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는 하늘이 짓는다’고 한다. 사람이 땀 흘려 농작물을 가꾸지만 그해 농사의 풍·흉을 가르는 것은 결국 날씨라는 얘기다. 이렇게 중요한 날씨가 최근 수상하다. 좀체 감이 안 잡힌다. 날씨를 예보하는 기상청조차 올해 태풍 뒤에 찾아온 엄청난 폭우와 폭염을 예상하지 못했다. 예측 불가능한 날씨 탓에 이제는 ‘이상기후’라는 단어가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기후(날씨)가 이상하다’는 말로 넘기기에 농업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도 크다.
최근에는 전국적으로 더워지면서 농작물의 주산지 지형도도 바뀌고 있다. 사과 주산지가 경북 영천 등지에서 강원도 영월로, 복숭아는 경북 청도에서 충북 음성, 강원 원주 등지로 바뀌는 등 주산지의 북상도 지속되고 있으며 전혀 새로운 병해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 농업 환경의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는 가운데 언제까지고 하늘만을 바라보면 한 해 농사의 풍·흉을 맡기기에는 불안하기만 하다. 이에 따라 이상기온이나 기후변화에도 불구하고 농업인의 소득을 안정시켜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절실해지고 있다.
종잡을 수 없는 하늘, 올해도 농심農心 울렸다
지난 7월 대한민국은 제7호 태풍 ‘쁘라삐룬’ 경보가 울렸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쁘라삐룬으로 7월 3일 기준 농작물 8456.5ha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다행히 당초 한반도를 바로 통과하면서 전국적으로 큰 피해를 입힐 것이란 예상보다는 적은 피해였지만 태풍 쁘라삐룬 이후 찾아온 폭염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7월 평균기온은 26.8℃로 평년 평균기온 24.5℃보다 2.3℃가 높았으며 최고기온은 31.6℃로 평년 최고기온대비 2.8℃나 높았다. 강수량은 172.3mm로 평년의 61.6% 수준에 불과했다. 강수일수도 태풍이 지나갔다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인 7.6일로 평년보다 6.8일이나 부족했다. 특히 전국의 폭염일수는 15.5일로 평년 3.9일의 4배에 달했으며 열대야일수도 7.8일로 평년 2.3일의 3배가 훌쩍 넘었다.
이처럼 무더위와 폭염, 열대야에 신음하는 날들은 8월까지 계속됐다. 에어컨을 새로 구입해 설치하기까지 2달이 걸릴 정도로 전국은 불볕더위 속에서 에어컨 등 냉방기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일부 아파트에서는 전력용량을 초과해 정전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는 등 전국은 그야말로 111년 만에 찾아온 폭염으로 더위와의 전쟁이었다.
사람이 이 지경이었는데 농작물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농식품부가 지난 8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폭염과 가뭄으로 2909ha의 농경지가 피해를 보았다. 사과, 배 등 과일이 1308.3ha, 무와 배추 등 채소가 438.2ha의 손해를 입었다. 가축도 500만 마리 이상이 폐사했다.
올해 예상치 못했거나 예상을 넘는 지독함으로 피해를 준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올 초에는 이상저온이 찾아와 사과와 배에 냉해 피해를 줬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4월 7∼8일 최저 기온이 영하 5℃∼ 1℃까지 내려가면서 6121㏊의 농작물에 저온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여의도 면적의 21배가 넘는 규모다. 특히 사과와 배 등 과일 피해면적은 전체 피해면적의 82.4%인 5046㏊나 됐다.
주산지도 바뀌고, 새로운 병해충까지 창궐
이상기온은 농작물 재배 주산지도 변화시키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평균기온이 1℃ 상승하면 작물재배지가 80km 북상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우리나라는 1911년부터 2010년까지 100년 동안 평균기온이 1.8℃ 상승했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이 기간 작물재배적지가 144km나 북상한 것이다.
실제로 최근 사과 주산지는 경북 영천에서 강원 정선·영월·양구지역으로, 복숭아는 경북 청도에서 충북 충주·음성, 강원 춘천·원주 등지로 이동하고 있다. 포도도 경북 김천에서 충북 영동과 강원 영월로, 제주 특산물로 유명한 감귤도 전남 고흥이나 경남 통영·진주 등지로 재배지가 옮겨가고 있다. 또한 남부내륙지방이나 제주에서 아열대 작물을 재배하거나 커피가 생산된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전해진다.
이는 단순히 주산지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에 없던 병해충의 발생으로 뜻하지 않은 피해를 볼 가능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외래·돌발병해충의 발생 증가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특히 계속되는 고온은 우리의 주식인 쌀의 생산량 감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지금과 같은 기후변화 징후가 계속되면 2050년 쌀 생산량은 181만 톤으로 감소해 현재 100%에 가까운 쌀 자급률도 47.3%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역시 폭염, 폭우 등으로 벼 생육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돼 지난 9월 22일 농업관측정보를 통해 올해 쌀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2.7~3.6% 감소한 383만~387만 톤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축산분야도 고온과 황사의 영향으로 가축생산성 저하, 호흡기질환 증가 등 피해가 매년 느는 추세다. 우리나라 대표 어종으로 꼽히던 대구, 명태를 비롯해 많은 한류성 어종의 어획량이 많이 감소하기도 했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나라 식량지형도뿐만 아니라 주요 농수산물도 바뀔지 모른다.
이상 기상과 기후변화로부터 농업 지켜야
이러한 이상 현상은 극지방 빙하가 녹으면서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과 관련이 깊다. 지구온난화가 지속되면서 이러한 이상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것이란 얘기다.
이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기후변화에 적합한 저항성 품종의 개발과 보급, 기후변화에 맞는 영농방법 도입과 기술개발, 새롭게 재배되는 작물의 재배방법 및 기술교육, 판로 확보 등 적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해 중장기적 농업 환경 변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예측도 어렵고, 예측한다고 하더라도 대비하기 어려운 이상 기상에 대한 대책도 요구된다. 예기치 못한 혹독한 날씨로 그해 농사에 막대한 타격을 입더라도 농업인의 소득을 안정시켜 내년, 내후년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이 마련돼야 우리 농업의 기반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식량생산 이외에도 경관보전, 생태계 유지, 심리적 치료와 교육 등 농업의 사회적·공익적 가치가 강조되고 있어 농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농업인 소득안정장치와 제도 마련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재해보험 확충·재해복구비 인상·수입보장보험 확대
문재인 정부에서도 ‘걱정 없이 농사짓고, 안심하고 소비하는 나라’를 농정비전으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농업인의 소득과 경영을 안정시키기 위한 노력을 약속했다.
이중 자연재해와 관련해 농식품부는 농업재해보험을 확충하고 재해복구비 지원단가를 단계적으로 인상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재해에 취약한 농작물을 중심으로 2017년 현재 53개인 농작물재해보험 대상품목을 2022년까지 67개로 확대키로 했다. 또 사과, 배 등 가입률이 높은 품목부터 인접 시·군 통계를 반영한 보험료율 상한선 설정으로 시·군간 보험료율 격차를 완화한다고 덧붙였다.
재해복구비 지원단가는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키로 했다. 농약대, 대파대, 시설부자재 등 재해보험 미적용 항목에 대한 복구지원 단가를 표준소득, 물가 등을 반영해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수입보장보험도 확대할 방침이다. 농가 수요와 보험 도입 가능성, 가격 변동성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대상품목을 2017년 현재 콩, 포도, 양파, 마늘, 고구마, 가을감자 등 6개 품목에서 2022년 양배추, 감귤 등 6개 품목을 추가해 모두 12개 품목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올해 안에 농가별 손해평가 간소화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왜 농업인은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하지 않는가
아직 농산물 수급불안, 반복되는 자연재해 등으로 현장 농업인들은 기후변화 등에 대한 정부 대책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냉정한 평가를 하고 있다. 턱없이 부족한 보장품목에 높은 보험료, 실제 피해보다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보험금(지급금액) 등으로 있으나 마나 하다는 불만마저 터져 나오고 있다.
이는 낮은 보험가입률에서 잘 드러난다. NH농협손해보험에 따르면 2001년 처음 사과, 배에 농작물재해보험 상품이 도입된 이후 매년 가입률이 소폭 증가하고 있지만, 지난해 기준 30.1%에 불과하다. 이조차도 벼 가입실적을 제외하면 약 16%에 불과한 매우 저조한 실정이며 이마저도 사과, 배 등 일부 과실수에 집중돼 있다.
이처럼 가입률이 낮은 원인으로는 농업인이 원하는 형태의 보험설계가 아니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농업인이 실제 필요로 하는 상당수의 재해에 대해서 주계약이 아닌 특약의 형태로 보장이 이뤄져 고액의 별도 보험료를 추가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인 것이다. 이에 대해 농업인들은 농업인의 재해보장이 아니라 보험사 등의 업무편의를 위한 방식으로 보험이 설계돼 있다고 푸념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에는 이상기후와 기상이변으로 돌발 병해충 발생도 증가하고 있지만 이러한 부분에 대한 보완은 기민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또한 높은 자기부담비율에 대한 불만이 매년 지속되고 있다. 재해발생으로 보험금을 수령하려고 보니 자기부담비율이 높아 실제로 지급되는 보험금은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만일 강풍 등으로 과수의 23%가 낙과하는 피해를 보았을 경우 자기부담비율이 20%라면 실제 보상은 불과 3%만 받게 되는 것이다. 만약 피해 규모가 전체의 19%였다면 이조차도 보상받지 못한다.
지역 간 보험료 차이에 대한 불만도 제기된다. 자연재해는 지형 등의 영향으로 상습적으로 피해가 발생하는 지역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지역은 보험료가 인근 지역보다 높게 책정된다. 재해발생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보험료가 높다는 부분은 이해할 수 있지만 반대로 재해가 발생하지 않을 경우 보험료를 돌려주지는 않는다.
이러한 불만으로 NH농협손해보험은 2016년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하는 벼 농가에 대해 무사고환급제도를 도입한 적이 있지만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슬그머니 없앴다.
피해액(규모) 산정에 관한 민원도 많다. 까다로운 용어와 기준을 적용, 실제 손해사정사나 손해평가사가 산정하는 피해액이 농업인이 생각했던 피해와 크게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처럼 농작물재해보험에 대한 농업인의 불만이 폭주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농작물재해보험이 ‘어렵다’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농업인들에게 농작물재해보험이라는 명칭에서부터 자기부담비율, 주계약, 특약 등 일반인이 봐도 낯선 용어와 규정을 고령의 농업인이 쉽게 이해할 리가 만무하다. 게다가 보장도 적용되는 재해나 병해충이 있고, 그렇지 못한 것이 있어서 더욱 머리를 아프게 한다.
쉬운 종합보장보험 형태의 보험 상품의 개발이 필요한 이유다.
피해는 있지만 원인 몰라 보상 막막
확실히 자연재해라고 인정되는 경우는 오히려 수월하다. 농약이 사용된 이후 매년 크고 작은 약해 분쟁은 있었지만 최근에는 냉해, 가뭄, 우박 등 예기치 못한 이상기상 등의 피해와 농약의 오남용 또는 약해 피해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아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7월 경남 밀양지역 사과농가들이 한 농약 제조사 본사를 찾아 서울로 몰려들었다. 올해 처음 사용한 해당 제조사 제품의 부작용으로 이상동녹 현상이 발생, 올해 농사에 막심한 피해를 보았다는 주장이었다. 해당 지역은 지난 4월 초 기온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나 낮은 영하의 날씨를 기록한 적이 있어 제조사는 약해가 아닌 냉해임을 피력하며 반박했다. 이에 양측은 올해 피해조사를 하고, 내년에 원인을 밝히는 재현시험을 진행키로 했지만, 여전히 진통 중이다.
지난해에는 폭염에 따른 분쟁이 있었다. 또 다른 농약 제조사 제품의 약해라는 농업인들의 주장이 있었지만 해당 농약의 주성분이 오히려 가뭄 등에 저항성을 나타낸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오해가 풀리기도 했다.
이런 농약 약해를 둘러싼 갈등은 정확한 원인 규명이 어렵고, 분쟁조정기구가 없어 농업인에 대한 구제가 어려운 실정이다. 피해는 분명하지만, 원인은 불분명하기에 보상도, 구제도 어려운 것이다.
농업에 대한 중요성이 해를 거듭할수록 더해가고 있지만 정작 농업인이 안심하고 걱정 없이 농사지을 수 있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확대되는 농업의 불확실성 가운데 농업인이 의지할 수 있는 ‘확실함’과 ‘안정’이 조속히 마련돼야 할 것이다.
※필자 이한태 : 농수축산신문 농식품팀 수석기자. 농업, 축산업, 수산업 분야 다양한 출입처를 거쳐 현재는 농민단체, 농산업 분야를 주로 취재하고 있다. 농촌, 청년농업인 등 진솔한 삶과 농업의 밝은 미래를 이끌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