티시더(다기능 복토직파기). 이것은 직파재배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한 기술이다. 트랙터에 부착한 복토멀티시더는 직파와 동시에 비료를 함께 심어준다. 이로써 못자리를 내고 모내기를 따로 할 필요가 없어져 생산비가 25.8% 절감되고, 화학비료 사용량도 30% 이상 줄일 수 있다.
“2005년이었어요. 한민족복지재단에서 찾아 왔어요. 슈퍼 옥수수도, 의료 보급도 북한사람들의 건강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영양부족이라고.”
그는 한민족복지재단과 북한 6개 지역에 벼 직파기술을 보급하면서 10a당 299㎏이었던 생산량을 516㎏으로 증대시켰다.
“(직파) 이전에는 6,100명이 하던 일을 100명이 했어요. 2006년 말에 시범농장이 북한에서 생산량 1위를 했다며 감사의 뜻으로 쌀 5톤을 보내왔어요. ‘평화의 쌀’이라는 이름으로 실향민과 나누었지요.”
우리 농업기술로 세계에 서다
박광호 교수는 2006년 북한의 성공적인 농업협력사업을 시작으로 수단, 카메룬, 베트남 등 세계 28개국에 복토직파기술을 보급하였으며, 특히 2010년 국제미작연구소(IRRI)에서 현지 비교실증 시험한 결과,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직파기로 호평받기도 했다.
더군다나 이 복토멀티시더는 벼뿐만 아니라 콩이나 옥수수, 유채, 메밀, 사료작물 등 밭작물에도 폭넓게 쓰일 수 있어 그 효용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얼마 전 미주리대학에서 이 기술을 도입한 것을 비롯해 북한,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29개국에 보급 중이다.
“요즘 세계적으로 K-POP이 대세죠. 우리나라 농업기술로도 세계를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복토멀티시더가 그 중심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그는 철분코팅 볍씨를 무논점파 하는 재배기술도 개발했다. 철분과 소석고를 볍씨와 골고루 잘 섞어 물과 함께 뿌리면서 혼합하는 기술이다. 이렇게 하면 코팅된 볍씨는 무게 때문에 잘 가라앉고 뿌리를 잘 내리며 옮겨 다니지도 않아 튼튼하게 자랄 수 있다. 또한 작업 공정의 비용과 노력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일이다.
올해 여주와 이천 등 17개 곳에서 이 방법으로 벼농사가 진행 중이다. 모판을 옮기고 모심기를 할 필요 없이 바로 철분 코팅된 볍씨를 뿌리고 비료도 같이 묻어주는 복토멀티시더 덕분에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했다. 무엇보다 사람의 손이 많이 가지 않아 나이 많은 노인들이 논농사를 짓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올해 실시한 농가의 반응은 무척 뜨겁다. 내년에는 더 많은 농가의 요청으로 직파재배가 확산될 거라 예상한다.
편하게 농사짓는 세상을 위해
박광호 교수는 자신 연구의 목표가 편농(便農)이라고 말한다.
“농촌의 가장 큰 문제는 인력입니다. 사람이 왜 없겠어요. 너무 힘들어서 농촌으로 오지 않는 겁니다. 손쉽게 농업을 하고 또 소득이 보장되며 문화를 영유할 수 있다면, 농촌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올 겁니다.”
그래서 그의 발명품에는 사람의 손이 많이 가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계가 대부분이다.
무논점파기계는 물론이고 무인헬기, 논밭 승용관리기에서 최근 특허 출원 중인 로봇 제초기(로봇오리) 등. 그는 왜 이렇게 농업기계에 몰입했을까.
“어려서부터 농촌에서 자라서 농사일을 많이 거들었어요.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시는데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생각했어요. 쉽게 농사지을 수 있도록 내가 해야겠다고.”
그래서 농대에 진학했고 농촌진흥청과 국제미작연구소를 거쳐 한국농수산대학으로 왔다. 왜 농대를 가느냐는 말도 많이 들었고 좋은 기회도 많이 있었지만 제대로 농업 현장과 만날 수 있는 한농대를 선택했다. 박광호 교수의 전공은 작물생리와 생화학. 어떻게 이러한 기계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기계만 알았다면 멀티시더 같은 기계가 나오진 않았을 겁니다. 생물의 생육을 알고 습성을 알아야 이러한 기계가 계속 발전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농업이 복합학문이라고 하는 겁니다.”
농민이 잘사는 나라
박 교수는 지난해 대산농촌문화상을 수상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저에겐 농민들이 든든한 후원자입니다. 농민들이 좋아하면 저도 기쁘고 즐거워요.”
박광호 교수가 또 하나 이루고자 하는 것은 농민의 소득증대. 잘사는 농민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복토멀티시더’의 이론과 원리를 적용해 ‘마늘 정밀 줄 파종기’를 개발해 시연했다.
“마늘은 벼와 2모작이 가능한 작물이고 다른 작물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큰 편입니다. 다만 심고 수확하는 과정이 인력이 많이 필요하고 또 힘이 들어서 농가에서 선택하지 못하는 것인데, 한두 사람 보조 인력만 있으면 하루 2~3㏊ 파종이 가능한 거죠.”
마늘 정밀 줄 파종기는 마늘을 파종하고 멀칭까지 한 번에 할 수 있어 편리하게 벼와 마늘 2모작을 가능하게 해줄 전망이다.
농업기술은 또 하나의 외교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국제미작연구소 사진을 보여주며 박광호 교수는 말한다.
“이곳은 록펠러재단과 포드재단이 필리핀 정부와 함께 설립한 연구소입니다. 세계적으로 농업과 관련 없는 사람들, 예를 들어 워렌버핏이나 빌게이츠같은 큰 사업가들이 농업에 관심을 갖고 이런 종류의 연구소를 만들거나 지원합니다. 농업이 얼마나 중요한가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또한 농업기술이 갖는 또 다른 의미는 바로, 외교적 차원의 문제다.
“개도국들은 많은 자연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농업기술입니다. 앞서가는 우리 농업기술을 전수하고, 우리는 그들이 가진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자원 외교지요.”
박광호 교수의 기술은 단순히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그 근원, 뿌리를 깊게 심어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건 또 다른 이름으로 ‘인류의 평화’다.
박광호 교수가 뿌리는 볍씨처럼, K-POP의 열풍을 넘어, 우리 농업기술이 전 세계로 뻗어 나갈 때가 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