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걱정 없이 농사짓고 싶다

양평 유기농의 발상지, 두물머리
2000년 1월, 나는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로 귀농했다. 출퇴근 용도로 타고 다니던 작은 승용차에 전기밥솥, 그릇, 이불, 옷 몇 벌 등 간단한 세간붙이를 싣고 미련 없이 서울을 떠나왔다. 올림픽대로를 빠져나와 미사리 카페촌을 지나 팔당대교에 이르렀을 때 창문을 열고 아직 차 안에 남아있을 지도 모를 탁한 서울의 공기를 한 점 남김없이 강바람에 날려 보냈다. 이어 터널을 몇 개 지나자 두물머리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에서 겨우 반 시간 남짓 벗어났는데 땅, 숲, 강이 맨얼굴 그대로 보전되어 있는 모습이 반갑고 놀라웠다. 나는 이곳 두물머리에서 첫 농사를 시작하였다. 

두물머리 유기농단지. ⓒ최호철
두물머리 유기농단지. ⓒ최호철

  두물머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경치가 아름다운 땅이라는 것 외에도 긴 이야기와 역사를 품고 있는 땅이다. 양평군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친환경농업특구로 지정된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40여 년 전 두물머리에서 정상묵 선생 형제가 뿌린 씨앗에서 태동하였다. 나는 정 선생 형제가 운영하는 두물머리 농장에서 유기농업을 배우는 행운을 누렸다. 그 후 틈틈이 정 선생으로부터 두물머리에서의 고단했던 삶을 전해 들었는데, 그때부터 아침이면 선녀처럼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마냥 예쁘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1975년 두물머리 바로 앞에 팔당댐이 생겼다. 이때부터 두물머리 인근 주민들의 고통이 시작되었다. 수몰 지역 주민들은 땅을 강제수용 당하고 이곳을 떠났다고 한다. 이후 팔당댐이 서울 수도권 전역에 물을 공급하는 상수원보호구역이 되면서 온갖 규제들이 생겼다. 그린벨트, 수도법, 문화재, 군사시설 등의 중첩 규제로 개발이 정지된 땅이 되었고, 사유재산도 관의 허가 없이는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먹고살 길이 막힌 주민들은 살길을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났다. 당시 두물머리에서 유일하게 허용되었던 경제활동이 농사였다고 한다. 오죽하면 농민들은 농약과 비료를 마구 뿌려서 팔당호 물이 더러워지면 상수원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지 않을까 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주민의 절반 이상이 떠난 상황에서 정 선생 형제가 농민들에게 역발상을 제안하였다. 두물머리는 상수원으로 어떤 경제활동도 할 수 없는 땅이 되었지만 농민들이 먼저 맑은 물, 살아 숨 쉬는 흙, 농촌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 관행농업을 유기농업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리고 유기농업으로 물이 깨끗해지고 땅이 건강해지면 두물머리 마을공동체도 살아나지 않겠냐며 유기농업 운동을 제시하였다. 이를 계기로 팔당호 인근 농민들이 모여 영농조합법인팔당생명살림(당시 팔당상수원유기농업운동본부)을 설립하였다. 초기 유기농업 선구자들의 노력으로 나중에 두물머리 일대는 수도권 최대의 유기농업 단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팔당생명살림 조합원이 되었고 이들로부터 수십 년 쌓아 온 유기농업의 정신과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양평군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친환경농업특구로 지정된 곳이다. ⓒ두물머리픽쳐스
양평군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친환경농업특구로 지정된 곳이다. ⓒ두물머리픽쳐스

“우리 이대로 농사짓게 해주세요”
2009년 5월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시작하였다. 두물머리 일대가 4대강 사업 ‘한강 살리기 제1공구’ 사업 부지로 발표되었다. 이어 두물머리 농민들이 농사짓던 땅이 수용될 예정이니 이주하라는 통보가 날아왔다. 정부의 발표 요지는 이러했다.
  그동안 두물머리 인근에서 농민들이 농사를 짓는 바람에 팔당호의 물이 더러워졌다. 앞으로 국유 하천 주변에서는 일체의 농사 행위를 금지하고 하천부지의 점용권을 취소한다. 4대강 사업으로 1500만 수도권 시민이 이용하는 팔당상수원의 수질을 개선하고 지역경제를 살리겠다.
  어제까지도 친환경농업을 통해서 팔당호 수질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었으니 친환경농업의 발전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던 정부가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꾸니 농민들은 화가 안 날 수 없었다. 농민들은 두물머리에서 하려는 4대강 사업의 내용을 물었다. 농지를 수용한 땅을 잘라 인공수로를 만들고 축구장을 비롯한 체육시설을 몇 개 들이고 자전거 도로와 놀이 시설을 짓는단다. 도대체 수질 개선 사업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팔당호의 수질을 심각하게 오염시킬 위험이 많은 사업 내용이었다. 지난 40년 동안 온갖 규제를 감수하며 근근이 살아오다가 친환경농업으로 겨우 살만해졌는데 다시 땅을 내놓고 나가라고 하니 농민들로서는 도저히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느 날 저녁 농민들이 마을 회관에 모여서 대책회의를 했다. 농민들의 입장은 단호했다. 갑자기 두물머리 농민들을 수질 오염의 주범으로 몰아가는 정부의 발표에는 동의할 수 없고 유기농지 보존을 위해 끝까지 싸우자는 목소리가 하나로 모였다. 이렇게 하여 농지보존 친환경농업 사수를 위한 팔당상수원공동대책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우리 이대로 농사짓게 해주세요”라고 외치는 농민들. ⓒ두물머리픽쳐스
“우리 이대로 농사짓게 해주세요”라고 외치는 농민들. ⓒ두물머리픽쳐스

  1년, 2년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와 공권력의 압박은 강해졌다. 연행, 재판, 벌금이 농민들을 괴롭혔다. 정부는 때로는 공권력을 동원하여 농민들을 연행하고 때로는 그럴듯한 지원책을 제시하며 농민들을 설득했다. 농민들도 투쟁의 수위를 높였다. 농지 한가운데서 열흘 넘게 계속된 단식투쟁, 서울국토관리청 앞에서의 농민대표 단식투쟁, 930일간 매일 같은 시간에 이어진 천주교 생명평화미사, 청와대를 향한 삼보일배, 4대강 사업 예산 삭감을 요구했던 국회투쟁 등이 이어지면서 농민들은 점점 지쳐갔다.
  2011년 농지보존 투쟁이 4년째로 접어들었다. 팔당호 인근 광주시, 남양주시, 양평군에서 함께했던 수백 명의 농민이 농지보존 친환경농업 사수를 위한 팔당상수원공동대책위원회를 떠났다. 그들은 정부가 제시하는 이주대책을 받아들인 것이다. 매일 저녁 마을회관에 모여 “우리 이대로 농사짓게 해주세요”라고 삐뚤빼뚤 손수 글씨를 쓰며 현수막을 만들던 농민들이 모두 떠나갔다. 농지보존 투쟁을 같이 시작하면서 우리 이대로 투쟁이 끝날 때까지 같이 하자고 막걸리를 나누던 농민들이 떠나고 마지막 4명의 농민이 남았다. 4명의 농민이 두물머리 들판에 섰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다음날 물안개가 고요히 피어오르는 새벽까지 막걸리를 마시며 싸움의 끝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던 것 같다. 
  2011년 2월 15일 수원지방법원으로부터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두물머리 농민들이 제기한 재판에서 농민들이 승소했다는 소식이었다. 두물머리의 4대강 사업은 국가재정법, 하천법, 환경영향법 소정의 절차를 위반한 위법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목적으로 내세우는 홍수 피해 방지, 물 부족 해결, 수질 개선을 통한 하천생태계 복원, 지역경제 활성화와 무관하거나 이를 달성하기에 부적합하여 내용적으로 위법하다고 법원은 판단하였다. 그리고 두물머리 농민들이 4대강 사업으로 침해받는 생계 관련성, 신뢰이익 및 세계유기농대회를 개최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국가위신의 실추 등 법적 안정성 유지의 이익이 4대강 사업으로 달성되는 공익보다 우월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왜냐하면 그동안 전국의 4대강 사업 관련 재판에서 정부가 모두 이겼기 때문이었다. 두물머리 농민들이 승소한 이후 정부와 공권력의 그림자가 두물머리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두물머리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2심 재판에서 농민들이 패소하였기 때문이다.

930일간 이어진 천주교 생명평화미사. ⓒ두물머리픽쳐스
930일간 이어진 천주교 생명평화미사. ⓒ두물머리픽쳐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두물머리 농지보존 투쟁
2012년 다시 봄이 오고 여름이 왔다. 비록 두물머리의 농민은 4명이었지만 농지보존 투쟁의 의지는 여전히 꺾이지 않았다. 시민, 사회단체, 정치, 종교, 생협 소비자들이 떠난 농민들의 땅을 일구며 농지보존 싸움에 합류하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 마지막으로 치달을 무렵 두물머리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4대강 사업은 마무리되고 있었지만 두물머리는 여전히 농민들의 땅으로 남아 있었다. 최후통첩이 날아들었다. 행정대집행을 통해 강제철거를 한다는 통보였다. 경찰 병력이 두물머리를 에워쌌다. 천주교의 마지막 중재로 두물머리 땅은 민관이 협력하여 생태학습장으로 조성하고 그동안 양측이 제기한 고소·고발을 모두 취하하며 정부는 두물머리 농민들의 이주를 지원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렇게 두물머리 농민들의 4년 동안의 농지보존 투쟁은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이명박 정부가 가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다. 민관 전문가들로 구성된 두물머리 생태학습장 조성 협의회는 1년 만에 해산되었다. 박근혜 정부 내내 두물머리 농민들은 생태학습장 조성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농민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니 대화조차 할 수 없었다. 2017년, 4대강 사업 관련 재판 비용 1000여만 원 청구서가 두물머리 농민들에게 배달되었다. 당시 두물머리 농민들은 이주 당시 경기도로부터 빌린 토지구입 융자금의 이자와 원리금을 상환하느라고 허덕이고 있을 무렵이었다.
  촛불 시민 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새롭게 들어섰다. 2018년 1월, 나는 두물머리 농민들을 대표하여 문재인 정부에 ‘4대강 사업의 피해지역인 두물머리 유기농지와 피해농민의 대책을 촉구하며’라는 제목의 긴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은 없었다. 두물머리 농지보존 투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31※필자 서규섭: 별총총 달휘영청 소뿔농장 대표. 2000년 2월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로 귀농하였다. 2009년 5월부터 2012년 8월 14일까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맞서 농지보존 싸움을 하였다. 지금은 양평군 개군면 자연리에서 농사를 이어가고 있다. 루돌프 슈타이너의 인지학에 바탕을 둔 생명역동농업을 실현하는 농장을 꿈꾸며 농사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