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지역공동체를 위한
신선한 ‘협동조합’의 미래

최근 들어 협동조합에 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졌다. 올해가 유엔이 정한 ‘세계협동조합의 해’인데다 ‘협동조합 주간’이었던 7월 첫 주 다양한 행사가 잇따랐다. 스페인의 유명한 축구클럽 FC바르셀로나와 미국의 AP통신, 선키스트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협동조합이라는 소식은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다.

특히 유럽 재정 위기 여파로 글로벌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스페인 몬드라곤 같은 협동조합 기업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또 경기 침체로 기업들이 구조조정의 칼날을 휘두르고 노동자들은 실업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와중에 협동조합 기업들은 해고 없이 임금을 줄이는 방식으로 고용을 탄탄하게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협동조합이 어떻게 구성되고 운영되기에 위기에 강한 것인지, 과연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관한 관심과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도 오는 12월 협동조합기본법 발효를 앞두고 협동조합이 우리 경제의 ‘안전판’ 역할을 해줄 것으로 보고 있다. 승자독식의 주식회사 체제와는 달리,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운영과 공동소유, 1인1표, 배당 제한 등이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이란 기대감이다. 정부는 특히 협동조합이 복지와 일자리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에서 협동조합은 낯설기만 하다. 물론 농협이라는 거대한 협동조합이 있
지만 오히려 농민 위에 군림한다거나 농민을 외면하고 있다는 ‘불편한’ 평가가 나오고 있는 현실
을 부정하기 어렵다. 또 농협 같은 생산자 협동조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하지만 전반적인 기업 운영 방식으로서의 협동조합은 아직 손에 잡히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방식으로 협동조합을 하면 일자리를 늘리고 복지 혜택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인지 실제 협동조합이 활성화돼있는 해외 사례가 궁금해졌다.

지난달 초 일본 니가타시를 방문했다. 니가타는 일본의 서부 지역 곡창지대로 우리에게도 잘 알
려진 고급 쌀 ‘고시히카리’와 이 쌀로 빚은 일본 술로 유명한 곳이다. 농산물이 풍부하다보니 농업협동조합(JA)의 활동도 체계적이고 역동적이다. 하지만 니가타를 찾아간 것은 농협 때문이 아니라 ‘사사에아이(서로 의지한다는 뜻) 커뮤니티 생협’이라는 작은 협동조합을 보기 위해서였다.

일본은 생활 속 협동조합이 꽤 발달한 나라이다. 무려 1,000개가 넘는 생협에 조합원은 6,300만 명이 넘는다. 전체 세대의 47%가 조합원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1970년대 말 이타이이타이병이 사회 문제가 되면서 소비자 주도의 산지 직거래가 시작돼 생협이 보편화됐다. 하지만 일본 생협의 활동은 단순히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는 일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지역에서 필요한 일이면 무엇이든 참여하고 구체화시킨다. ‘사사에아이커뮤니티생협’도 그랬다.

니가타 시(市)의 한적한 주택가. 여느 가정집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한 건물에 거동이 불편한 노인 24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중증으로 며칠씩 머물러있는 노인도 간혹 있지만 아침에 와서 식사와 운동, 놀이를 하며 하루를 보낸 뒤 저녁이면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노인이 대부분이다. 바로 이곳이 일반 가정집을 노인들이 생활하기 편리하게 개조한, 이른바 ‘소규모 다기능’ 거택 개호사업소 1호점이다.

일본은 그야말로 노인의 나라다.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선 초고령화 사회로 일찌감치 개호(介護-곁에서 보살핀다는 뜻으로 수발, 간병의 의미) 보험 서비스가 자리를 잡았다. 지난 2006년부터는 개호보험 서비스가 민간에 위탁됐다. 협동조합들은 이 과정에 적극 참여했고 ‘사사에아이 생협’도 조합원의 출자금을 모아 정부 위탁 개호 보험 서비스 사업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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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인 짐보 케이코 씨는 “노인들을 먼 지역의 시설로 보내지 말고 자신들이 살아온 동네에서 365일 서비스를 받게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며 “이용자나 일하는 사람 모두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이곳의 직원은 모두 24명, 노인 이용자 수도 24명이다. 1대 1 서비스를 할 수 있어 만족도가 다른 민간 업체보다 훨씬 높다고 한다. 일본 내 개호시설은 법적으로 노인 3명당 1명 이상의 직원을 두면 된다는데 왜 직원들이 이렇게 많은 걸까? 짐보 씨는 그 이유로 ‘협동조합’을 들었다. “우리는 협동조합이잖아요. 수익을 추구하려고 사업하는게 아닙니다. 물론 적자를 내서는 안 되지만 크게 이익을 남길 이유도 없어요. 수익이 나면 우선 이용자들을 위해 사용하고 그다음은 일자리 나누는 데 씁니다. 그래도 이익이 남으면 다른 협동조합을 위해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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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의 표정도 밝았다. 지난 40여 년 철근 다루는 일을 하다 퇴직한 뒤 이곳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는 사토 하지매(67)씨는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라서 아주 만족스럽다”면서 “나이 차이는 별로 없지만 조금 더 건강한 내가 노인들을 보살피고 또 이들이 즐거워할 때 정말 좋다”고 말했다. 수준 높은 노인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데다 지역 내 일자리까지 만들어내자 이곳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공’ 사업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급기야 자신의 주택을 기증하는 조합원도 나와 현재는 니가타 시에 소규모 다기능 거택 개호사업소 4호점까지 생겼다.

‘소규모 다기능 사업소’ 1호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고차’라는 이름의 작은 카페가 있다. 원래는 선술집이지만 사사에아이 생협이 낮에만 빌려 카페로 쓰고 있다. 여느 카페와 마찬가지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고 간단한 점심 식사도 가능하다. 하지만 사실 이곳은 ‘자기만의 방’에 갇혀 지내던 젊은이들이 이제 겨우 밖으로 나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직업 훈련장이다.

지금 일본의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 가운데 하나는 히키코모리(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병적인 사람)와 니트족((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 학생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직업 훈련을 받지도 구직 활동을 하지도 않는 젊은이)이다. 이들은 사회와 단절된 것은 물론 자기만의 환상에 빠져 종종 이유 없는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일본 정부의 조사 결과 히키코모리가 60만 명이 넘고 히키코모리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는 젊은이는 150만 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일본 정부는 이들이 ‘방 안’에서빠져나올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고 협동조합을 포함한 비영리 법인들에 이 사업을 위탁하고 있다.

카페 ‘고차‘의 점장인 마가라 아유무 씨는 “돈을 벌기 위해 음식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면서 “손님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훈련생들이 여기에서 조리와 서빙, 고객과 대화하는 법 등을 조금씩 배
우면서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한 준비를 한다”고 설명했다. 훈련 중인 젊은이들은 이곳에
오기 전에 히키코모리와 니트족을 위한 전문 직업 상담소 ’서포트 스테이션‘에서 여러 차례 상담을 받았다. 상담소 역시 협동조합이 운영하고 있고 상담은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무기력’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상담을 거쳐 사회 활동에 대한 희망이 생기면 노인 요양시설 청소 보조라든지 단시간 식당 체험 등을 경험하게 해준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발전하면 각종 강좌를 통해 개호 복지사 자격증 등을 딸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한마디로 히키코모리가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맞춤형 컨설팅을 하고는 것이다.

사사에아이 생협 측의 설명을 들으면서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생협이면서 왜 하필이면 노인 복
지 시설을 운영하고 히키코모리 문제에도 관심을 갖는지 말이다. 의외로 답변은 간단했다. 사사에아이 생협의 타카미 유우 전무이사는 “일본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노인과 히키코모리 문제는 우리 지역의 가장 큰 현안”이라며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인 이들을 위한 활동이 필요하다는게 조합원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역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협동조합이 나선 사례는 사이타마현 후카야에서도 접할 수 있었다. 도쿄에서 30km 정도 떨어져 있는 후카야는 조용한 농촌인데 이곳에 소문난 ‘두부 공방’이 하
나 있다. 간판도 없이 허름한 공방이지만 한 달 순익이 180만 엔(2,500만 원)이 넘는 ‘알짜 기업’이다. 매일 아침 이곳에서 두부 200모를 만드는 나카니시 치에코(57) 씨와 동료 3명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나카니시 씨는 “우리 지역인 사이타마 현에서 나는 콩만 고집하고 특히 GMO 콩(유전자변이콩)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면서 “아무런 첨가물 없이 전통 방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맛도  최고”라고 자랑했다. 일본에서 두부 1모 값은 보통 100엔 수준, 하지만 이곳에서 생산하는 두부 1모는250엔이나 된다. 2.5배나 비싸지만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 됐다.

사실, 이 두부 공방은 18년 전 한 물류단지가 통폐합되면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동네 주민에 의해 시작됐다. 느닷없이 해고 통지를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중년 여성들, 농촌 지역에서 중년 여성이 재취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바로 이때 예전에 생협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 주민이나서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처음엔 경영해본 경험도 없고, 자본도 부족해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직원이면서 동시에 경영자인 조합원 모두 최선을 다했고 두부 공방은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인근 지역 생협에서 두부를 안정적으로 판매해 준 영향도 컸다. 그 결과 인근에 2개의 두부 공방이 더 세워지고 직원은 30명으로 늘어났다.

사업도 확장됐다. 처음에는 두부를 만들고 남은 비지(오꾸라)를 모두 버렸지만, 이를 아깝게 생각한 한 조합원이 반찬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인근 농민들이 생산한 채소까지 곁들여지면서 도시락사업으로 확장됐다. 또 도시락을 만들고 나니 자연스럽게 배식(배달)에도 눈을 뜨게 됐고, 배달 사업을 하다 보니 지역 노인들의 개호 서비스(일본의 노인 돌봄 서비스) 수요가 높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결국 지금은 두부 공방과 도시락, 배식, 개호 서비스망을 모두 갖춘 지역의 핵심 사업장이 됐다. 지역 주민 100여 명이 이를 통해 새롭게 일자리를 얻었다. 일본 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 북관동사업본부 쿠로다 야스오 부본부장은 “비록 작은 일이더라도 우리 지역의 현안과 니즈에 관심을 갖다보면 사업은 규모를 갖추게 된다”며 “협동조합의 기적은 이런 것”이라고 말했다.

카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 있는 복지클럽생협 역시 지역 사회에서 필요한 것들을 사업으로 만들어낸 경우다. 1989년 1000여명의 조합원으로 설립될 당시에는 먹거리 공동 구매가 우선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 주민의 니즈가 반영되기 시작했다. 식품을 배달하다 보니 도시락을 원하는 니즈를 발견했고 이후 탁아와 노인 돌봄 서비스의 수요도 확인했다. 필요한 서비스를 하나씩 제공하다보니 현재 사업은 18개 분야로 늘었고 조합원 1만 5,000여 명이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서비스 종류도 다양해 어린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거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콘서트에 데려다 주는 등 일회성 서비스도 가능하다.

다만 이곳의 특이한 점은 서비스의 가격 결정 방식이다. 예를 들어 노인 돌봄 서비스의 경우 지역 내 건강한 조합원이 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 조합원은 나중에 자신이 늙고 힘들어져 같은 서비스를 이용할 때를 고려해 가격을 결정한다고 한다. 복지클럽생협의 하세가와 아쯔시 이사는 “여기서는 일이 고용, 피고용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순환적 관계로 인식하고 있다”며 “따라서 자신이 이용자가 됐을 때 적정 수준이 얼마인지를 생각해 지역 주민이 가격을 정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마치 특정한 지역 안에서 별도의 경제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이에 대해 하세가와 이사는 “인터넷이나 편의점이 발달하면서 지역 내 사람들과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고도 생활을 할 수 있지만 지난해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지역 사회의 중요성에 대해 재인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재난이 발생할 경우 교통마비 등 으로 외부 도움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지는 만큼 ‘지역 내 역량’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복지클럽 생협이 새로운 사업에 진출할 경우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지역사회에 공헌하려는 마음이 있는지가 중요한 잣대라고 하세가와 이사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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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면 5명 이상이 모여 누구나 협동조합을 만들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전통적 협동조합 이외에 육아, 청년 창업, 주택, 복지, 골목상권, 예술 등 과거에 생각지 못한 분야에서 새로운 형태의 협동조합이 속속 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또 어떻게 하면 협동조
합이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물론 협동조합을 지원할 든든한 기금이나 유보금도 당연히 중요하다. 협동조합을 이해하고 기업가정신을 가진 지도자 역시 필요하다. 하지만 가장 기본 바탕은 역시 ‘같이 살아가려는 공동체 의식’이 아닐까 싶다. 좀 더 넓히면 내가 살고 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지역에 대한 애정과 협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일본의 협동조합을 취재하면서 앞으로 우리 농촌에서도 협동조합이 할 일이 많다는 점을 확인했다. 농촌의 노인 돌봄 서비스, 방과 후 학교, 의료, 다문화 가정 등 꼭 필요하지만 그동안 눈길을 받지 못했던 현안이 많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 살기 좋은 지역 공동체를 위해 과거 듣도 보도 못했던 신선한 협동조합이 맹활약하기를 기대해본다.

※필자 임미현 : CBS 경제부 기자, 한국농업기자포럼 활동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일하는 엄마로 먹거리 안전과 농업 생명 과학에 대한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