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農이 없으면 도시도 없다

김종수 와룡배움터 프로그램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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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큰 창, 여럿이서 이야기 나누기 좋게 널찍한 마루, 작은 텃밭과 다양한 마을 강좌와 축제 소식이 붙어있는 알록달록한 알림판… 아, 우리 동네에도 이런 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이 자라는 와룡배움터’ 공간에 처음 들어서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대구 달서구 성서마을에 자리한 와룡배움터는 2005년, 마을 학부모들이 함께 만든 방과후학교로 시작되어 지금은 전 세대를 위한 마을교육공동체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4년째 성서마을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종수 와룡배움터 PD(프로그램 디렉터)는 배움터에서 아이, 청년, 학부모를 위한 다채로운 마을 강좌를 기획하고 생태교육, 텃밭 강의를 직접 진행하며 마을 안팎에서 농農적 가치를 나누고 있다.

마을교육공동체 와룡배움터에 들어서면 작은 텃밭과 다양한 마을 행사 소식을 만날 수 있다.
마을교육공동체 와룡배움터에 들어서면 작은 텃밭과 다양한 마을 행사 소식을 만날 수 있다.
와룡배움터의 마을 공유책장에는 농촌, 생태, 교육 등 마을 이웃들이 세심하게 고른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꽂혀있다.
와룡배움터의 마을 공유책장에는 농촌, 생태, 교육 등 마을 이웃들이 세심하게 고른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꽂혀있다.

모든 것이, 농農으로 이어져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보며, 지속 가능성 그리고 농적 가치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어요. 지속 가능한 사회의 중요한 기반이 되는 생태감수성의 의미를 교육 현장에서 나눠야겠다고 생각했죠.”
후쿠시마 사고를 보며 생각의 전환을 겪었다면, 김 PD는 도시농업기초교육과정과 생태텃밭강사과정을 수료하면서 농農이 결국 경제, 사회 전반의 중요한 이슈와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가 다양한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생태텃밭교육, 와룡배움터의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통해 농적 가치를 도시와 나누고 있는 이유다.
“농적 기반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도시도 지속 가능할 수 없어요. 우리 모두 살아가려면 농촌과 도시가 상생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죠. 그러기 위해 도시와 농촌 사이의 접점을 넓혀 생태적인 가치를 다양한 이들과 폭넓게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먹거리 운동도 단순히 내 몸에 좋은 것을 먹는다는 의미에서 나아가 땅과 농민을 살리고 함께 상생한다는 의미로 갔으면 하죠.”

마을에서 농도상생農都相生의 길을 찾다
성서마을 학부모들은 교육공동체 와룡배움터에서 아이들을 함께 돌봤다. 그렇게 맺은 인연과 공동체살이의 경험은 계속해서 마을이 가진 잠재력과 가능성을 키워나갔다. 친환경 반찬가게 ‘우렁이밥상’도 그 결실 중 하나다. 우렁이밥상은 맞벌이 부부, 한부모 가정이 많은 마을에 친환경 농산물로 만든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마을 학부모들이 함께 만든 협동조합이다. 4년째 마을 일자리를 만들고 꾸준히 수익을 내며 건강한 마을기업으로 커가고 있다. 가까운 봉화, 안동, 고령의 소농·가족농과 네트워크를 맺어 도시와의 직거래 판매도 연결한다.

지역 생협과 소농의 친환경 농산물을 재료로 그날그날 만드는 우렁이밥상의 건강한 반찬.
지역 생협과 소농의 친환경 농산물을 재료로 그날그날 만드는 우렁이밥상의 건강한 반찬.

“우렁이밥상에서 일하며 농도상생의 길을 많이 고민하고 또 배웠어요. 지역 농가에는 친환경 농산물의 판로를 제공하고, 직접 먹거리를 챙길 여유가 없는 도시 사람들에게는 건강한 농산물로 만든 먹거리를 제공하는 농도상생의 플랫폼 역할을 해왔죠.”

우렁이밥상의 농산물 직거래는 2천여 명의 회원이 참여하는 밴드를 통해 미리 주문량을 확인하고 재고 떨이 없이 판매한다. 이렇게 농민에게는 제값을 주고 협동조합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직거래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우렁이밥상의 농산물 직거래는 2천여 명의 회원이 참여하는 밴드를 통해 미리 주문량을 확인하고 재고 떨이 없이 판매한다. 이렇게 농민에게는 제값을 주고 협동조합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직거래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김종수 PD는 2016년까지 우렁이밥상 사무국장으로 일하다가 최근 와룡배움터의 교육기획 일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와룡배움터와 우렁이밥상을 통해 마을 안에 의미 있는 사례를 만들고, 농도상생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쓴다. 우렁이밥상은 매년 열리는 가을 바자회에 참여하며 와룡배움터의 교육기금 마련을 돕고, 또 와룡배움터에서는 마을구성원들이 함께 지역 농가에 가서 파종과 수확을 돕고 농산물을 받으며 땅의 순환과 먹거리의 가치를 배우기도 한다.
“직접 농사를 경험해보면 이전까지는 상업, 산업적으로만 보던 농업·농촌을 다시 보고 친환경 먹거리의 가치를 알게 되니까요. 이렇게 마을과 농민이, 또 우렁이밥상과 와룡배움터가 함께 상생의 길을 만들어가려고 해요.”

자급과 순환, 농에 뿌리를 둔 삶
“앞으로 이어질 기후변화, 저성장 시대에 자급자족 농사는 삶의 중요한 핵심이 될 거예요. 그래서 꼭 농부가 되는 게 아니라도 농적 가치를 삶의 뿌리로 삼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봐요.”

와룡배움터 활동가와 마을 이웃들은 고령의 농가에 찾아가 밭일을 도우며 우리 밥상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과 직접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와룡배움터 활동가와 마을 이웃들은 고령의 농가에 찾아가 밭일을 도우며 우리 밥상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과 직접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종수 PD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씨앗·땅·농사·GMO·에너지 등을 주제로 배움을 나누고 함께 텃밭을 가꾸는 생태텃밭교육을 4년째 이어오고 있다.
김종수 PD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씨앗·땅·농사·GMO·에너지 등을 주제로 배움을 나누고 함께 텃밭을 가꾸는 생태텃밭교육을 4년째 이어오고 있다.
대구아이쿱생협, 와룡배움터, 우렁이밥상 등 마을에서 함께 하고 있는 마을 활동가들과 김종수 PD.
대구아이쿱생협, 와룡배움터, 우렁이밥상 등 마을에서 함께 하고 있는 마을 활동가들과 김종수 PD.

한 명의 농민이 2만여 명을 먹여 살리는 지금의 농업은 대량생산을 위해 땅을 죽이는 화학농업으로 갈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우리의 밥상으로 고스란히 돌아온다. 그래서 김 PD는 농도상생 교육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한다. 지속 가능성을 핵심가치로 삼는 퍼머컬쳐Permaculture 개념에 관한 마을 스터디를 시작하고, 6년째 이어오고 있는 생태교육공동체 ‘코이노니아 에듀컬’ 활동 등 마을 안팎에서 다양한 세대와 농적 가치를 공유해온 그의 활동은 자연스럽게 그의 신념과 이어진다.
“진짜 농민과 비교하면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앞으로는 함께 활동해온 마을 분들과 귀농해서 농사도 제대로 짓고, 호주의 세레스CERES처럼 순환하는 농적 삶이 곧 교육의 자원이 되는 생태교육공동체를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일구는 것이 꿈이에요.”
혼자서는 불가능했던 것들이, 함께라면 가능해진다. 꾸준히 흙을 만지며 농에 대한 신념을 다지고, 마을과 함께 그 신념을 현실로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김종수 PD에게 더욱 기대를 걸게 되는 이유다.

글·사진 유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