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창농 지원사업의 화려한 신고식
새 정부 들어 ‘청년창업농 영농정착지원사업(이하 청창농 지원사업)’이 새롭게 시작됐다. 지원사업에 선정된 18세 이상 40세 미만 청년농민은 첫해 월 100만 원, 이듬해 월 90만 원, 마지막 해 월 80만 원을 사용할 수 있는 바우처 카드를 발급받아 자신의 지출을 보조할 수 있다.
청년농민을 위한 본격적인 농정이 시작된 것, 그 자체만으로도 어느 정도 긍정적 평가를 줄 여지는 충분하다. 2018년 첫해에만 추가 선발을 포함해 1600명의 청년농민이 혜택을 받았고, 올해 또 그만큼 선정돼 총 3200명이 농촌살이를 이어가고 있다. 그들 중엔 우리 농업의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곧 농업을 포기하려 했던 초보나, 농민이 되고자 마음먹었지만 너무 큰 불확실성 때문에 망설이고 있었던 희망자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 전체 농업인구의 1%, 거의 천연기념물로 취급되는 ‘청년농민’을 그만큼 농촌에 붙잡아 두거나 새로 유입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나 신규 농민들이 이 사업을 ‘비빌 언덕’ 삼아 3년의 의무 영농기간을 채우고 5년, 10년 뒤에도 농민으로 남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관료들은 우리보다 앞서 청년농민 육성을 시행했던 농업 선진국의 농정 사례라며 야심 차게 이 사업을 들고나왔지만 시행 첫해부터 온갖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근본적인 원인은 새로운 농정의 내용이 아니라 혁신을 올바르게 이끌어야 할 시행 주체, 농정당국의 태도에 있다.
분명 파격적인 정책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 농정이 그렇듯 ‘완전히 새로운 그 무엇’은 아니었다. 정권 교체 이전에도 일본의 ‘청년취농급부금’이 종종 언급되며 비슷한 시도가 있었고, 지난 대선 한 야당 후보는 이를 직접 예시로 들며 공약에 포함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시작한 청창농 지원사업은 결국 일본의 사례를 참고했기 때문에 시행 전 검토의 시간은 충분했다 볼 수 있다.
시행 첫해, 한 국회의원이 국정감사 등에서 농협을 통해 발급한 바우처 카드 결제 명세를 공개하며 지원사업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일부 청년농민의 부정수급 일탈 사례가 문제가 됐다. 외제차 수리, 면세품 구입, 과태료 납부를 바우처 카드로 결제한 소수의 사례가 있었고, 언론은 청년농민에게 ‘싹수 노란’이란 수식어까지 붙이며 집단 전체에 대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농정당국의 대처에 있었다. 당국은 철저한 관리·감독 및 사후관리에 매진하는 대신, 다시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청년농민 전체를 옥죄는 길을 택했다. 국정감사 이후 농식품부는 정상적으로 이용 가능했던 일부 업종에서 결제를 금지하고, 청년농민이 구매하는 물품의 종류와 액수에 간섭하는 등 사실상 바우처 카드의 자율적 사용을 제한했다. 한 청년농민은 “우리 지역에선 농사에 쓸만한 물건을 살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쓸데없이 먹는 것만 늘어났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듬해 새 시행규칙에서는 아예 바우처 카드를 통한 온라인 물품 구매를 일절 금지했다. 무엇을 샀는지 일일이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어김없이 드러난 관료행정, 무사안일주의
대한민국만큼 인터넷이 발달한 나라가 없다. 자기 전에 식료품을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문 앞에 배달해주는 새벽 배송 서비스가 되는 나라다. 그런 곳에서 자란 청년들에게 아주 기본적인 전자상거래조차 할 수 없게 하고, 동네 상점에 가서 직접 물건을 구매하라는 조치를 내린 것이다. 생필품이나 농자재를 사기 위해 차를 몰고 면이나 읍까지 나가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거기에, 만약 차가 없다면?) 인터넷보다 가격이 비싼 것은 당연하다. 도시에서도 사고 싶은 물건 모두가 거주지 근처에 구비돼 있진 않은데, 농촌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비효율을 넘어 비상식적인 이 시행규칙이 공지된 것이 바로 올해 초였다.
정책의 수혜자 입장에서 당국과 발을 맞춰보려던 청년농민들은 이 조치가 발표된 이후 결국 폭발했다. 사업대상자와의 소통을 위해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이 마련한 인터넷 포털 카페는 끊임없이 쇄도하는 항의문으로 마비될 지경이었다고 한다.
신규 농민들이 청창농 지원사업을 ‘비빌 언덕’ 삼아 3년의 의무 영농기간을 채우고 5년, 10년 뒤에도 농민으로 남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관료들은 우리보다 앞서 청년농민 육성을 시행했던 농업 선진국의 농정 사례라며 야심 차게 이 사업을 들고 나왔지만 시행 첫해부터 온갖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근본적인 원인은 새로운 농정의 내용이 아니라 혁신을 올바르게 이끌어야 할 시행 주체, 농정당국의 태도에 있다.
청창농 지원사업 시행 이후 취재 과정에서 몇 명의 청년농민을 알게 됐고, 이들로부터 그 ‘소통의 창구’가 폭발했다는 말과 함께 농식품부가 결국 청년농민들과 의견을 나눌 간담회를 열 계획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간담회 일정을 회사의 농식품부 담당 기자가 아닌, 간담회에 참석하는 취재원을 통해 들었다는 점에서 이미 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역시 취재 허가는 떨어지지 않았다. 담당 부서에 연락하니 돌아온 답은 “청년농과의 격의 없는 대화를 위해 비공개로 진행하기로 했다”였다. 아니, 청년 눈높이에 맞춰 소통하며 정책을 시행해 나가는 건 공무원 입장에서 여기저기 자랑해야 마땅한 일이 아닌가? 앞뒤가 맞지 않는 답변은 이 간담회의 결말을 어느 정도 예고하고 있었다.
기자 신분을 떼어 버릴 수도 없어 결국 가지 못했지만, 한 참석자가 유튜브를 통해 간담회를 생중계했고, 역시 ‘청년’농민은 다르다고 깊이 느끼며 담당자가 숨기고 싶었던 격의 없는 대화를 전부 들을 수 있었다. 대체 무엇을 숨기고 싶어 오지 못하게 했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넘어, 전국에서 청년농민들을 대전까지 왜 불러 모았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 변명이 이어졌다. 청년농민의 주요 요구사항에 대해 책임지고 조치하겠다는 말은 결국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간담회의 요는 이렇다. 국회의원들, 그리고 국민 여론에 의해 지침이 흔들리고 있으며, 여러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니 이해해달라는 성토가 이어졌다. 그러나 청년농민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닌 사업의 존폐와 담당 공무원의 안위를 고려해 나온 조치 같단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농식품부가 해야 할 일은 본래 계획을 누더기로 만들면서까지 몸을 사리는 게 아니라, 대다수 선량한 청년농민들의 각오를 방방곡곡 알려 청창농들에게 원래 약속했던 혜택을 지켜주는 게 아니었을까.
“청년 정책, 독을 고치고 물을 부어라”
시행지침에 관해선 그 뒤에도 웃지 못할 사건들이 종종 발생했다. 교육의 질이 낮다든지, 대상 선정이 과연 공정한지 등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기서는 이만 담기로 한다. 정책의 내용도 문제가 많지만, 사실 어떤 지원을 해줘도 청년들이 우리 농촌에서 살아남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청창농 지원사업 대상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문제는 ‘토지 접근성’이다. 청창농 지원사업 대상으로 선정되려면 농업경영체 등록이 요구되는데, 심한 경우엔 임차 농지 자체를 구하지 못해 수혜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경영체 등록에 요구되는 임차 농지란 계약서를 써주는 임차 농지를 말한다.
지주들이 변동직불금이나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 등을 고려, 실경작 여부를 위장하기 위해 임차농민에게 땅은 빌려주면서도 임차계약서는 써주지 않는 우리 농촌의 고질적 병폐가 애먼 청년농민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농촌의 분위기를 잘 몰랐던 청년농민은 전혀 예상도 못 했을 난관, 농지은행이 청년농민에게 우선적으로 임차할 수 있는 혜택을 주기 시작했지만, 이 역시 거주지 근처의 농지를 빌리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하니 별 효과는 없는 것 같다.
농산물 가격은 말할 것도 없다. ‘거치 기간’의 끝을 두려워하는 청년을 종종 본다. “몇 개월 뒤에 거치 기간 끝나면 매년 4000만 원을 갚아야 하는데, 답이 보이지 않아요”와 같은 두려움. 올해 농촌은 주요 채소의 동반 폭락으로 그 어느 때보다 깊이 시름해야 했다. 베테랑 농민조차 ‘똥값’ 농산물을 갖고 답을 찾기 어려운 이 현실 속에서, 대부분 크고 작게 빚을 내서 농사에 도전하는 청년농민은 바람 앞 등불 같은 존재다. 거기에 청년들의 새로운 시도를 방해하는 쓸모없는 규제는 또 얼마나 많은가.
청년창업농 지원사업을 통해 우리 농업의 묵은 병폐를 걷어낼 칼 같은 농정개혁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정책을 입안하는 입장에서는 결코 의도치 않았겠지만, 아무리 선진적 농정을 가져와 시도해본들 썩은 토양으로는 새로운 농민들을 키울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누구보다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을 당사자들의 더 큰 목소리, 그리고 선배 농민들의 응원과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청년농민들도 모이고, 소리 낸다
청년농민들 역시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지난해 12월 청년농민들은 ‘아무도 안 해서 우리가 한다’, ‘스스로의 말하기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당돌한 소개와 함께 청창농 지원사업에 대한 끝장토론을 열고 이 문제를 공론화했다. 또 청창농 지원사업 시행 1년 전쯤 활동을 시작한 ‘청년농업인연합회(일명 청연)’은 올해 들어 청년농민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앞서 ‘독을 고치고 물을 부어라’라고 쓴 표현은 청년농민들의 끝장토론에서 한목소리로 모아냈던 심정을 인용한 것이다. 지역에 내려가 농사를 지어보자고 처음 결정하던 순간, 자신이 직접 나랏일을 비판하고 고민할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일련의 사태 때문에 처음으로 ‘토론회’라는 장소에 나가 목소리를 내본 한 청년농민은 “우리가 바꾸지 않으면 그 뒤는 앞으로 얼마나 힘들까. 앞으로 ‘투쟁’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얘기한다.
청년창업농 지원사업을 통해 우리 농업의 묵은 병폐를 걷어낼 칼 같은 농정개혁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정책을 입안하는 입장에서는 결코 의도치 않았겠지만, 아무리 선진적 농정을 가져와 시도해본들 썩은 토양으로는 새로운 농민들을 키울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누구보다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을 당사자들의 더 큰 목소리, 그리고 선배 농민들의 응원과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 한우준: 한국농정신문 기자. 학교에서 언론을 배웠고 ‘농’은 전혀 모른 채 자랐다.밝고 희망이 넘치는 내용을 담을 일이 별로 없을 거라곤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드물어서 3년이 다 가도록 놀라고 있다. 입사 이래 지금까지 ‘농촌사회’를 맡아 농촌과 농민운동의 현장을 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