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중심’ 농정 개혁은 어디에 있는가?

문재인 정부 들어 세 번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김현수 전 차관이 임명되었다. 그의 취임사는 “사람 중심의 농정 개혁을 하겠다”는 가슴 뛰는 말로 시작했으나 듣는 내내 어디에서도 ‘사람 중심’은 찾기 어려웠다. 사람 중심의 농정 개혁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김현수 장관은 첫 번째 농정개혁으로 ‘사람 중심’ 직불제 개편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내놓은 직불제 개편안은 사람 중심이 아니라 쌀농사를 짓는 ‘사람’부터 사라지게 만드는 제안이 될까 우려스럽다. 값싼 수입쌀이 언제든지 우리의 밥상을 차지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 농업 구조 속에서 쌀 농가는 생산비에 대한 보장 없이 재생산 노동을 지속할 수 없다. 그런데 이번 개편안은 그나마 쌀값 보전을 해주던 쌀 목표가격마저 없애고 있다. 쌀 농가의 붕괴는 도미노처럼 밭농사를 짓는 농가로, 과수농가로, 축산농가로 그 위기가 넘어 갈 것이다.
 또한 ‘사람 중심’의 농정을 말하면서 스마트 농업을 본격화하겠다는 것은 말장난일 뿐이다. 스마트 농업은 사람 중심이 아니라 산업 자재 중심이고, 자본 중심이다. 1ha 미만의 소농이 70%를 차지하는 한국 농업의 구조 속에서 스마트 농업을 정책의 중심에 둔다면 소농을 더욱 소외시키고 배제하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대한민국에서 농민은 ‘등외 국민’으로 취급받아 왔지만, 이 정부에서는 다를 줄 알았다. 무엇보다도 한 농민의 죽음을 딛고 세워진 정부이기에 농민과 더불어 사는 정책이 분명히 세워질 것을 믿었다. 그러나 집권 3년째, 농민들은 ‘여전히’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있다. ‘여전히’라는 말을 쓰는 것은 가슴이 저리도록 아프다. 왜 ‘여전히’여야 하는가?

아직도 한국의 농업정책은 농업과 먹거리의 지속 가능성보다는 생산성과 효율성을 중요시하고 있지만, 국제적으로는 농업과 농민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들어지고 있다. 2007년 세계적인 먹거리 위기 이후 인류의 안정적이고 안전한 먹거리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지속 가능성’이 중요한 가치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갈수록 식량 부족과 먹거리의 안전성, 기아와 빈곤, 환경적인 문제가 농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삶과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엔에서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농업과 농촌지역 그리고 농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농촌에서 사는 사람들의 위기와 어려움을 해결하지 않고는 먹거리 문제도, 빈곤 문제도, 생태환경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제적 차원에서 다양한 모색들이 이뤄졌는데, 유엔은 2014년을 ‘세계 가족농의 해’로 정해 국가의 농업·환경·사회 정책의 중심에 가족농을 세우기 위한 노력을 하였고, 또다시 올해 2019년부터 2028년까지 10년간을 ‘가족농의 해 10년’으로 정해 가족농을 지원하기 위한 장기적인 정책들을 세우고 있다. 유엔과 국제사회의 공동목표인 지속 가능한 개발목표(SDGs)에도 지속 가능한 농업, 기아와 종식, 영양 개선 등이 핵심 목표로 세워졌다. 또한 작년 12월 17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선언’(이하 농민권리선언)을 채택함으로써 소농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국제 규범을 만들었다.
 이 선언은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보편적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포함하여 생산 수단(토지, 물, 종자, 천연자원, 생물다양성 등)에 대한 권리를 담고 있으며 식량주권을 실현할 권리, 적절한 수입과 생계에 대한 권리를 담고 있다. 또한 여성농민과 청년, 이주노동자 및 법적인 권한이 없는 농촌노동자에 대한 차별 없는 권리도 담고 있다.
 농민권리선언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먹거리와 농업 시스템, 그리고 농민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 과정에 당사자인 농민의 실질적인 참여를 국가가 보장하도록 하는 것이다. 농민은 먹거리와 농업체계를 결정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52%나 되는 농업노동을 담당하고 있으면서도 주체적인 농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고 있지 못하는 여성농민의 지위 향상과 실질적인 참여를 보장하는 법, 제도 개선이 사람 중심의 농정이다.
 또한 농민이 농업을 생계수단으로 하고 그것으로써 적절한 수입과 품위 있는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어야 사람 중심의 농정이다. 끝없는 농산물값 폭락에 대한 대책,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농업소득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사람 중심의 농정이다.

며칠 전, 장수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한 농민이 사과 가격 폭락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제주도 농민 부부의 소식에 벌렁벌렁하던 가슴이 아직도 채 가라앉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사람 중심’의 농정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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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정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국제연대위원, 비아캄페시나 국제조정위원. 경북 상주에서 농사를 지으며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을 꿈꾼다. 특히 여성농민,지역공동체, 농생태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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