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업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시작해야 한다. 한국 축산은 왜 존재하고,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의를 해야 한다. 축산업은 당연히 존재해야 하고, 더 많이 더 싸게 생산하면 좋은 일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번과 같은 재앙이 언제 어디서 다시 폭발할지 아무도 모른다.”(이정환 GS&J인스티튜트 이사장)
구제역의 큰 줄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정부는 지난 3월 24일‘방역체계 개선 및 축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은 확실히 고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담은 종합대책이었다. 하지만 보따리를 풀고 보니, 반쪽 대책에 지나지 않았다. 바이러스의 농장 접근을 차단하고, 구제역 발생을 조기에 진단하고, 체계적으로 초동 대응할 수 있는, 방역체계 개선에만 치우쳐 있었다. 축산업의 틀을 바꾸려는 의지가 담긴 이른바 축산업 선진화 방안은 일정 규모 이상의 농장에 대해 허가제를 도입하겠다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축산, 더 나아가 농업 전반, 그리고 환경을 포괄한‘깊은 성찰’은 보이지 않았다.
구제역 재앙이 극으로 치달을 때만 해도, 지금 식의 축산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모아지는 듯 했다. 우리 축산이 갈 길은, 항생제를 쓰지 않는 자연순환형이고 동물복지의 확대이며, 지독한 악취를 내뿜어 농촌의 이웃에게조차 점차 혐오대상이 되고 있는‘닭장 사육’의 극복이었다.
농식품부 당국자들까지 공공연히 친환경과 동물복지를 외치는 분위기였다. 좁은 땅에 사육하는 가축이 너무 많고, 분뇨를 제때 처리하지 못해 세균이 들끓으니, 소와 돼지가 질병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정책 당국자들도 입을 모았다. 그래서 국토가 감당할 수 있는 선까지 사육두수를 줄이는 방안을 차제에 꼭 추진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내비쳤다. 사육공간을 넓혀 축사환경을 개선하는 비용이 더 들어가더라도 가축의 면역력 증대로 생산성이 그 이상 높아질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경제적 타산을 따지더라도 바람직한 정책방향이라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축산강국인 네덜란드와 덴마크의 경우 어미돼지 한마리가 1년에 23~24마리의 새끼돼지를 온전하게 길러 출하하는 반면, 우리는 그 숫자가 15마리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최종 대책에서 동물복지란 단어는 아예 빠졌고, 친환경은 어물쩍 언급됐고, 사육두수 감축은 훗날의 과제로 미뤄졌다. 직접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을 결국 극복하지 못했고, 축산농가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현실론에 밀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축산물의 자급률을 지금보다 더 높여야 한다는 식량안보 논리까지 반대 명분에 동원됐다.
347만 마리의 가축을 땅에 묻고, 3조원의 재정을 축내고, 4천여 개 매몰지와 2차 환경재앙 씨앗을 뿌려놓은 구제역 사태에서 과연 우리가 무엇을 배웠는가? 노경상 한국축산경제연구원장은“환경·위생 이슈와 이를 해결하기위한 가축 사육두수 규제는 피할 수 없는 축산업의 숙제”라면서“우리 현실에 맞게 방책을 잘 세우면 진통이 따르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축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자꾸 미루다보면 축산업 발전에 오히려 더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속가능한 농업은 이미 건강한 전 세계 소비자들의 당연한 요구이다. 영국 뿐 아니라 모든농업선진국 정부들이 앞다퉈 그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분뇨의 악취가 진동하는 비위생적인축사환경과 항생제 주사를 남발하는 공장식 사육구조는 더 이상 환경과 지역주민들에게 용납되지 않는다. 소비자들의 기피 대상이고, 결국 경쟁력 전쟁에서도 뒤로 밀려날 것이다. 한국이 앞으로 얼마나 더 예외로 남을 수 있을지, 그 마감시한은 멀지 않았다.
10년 전에 우리와 비슷한 재앙을 겪었던 영국의 그 뒤 행보는 우리와 단적으로 대비된다.
2001년 영국의 구제역은 살처분 가축 수(645만6천 마리)와 정부 재정지출(5조1천 억 원)에서 2010~2011년의 한국 구제역을 오히려 능가한다. 지금까지 지구인이 겪은 사상 최악의 구제역 참극으로 기록되고 있다. 초동대응실패와 범정부 차원의 안이한 대응, 백신접종 오판이 사태를 키웠다는 점은 우리와 비슷하다.
똑같이 초동대응의 실패를 저지르고 그로 인한 대재앙을 자초했지만, 영국은 실패에서 더 큰 것을 배웠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영국 정부는 구제역이 잡혀가던 그해 6월에 농수산식품부(MAFF, Ministry of Agriculture, Fisheries and Food) 조직을 환경식품농촌부(DEFRA, Dept. for Environment, Food and Rural Affairs)로 바꾸는 혁신을 단행했다. 환경 및 농촌지역과 공존하는 환경농업을 정부 조직과 예산으로 뒷받침한 것이다.
동시에 구제역 사태에서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배워야 할지를 성찰하는 3개의 위원회를 설치했다. 우선 구제역의 직접적인 교훈과 방역대책을 조사하는 2개의 위원회를 꾸려, 1년동안 연구하도록 했다. 세계 최고라는 지금 영국의 방역시스템은 그 산물이다. 더 중요한 것은 축산방역에 문제의식을 묶어두지 않고 농업정책의 근본을 파고들었다는 점이다. 기존의 영국 농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경제·환경·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농업과 식품의 미래 정책을 연구하는 세번째 위원회를 가동했다.
위원회는 6개월 뒤 보고서를 제출했고, 정부는 이를 받아 105개의 제안으로 다시 정리해 1년 동안 보완작업을 했다. 식품과 농업, 농촌경제와 농촌사회의 연계성을 강화하고 환경과 동물복지를 고려하고 다양성을 유지한다는, 지금 영국 농정의 뼈대가 이때 마련됐다. 그 성과는 농업과 생활 현장의 구체적인 결과물로 나타났다. 닭장에 가두지 않고 키운 방목형 달걀 생산이 지난해 영국 전체의 40%로, 16%에 불과했던 10년 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달걀의 생산단가는 높아졌지만 소비자들이 방목형 영국산을 선호하면서 국내 자급률 또한 80%로 오히려 높아졌다.
지속가능한 농업은 이미 건강한 전 세계 소비자들의 당연한 요구이다. 영국 뿐 아니라 모든 농업선진국 정부들이 앞다퉈 그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분뇨의 악취가 진동하는 비위생적인 축사환경과 항생제 주사를 남발하는 공장식 사육구조는 더 이상 환경과 지역주민들에게 용납되지 않는다. 소비자들의 기피 대상이고, 결국 경쟁력 전쟁에서도 뒤로 밀려날 것이다. 한국이 앞으로 얼마나 더 예외로 남을 수 있을지, 그 마감시한은 멀지 않았다.
동물복지 또한 안전한 축산물의 필수요건이 됐다. 유럽연합은 2006년부터 돼지의 사육과 운송·도축·매몰처분에서 최저 복지기준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유럽 대륙보다 동물복지에서 뒤처졌다는 영국에서도 2012년부터 소와 닭을 가둬 기르는 사육이 전면 금지된다.
돼지도 지각이 있어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라는 윤리적 인식을 법제도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1800년 동물학대를 막는 동물보호법안이 영국에서 처음 상정됐을 때만 해도 맹렬한 반대에 부닥쳤다. 노동자들이 전통적인 놀이문화를 즐길 수 있는 권리를 먼저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1822년에야 겨우 소를 대상으로 한 법이 통과됐고, 개와 고양이까지 보호받게 되기까지 또 10여년이 흘러야 했다.
이제는 소비자들 사이에도 상대적으로 쾌적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자란 가축의 고기가 사람의 건강에 더 좋다는 설득력 있는 논리가 공유되고 있다. 시장에서는‘동물복지형 고기’가 더 비싼 값으로 거래되고 있다.
곡물로 사육된 쇠고기가 많은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최근 풀만 먹여 키운 쇠고기(grass-fed beef)가 수퍼마켓의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이미 5년 전인 2006년에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축산이 드리운 긴 그림자(Livestock’s Long Shadow)’라는 보고서에서 각국의 축산이 지나치게 많은 물과 석유를 소비하고, 종국적으로 지구가 감당할 수 없는 환경 부담을 지운다는 점을 경고했다. 전세계 온실가스의 무려 18%가 축산 쪽에서 배출돼, 자동차와 항공기·선박을 포함한 전체 교통 분야에서 나오는 13.5%를 크게 능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보고서는“축산이 지구환경문제를 일으키는 가장 심각한 분야여서 상황을 개선할 긴급한 대책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가축 한 마리당 오염물질 배출을 절반으로 줄일 때, 겨우 환경오염 수준을 지금보다 더 악화시키지 않을 수 있다는 지극히 비관적인 경고를 덧붙였다. 개도국의 성장이 본격화하면서 전세계 가축 사육두수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이산화탄소 배출로만 따질때 축산의 온실가스 영향은 18%의 절반인 9%에 그친다. 하지만, 축산은 온난화에 훨씬 더 해로운 아산화질소와 메탄가스, 암모니아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반환경 산업이다. 아산화질소는 온실효과가 이산화탄소의 296배, 메탄가스는 23배 더 강하다고 한다.
축산은 지구상의 땅과 물을 고갈시키는 데도 큰 구실을 하고 있다. 얼음이 덮이지 않은 지구상 육지 표면의 30%가 가축 목초지로 개발됐고, 전세계 경작면적의 33%가 동물사료 작물 재배에 이용되고 있다. 실례로 아마존 삼림의 70%가 목초지로 바뀌었다. 또, 1㎏의 육류를 생산하는데 1만 8326ℓ의 물이 들어가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결국, 축산 자체가 지구온난화의 대표적인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지구가 살고 전세계 사람들이 공생하기 위해서도 심각하게 공장식 사육방식과 과도한 육류섭취를 성찰하지 않을 수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실제로 환경 및 지역과 공존가능한 농업이 선진 각국 농정의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고, 양식있는 시민들 사이에는 가축을 덜 기르고 고기를 덜 먹자는 공감대가 제법 빠르게 확산돼 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자연순환과 동물복지형 농장 운영으로 알찬 수익을 올리는 선각 농부들이 곳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전남 해남의 동물복지형 돼지농장‘강산이야기’에서는 통상의 농장보다 3배 이상 넓은 공간을 돼지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보통 4평의 우리에 15~17마리를 키우는데, 이 농장에서는 5마리만 넣고 있다. 바깥벽을 터서 햇볕을 충분히 쪼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축사 바닥에는 30㎝ 정도 깊이로 톱밥을 깔아 돼지 분뇨 냄새를 없애고 처리도 용이하도록 했다.
이렇게 비용을 많이 들이고도 그가 수입을 낼 수 있는 비결은 사육의 전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돼지가 스트레스를 덜 받으니 수정률과 출산률이 높아지고, 병에 걸려 죽는 새끼가 줄어들었다. 건강한 만큼 돼지의 성장속도가 일반 농장보다 10% 이상 빠르다. 가장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고기인 만큼 시세를 10~15% 이상 높게 받을 수 있다. 고비용 이상의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지속가능한 경영 구조를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보통 농장에서 연 7천만~8천만 원 들어간다는 분뇨처리비를 들이기는커녕, 이웃 유기농가에 발효시킨 분뇨를 팔아 부수입까지 챙긴다고 한다.
전남도에서는 지자체 중 처음으로‘동물복지형 친환경 녹색축산 육성 조례안’을 상정해, 친환경 축산 지원에적극 나서고 있다. 가축 1마리당 사육면적을 보다 넓게 규제하고, 동시에 그늘막과 음수시설 및 분뇨유출방지턱 등을 갖춘 운동장 설치를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운동장 주변에는 편백 등 수풀과 초지도 조성토록 할 계획이다. 전남도는 동물복지형 농장을 희망하는 농가에 시설비를 지원하고, 그 농장에서 생산된 육류를 학교급식용으로 우선 출하한다는 방침도 세우고 있다.
농식품부는 4월 말까지 이미 발표한 축산 선진화 방안을 보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멀리 내다보고 큰 정책의 줄기를 세우는 정책 혜안이 조금이나마 더 담기기를 기대해 본다. 방역 대책을 제대로 온전히 세우는 일만 해도 여간 벅찬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축산의 틀을 확 바꾸자는 근본적은 접근방식을 취하지 않는다면 구제역 사태는 언제라도 또 터질 수 있을 것이다.
인스턴트 음식에 길든 병약한 아이한테 우선은 제때 예방약을 먹이고 세균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수시로 다시 잔병치레를 하는 아이나 그 아이를 쳐다보는 부모은 불행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아이에게 현미밥을 먹이고 적절한 햇볕을 받으며 운동을 하게 하는, 가장 상식적인 길을 찾아가야 한다.
※필자 김현대: 한겨레신문선임기자, 한국농업기자포럼발기인. 번역서「내인생을바꾸는대학」,「 진보의힘」이있다. koala5@hani.co.kr
※<기자의 시선>은 한국농업기자포럼 기자들이 우리나라 농업과 농촌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만들어갑니다. 한국농업기자포럼은 농업과 농업정책에 애정을 갖고 있는 일간신문과 방송사 및 전문지 기자들이 모여 농업 농촌 현안 이슈를 고민하는 기자모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