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농업의 가치를 지킵니다

원건희 그래도팜 고문

지속 가능한 가족농의 경영 모델을 제시하는 그래도팜의 원건희 씨 가족.
지속 가능한 가족농의 경영 모델을 제시하는 그래도팜의 원건희 씨 가족.

  해마다 5월과 10월, 강원 영월의 그래도팜에는 특별한 토마토가 여문다. 37년을 한결같이 땅을 살리는 유기농을 고집해 온 원건희 씨(62, 제27회 대산농촌문화상 농업경영 부문 수상자)가 모양과 빛깔, 맛을 모두 지켜낸 고품질 토마토다.

건강한 땅에서 자란 농산물은 모양과 빛깔, 맛이 좋다. ⓒ그래도팜
건강한 땅에서 자란 농산물은 모양과 빛깔, 맛이 좋다. ⓒ그래도팜

빼앗지 않고, 더하는 농사
  “농민은 땅을 살리고, 살아있는 땅은 농작물을 이롭게 키우며, 이롭게 자란 농작물은 사람을 건강하게 살립니다.”
  원건희 씨가 유기농을 시작한 건,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밭에 농약을 치면 아내가 며칠씩 앓았다. “농사를 1년만 지을 게 아닌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유기농 단체, 농민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며 공부하고, 자신만의 농법을 찾아냈다. 유기농을 제대로 시작한 1983년, 농장 이름을 ‘원농원’이라 했다.

그래도팜의 전신인 원농원.
그래도팜의 전신인 원농원.

  원건희 씨는 농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땅’에 집중했다. 참나무껍질, 계분, 쌀겨, 미생물 등을 발효시켜 퇴비를 만들고, 토마토 열매와 나뭇가지로 발효액비를 만들어 땅에 영양분을 공급했다. “농사는 땅이 짓는다”는 마음으로, 땅이 가진 것을 무작정 빼앗지 않고 힘이 될 만한 것들을 더하는 농법을 10년 넘게 하니, 땅이 응답하기 시작했다.
  “땅이 제대로 갖춰지면 어떤 작물이든 잘 커요. 유기농 농산물을 생각하면 대체로 작고, 못생기고, 벌레 먹은 걸 떠올리잖아요. 그런 것이 ‘진짜 유기농’이라고 얘기하고요. 그런데 작물이 정상적으로 양분을 흡수하면 모양, 빛깔, 맛 세 가지가 다 좋아져요.”

양분을 듬뿍 함유한 참나무 껍질로 만든 퇴비. 유기질을 많이 보충해줘야 하는 우리나라 토 질에 적합한 재료다.
양분을 듬뿍 함유한 참나무 껍질로 만든 퇴비. 유기질을 많이 보충해줘야 하는 우리나라 토질에 적합한 재료다.

소비자가 알아주는 유기농의 가치
  농민이 아무리 맛있고 건강한 농산물을 키워도, 소비자에게 전해지지 않으면 소용없다. 원건희 씨의 아내 박정란 씨는 과거 유기농 배추를 팔러 공판장에 갔다가 속이 상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유기농 배추를 팔러 공판장에 갔더니 경매상이 그러는 거예요. 소비자가 오늘 먹고 내일 죽더라도 농약, 비료 팍팍 쳐서 배추 크기만 키워오면 된다고. 유기농의 가치를 소비자에게 어떻게 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어떤 인터넷 카페에서 배추 판매 글을 올리게 해줬어요. 글을 올리고 3일 뒤 농장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했는데, 겉절이와 쌈을 먹은 사람들이 너무 맛있다는 거예요. 그날 쌓여있던 배추를 싹 팔았죠.”
  이 일을 계기로 원건희 씨 부부는 소비자를 직접 만나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시작한 지 10여 년, 많은 이가 토마토가 나오기를 기다려 예약 주문을 한다. 원건희 씨는 생산비용을 반영하여 토마토 가격을 정하고, 시장가격에 상관없이 일정한 가격에 토마토를 판매한다.

원건희 씨는 “작물을 자주 들여다봐야 작물이 뭘 원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원건희 씨는 “작물을 자주 들여다봐야 작물이 뭘 원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대를 잇는 농사, 대를 잇는 가치
  2015년, 원건희 씨는 귀농한 아들 승현 씨에게 대표 자리를 물려줬다. 디자이너였던 아들은 아버지가 생산한 토마토의 가치에 브랜드를 더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맡았다.
  브랜드 네이밍부터 시작했다. “그래도 유기농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원건희 씨의 철학을 담아 농장 이름을 ‘그래도팜’으로 바꿨다. 방울토마토에는 기발한 기술로 기름진 토양에서 기차게 잘 자라 기똥찬 맛을 지닌 토마토라는 의미의 ‘기토’라는 이름을 붙여 특별함을 불어넣었다.

ⓒ그래도팜
기름진 토양에서 기차게 잘 자라 기똥찬 맛을 지닌 토마토라는 의미를 가진 ‘기토’. ⓒ그래도팜

   “기토는 다른 토마토가 아니라 작년, 재작년의 기토와 경쟁을 해요. 농사는 자연과 동업하는 일이라, 기후에 따라 맛이 좀 다를 수 있는데, 가끔 작년보다 맛이 덜하다, 이런 말을 하는 분이 있거든요.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농산물인데도 말이죠.”
  승현 씨는 요즘 체험장을 만들 준비로 바쁘다. 결과 위주의 수확 체험이 아닌, 과정 중심의 ‘흙’ 체험을 준비한다.
  “소비자가 농업을 직접 경험하게 하는 것이 느리지만 가장 빠른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팜에서는 브랜드를 활용한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제공한다. 그래도팜에 서 만든 달력을 살펴보는 원건희 씨와 아들 승현 씨.
그래도팜에서는 브랜드를 활용한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제공한다. 그래도팜에서 만든 달력을 살펴보는 원건희 씨와 아들 승현 씨.

  원건희 씨는 그런 아들을 뒤에서 묵묵히 지지한다. 아들이 농촌에 온전히 뿌리내릴 때까지 천천히 기다려주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물어봐요. 아들이 들어와서 농사일이 편하지 않냐고요. 그런데 내가 일하라고 하지 않아요.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모르지만, 내가 힘이 있어 거들어줄 때 아들이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어요.”
  아버지는 토마토를 키우고, 어머니는 회원 관리와 유통을, 아들은 브랜드 관리와 가치를 높이는 다양한 일을 한다. 이처럼 가족 구성원의 확실한 역할 분담이 그래도팜을 튼튼하게 만든다.

5000여 명의 소비자가 기다리는 그래도팜의 ‘기토’. ⓒ그래도팜
5000여 명의 소비자가 기다리는 그래도팜의 ‘기토’. ⓒ그래도팜

  “평생 농사를 지어도 100번도 안 지어보는데, 어떻게 잘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래서 농사는 대를 이어서 하는 거다, 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려요.”

  ‘다소 불편하고,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고, 몇 배로 힘이 들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농업인의 가치를 지켜나간다. ‘그래도팜’이라는 이름처럼.

글․사진 이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