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먹거리 교육을 위하여

들이는 돈에 비해서 그 성과가 나쁘지 않은 것, 혹은 그 이상이면 가성비가 좋다고 한다. 나는 요 몇 년 사이 특별한 경력은 없지만 ‘가성비’가 나쁘지 않은 식생활교육 전문 강사로 뛰고 있다.
먹거리 교육을 주관하는 조직들은 직능 단체별, 지역별로 복잡하게 얽혀져 있다. 식생활 교육의 수강주체는 여성들이 주를 이루지만 그 연령대는 물론 삶의 배경도 다양하다. 도시의 젊은 여성들을 비롯해서 아이들 다 키워놓고 새로운 직업의 가능성을 ‘식생활 교육 강사’ 로 삼아볼까 싶은 중년의 여성(때로는 남성), 생활협동조합이나 먹거리 운동을 해오던 활동가들, 그리고 지역의 농민들까지.
활동 지역은 더 광활하다. 38선만 넘어가 보지 못했고, 제주도부터 강원도까지 전 지역을 다녀본 셈이다. 종종 새벽별 보고 나갔다가 새벽별 보고 들어오는 일도 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올해 일정표를 살펴보니 3월부터 6월까지 일정이 촘촘하다. 바야흐로 식생활교육도 농번기가 도래한 것이다.
강사 섭외를 담당하는 활동가들은 종종 ‘쉽고 재밌게’ 해 달라는 요청을 한다. 특히 농촌 지역의 주민들이 수강 주체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요즘은 농번기가 따로 있지도 않아 1년 내내 바쁜 곳이 농촌이다. 게다가 먹거리 생산의 최정점인 농촌에서 생산자들을 대상으로 ‘식생활’에 대해 강의를 한다는 것도 난감한 일이기는 하다. 무엇보다 ‘차라리 밭을 매고 말지, 소기증이 난다.’ 라고 하시기 때문이다. 책상 앞에 앉아서 몇 시간씩 강의를 듣는 일은 학생들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주로 우리의 식생활 실태를 다루곤 한다. “현재의 식생활의 실체는 농촌·농업이 사회와 자꾸 격리되는 문제이고, 그래서 농업과 식생활의 관계 회복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를 고민해 보자”고 한다. 강의의 비기秘記가 있다면 농사짓던 부모님 밑에서 호미깨나 잡아 본 것. 소싯적의 경험 팔이 수준이긴 하지만 밭매다 도망친 경험이 밥줄의 원천이 됐다. 밭에서 풀 뽑은 이야기로 시작하면 그나마 마음을 열어준다. 영 서울내기인 줄 알았더니 그래도 풀이라도 뽑아 봤다 하니 좀 들어나 주자의 심정이리라.

하지만 네트워크 조직들의 섭외 방식은 여전히 불편할 때가 있다. 표현은 다 다르지만 ‘초등생 수준’으로 강의를 해달라는 것이다. 강사 섭외를 받을 때 “재밌게 하신다면서요?” 라고 묻는다. 내 연구나 활동의 성과보다는 소위 ‘말발’이 듣지 않는다는 뜻인데 그것은 내게도 못내 씁쓸한 일이다. 물론 활동가들이 정말 수강생들을 초등생으로 생각하라는 뜻은 아닐 터. 다만 수강생들의 교육과정 평가에서 ‘지루하고’,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 는 평가가 뼈아파서였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재미’에 힘을 실어보려는 뜻이리라.

“먹거리가 소비자 지향이어서는 안 되는 이유”
허나 나이 지긋한 농민들은 삶의 지혜가 있다. 평생을 땅에 발을 디디고, 한 손에는 호미를 또 다른한 손에는 농약 줄을 쥐고 긴 시간을 헤쳐 나왔다. 그래서 언어화되지는 않았지만, 몸 자체가 언어이고, 도시 대졸 여성들보다 훨씬 더 몸으로 이해한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다만 강사들의 말이 땅이 아니라 ‘하늘’의 말을 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나 또한 그랬다. 아니 더 최악의 강사이기도 했다. 어설프게 호미 잡아봤다고 알은체를 과하게 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 깨달은 바가 있다.
‘먹거리 교육’은 결코 소비자 지향적이어서는 안 된다. 초창기에 내 교육방식은 공포 조장, 안전 강조가 핵심이었다. 사람들이 패스트푸드와 기름지고 짜고 단 음식들을 많이 먹어서 몸도 망가지고 환경도 망가지고 있노라. 농촌에 가면 시골다운 ‘촌 음식’으로 승부를 걸어보자는 매우 낮은 수준의 말들을 지껄였고, 도시에서는 그러니 우리가 건강한 식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식품들을 다 내다버리자는 식이었다.
동원하는 예시들은 ‘암’, ‘당뇨’, ‘성인병’, ‘아토피’ 등 일종의 육탄전 교육이었다. 무엇을 먹으면 몸이 어떻게 된다더라, 식의 강의는 생각보다 잘 먹혔다. 농업과 먹거리의 지속 가능성은 먼 이야기지만 당장 내 몸은 가깝기 때문이다.
농촌에 가서는 로컬 푸드나 슬로푸드 코드가 요즘 도시 소비자들에게 먹히는 코드이니 이걸 배워서 팔아보자는 식이었고, 도시 소비자들에겐 이렇게 먹지 않으면 당장 큰일 날 것처럼 떠들어댔다.

물 맑고 공기 좋은 농촌의 청소년이 아토피와 비만에 시달린다
내 강의의 방향이 바뀐 결정적인 계기는, 물 맑고 공기 좋은 농어촌 지역에 아토피나 비만과 같은 식원성 질병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조사 결과를 보고 나면서부터였다. 그나마 도시에는 동네마다 슈퍼마켓이 있으니 먹고 싶을 때 사다 먹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농촌에서는 장을 볼 기회가 있으면 라면이나 과자, 음료수 등을 잔뜩 사다가 놓곤 한다. 많이 쌓여 있으면 더 많이 먹는다. 특히 이 음식의 가장 치명적인 이유는 맛있다는 것이고 먹을수록 더 갈급하게 된다는 것이다.
중독의 메커니즘은 당과 기름이다. 달고 고소한 그 매력 속에서 허우적댈 수밖에 없다. 당장 한두개 먹어서 몸에 큰일이 난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니라 미각의 체계가 그렇게 굳어진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공기도 나쁘고 사람도 많이 사는 도시에는 그나마 친환경 식품 전문점도 있고 소비자 생활협동조합도 있어 맘만 먹으면 이용할 수 있다(물론 돈도 있어야 하지만). 그런데 먹거리 생산지인 농촌에서는 친환경 식품에 대한 접근권이 훨씬 떨어지고 그 선택권 또한 매우 좁다.

농촌 주민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의 먹거리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농촌 주민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의 먹거리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반짝반짝 달콤한 당과 기름의 유혹
농촌의 음식도 바뀐 지 이미 오래다. 음식이 반짝반짝, 달콤하다.
기업에서 양산한 물엿과 기름이 빠지지 않는다. 고추장도 잘 담그면서 그래도 떡볶이는 파는 고추장이맛있다며 따로 쟁여 두거나, 됫병들이 초고추장을 사다 놓고 때마다 찍어 먹고 무쳐 먹는다. 마을 특산품이 파프리카면 파프리카를 갈아 밀가루에 넣고 반죽해서 식용유로 부쳐낸다. 그렇게 부쳐내어또 기업에서 만든 진간장에 찍어 먹는다. 연근 주산지면 연근을 갈아 밀가루에 넣고 반죽해서 식용유에 부쳐낸 다음 진간장에 찍어 먹는 무한 반복을 마주치곤 한다.
기업 중심의 식품 체계로의 전환은 한국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먹을 것 부족하던 시대, 원조
를 통해 들여온 밀가루를 받아 국수를 찍어 내고 라면을 튀겨 내었다. 원당과 콩을 들여와 설탕과 식용유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로 사료를 만들어 달걀과 고기 생산도 엄청나게 늘려 놓았다. 그 식품들을 생산한 곳들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재벌들의 근간이다. 농촌의 불행은 그때부터 이미 예고된것이다. 농촌에서 생산한 먹거리로 밥상을 차리지 않아도 끼니를 차릴 수 있으니 농촌이 소중하거나절실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저 쌀이나 공급하고 채소 부속 거리나 싸게 공급하는 기지 정도로인식하는 것이 농촌에 대한 인식수준이다. 도시 소비자들에게 농촌, 농업에 대한 귀중함과 농민들에대한 감사를 아무리 강조한들 먹고 사는 모습에 큰 변화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것은 풀지못한 오랜 내 숙제다. 글로벌식품기업 중심 식품체계의 가장 큰 희생을 치른 농촌의 끼니가 속수무책 무너져 있는 현장을 마주치면서 이 싸움의 불가능성을 되새겨야 했다. 그래서 뭐 먹으면 암에 걸린다는 것이 아니라, 농촌 주민들, 특히 농촌 지역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먹는 문제에 대한 관심 촉구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그래서였다. 농촌에 가서 라면과 치킨, 과자, 콜라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은 말이다. 이미 농촌의 어르신들도 좋아하는 음식이 되어버렸고 이에 대한 이해 없이 소비자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라면과 치킨, 과자, 콜라는 이미 농촌의 어르신들도 좋아하는 음식이 되어버렸고
이에 대한 이해 없이 소비자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 다만 소비자 개인을
탓하지 말고 우리가 이렇고 먹고 입고 쓰게 된 정치경제, 사회 문화적인 이야기를
짚어내는 이유를 알아야 그 이후를 도모할 수 있다. 먹거리 교육에서 정치와 사회
에 대한 교육이 더욱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는 것. 다만 소비자 개인을 탓하지 말고 우리가 이렇고 먹고 입고 쓰게 된 정치경제, 사회 문화적인이야기를 짚어내는 이유를 알아야 그 이후를 도모할 수 있다. 먹거리 교육에서 정치와 사회에 대한교육이 더욱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소위 실무교육이라 하여 식품안전과 영양학에 기반을 둔 먹거리 교육은 소비방식의 개선만을 외쳤던 과거의 새마을운동 부녀자 교육 수준에서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절실하지만 열악한 먹거리 교육 여건
“강사비는 얼마지요?”
수화기 너머 짧고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5년 다 되도록 교육을 뛰어다닌 내가 강사비 수준을 모를리가 없다. 처음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돌아다니다 얼마 전부터 부러 묻는다. 침묵과 어색함의 행간에는 ‘아는 처지에 그런 걸 다 왜 묻나’ 라는 섭섭함과 ‘뜻’으로 하는 일에 ‘뜻’으로 와 달란 속내가 있다. 하지만 지난 5년간은 섭외의 정석을 지키는 사무국을 만난 적이 거의 없다.
자체조달이 아닌 사업비를 지원받아 진행하는 교육사업의 한계다. 강사를 키워내는 강사인 내가 받는 강사비는 시간당 10여만 원 내외. 여기에 미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교통비가 따로 지급되는경우도 거의 없다. 오히려 좀 더 외진 곳의 조직일수록 살림살이는 더 빤하다. 지역에서는 가장 번화한 버스 터미널이나 기차역 근처 관공서가 교육장소이긴 하지만 도시의 시간과는 다르게 흐른다.
버스와 기차 시간은 붕 뜨기 마련이고, 일찍 도착해서 아무리 천천히 동네를 걸어 다녀도 시간은 아직 멀게 남곤 한다. 그래서 같은 강의비면 수도권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농촌농업 연구자인 나는 공부와 조사 차원이다 셈 치지만, 역량 있는 강사들이 뜻으로만 진격하기에 계산기의 마이너스는 발길을 묶곤 할 것이다.
그런데도 돈 문제를 자꾸 묻는 이유는 강사를 양성하는, 소위 전문 강사인 내가 이 정도의 강사비를 받으면, 양성된 ‘식생활강사’들이 먹거리 교육 현장에서 어떤 처우를 받겠는가 하는 답답함 때문이다. 식생활 교육 강사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실제로 학교 단위에서 교육을 펼치고 있는 현장 강사(사실 이런 분이 진짜 강사다)의 시급 수준은 시간당 채 5만 원이 되지 않는데다, 재료비를 따로 지급하지도 않는다. 먹거리 교육의 뜻은 창대했는지 모르겠으나 아직 진행 결과는 이토록 미미하다.
문제의 근원은 감질나는 예산지원 때문일 것이다. 현재 먹거리 교육을 가장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식생활교육국민네트워크는 생협과 농민운동 조직, 먹거리운동 조직, 친환경 식품제조사, 그리고 지역별 조직들이 촘촘하게 엮여 있다. 농식품부 산하의 사단법인 조직으로 예산 대부분을 중앙정부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를 과연 넘어설 수 있을까?
비수도권 지역일수록 먹거리 교육은 더욱 절실하다. 특히 그곳이 생산지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예산은 N분의 1 수준. 경험상 오히려 비수도권 지역은 사람도 적고 여러 상황이 열악하다 보니예산운용은 더 힘들다. 강사인 내 입장에서도 품은 더 들지만 돈은 더 적게 받곤 한다.
5년 넘도록 지역마다 이루어 낸 먹거리 교육의 성과는 적지 않다. 하지만 좀 더 역량은 강화해야 하고 성과는 더 넓게 퍼져야 한다. 나는 현재 먹거리 교육에 더 많은 돈과 정치를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대도시, 그중에서도 서울 중심. 기업 중심의 세금 배치를 다시 할 것을 요청하는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지역의 먹거리교육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지역의 문제는 지역민들이 가장 잘 알고 있고 지역 자체가 중심이어야 한다. 지역의 몫과 자리가 더 커져야 하고 이는 처음부터 먹거리 교육의 지향이 지역 먹거리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에 목표가 확실히 세워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교육은 힘이 세고 지속되어야 한다
얼마 전 경기도 외곽의 농촌 지역에 식생활교육을 다녀왔다. 여성 농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서 아동요리 실습도 하시고 여러 강의도 들으셨다. 마을회관 대형밥솥에 밥을 하고 각각 가져온 반찬들로 풍성한 한 끼를 나누었다. 종이공예 시간에 만든 색색의 종이꽃을 놓은 밥상을 받으면서 다시 한번 교육의 힘을 생각했다.
‘교육’이 아니었다면 한창 바쁜 딸기 철에 딸기 주산지인 이곳 주민들이 만나서 먹거리와 농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까. 그 시간 자체가 지니는 묵직함과 귀중함을 알기 때문에 교육 현장에 나서곤 한다. 다만 지금 한국의 먹거리 교육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말단의 강사인 내가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그 방향성에 대해서 들은 적도 없고 의논하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없다. 그래서 오늘도 ‘알아서’ 돌아다니고 있으니, 아쉬운 것은 강사비만이 아닌 먹거리 교육의 큰 그림과 전망 그 자체다.

20※필자 정은정: 『대한민국 치킨전』 (2014, 따비) 저자. 농촌농업사회학 연구자. 먹거리와 농업의 산업화와 기업화 문제를 치킨. 피자, 라면 등 대중적인 음식으로 풀어내는 현장 연구자로, 농민들과 시민단체. 학교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농업과 먹거리 관계의 회복을 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