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거진 농피아 문제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우리 사회의 오래된 악습인 ‘관피아’(관료+마피아) 문제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관피아는 주로 정부 부처나 관련 기관에서 일하다 같은 업계에 낙하산 인사로 재취업한 퇴직 공직자를 부정적으로 이르는 말로 사용된다. 당시는 세월호 참사 책임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해양수산부, 해경 출신 ‘해피아’가 집중적인 비난 대상이 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농피아가 다시 문제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하 농관원)에서 인증업무를 담당하다 퇴직한 뒤 민간업체에 취업한 농피아와 농관원 간 유착이 부실인증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농관원 출신이 운영한 업체가 인증한 농가에서 부적합이 나온 사실을 두고 농가의 도덕성도 거론된다. 정부는 친환경 인증 관련한 유착·비리는 철저히 조사해서 의법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자칫 이러다간 그저 이 나라에서 농사짓는 죄 밖에 없는 농가들이 곰비임비 적폐가 될 판이다.
정부 말대로 친환경 인증 관련 비리는 근절해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적발한 농가들과 인증기관을 처벌하고, 지금까지와 같은 맥락의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 방향이 아니다.
문제는 생산주의, 경쟁력 지상주의 농정
사태의 원인에는 바로 지난 수십 년간 ‘현대화’니, ‘경쟁력’이니, ‘규모화’니 ‘기업화’라는 이름으로 생산성, 효율성만을 강조해온 농정이 있다. 정부는 그동안 수입개방이 불가피하니 농민도 변해야 하고 경쟁력을 가지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했다. 그리하여 보기에도 좋고, 먹음직스러우면서도 가격까지 저렴한 농산물을 대량 생산하도록 유도해왔다. 대표적인 예가 ‘축사시설 현대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한정된 면적에서 최대한 많은 닭을 사육할 수 있도록 축사 신축에 자금을 지원해온 것이고 그 결과가 이것이다.
부실인증 문제 역시 정부가 경쟁력 지상주의 농정의 일환으로 인증 제도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난 일이다. 친환경농업은 농약과 화학비료 등 외부 농자재 투입을 줄이거나 배제하는 것뿐 아니라 자연친화성, 지역순환성을 가치로 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 정책이 인증실적과 목록공시 친환경농자재지원에 집중되면서, 친환경농업조차도 기존의 투입재 중심 생산주의 농정의 모습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여기에는 농사의 과정과는 상관없이 잔류물질 여부를 검사하는 실험실 분석과 결과 중심의 인증체계가 작용했다.
그 대안으로 결과가 아닌 과정 중심으로 제도를 바꾸자는 현장 농민들의 주장은 지금까지도 무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왜일까? 인증을 둘러싼 정부, 농관원, 업계, 자재회사의 이해관계가 농민들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는 것이다.
농피아는 농업 적폐구조의 다른 모습
농피아 문제가 대두되면서 농업과 연관돼 먹고사는 이들이 대체 얼마나 되는지 세간의 관심거리가 됐다. 예전부터 농민 때문에 먹고사는 관련 기관단체 임직원을 ‘농족’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농민 10명당 1명이라고도 하고, 일부에선 7명당 1명이라고도 한다.
조금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농림수산업 직접 종사자 수보다 관련 산업 종사자 수가 더 많다. 농협경제연구소의 연구를 보면 2007년 농림수산 관련 산업 종사자 수는 국내 총취업자 1,878만 명의 21.7%인 407만 명이고, 이 가운데 농림수산업에는 175만 명, 농림수산 투입재 산업 11만 명, 농식품 가공 산업 39만 명, 외식산업 136만 명, 관련 유통산업 23만 명이었다. 또 2008년 농림수산업 부가가치는 24조 원인데, 관련 산업 부가가치는 61조 원이었다. 10년 간 농림수산업 자체의 부가가치는 거의 늘지 않았는데, 생산부문을 제외한 부가가치는 2배 정도 증가했다.(김철민 농협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농림수산 관련 산업의 부가가치와 종사자 수 추정, 2010년 4월)
물론 이 연구와 최근 농피아 논란을 직접 연관 지을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농업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의 비중이 매우 크고, 부가가치도 증가하는데, 농민들의 삶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쨌든 요즘 일부가 드러난 농피아의 문제는 한국 농업에 깊숙이 뿌리 내린 고질적인 적폐구조의 한 단면이다. 다만 주의할 것은, 모든 공무원 출신 재취업자가 문제는 아니고, 농민에게 필요한 존재도 많기 때문에 단순히 퇴직관료라 해서 무조건 백안시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농피아는 현직이든 퇴직자이든, 농업을 통해 이익을 취하면서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농정과 조직과 사업을 좌지우지하는 부류다. 농관원 농피아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수많은 농피아들이 ‘전문성’, ‘농업지원’이란 명분으로 농민․농업․농촌의 전면에, 길목에, 또는 핵심에, 때로는 틈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산다’던가. 이들의 특징은 농업을 지원한다는 목적과 존재 이유와는 달리 자신의 이익과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면 농민의 이해와 반하는 일도 서슴지 않고 한다는 점이다. 60년대 이후 지속된 생산주의 농정, 개발주의 농정이 오늘날 농업, 농촌, 농민의 삶과 지속가능성을 해치면서도 청산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들에 의해 농정이 장악되고, 농정적폐가 구조화됐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마다 수많은 개혁요구가 있었고, 그것을 실행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농업의 가치와 직불제, 농가소득 중심으로 농정을 대전환하고, 농협을 농민 조합원의 것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는 수십 년 전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고, 실천은 더디기만 하다. 현장에서는 농민 중심으로 조직과 사업을 개편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어도, 강고한 이너서클inner circle이 구축한 철옹성을 깨지 못했다.
농피아는 농림축산식품부를 정점으로 농촌진흥청, 산림청 등 외청과 농림축산검역본부, 농관원, 농식품공무원교육원, 국립종자원, 한국농수산대학 등 소속기관 내외에 관계망을 가지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등 공기업과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 농업기술실용화재단,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농업정책보험금융원 등 유관기관에도 촘촘히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농협중앙회와 지역 농․축협을 비롯한 각종 농업관련 기관단체, 협회도 주요한 터전이다. 국회의원과 보좌진, 국회 사무처도 예외가 아니고 지방자치단체와 관련 조직도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한국식품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 농학계 대학을 비롯한 관련 학자들, 농업 관련 민간연구소들, 교육기관들, 컨설팅업체들도 빼놓을 수 없다.
역대 정부마다 수많은 개혁요구가 있었고, 그것을 실행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농업의 가치와 직불제, 농가소득 중심으로 농정을 대전환하고, 농협을 농민 조합원의 것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는 수십 년 전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고, 실천은 더디기만 하다. 현장에서는 농민 중심으로 조직과 사업을 개편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어도, 강고한 이너서클inner circle이 구축한 철옹성을 깨지 못했다.
물론 이 모든 먹이사슬은 농약, 비료, 농기계, 각종 농자재, 식품업체 등 농업관련 기업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이들은 임용 기수, 채용 기수, 학연, 지연, 업무, 용역, 사업, 이해관계를 매개로 생태계를 유지하고 확대재생산한다. 어지간한 기관이나 단체, 기업을 보면 농업 쪽은 모 국립대, 축산 쪽은 모 사립대 출신 하는 식으로 업계가 동심원을 그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관료에 포획된 농정, 자본에 포획된 관료
농피아는 표면적으로 모두 농민과 농업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합법적 또는 관행적으로, 때에 따라서는 편법적으로 정책과 조직과 사업에 관여한다. 계획을 수립하고, 사업을 집행하면서 월급을 받고, 사업비와 보조금, 수수료, 이윤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익을 챙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낡은 생산주의, 경쟁력 제일주의 농정은 이들이 살아가는 둥지였다. 시장개방은 관료들이 앞장섰고, 이로 인해 농촌에 위기가 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농민들도 세계와 경쟁해야 한다며 규모화, 기업화, 현대화를 부추겼다. 개방으로 수입이 늘어나는 마당에 생산을 늘리다 보니 과잉생산으로 가격이 하락하고 다시 농촌이 붕괴하자 이번에는 농촌활력을 증진한다며 지역개발사업을 하고, 6차산업이 살 길이라고 부르댄다. 첨단유리온실에 이어 식물공장, 사물인터넷, 드론, 로봇, 스마트팜이 4차 산업혁명 시대 미래 농업의 희망인 것처럼 그려진다.
농피아 논란으로 드러난 사례에는 동부그룹 동부팜한농이 첨단유리온실로 농업생산에 진출하려다 농민들의 반발로 사업을 포기한 사건이 있다. 당시 농민들의 몫으로 써야 할 거액의 FTA기금을 대기업에 지원하고, 농식품부 고위 관료 출신이 동부팜한농의 임원으로 포진된 사실이 비난 대상이 됐다. 이어 이 회사를 인수한 LG 그룹이 LG CNS를 통해 ‘새만금 스마트 바이오파크’ 사업으로 농업에 진출하려다 여론 악화로 사업을 접었는데, 당시 농식품부 공무원들이 사업 추진을 위해 농민과 언론을 설득하러 다녔다. 새만금개발청과 국무조정실과 다수의 보수언론까지 이들 편에 섰다.
농가인구 감소, 농촌붕괴에도 불구하고 성장주의 정책은 바뀌지 않는다. 그 직접적인 혜택의 일부는 극소수 기업농과 대농에게 돌아가고, 가장 큰 이익은 농자재, 지역개발, 토목공사, 현대화시설, R&D(기술개발), 식품산업, 농식품 인증, 컨설팅 등 관련 기업들이 갖는다. 물론 정책을 만들고 집행한 관료집단과 그 관계망, 정책자금과 농업자금, 농자재, 유통을 다루는 농협도 큰 수혜자이다. 특히 농협은 농민이 주체인데도, 조합은 농민 위에, 농협중앙회는 조합 위에 군림하는 구조로 늘 개혁의 1순위로 등장한다.
이 문제를 누가 풀 것인가?
농정 패러다임을 농업의 다원적 가치와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는 진작부터 있었지만, 의연히 계속돼온 경쟁력 제일주의 적폐구조는 강고하게 똬리를 틀고 있다. 촛불혁명으로 정부가 바뀌었는데도 친환경 생태농업, 농민에 대한 직접지불, 기본소득 같은 정책이 아직도 농정의 중심이 되지 못하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국가 농정의 기본 틀부터 바꾸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과는 달리 지난 정부의 농정을 답습하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 나온 배경에 관료와 농피아의 적폐가 작용했다고 보는 이가 많다.
그렇다면 답은 유일하다. 현재의 농업문제가 그동안 잘못된 적폐농정과 그것을 만들고 쌓아온 농피아에 있다면, 그 구조를 청산하고 개혁해야 한다. 이를 위해 농민들은 촛불에 참여했고, 개혁정부를 갈구했다. 적폐청산은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한 관료나 단체가 할 수 없는 노릇이고,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의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관료, 농피아가 아닌 현장 농민들과 함께 약속대로 ‘국가농정의 기본 틀을 바꾸는’ 개혁에 나서야 한다.
※필자 이상길: 한국농어민신문 편집국장을 거쳐 논설위원 겸 한국농어민경제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돈보다 사람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며, 협동조합에 관심이 많다. 2005년 ‘미디어오늘’에 ‘한국의 전문기자’로 소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