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농촌, 농촌문화┃오랜 벗 같은 생활문화, 그 의미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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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변하고 있다
세상은 늘 변하고 있지만 근래에 들어와 우리의 주변은 더욱 급속히 변하고 있다. 변화는 세계적인 추세라지만 우리의 변화는 더욱 빠르게 느껴진다. 이러한 현상은 도시지역 뿐 아니라 농촌에서도 상전벽해라 할 정도의 놀라운 변화를 계속해 나가고있다. 좋은 방향으로의 발전은물론 대단히 반가운 일이고 일년 열두 달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애써도 가난 속에서 벗어나지못하던 우리가 경제대국의 대열에 서게 된 것은 자랑스러워 할만 한 일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
그러면 잘 살게 된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어쩌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 농촌에는 배고픔을 면하지 못하던 보릿고개도 사라졌고, 울퉁불퉁 좁고 불편하던 길은 넓고 반듯해졌다. 교통이 발달하면서 전국이 하루 생활권으로 좁혀졌다. 아파트가 세워지고 대형마트가 자리 잡았으며 자동차도 소유하게 되고 자녀 한두 명쯤은 도회지에 나가 있어 도회지 부러울 것 없는 농촌이 되었다.
가축을 부리거나 그 마저 없으면 온몸으로 능률이 떨어지는 농기구를 이용하여 힘들게 짓던 농사는 여러 종류의 기계가 대신하게 되어 그 만큼 수월해졌다. 생산품도 계통판매나 컴퓨터를 이용한 인터넷 판매를 하여 이고 지고 다니면서 물건을 팔던 일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처럼 들리게 되었다. 대금 결제는 은행이나 컴퓨터가 손쉽게 처리 해 주어 일일이 찾아다니는 번거로움을 겪지 않아 시간과 노력을 절약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빨리 도는 변화의 수레바퀴 속에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쉽게 사라져가는 귀중한많은 것들이 있다. 보존해야만 하는 우리 고유의 풍습이나 아름다운 이야기, 버려서는 안 되는 살림살이들을 우리 모두는 쉽게 잃어버리고 있고, 잃었다는 것조차 망각하게 된다.

고 다니면서 물건을 팔던 일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처럼 들리게 되었다. 대금 결제는 은행이나 컴퓨터가 손쉽게 처리 해 주어 일일이 찾아다니는 번거로움을 겪지 않아 시간과 노력을 절약 할 수 있게 되었다.
농촌은 전과 달리 일 년 농사로 겨우 먹고 사는데 그치지 않고 수익사업을 위한 다각적인 연구와 과학적인 방법으로 다양한 종류의 농사를 지어 경제농업을 지향하고 있다. 농촌에서 생산한 작물이나 화훼, 특수작물 등은 우리나라 안에서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고 세계 속으로 수출을 하고 또한 우리가 부족한 것은 수입을 하여 소비하고 있다. 세상은 하나의 커다란 테두리 안으로 들어와 있어 혼자서 독불장군처럼 살아 갈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이렇게 빨리 도는 변화의 수레바퀴 속에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쉽게 사라져가는 귀중한 많은 것들이 있다.
보존해야만 하는 우리 고유의 풍습이나 아름다운 이야기, 버려서는 안 되는 살림살이들을 우리 모두는 쉽게 잃어 버리고 있고 잃었다는 것조차 망각하게 된다.
옛날에 비해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게 된 우리들이지만 모두 만족하기만 한 것일까? 농촌도 경제성을 따지다 보니 서로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뒤지지 않으려고 돌아 볼 새 없이 앞만 보고 달리자니 자연히 각박함이 따르고 여유가 있던 우리의 푸근한 농촌 인심들은 차츰 희미해져 가고 협력보다는 복잡한 일로 인한 다툼이 잦아진다.
물질적인 것은 많이 발전했지만 우리의 정신은 그와 발맞춰 뛰기를 힘들어 한다. 그래서 과거의 우리에게 따듯함과 다정함을 주던 것, 우리의 마음을 감싸주던 옛 것들을 그리워하게된다.

초가는 서민의 삶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초가는 서민의 삶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해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묵은 초가지붕의 볏짚을 걷어 내고 새 볏짚으로 지붕을 잇는다. 썩기 쉬운 겉껍질을 벗겨내어 간추리고 단단한 짚으로 이엉과 용마루를 엮어 지붕을 해 얹는다.
그리고 새로 짠 새끼줄로 단단히 동여매어 다시 한해를 견디어 낼 지붕을 마련하는 것이다.
헌 지붕에서는 굼벵이가 쏟아지고 새 지붕에는 참새들이 자리를 잡는다.

사라지지만 사라지지 않는 것들
장독대. 양지 바른 곳에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나란히 모여 자리 잡고 있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정성스런 손길이 아침저녁으로 닿는 곳, 식구들의 식탁을 위한 간장. 된장 고추장이 담겨있는 장독대는 집안에서 가장 정갈하게손보지 않으면 안 되는 곳 중에 하나이다. 물론 이곳은 단지 먹는 음식의 저장소만의 의미가 있는 곳은 아니다. 집안의 크고 작은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안수를 떠 놓고 두 손을 비벼가며 열심히 기원하는 장소이다. 혹 멀리 길 떠난 식구가 있을 때는 그의 무사귀가를 위해 머리 숙여 기도도 드린다. 혼기가 찬 딸이 있는 집안에는 매파나 신랑 집의 식구가 와서 먼저 장독대를 돌아보고 그 집 규모나 사람 됨됨이를 판단한 연후에 혼인을 성사 시킨다고 할 정도로 장독대는 그 집 살림의 척도였다.
하나라도 깨뜨릴세라 잡인을 금하는 금줄을 두르기도 하고 부정한 사람의 접근을 금하거나 벌레를 쫓기 위해 종이버선을 거꾸로 붙여 놓기도 한다. 시월상달은 물론 떡을 하면 시루떡을 장독대 앞 터주가리에 정성스레 바쳐가내 평안을 기원한다. 이곳은 신성하고도 소중한 가정신앙의 중심이기도 하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된장, 고추장을 비닐봉투나 플라스틱 그릇에 담은 것을 수퍼마켓에서 사다 먹는 요즈음에 는 장독대 찾아보기가 어렵다. 주거공간이 아파트라는 형태로 바뀌고 현대주택에는 장독대가 들어앉을 터는 없다.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바뀌면서 누구네 집의 장이 맛이 있네 없네 얘기 할 일도 없고 비 온다고 장독 덮을 일도 힘든 물청소도 필요 없다. 음식 맛은 그 집 장독에서 나온다고 할 정도로 기본이 되는 것이 장독이었는데 외식과 배달음식을 편리하다는 이유로 즐기는 사람도 많다 보니 장독은 그 설자리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모든 것은 편리하 고 합리적으로 변해간다.
해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묵은 초가지붕의 볏짚을 걷어 내고 새 볏짚으로 지붕을 잇는다. 썩기 쉬운 겉껍질을 벗겨내어 간추리고 단단한 짚으로 이엉과 용마루를 엮어 지붕을 해 얹는다. 그리고 새로 짠 새끼줄로 단단히 동여매어 다시 한해를 견디어 낼 지붕을 마련하는 것이다. 헌 지붕에서는 굼벵이가 쏟아지고 새 지붕에는 참새들이 자리를 잡는다.
70년대 들어와서 일기 시작한 새마을 운동과 함께 시작된 주택개량 사업은 유연한 곡선의 생활 터전이던 초가집과 흙으로 만든 담장은 사라지게 했다. 그 대신 시멘트로 된 새로운 주택이 들어서고 그 안은 세련된 입식부엌과 실내화장실이 자리 잡게 됐다. 농촌에도 생활개선이 큰 효과를 보고 있지만 너무 빨리 진행하는 바람에 우리 고유 의 주거문화의 증거를 남겨두지 못했다. 이제 초가집은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전시물로서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농촌에서 가장 흔한 풍경 중 하나였던 물레방아
농촌에서 가장 흔한 풍경 중 하나였던 물레방아
이젠 밤새워 베를 짤 일도 없어졌다.
이젠 밤새워 베를 짤 일도 없어졌다.

맑은 물이 흐르는 냇물을 가로질러 커다란 돌덩이로 듬성듬성 놓아서 만들어진 다리가 징검다리다. 물에 빠질세라 돌 사이를 조심조심 건너며 조약돌 위로 잔잔히 흐르는 맑은 물에 자유로이 헤엄치며 노는 물속의 고기들을 바라볼 수도 있었다.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 가까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냇가 그곳에 징검다리 대신 튼튼한 시멘트 다리가 놓여 사람이나 차나 거침없이 건너가게 됐다. 게다가 옹벽을 쌓아 막아 놓은 곳이 많아흐르는 물을 멀리서만 바라다보게 됐다. 이제 징검다리는 기억 저편의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밤새워 베를 짤 필요도 없다. 소를 몰고 나갈 일도 꼴을 베어 올 일도 없다. 모든 것은 새롭게 개량되었고 그것은 농촌을 위하여 정말 장려할 만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사라져간 그것들이 안타깝고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왜일까? 빨리 그리고 너무 쉽게 그것들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현재의 편리함 때문에 잊은 것은 아니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 우리가 살아 온 그 방식이 새겨져 있고 젖어 있는데 변화에 적응하고 그것을 잘정리하여 간직할 준비 없이 얼떨결에 떠나보내고 밀려났기 때문이 아닐까?

잃어버린 풍경의 미학
아무리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더라도 우리는 풍요로운 현재를 버리고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불편한 농가주택, 정비되지 않은 도로, 경지 정리되지 않은 논밭과 노력에 비하여 효과적이지 못한 농기구 이러한 것들은 모두편리한 쪽으로 변화되었다. 그러하더라도 우리가 과거의 농촌문화를 완전하게 잊을 수는 없고 버릴 수도 없다. 그것은 우리 조상들의 살아 온 슬기의 역사이며 지혜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었던 시절의 기억이라도 우리의 자산이며 보고이다.

현재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재현하는 노력을 펼쳐야 한다.
현재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재현하는 노력을 펼쳐야 한다.

너무 빨리 버려버린 우리 농촌의 문화를 찾겠다고 이제 사람들은 이런 저런 방법들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생활 패턴이 달라진 지금 이미 의미가 변질되어 버려 원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어떻게 옛 문화를 찾아야 할까?
첫째, 실생활에 적용하지는 못하더라도 지금 남아 있는 우리 농촌문화유산을 보존
하고 재현하여야 한다. 많은 지방에서 그러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축제를 벌이지만 그것은 한때의 보여주기로만 끝나고 시끄러운 행사로 그치는 경우도 많다. 저마다 비슷한 형태의 행사를 추진하다 보니 부작용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좀 더 차분하고 조용히 그리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우리의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내서 보존해야만할 것이다.
둘째,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사라지기 전에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 진정한 의미와 정신을 가르쳐 알려 주어야만 한다. 사람들이 농촌체험과 실습이라는 이름으로 농촌을 방문한다. 그 중에는 학생들도 있고 가족단위도 있으며 직장이나 기타 여러 단체들도 있다. 그러한 체험들은 농가 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도시민들의 농촌이해에 도움이 되는 일로 서로 장려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짧은 시간의 농촌체험으로 농사의 중요성이나 어려움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정신 등을
제대로 인식하기는 어렵다. 맛보기로 조금 보여준 농촌생활을 그저 재미만의 측면을 강조하기도 쉬워 돈을 내고 놀이를 해 보는 데 그치는 태도도 발견된다. 성심을 담은 반복적인 교육을 후대들에게 계속하여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익혀나가는데 힘써야만 할 것이다.
농촌문화는 사물의 문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 어려 있는 우리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나가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사용하는 물건이 바뀌었다고 우리의 고유한 정신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시야가 세계적으로 바뀌었다 해도 우리를 지탱해주는 그 힘은 우리 뼛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조상들의 정신문화에서 나온다는 것을 주지시켜야 한다. 그 정신을 이어 받아 우리는 그것을 지켜내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필자 김애영: 두루뫼박물관 관장. 경기도 박물관협의회 이사와 부천교육박물관운영위원, 사립박물관협회이사를 지냈다. 두루뫼박물관은 김애영 관장의 남편인 강위수씨가 40년간 전국을 돌며 하찮게 버려진 농기구와 생활용품을 모아 경기도 파주에 세운 생활박물관으로, 잊혀져가는 근래의 생활유물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