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연구로 피운 ‘희망’의 꽃

정용모 경남농업기술원 화훼연구소 농업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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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시작을 알리는 춘분春分, 종일 내린 봄비로 하늘은 어두웠지만 온실 안은 색색의 거베라 꽃으로 밝게 반짝였다. 태양빛을 닮은 주황색, 푸른빛이 도는 바닐라색… 과연 ‘찬란한 빛’의 거베라다웠다.
  “색이 참 예쁘죠? 같은 꽃도 아침과 오후에 보이는 색이 서로 다릅니다. 매일 꽃밭에 소풍가는 기분으로 출근하니 즐겁지 않을 수가 없지요.”
  20년간 거베라 연구에 매진해온 정용모 경남농업기술원 농업연구사(57, 제26회 대산농촌문화상 농업공직 부문 수상자)의 눈이 반짝였다.

얼굴이 크고 화려한 꽃, 거베라는 화환용으로 인기가 좋다.
얼굴이 크고 화려한 꽃, 거베라는 화환용으로 인기가 좋다.
거베라의 모든 특성을 갖췄지만 꽃잎만 없는 동그란 형태의 변이품종 ‘그린볼’. 자연 변이로 생겨난 아주 희귀하고 특별한 꽃이다. 연중생산이 가능한 꽃꽂이 소재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우리 거베라를 만들어온 20년의 연구
연중생산이 가능하고 색이 선명해 화환용으로 인기가 좋은 거베라. 그렇지만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간, 농민들이 거베라를 재배하기 위해 지불한 로열티는 무려 27억 원에 달한다. 정용모 연구사는 우리나라 재배 환경에 알맞게 51품종의 우수한 국산 품종 거베라를 육성, 농가에 보급하여 약 7억 원의 로열티를 절감했다. 그 결과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전부 수입 품종이었던 거베라도 이제는 국산 품종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품종 육성 과정에서 4백여 개의 종자가 나오는데 그중 원하는 특성의 품종은 하나 정도 나옵니다. 시장에서 선호하는 품종을 하나 개발하려면 거의 10만 개의 종자를 살펴야 하죠.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시간이 필요한 일입니다.”
  수십만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정 연구사는 ‘2013 최고의 꽃 경연대회’ 최우수상을 받은 ‘선셋드림’, 세계 최초 꽃잎변이 품종 ‘그린볼’ 등 시장에서 선호하는 품종을 다양하게 개발했다. 매년 새로운 품종을 개발, 농가에 보급하며 화훼 농민의 든든한 안전망을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20년간 꾸준히 거베라를 연구하며 육종의 감을 익히고 유전적으로 우수한 개체를 모아온 힘이다.

2018년 새롭게 육종한 ‘썬스파’. 색이 밝고 화사해 농가의 선호도가 높다.
2018년 새롭게 육종한 ‘썬스파’. 색이 밝고 화사해 농가의 선호도가 높다.
정용모 연구사는 매주 농민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농가에 보급한 모종을 세심하게 관리하고 현장 실용도를 높인다.
정용모 연구사는 매주 농민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농가에 보급한 모종을 세심하게 관리하고 현장 실용도를 높인다.

거베라,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이전에는 모종 한 포기당 약 500원의 로열티를 내던 거베라 시장. 이제는 정 연구사가 육종한 국산 거베라가 외국으로 수출되어 로열티를 받게 된다. 2017년 12월, 인도에 ‘레몬비치’ 등 5품종의 거베라를 총 1만주, 5,000$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인도 현지에서 증식하여 스리랑카로 수출하고 싶다고 연락이 올 정도로 반응이 좋다.
  “인도가 첫 수출국이고, 앞으로는 네덜란드 등 화훼 선진국이 있는 유럽으로 나가는 게 목표입니다. 유럽은 벽이 높지만 성공하면 자연히 전 세계로 수출될 만큼 파급력이 큽니다.”
  2015년에는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거베라 육종회사 플로리스트Florist에서 연구소에 직접 방문하여 정 연구사가 개발한 ‘핑크샤인’ 품종에 호감을 보이며 네덜란드 현지 실증시험재배를 하기도 했다.
  “네덜란드 현지에서도 색이 정말 곱게 나왔지만 꽃잎이 얇은 게 문제가 되어 아쉽게도 수출은 안됐습니다. 다만 ‘핑크샤인’ 품종이 꽃대도 강하고 수량이 많아 조금 더 보완하면 유럽 수출도 충분히 경쟁력 있으리라 봅니다.”

연구를 이어온 힘, 농민의 한마디
원예학을 전공한 학창 시절부터 정 연구사는 주변 화훼 농가를 다니며 농민들을 자주 만났다. 그가 화훼연구소로 발령받았을 때, 더욱 반긴 건 농민들이었다. 거베라 국산 품종이 있으면 좋겠다는 농민의 바람이 정 연구사에게 큰 울림이 됐다. 정 연구사가 새 품종을 육성하면 농민들이 달려와 본인의 농장에 심어 보겠다며 열의를 보여주었다.
  “새 품종이 기존 품종을 완벽하게 앞서는 일이 아주 귀합니다. 반면 농민은 새 품종을 심었다가 잘못 되면 1년을 버리고 농장이 부도날 수도 있으니 새로운 시도를 망설일 수밖에 없지요. 그럼에도 늘 적극 도와준 농민들이 있어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거베라는 열 송이씩 묶어 파는 유통 과정에서 꽃잎이 상하지 않도록 캡을 씌우고, 꽃대가 부러지지 않게 철사를 끼우고, 철사가 안 보이도록 테이프를 감는다. 정 연구사는 거베라 유통에서 이러한 과정을 줄일 방안을 농민과 함께 고민하고 있다.
현재 거베라는 열 송이씩 묶어 파는 유통 과정에서 꽃잎이 상하지 않도록 캡을 씌우고, 꽃대가 부러지지 않게 철사를 끼우고, 철사가 안 보이도록 테이프를 감는다. 정 연구사는 거베라 유통에서 이러한 과정을 줄일 방안을 농민과 함께 고민하고 있다.

  최근 화환과 생화 소비 위축으로 부쩍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거베라 농민.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려는 의지로 2016년 “경남거베라연구회”를 발족하고, 이후 농민과 함께 고민하면서 정 연구사는 우리 땅에 맞는 거베라 품종을 만드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처음엔 품종이 아주 좋아 농가에 보급했는데, 재배 환경에 따라 안 좋은 결과가 나와서 농민의 원망을 들을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다른 농가에서는 꽃의 품질, 수량도 좋아 외국 품종만큼 가격을 받았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너무 기분이 좋아서 힘들었던 일은 싹 잊어버립니다. 그렇게 농민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연구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어제 봤던 그 꽃, 오늘은 피었을까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으로 훌륭한 농부가 되겠다고 답한 게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생각해보면 지금 저는 농민을 돕고자 품종을 육성하고 농업 관련 전문 기술을 농가에 보급하는 것으로, 농민과 함께 농사짓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어릴 적 꿈을 이루고 있는 거지요.”
  정 연구사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20년간 거베라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20년을 출퇴근하면서 가장 즐거운 것은 거베라 꽃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겁니다. 하늘 아래 같은 꽃은 없어요. 매일 아침, 어제 봤던 그 꽃이 오늘은 과연 피었을까하는 설렘으로 다니지요.”
  20년 연구의 노고와 보람, 설렘이 담겨 있는 꽃. 그 꽃은 이제 농가로 가서 소중한 우리 자원이자 농민의 든든한 기반이 되고, 국경을 넘어 더 많은 축하의 자리를 화사한 빛으로 채워준다. 모두 다른 색으로 활짝 핀 거베라의 얼굴이 꽃말처럼 더욱 밝게, ‘희망’으로 빛나고 있다.

글·사진 유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