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제주와 농민의 자부심을
한 상자에 담다

홍창욱 무릉외갓집 영농조합법인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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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씨앗으로 기른 팥과 토실토실한 고구마, 제주의 향을 가득 품은 감귤을 비롯한 제철 농산물과 어떻게 하면 맛있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지 적힌 편지 한편에 활짝 핀 제주 동백꽃 사진까지. 상자 한가득 알차게 담긴 무릉외갓집의 꾸러미를 열면, 마치 집에서 부모님이 챙겨 보내준 것 같은 정성이 느껴진다.
무릉외갓집 영농조합법인은 제주 농민들이 자식 키우듯 기른 친환경 제철 농산물 꾸러미를 도시의 회원들에게 매달 보내며 500여 명 회원의 식탁에 건강한 먹거리를 전하고 있는 제주 무릉2리의 마을기업이다. 홍창욱 무릉외갓집 실장은 제주 마을의 농산물을 매달 정성스레 골라 꾸러미에 담고 직접 발로 뛰어 전하며, 무릉외갓집이 걸어온 지난 6년의 길을 함께 만들어왔다.

무릉외갓집의 월간 꾸러미. 매달 싱싱한 제주 농산물과 간단한 요리법이 담긴 편지가 함께 온다.
무릉외갓집의 월간 꾸러미. 매달 싱싱한 제주 농산물과 간단한 요리법이 담긴 편지가 함께 온다.
꾸러미에 담길 제주 사회적 기업의 소시지. 친환경 농산물을 비롯하여 제주 밀로 만든 천연 발효빵 등 꾸러미 한 상자 안에도 다양한 가치가 담긴다.
꾸러미에 담길 제주 사회적 기업의 소시지. 친환경 농산물을 비롯하여 제주 밀로 만든 천연 발효빵 등 꾸러미 한 상자 안에도 다양한 가치가 담긴다.

농촌의 옥토와 도시의 식탁을 잇다
“제주의 웬만한 농산물은 모두 이 무릉리 근방에서 난다고 할 정도로 땅이 비옥해요. 제주의 맑은 물과 공기를 먹고 자란 지역 농산물을 어떻게 하면 도심 소비자들과도 정기적으로 나누고 마을을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무릉외갓집과 꾸러미 사업이 처음 만들어졌죠.”
서울을 떠나 제주로 이주하고, 무릉외갓집 일을 처음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홍창욱 실장은 농촌 관련 일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농촌에서 자랐기에 어릴 적 항상 하던 일을 다시 하게 되는 것이 반갑지만은 않았던 까닭이다. 그렇지만 그에게 제주에서 농업·농촌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새롭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결국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과 맑은 자연이, 서울에서 제주까지 먼 길을 거쳐 그를 다시 농촌으로 이끈 셈이다. 그리고 이제 그는 그 자연이 주는 건강한 농산물을 다시 도시와 나누는 일을 하고 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과 1년 내내 직접 저희 손길로 키워낸 농산물은 비교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힘이 들기도 하지만 자식 키우는 마음으로 친환경 농산물을 재배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무릉리 농민의 말에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과 1년 내내 직접 저희 손길로 키워낸 농산물은 비교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힘이 들기도 하지만 자식 키우는 마음으로 친환경 농산물을 재배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무릉리 농민의 말에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제주 영어교육도시 외국인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식문화를 나누는 김치파티를 열었다. ©무릉외갓집

농민들의 땀을 높게 사는 마을기업
농산물 직거래 사업을 하며, 열심히 지은 농산물이 좋은 가격에 팔리길 바라는 농민과 장바구니 물가에 민감한 소비자 사이를 조율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홍 실장은 ‘농민들의 땀을 높게 사는’ 무릉외갓집의 정신을 이어가려 노력한다.
“컨설팅 업체는 저희보고 매입 단가가 너무 높은 게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무릉외갓집의 존재 이유는 상업적으로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는 농민들로부터 농산물을 좋은 가격에 매입하는 것에 있다고 봐요.”
싱싱한 꾸러미를 통해 작은 농촌 마을을 널리 알리고, 농민과 직거래 고객을 연결하고, 조합원들이 농민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며 거래할 수 있게끔 하는 것. 홍 실장이 무릉외갓집에 거는 의미이자 꿈이다. 6년간 무릉리와 함께 이어온 그의 걸음이 오늘도 부지런히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제주로, 농촌으로 떠나와 만난 든든한 인연
“농촌 사는 것, 농촌에서 일하는 것이 좋아요. 아직까지 젊은 사람이 뭔가를 도전해볼 수 있는 곳이고, 제가 농촌에서 자랐기 때문에 보다 이해하기 쉬운 것도 있고요.”

함께 있으면 웃음이 끊이질 않는 무릉외갓집 동료들.
함께 있으면 웃음이 끊이질 않는 무릉외갓집 동료들.

농촌을 굳이 벗어나려 한 건 아니었지만, 어릴 적의 그에게 농촌은 떠나는 게 당연한 곳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떠나서 다다른 서울에서의 삶은 계속 소모되고 있다는 갑갑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아이와 함께 저녁을 보낼 수 있는 삶을 찾아 제주 농촌으로 왔다. 이주해온 삶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이제 그의 곁에는 유쾌한 동료들, 꾸러미를 풍성하게 만드는 제주의 농민과 요리사들, 믿음직스러운 무릉외갓집 자문단까지 그와 무릉외갓집을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어 든든하다.
“무릉리에서 3년쯤 일했을 때는 어릴 적 농촌에서 하던 일이 계속 반복되는 것 같아 힘들기도 했지만, 또 새로운 동료들을 만나 매일 시끌벅적 웃으며 일하게 됐어요. 무릉외갓집을 하면서 주변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는 게 가장 큰 행복이죠. 이 행복을 지속하고, 또 열심히 하면서 무릉외갓집을 마을기업의 좋은 사례로 남기고 싶어요.”
무릉외갓집과 함께, 전부터 이어온 제주 귀농귀촌인 모임과 식물·정원 공부 모임을 통해서도 올해는 더 열심히 농업과 농촌을 공부하며 사람들과 밀도 있게 만나 배우고 싶다는 홍창욱 실장. 무릉외갓집 꾸러미에 담긴 농산물의 다채로운 빛깔을 닮아 있는 그가 무릉리에서 이어갈 여정이 더욱 기대된다.

글·사진 유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