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고 멈춰야 함께 사는 난세의 철학

코로나19로 명명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발원지인 중국과 그 이웃인 한국을 강타하더니 이제는 온 세계로 확산되며, 인류 전체를 공포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당국은 코로나19의 근본 대책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호소한다. 문득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던 한 독재자의 연설을 뒤집어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는 역설이 떠오른다. 그런 세상은 어디에 있을까?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그랬던 세상은 좀 가난해서 힘들긴 해도 농촌공동체사회였다.
  당국이 말하는 사회가 한때의 농촌공동체처럼 스스로 자생한, 자율에 의한, 자기를 위한, 자신의 사회(공동체)를 의미한다면, 지금은 그런 사회는 국가와 자본에 의해 모두 소멸되고 없다. 독점과 통제가 본질인 자본제 중앙집권적 국가에 이해관계로 뭉친 집단과 통제된 계급집단들은 많아도 자생, 자율, 자기, 자신, 자급, 자치의 농촌공동체사회는 존재하기 불가능하다. 그런데 마치 이런 공동체가 아직 남아있는 듯한, 당국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매우 어색하다. 차라리 물리적 이동과 외출과 모임을 금지 또는 제한하자는 직설적 표현으로 바꾸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사회적 거리를 둘 사회가 이미 없기도 하거니와 사회적 거리를 두면 그것은 이미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를 두지 않고 사회 간의 물리적 이동을 멈춤으로써 전염병을 극복한 사회는 지역 토착적 자급소농공동체(연합)사회였다. 이동과 그로 인한 쓰레기 생산을 전혀 하지 않고, 공동체간의 물리적 거리를 두는 것만으로도 전염병을 능히 극복하며 공생 지속하던 사회였다. 하지만 그런 사회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도시화 중인, 도시화 된 농촌의 잔재는 아직 남아있지만 공동체로서의 농촌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재생하거나 새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려면 특단의 대책, 발상의 대혁명을 요구한다. 그중 으뜸이 「녹색평론」과 녹색당에서 오래전부터 끈질기게 공론화해온 ‘농민 기본소득’이다. 바이러스 치료제와 백신의 신속한 발견 못지않게 절박한 인류의 과제는 기후위기 극복이다. 이 재난들에 대한 종합대책이 인공 바이러스 생산을 멈추고 공생, 지속이 가능한 새로운 자생자급농촌공동체 백신의 재생운동이다.
  때마침 코로나 재난 중 총선 정국의 화두로 기본소득이 다시 등장해 정쟁 중이다. 하지만 이 척박한 땅에서 어렵게 지켜온 ‘기본소득’ 불씨를 코로나 정국에서 1회성 땜질용으로 소모품화해서는 안 된다. 제2, 제3의 코로나를 포함해 기후위기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산업성장경제주의를 대체할 ‘농민 기본소득’으로 진정성 있는 실천을 이루어 내야 한다. 코로나 사태가 끝난 뒤부터는 농촌의 농민들에게 ‘농촌재생기본소득’으로 확장해 영구적으로 지원하자는 제안이다.
  농민은 특별한 지원이 없으면 멸종한다. 노인뿐인 농촌에 노인들이 수명을 다하면 후계농민은 있을 수 없다. 농민의 멸종으로 식민지 농촌이 사라지면 도시도, 근대도, 산업수출입국사회도, 보수도 종말이 온다. 우리 농촌의 소멸로 이 땅의 기업들이 진출(?)한 중국,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의 농촌도 한계와 시한은 있고, 이미 직면했다. 설사 그런 농촌을 외계에다 만들 재주가 있다 해도 코로나 때문에 한시적으로 공항을 폐쇄하는 정도가 아니고 기후위기가 절정에 이르면 공항이 영구 폐기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런 지구적 환란기의 피난처는 제 나라에 자급하는 농촌밖에 없다.
  도시와 세계를 떠도는 유랑 인류 중 적어도 먹고살기 위해 떠도는 실업과 반실업 인구만이라도 최소비용으로 안착시키는 데 농민 기본소득으로 농민공동체를 재생하는 것 이상은 없을 것이다. 다가오는 지구 환란의 불씨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데도 각 국가 예산의 10분의 1만큼으로도 가능한 농민 기본소득제보다 더 효과적인 제도는 다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땅에 최소한의 피난지를 만드는 이 일은 우리가 스스로의 운동으로 쟁취할 몫이다. 살아보니 세상에 공짜 선물은 없었다. 「녹색평론」의 끈질긴 공론화가 어쨌든 기본소득을 우리의 척박한 정치권에서조차 코로나 난국을 만나자 자신들의 화두로 삼았듯이. 

47-1※필자 천규석: 은퇴 농부. 사라져가는 전통농법을 살려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을 억제하고 유기농을 실시,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하며 살아왔다. 「돌아갈 때가 되면돌아가는 것이 진보다」, 「쌀과 민주주의」, 「윤리적 소비」 등의 책을 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