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정책수단으로

농업은 공공성이 강하고 공적 기능이 커 많은 나라가 공공재 산업으로 여긴다. 농업을 사유재 산업으로 간주하면, 사유인 내 농지에서, 내 마음대로 농약이나 제초제도 쓰고, 그래서 보기에는 그럴듯한 농산물 만들어 팔아먹으면 나는 잘 살 수 있다. 그러나 그 땅은 망가지고 강물도 오염되고, 그렇게 되면 환경과 생태계 역시 망가진다.
이렇게 토질 수질 다 버려놓고 환경까지 망가지고 나면 환경부가 제아무리 돈을 퍼붓고 노력해도 회복하기 어렵다.
또한, 그 농산물을 먹는 사람까지도 서서히 병들어가고 망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의 몸속에 쌓인
독성물질은 신경을 마비시키고, 뇌를 파괴시켜 아무리 첨단 의료기술을 동원하여 노력하고 돈을 들여도 망가진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기는 어렵게 될 것이다. 그래서 농업은 공공재 산업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UR협정 이후 다국적 글로벌 농기업들이 농산물의 예외 없는 수출입 자유화와 관세의 철폐, 검역의 간소화, 농산물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국내정책의 규제 등 재벌기업들이 무역과 장사를 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모든 정책을 봉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발 빠른 선진국들은 농업의 공익적 기능과 건강한 먹거리 생산 공급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농업의 공공재 산업인식과 공공성 지원의 필요성을 부각시킨 지속가능한 친환경농업으로 상당한 발전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농업정책은 수입개방으로 피해를 보는 농산물 품목에 대한 보상이라는 농민불만 무마용 전략에 집착하여 장기적 농정 방향과 비전이 아닌 땜질식 단기처방에 급급해 하는 것으로 보인다. 피해보전 직불제나 품목별, 농사형태별 직불제 등은 WTO의 규제 대상으로 효력이 상실되거나 국민의 이해부족으로 지속적 시행이 어려운 정책이다. 이미 국민여론조사에서 “쌀 직불금을 왜 공짜로 주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고 정부에서도 당위성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제 서서히 농업직불금을 없애려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우리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농민들에게 충실하게 수행하는 조건을 제시하고 이를 지키는 대가로 비용을 보전하는 항구적인 공공성 지원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논농사가 장기간 물 가두기를 통해 우리나라 지하수의 45%를 공급하고 있으므로 논농사의 경우 면적당 얼마씩의 지하수 생성비를 지급하고, 1년 동안 우리나라의 논이 가둘 수 있는 물의 양이 춘천댐의 18배나 되므로 홍수방지비와 논둑관리를 통한 토양유실방지비 등 환경보존비용을 지급하게 된다면 쌀값이 떨어져도 논농사 소득은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은 건강한 자연환경과 건강한 물, 흙을 유지하게 하는 대가를 지급하는 것이므로 국민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으며, 물관리 비용지원이고 환경보존지원이므로 WTO의 농업 지원규제를 피해갈 방법이라고 본다. 유럽의 농업정책에서는 토양을 살리고 물도 살리며, 환경과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 개선할 수 있도록 농약을 적게 쓰면 적게 쓸수록, 친환경을 넘어 유기농으로 갈수록 지원금을 더 많이 주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 결과 건강한 먹거리의 생산과 건강한 환경의 보존이라는 정책을 달성했고, 농가의 소득보장과 농업의 공공성에 대한 국민의 인식 향상이라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뿐만 아니라 WTO의 농업지원정책(농산물 가격에 영향을 주게 되는) 규제를 피해서 농민과 농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수립했다.
농업은 단순한 먹거리 상품을 만들어내는 산업이 아니다. 먹거리도 건강한 것이어야 하고 그 먹거리를 생산하는 과정이 건강하고 친환경적이어야 하며 공적 기능이 있어야한다. 국민 식량이 종속되거나 농업이 안정되지 못하면 선진국으로 가기 어렵다. 국민 식량이 종속되면 경제도 종속되고 국가자존이 흔들리게 된다.
우리나라는 지금 식량자급률 23%의 식량 종속국이다. 농업개방으로 농산물 수입이 늘어나고 있고 국내 농산물가격의 하락과 농가소득의 감소로 농민들은 불안하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라도 농업정책의 방향을 식량 종속국 탈피와 건강한 농업, 건강한 먹거리, 지속 가능한 친환경농업 기반 확립과 국토 관리라는 공적기능으로 정하고 선진국으로의 발판을 만들어 가야 할 때다.

47※필자 정명채: 한국농어촌복지포럼공동대표. 독일 괴팅엔대학교 농업개발연구소 농업경제학 박사로 한국농수산대학 총장,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농어촌 복지정책』(2015 한국농촌경제연구원)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