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4일, 전국농민대회와 민중총궐기에 참가했던 보성 농민 백남기 선생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사경을 헤매고 있다.
하지만 그가 집회를 통해 말하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칠순 농민을 사경으로 몰아넣은 책임도 가려지지 않았다. 민중총궐기를 비롯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과 농어촌 상생기금 같은 농업·농촌 관련 이슈에대한 기사와 그 반응을 보면 걱정스러울 만큼 농업계에 대한 불신, 반농업 정서가 팽배해 있음을 알수 있다. 이런 정서의 원인이 무엇인지, 어떤 오해가 있는지, 농민이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날 농민들은 왜 거리로 나섰나?
민중총궐기는 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비롯해 농민 생존권, 비정규직 문제 등 ‘헬조선’으로 표현되는 현단계 한국사회의 현안과 요구를 결집한 자리였다. 그런데도 보도에는 ‘왜Why’가 빠지고, ‘폭력시위프레임’만 난무했다. 백남기 선생은 이날 왜 서울 광화문 거리로 나섰을까?
이날 농민들의 주장은 ‘밥쌀용 쌀 수입 저지, TPP 가입 반대’, ‘쌀 및 농산물 적정 가격 보장’이었다. 2015년은 대한민국의 농민들이 농산물 시장 완전 개방이란 최악의 위기에 노출된 해다. 마지막 미개방 품목이던 쌀에 대해 정부가 2015년부터 관세화로 시장을 완전히 개방했고, 한·베트남, 한·뉴질랜드, 한·중 자유무역협정이 국회 비준 동의로 발효됐다. 개방 국면에서 농산물 가격이 매년 폭락을 거듭하는 ‘풍년 기근’이 일상화됐고, 42년 만의 가뭄과 구제역 등 악성 가축질병으로 몸살을 앓았다. 이런 마당에 정부가 미국 등 12개국이 참여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까지 추진한다고 하니, 농민들은 벼랑 끝에 몰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민들이 밥쌀용 쌀 수입 저지를 외친 이유가 있다. 2014년까지 관세화 유예로 증가한 의무수입물량과 국내 재고, 쌀시장 전면 개방 등으로 쌀값이 폭락하는 마당에 정부가 밥쌀용 쌀을 또 수입했기 때문이다. 2015년 쌀 시장을 전면개방하면서 이전의 수입쌀 용도 규정을 삭제함으로써 밥쌀용 수입의무가 사라졌는데도, 정부는 향후 관세율 협상 등을 이유로 지난 7월 밥쌀용 쌀 3만 톤을 구매입찰한데 이어 12월에 3만 톤의 추가 수입을 결정해 농민들의 분노를 샀다.
생존권에 큰 위협을 느낀 농민들은 이날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농민들의 요구는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돌아왔고, 백남기 선생이 쓰러지는 참사를 낳은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이다.
쪼그라든 농촌, 약화되는 관심
우리나라의 농업은 수출 주도의 경제성장이라는 국가 전략과 시장개방으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받음으로써 해체의 길을 걸어왔다. 농가인구는 1970년 총인구 3,224만 명의 44.7%인 1,442만 명이었지만, 2014년엔 총인구 5,042만 명의 5.5%인 275만 명으로 감소했다. 수입개방과 잘못된 농정은 농촌인구 감소, 농촌사회 붕괴를 낳고, 이로 인해 쪼그라든 농촌은 정치·사회·경제·복지·교육모든 분야에서 차별받는 악순환을 불러왔다.
국민의 농업·농촌에 대한 인식은 아직까지 우호적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엷어지는 추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15년 농업·농촌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도시민 38.6%는 수입농산물에 거부감이 없으며, 인식은 좋지 않지만 저렴해서 구매한다는 응답도 25.7%였다. 농산물 시장이 현재보다 더 개방되면 수입품보다 가격이 비싸도 우리 농산물을 구매하겠다는 ‘국산 구매 충성도’는 2009년 37%에서 2015년 21%로 떨어졌다.
반농업정서의 토양, 신자유주의
최근 반농업정서의 배경에는 신자유주의의 심화, 정부와 언론의 도를 넘어선 농업 폄훼가 도사리고 있다.
시장의 자유를 신봉하는 신자유주의는 ‘시장을 개방하고 규제를 풀면 경제가 활성화된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소득 불평등이 심해진다. 농업 측면에서는 수출기업을 위해 농업을 희생시키고,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는 농정으로 농민들의 삶이 악화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본산인 국제통화기금IMF 조차 낙수효과는 ‘완전히 틀린 논리’라며, 부유층의 소득이 늘면 성장은 감소하고 하위층의 소득이 늘어날 때 성장이 촉진된다고 밝혔지만, 우리나라에선 우이독경이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자본의 힘이 오랜 기간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언론까지 포획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신자유주의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청년 실업을 해결하라’고 하면 ‘기업이 살아야 취업할 수 있다’며 기존 노동자에게 임금 삭감을 강요하거나 해고요건을 쉽게 개악해버린다. ‘수출기업과 소비자 후생을 위해 FTA를 맺었으니, 일방적으로 피해를 본 농업을 무역이득공유제를 법제화하라’고 하면, ‘얼마나 더 퍼줘야 하느냐’면서 농업도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부르댄다. 무역이득공유제가 자율기부 형식의 ‘농어촌 상생기금’으로 변질됐는데도, ‘기업이 어려운데 또 준조세냐’며 ‘퍼주기 논란’을 만들어 내는 언론의 행태는 자본 논리에 포획된 언론의 본질을 보여준다.
모든 이슈가 ‘경제 살리기’ 프레임에 포획되고, 식민지배와 분단국이라는 역사성에서 비롯된 이념대립, 그리고 지역주의가 결합하면서 이 사회는 대결과 반목의 악순환으로 빨려 들어가고만 있다. 원인과 결과, 현상과 본질은 구분되지 않는다. 이런 구조에서는 노동자·농민, 청년, 노인을 비롯한 사람의 문제나, 농업과 전통, 생명 존엄, 인문, 복지, 분배 같은 중요한 가치는 후순위로 밀려난다.
돈과 경쟁과 순위가 제1 가치로 올라선 나라,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희망이 없는 나라의 국민은 점차 파편화되고, ‘나만 잘살면 돼’라는 인식이 커간다. 나와 다른 존재, 약자와 소수에 대한 차별과 혐오, 왕따를 재미로 삼는 부류가 생겨나고, 극우가 목소리를 높인다. 세월호 참사 피해가족에 대한 일부 세력의 공격이 대표적이다. 이런 풍토에서 백남기 선생의 비극은 왜곡되고, 농업에 대한 퍼주기 논란 등 반농업 정서가 고개를 드는 것이다.
퍼주기 논란의 진실, OECD 최저인 농업보조금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992년 시장개방 이후 농업·농촌 투융자 규모는 약 186조 원인데, 이중 융자는 31%인 57조 원, 보조는 69%인 129조 원이다. 보조 가운데 농기계, 축사·원예시설 등 농업경영체에 직접 지원된 보조금은 37조 원이고, 나머지는 농업·농촌에 부족한 SOC 등 기반시설과 생활환경을 보완하기 위해 사용됐다. 즉 186조 원 가운데 19.9%인 37조 원만이 직접보조란 것이다.우리나라의 농업보조금 비중을 생산자 총수취액 중에서 정부의 재정 지급액으로만 따질 경우 3.8%로, OECD 평균인 9.8%의 절반도 안 된다. 이는 뉴질랜드, 이스라엘, 호주, 칠레, 캐나다를 제외하고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EU는 14.9%로 우리의 3.9배, 일본은 10.6%로 2.8배, 미국은 7.6%로 2배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의 농업소득 대비 직불예산 비중은 겨우 11.2%에 불과하지만 일본은 41%, 미국 49%로 거의 절반에 달하고, EU는 농업소득보다 많은 111.4%를 지급한다. 선진국들은 직불금을 통해 농업의 가치를 함양하고 농가소득을 보장한다. 무엇을 퍼줬다는 건지, 대다수 우리 농민은 쥐꼬리 직불금 외에 별로 받은 것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굳이 농업의 중요성과 공익적 가치를 거론하지 않아도 농업에 일방적인 피해를 주는 FTA를 통해 기업의 수출과 국민의 후생이 증대됐다면, 피해자인 농민에 대해 마땅히 보상해야 한다. 그것이 존 힉스가 말한 ‘보상의 원칙’이고, 존 롤스와 마이클 샌델이 주장한 ‘정의’다. 약자를 희생시키고도, 그 고통과 피해에 대해 보상은 커녕 오히려 외면하고 조롱하는 사회는 부조리하고 천박한 ‘천민자본주의’다.
우리나라같이 세계 최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지금도 분단 상황에 놓여있는 나라는 농업의 안정과 식량 안보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통령부터 정치인, 관료, 언론, 국민이 모두 이런 중요성에 대해 재인식하고 농정의 틀을 농민 중심으로 다시 짜야 한다.
그동안의 농정이 경쟁과 효율, 1%를 위한 농정이었다면, 지금부터의 농정은 농업의 가치에 대한 지원을 통해 농민의 소득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 농업 관련 토건사업이나 비대해진농업 관련 기관·단체, 농 관련 산업에 돌아가던 지원금도 농민에게 집중해야 한다.
농민들의 의식도 변화돼야 한다. 농민을 진정으로 대변하는 정치 세력에게 투표하고, 조합원으로서농협의 주인으로 나서야 한다. 정치권과 정부, 농업관련 기관·단체나 기업이 농민을 무시할 수 없도록 단결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농민의 정치의식 변화에는 농민단체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비록 농민의 계층이 다양하고 이해관계가 복잡하더라도, 지금처럼 농민 다수가 홀대받는 상황에서는 ‘연대와 공존’이 중요하다. 노동자·농민을 기반으로 하고자 하는 정치세력들은 ‘농민들이 계급 배반 투표를한다’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농민들을 위해 발품 팔고 땀 흘려 가며 대안세력으로서 믿음을 줘야 한다. 프레임을 주도하지 못하면서 대중에게 책임을 돌리는 행태는 공감을 얻지 못한다.
지금 이 사회를 구성하는 퍼즐은 약한 곳부터 한 조각씩 떨어져 나가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글 속에서 우리가 모두 ‘먹고 살기 바빠서’ 내 가족만 챙기는 사이, 민주주의는 파탄 나고, 사회적 약자들이 차디찬 한파 속으로 내몰리고 있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고 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듯이 가까운 하나가 망하면 다른 하나도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이대로 방관하면 오늘 시장개방과 구조조정, 해고의 다음 순서는 내가 될 수도 있다. 이제 ‘경쟁과 효율’에 그만 매달리고 ‘협동과 연대’, ‘공존과 공생’에 눈을 돌려야 한다. 혼자 빨리 가는 길보다 함께 멀리 가는 길, 지속 가능한 농업이 지속 가능한 사회의 기반이다.
※필자 이상길: 한국농어민신문 논설실장 겸 선임기자. 돈보다 사람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며, 협동조합에 관심이 많다. 2005년 ‘미디어오늘’에 ‘한국의 전문기자’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