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위기 상황에서 사회의 민낯이 드러난다고 했던가? 다행히 우리나라는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이 보여줬던 낯부끄러운 행태들보다는 책임과 배려의 정신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도 진행 중인 전염병에 자신이 감염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스스로가 전염병의 매개체가 되지 않으려 애쓰면서 ‘끝날 때까지는 끝나지 않는 싸움’에 대응하고 있다.
바이오 제약 업종은 또 하나의 황금알을 낳을 심산으로 바쁘게 움직이지만,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더라도 인류가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코로나19가 무서운 속도로 퍼지던 시기, 뉴스에는 사망자의 대부분이 ‘기저질환’을 가진 확진자들이라는 분석이 등장했다. 기저질환은 ‘어떤 질병의 원인이나 밑바탕이 되는 질병’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평상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코로나19 뿐만 아니라 여타 질병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는 당연한 이야기가 전문가의 입을 통해서 나왔다. 기저질환자가 특별히 적은 것도 아닌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사망률이 낮았던 이유는 검체 검사와 치료에서 공적인 대처가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만일, 감염병의 예방과 치료가 개인의 선택과 책임으로 돌려졌다면 우리의 상황은 현재의 미국이나 브라질 등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방법은 기저질환 없는 건강을 유지하는 것과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공적인 시스템을 항시적으로 갖추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농업은 어떠한가? 우리 농업이 심각한 기저질환을 앓고 있다는 점은 거의 모든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안정적인 생산을 담보하는 지속 가능한 농업과는 거리가 멀다. 22%에도 미치지 못하는 곡물자급률, 심각한 농촌 공동화와 고령화 등의 문제는 임기응변식 대응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농업소득의 증대가 전제되지 않은 생산주의 농정은 농촌의 많은 농가를 압박해서 몰아냈고, 결국은 곡물자급률의 급락으로 나타났다. 생산주의 농정의 동반자라고 할 수 있는 소수의 상층농 조차도 규모화의 압박을 지속적으로 받으면서 시장과 싸우고 있다. 규모화가 전제된 상황에서는 청년들이 새롭게 들어갈 수 있는 여지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위기의 시대에 백신의 개발이나 마스크의 확보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먹거리의 안정적인 생산을 통한 식량 보장이기에 농민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정책을 도입하는 것이 시급하다. 국경을 넘어 들어오는 먹거리가 넘쳐날 때는 농작물을 갈아엎는 농민의 눈물은 항상 뒷전으로 밀려났었다. 이제는 세계 곳곳의 물류 시스템이 빈틈없이 연결되어 작동될 것을 기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국민을 방역의 대상이 아닌 방역의 주체로 세우는 정책이 있었기에 한국이 방역선진국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듯이, 농민들이 신념과 소신대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상황, 예를 들어 농민이 농산물의 가격결정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서 유통업자들의 농간에서 비롯되는 가격 폭락의 폭탄 돌리기를 끝낸다면 먹거리의 안정적인 확보는 충분히 가능하다.
투기마저 가세해서 혼란스러웠던 마스크 시장이 공적 개입으로 진정된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이 시장의 한계는 명확하다. 먹거리의 공공성 강화도 같은 이유에서 중요하다. 2010년 이후 꾸준하게 쌓아온 친환경 무상급식과 지역먹거리운동에 힘입어 가정에 전달된 학교급식용 친환경농산물 꾸러미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희망이다. 공적인 책임감보다는 편의주의적 발상에 치우쳐서 본래의 취지를 망각한 채 라면 등 가공식품을 가정꾸러미로 보낸다거나 쿠폰으로 대신하는 실망스러운 일들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도농상생 공공급식으로 맺어진 관계가 꾸러미 공급으로 이어져서 서로에게 격려가 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신뢰와 배려, 연대와 책임이 더욱 필요한 사회가 되었다는 코로나19의 교훈을 농업의 공익적 가치와 먹거리 공공성을 확보하는 긴 여정의 강력한 출발신호로 삼아야 한다.
※필자 윤병선: 건국대학교 인문사회융합대학 교수(경제학). 현대의 세계화된 농식품체계가 가진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대안적 농식품운동을 연구한다.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 대표와 농특위 농수산식품분과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농업과 먹거리의 정치경제학」(울력, 2015)이 있다.