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신수경 편집장
미국 LA 여행을 계획하면서 현지인에게 강력한 추천을 받은 곳이 게티 센터였다. 개인이 만든 ‘놀라운’ 박물관이라고 했다.
미국 부자들이 모여 산다는 비벌리힐스 옆 웨스트우드 북쪽 샌타모니카 산기슭에 자리한 게티 센터는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을 품고, 밝은 대리석 건물들과 다양한 식물이 자생하는 아름다운 정원이 조화를 이룬, 그 자체가 예술 작품 같은 곳이다.
게티 센터는 100만 평 남짓한 면적에 석유 재벌 폴 게티(J. Paul Getty, 1892-1976)가 수십 년에 걸쳐 수집하고 소장했던 수만 점의 세계적 미술품을 자랑하는 미술관을 중심으로, 인문 예술 관련 연구소와 교육센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관광객이 오는 명소이기도 하지만 해마다 수천 명의 문화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서도 명성이 높다.
폴 게티가 기부한 막대한 자금으로 만들어진 이곳은 공사기간 10년, 약 1조 원의 공사비용을 들여 1997년, 지금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열려있는 문화 예술의 공간
산 아래 주차장에서 경전철tram을 타고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언덕을 올라가다 보면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빠른 영어 안내에 방심하고 있을 무렵, “안녕하세요”라는 느닷없는 우리말 인사를 듣고 정신이 든다.
미술관 방문자 센터. 여러 명의 직원 혹은 자원봉사자들이 오디오 가이드 서비스를 하고 있고, 건너편엔 각국의 언어로 된 안내서가 비치되어 있다.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찾는 덕분인가, 세계 각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을 위한 배려가 돋보였다.
그리고 놀라운 건, 이 모든 것이 무료라는 점이다. 또한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게티 재단Getty Trust이 전적으로 운영하며, 자원 봉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펀드를 통해 매년 다양한 주제로 전시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고 했다.
“모두에게 무료로 개방하라”는 설립자 게티의 유지에 따라 입장료가 없는 미술관.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모두에게 ‘보편적 복지’를 선물한 기업가라니. 게티의 특별한 사회 환원 방식과 남다른 스케일이 부럽기도, 고맙기도 했다.
훌륭한 기업가 혹은 냉혹한 스크루지 폴 게티(J. Paul Getty)
그런데 이 ‘훌륭한 기업가’ 폴 게티에 대한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당혹감이 커졌다. 모든 이가 공평하게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그렇게 멋진 공간을 남긴 기업가의 이면에는 ‘냉혹한 구두쇠’라는 생전의 흔적이 선명했다.
폴 게티는 스물세 살 때 석유업계의 백만장자였던 아버지 조지 F. 게티의 도움으로 석유사업에 뛰어들어 1966년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 부자로 기록될 정도로 천문학적인 부를 모았다. 그러나 방탕하고 비정하며 탐욕스러운 기업가라는 세간의 평을 들었다. 손자 폴 게티 3세 납치사건 때 아들에게 4%의 이자를 받고 손자의 몸값을 빌려준 충격적 사건과 자신의 사무실에 유료전화기를 설치하고 손님에게 통화료를 받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게티는 가치가 있는 미술품을 수집하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았고, 그렇게 수집한 수만 점의 작품과 많은 재산을 사회에 기부해 지금의 게티 센터를 있게 했다.
생전 ‘냉혹한 구두쇠’로 악명 높던 폴 게티는 이제 미국인이 존경하는 인물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문화 예술에 대한 책무. 스크루지 기업가의 마지막 선물을 다시 떠올리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복잡해진다.
파란 하늘만 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