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담긴 농업의 공익적 가치

  농업가치를 헌법에 명시하자는 국민 1,100만 명의 염원이 가시화됐다. 지난 3월 26일 발표한 문재인 정부의 헌법 개정안은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명문화하고 농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국가적 책무로 규정하였다. 이는 한국 농업의 존재의미에 대한 인정이고 새로운 농업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인류의 역사를 3개의 거대한 물결로 분류하였다. 1만 년 전 농업혁명을 제1의 물결, 18세기 영국에서 시작한 산업혁명을 제2의 물결, 그리고 오늘날 인터넷 기반의 정보통신혁명을 제3의 물결이라 칭하였다. 이 세 가지 물결의 공통점은 생산방식의 혁신을 통해 모든 인류의 살아가는 모습(생활양식)과 방식(사회조직), 그리고 생각의 틀(철학과 이념)을 바꿨다는 데 있다. 산업혁명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잉태하였고, 정보혁명은 기존의 산업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며 완전히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 두 물결은 첫 번째 농업혁명이 없었다면 결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농업혁명은 먹거리를 채집과 수렵에 의존하던 인간이 적절한 시기에 씨앗을 땅에 심고 이를 잘 관리하면 수십 배, 수백 배의 산출이 가능한 것을 이해하고 실행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는 18세기 유럽의 중농학파가 농업만이 유일하게 부를 창출하는 가장 중요한 산업이라 인식한 근거이기도 하다. 농업을 중시하는 이러한 전통은 아직도 유럽대륙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스위스 헌법에 명시된 농업의 공익적 가치도 이러한 사상에 근거하고 있다. 농업은 인류의 물질문명뿐만 아니라 정신세계의 바탕이 됐다. 프랑스의 천재 소설가 베르베르는 농업이 인간에게 미래라는 관념을 심어주고 사후의 삶을 상상하게 하여 인류의 정신을 변화시키고 종교를 탄생시켰다고 쓰고 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선진국은 잘사는 농촌을 가지고 있다. 이는 농업발전이 선진국의 전제 조건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 선진국은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이해하고 농업이 생산하는 공익적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제도적 장치와 정책적 지원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진국이 농업을 보호하는 중요한 목적은 농업이 생산하는, 그러나 시장에서 보상받지 못하는 다원적 기능을 지속해서 제공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식량안보는 물론이고, 식품안전성 제고, 지역 간 균형 발전, 도시민을 위한 휴식 공간 제공, 수자원의 유지 등이 그것이다. 또한 농촌과 농업은 경기침체기에 고용을 제공하고 사회 구성원 간 갈등을 흡수하는 국가경제의 완충지대가 된다.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더욱 중요시되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은 농업과 별도로 생산하기 어렵고, 그러나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공공재적 성격을 가지며, 따라서 공익적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가치가 시장에서 보상받지 못하기 때문에 농업이 생산하는 다원적 기능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이를 위한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것이 농업가치가 헌법에 담겨야 하는 이유다.
이번 헌법 개정안에 담긴 농업 관련 조항의 의미는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경자유전 원칙의 유지, 둘째, 농업관련 조항의 독립화, 셋째, 농업의 공익적 기능 명문화이다. 비농업계에서는 이번 개헌을 기회로 기존의 헌법 조항인 경자유전 원칙을 무력화시키려 했지만, 식량안보와 농촌의 균형 발전을 위해 이 조항은 유지되었다. 또한 현행 헌법 123조에 농업과 함께 명시되어 있던 지역경제, 중소기업 관련 내용이 별도 조항으로 분리됨에 따라 농업만을 위한 조항(제129조)이 생겼으며, 이 조항에 농업의 공익적 기능과 지속가능한 발전이 명시되었다.

  농업의 헌법 가치화가 농업에 대한 일방적이고 조건 없는 지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농민은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안전하고 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고, 깨끗하고 건강한 물과 토양, 공기를 유지하는 책무도 같이 지는 것이다. 정부 개정안대로 농업가치가 헌법에 담겨 국민의 농업이 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고 노력해야 한다.

48※필자 양승룡: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농산물 유통 및 가격분석, 쌀 산업과 식량안보, 농산물 무역 등 농업·농촌 발전을 위한 주요 현안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양승룡 교수의 희망농업 콘서트』(2016, 책넝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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