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4일 취임한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에 대한 농업계의 기대가 남다르다.
최근 농업과 농촌을 둘러싼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농협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농업·농촌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특히 김 신임 회장은 역대 농협중앙회장 가운데 가장 개혁에 어울리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 만큼 농업계가 거는 기대는 각별하다.
농업·농촌의 위기와 변화
최근 농업·농촌과 관련된 이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위기’다. FTA(자유무역협정),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등이 그러하며 농업 소득감소나 농산물 가격하락이 그러하다. 특히 농업과 농촌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고령화와 삶의 질 개선에 대한 것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농촌 인구의 고령화는 도시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00년 14.7%이던 농촌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13년 37.3%로 증가했으며 전국 읍·면 단위는 81.7%를 나타내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2010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전국 11.3%, 도시지역 9.2%였던 것과 비교하면 심각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인구감소율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을 안고 있는 우리나라가 걱정하는 ‘인구절벽’과 관련 문제들은 농촌사회에서는 이미 시작됐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앞서는 대목이다.
또한, 농촌 지역은 경제활동 위축, 일자리 감소, 공공 및 상업서비스 공급 축소 등으로 삶의 질이 도시지역보다 저하되어 있다. 특히 농업소득 감소는 농업·농촌과 관련한 행복지수를 떨어뜨리고, 도시로의 이탈을 부추기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소비자들의 수입 농산물에 대한 저항도 약해지고 있으며 농업을 사양산업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어 농업과 농촌의 가치와 소중함마저 잊혀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이에 따라 농업·농촌의 경쟁력을 갖추고, 삶의 질을 높이는 가운데 연속성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제로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 유관기관들은 농업·농촌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긍정적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농업의 6차 산업화를 통한 경쟁력 제고, 정주 공간 개선 지원 등을 비롯해 농촌의 의료 및 복지·문화 서비스 지원 등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또한 국민과 소통도 여전히 부족하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다. 농업·농촌에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이 필요한 이유다.
딜레마에 빠진 농협
농협연감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전국적으로 958개소의 지역농협과 117개소의 지역축협, 45개소의 품목농협, 24개소의 품목축협, 11개의 인삼농협 등 1155개소의 농·축협이 있으며 조합원 수만 23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농업·농촌의 곳곳 가장 현장과 가까운 곳까지 모든 조직이 자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농협중앙회는 회원조합에 대한 교육 및 각종 자금지원, 감독 등은 물론 경제사업체와 금융사업체의 역할을 수행, 농업인조합원의 권익보호와 농촌경제 활성화를 지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농정의 대부분은 농협을 빼놓고서는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농협이 농업과 농촌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은 막대하다.
하지만 사업구조 개편 중인 농협은 기존에 안고 있던 부패 등 부정적인 이미지와 이에 따른 신뢰 부족 등의 문제외에도 정체성과 관련한 문제까지 겪고있다. 전문성 강화를 위해 금융지주에 이어 경제지주로의 분리가 진행되고 있지만 주변의 시선은 냉랭하다.
금융지주가 분리되고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것은 협동조합 정신의 실종이다. 농협 금융지주임에도 협동조합 정신이 사라지고, 포괄적인 의미의 뱅커Banker만이 조직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농협이 농업·농촌에 근간을 두고 있는 만큼 뿌리를 잊어서는 안 되겠지만 금융업무의 전문성을 논하면서 협동조합 정신을 다시 거론하는 것도 모순일수 있다. 실적과 수익을 우선하는 치열한 금융권에서 상생, 협력의 협동조합정신은 무장해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지주 역시 농협이기 때문에 ‘농업인과 농촌을 위해 일하라’라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주회사인 탓에 이익을 따져 수지타산을 맞춰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
따라서 농협의 개혁은 단순히 협동조합 정신만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정체성 확립으로 나아가야 한다. 전문성을 강화하는 가 운데서 협동조합 정신을 지향하는 중용의 미덕도 필요할 것이다.
농촌형 복지와 이미지 개선
새롭게 정체성을 갖춘 농협이 먼저 바라봐야 할 곳은 소외된 농촌 현장과 국민이다.
농업과 농촌의 삶의 질 문제나 고령화에 따른 일손부족, 다문화 가정의 증가 등은 농촌형 복지의 필요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협동조합형 농촌 복지 구현이 요구되며 지자체나 유관기관보다 농협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밝히고 있다. 농촌 현장의 가장 가려운 부분을 세세하게 알고 있는 지역조합이 중심이 돼 지자체 등과 연계한 농촌복지체계를 구축해나가야 한다.
농업·농촌에 대한 이미지 개선도 필요하다.
‘신뢰받는 농협, 강한 농협을 열어가겠다’고 약속했던 김병원 회장은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 ‘국민과의 소통을 가장 잘할 것 같은 농협중앙회장’, ‘농업과 농촌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언론이나 매체에 대한 잦은 노출도 마다치 않을 농협중앙회장’으로 꼽히고 있다.
이는 농업과 농촌에 대해 실추되고 있는 이미지를 쇄신하고, 이를 위한 선봉에서 농협의 수장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살기 좋은 농업·농촌은 말로만 떠든다고 될 일은 아니지만 농업과 농촌의 장점을 부각하고, 홍보하는 것은 백번 고쳐 생각해도 타당하다.
특히 농업을 통해서 ‘돈을 벌 수 있다’거나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면 농업·농촌으로의 인구유입이 늘어 자연스럽게 농업·농촌의 고령화와 일손부족 문제도 한시름 덜 수 있을 것이다.
농업소득 제고 위해 먼저 나서야
지역 및 품목조합의 역할도 중요하다. 특히 농촌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지역조합은 농업인의 농업소득 제고를 위해 판로확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현재 농협은 ‘판매농협 구현’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제때 제값 받고 팔아주는 농협’을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이를 위해 농협 로컬푸드직매장도 올해 100개소로 확대하기로 했으며 유통분야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또한 영농부담 경감을 위해 농약, 비료, 농기계 등의 가격안정과 지원을 확대하고 있지만 만족스러운 상황은 아니다.
원인은 농업소득이 아직도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농업소득은 1000만 원대에 머물러 전체 농가소득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도시근로자의 소득과 비교해서는 2000년 80% 수준에서 2014년 61.5%로 급격히 차이가 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농업소득 제고를 위한 판로 다각화와 유통구조 개선, 수급 안정 등의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하며 이를 위한 농업인 교육이 절실하다. 그간 농협은 이러한 목표 하에 사업을 추진해왔지만 농업인의 참여 및 인식 부족으로 ‘사실상 실패’라는 결과를 얻었다.
최근에 만난 한 지역의 조합장은 “‘농업인에게 왜 농협을 믿고 따라주지 않느냐고 하기 전에, 농업인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농협이 먼저 돼야 한다’는 마음으로 일한다”라고 말했다.
농업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농협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필자 이한태: 농수축산신문 수석기자. 농업, 수산, 축산 등 출입 기자를 거쳐 현재는 농협과 농약산업 분야에 출입하고 있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기에 묻고,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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